계란 살충제 검출 파동 이후 - 기자 시각에서 바라 본 계란 살충제 검출 파동

  • Published : 2017.10.01

Abstract

Keywords

범법자로 몰린 농가, 대책 없는 정부

지난 8월 15일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이후 한 달여가 지났지만 산란계 농가들의 고통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13일 경기도 여주에서 생산된 계란에서 살충제 성분이 또다시 검출됐다. 정부의 미흡한 대처가 논란을 키웠다는 지적과 함께 허술한 관리 시스템으로 소비자들의 불안감만 가중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사고 발생 후 농림축산식품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의 대응 부재, 결과 번복, 부실 검사, 친환경 부실 인증 등으로 이미 국가 식품안전관리체계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 하지만 정부는 발생 한 달이 지난 상황에도 마땅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고, 그러는 사이 농가들의 한숨은 커지고 있다.

산란계 농가 사실상 개점휴업

농림축산식품부는 연말까지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농장에 대한 역학조사를 실시한다. 전체 산란계 농장을 대상으로 불시 점검도 강화한다고 전했다. 불시 점검 대상에는 적합 판정을 받은 농가도 포함이다. 이에 산란계 농가들은 정부 검사만을 기다리고 있다.

경기도 김포의 한 농가는 “적합 판정을 받기 전까지 일손을 놓은 셈이나 마찬가지다. 검사를 받지 않은 농가도 두려움에 유통을 중단하고 정부 조사만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부적합 판정을 받은 농가들은 정부의 추가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생산되는 계란을 모두 폐기 처분하고 있다는 것. 검사가 이뤄지기 전까지는 농가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라고 설명한다.

급조된 계란 안전 관련 대책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정부 조사가 논란만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워낙 빠르게 진행이 됐고 그 과정에서 문제점들이 많이 나와 믿을 수 없다는 지적들이 잇따르고 있다.

또한, 정부가 발표한 계란 안전관리 방안의 골자는 ▲생산자의 책임 강화, 처벌 방안 마련 ▲계란 GP 센터 설치를 통한 유통·판매단계에서의 안전성 관리 강화 ▲동물복지축산 확대 등이다.

이 대책들은 양계산업에 AI 발생 등 위기가 닥칠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던 것들뿐이다. 현실적인 대책이 아닌 보여주기 위해 급조된 계획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업계 전문가는 “계란 GP 센터 설치는 수년전부터 생산자들이 먼저 정부에 건의했지만, 비용 발생 등의 이유로 실행이 되고 있지 않던 사항이다. 소비자 단체에서도 계란 유통단계 추가로 인한 가격상승이 우려된다며 반대했었다.”라며 “또한 동물복지농장으로의 전환은 이번 사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살충제 계란 파동, 복지농장 비중 높은 유럽서 시작

이번 살충제 검출 계란 파동, AI 등 닭에게 질병이 생길 때마다 일각에서는 케이지 사육의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동물복지농장을 대안으로 거론한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동물복지농장이 이런 문제들의 완벽한 대안이 아니라며, 국내 상황에 맞는 현실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경북 김천의 한 산란계 농가는 “질병만 발생하면 케이지 사육이 모든 원흉이라며 동물복지농장을 운운하는데, 사람들은 왜 동물복지 선진지역인 유럽에서 먼저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잊어버리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사육면적이 넓어지면 와구모(닭 진드기)발생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는 사람이 사는 집이 크고 깨끗하면 여름철에 모기에 안 물릴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바보 같은 말이다.”라고 지적했다.

살충제 검출 계란 파동이 복지농장 규정을 적용한 축산 선진국인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부터 시작됐다는 것. 심지어 유럽 농장의 계란에서 검출된 피프로닐은 국내 계란 최대검출량(0.0763mg/kg)의 16배(1.2mg/kg)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그간 정부·소비자 계란 값에만 관심

경기도 연천의 한 산란계 농가는 “여론이 케이지 사육을 하는 대다수의 농가를 마치 파렴치한으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안타깝다. 대부분의 농장이 동물복지농장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것은 농가의 탐욕이나 무지 때문이 아니다.”라며 “우리가 좁은 곳에서 최대한 많은 수의 닭을 사육하는 이유는 값싼 계란을 공급해야 하기 때문이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 “진짜 문제는 정부와 소비자가 그동안 계란가격 외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던 것”이라고 꼬집었다.

‘살충제 검출 계란’에 분노하며 농가를 질타하지만, 한편으로는‘싸면서도 좋은 것’을 쫓는 한국 사회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농가도 소비자도 행복할 수 있는 계란 가격을 적정한 선에서 답을 찾고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살충제 검출 분노하지만 계란 값 인상 가능할까? 

동물복지농장으로 사육방식을 전환한다고 가정한다면, 계란 일일 생산량은 최소 30~40%가량 감소할 수밖에 없다. 계란 수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계란 물가가 폭등할 가능성이 크다.

AI 여파로 계란 한판이 8~9천 원으로 오르자 언론에서는 연일 계란 값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고 보도하고, 소비자들은 식탁 물가가 부담스럽다며 원성이 자자했다. 이에 정부는 부랴부랴 물가안정대책이라는 명목으로 계란 수입을 추진해 산란계 농가를 압박하기만 했다.

현재 동물복지농장에서 직거래로 제공하는 계란 한판의 판매 가격은 1만5천 원~2만원대 중반을 형성하고 있다.

한판에 8~9천 원 하는 계란이 너무 비싸다며 호들갑을 떠는 상황에서 산란계 농가들의 사육방식을 지적하기 전에, 왜 국내 대다수 산란계 농가들이 케이지 사육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산란계 전체농가가 동물복지농장으로 전환했을 때 높아진 계란가격을 국내 소비자들이 받아들일 준비는 되어 있는지부터 생각해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