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傷寒’이라는 용어에 대한 기본적 의미는 크게 ‘寒邪에 상한 것’이라는 병인개념과 外感熱病을 총칭하는 병명개념의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1). 그렇지만 이 병인은 病名에 부속되는 것이므로 ‘傷 寒’은 실제로는 병명으로서 사용된다. 현재 대부분의 상한학 전문서 들은 공통적으로 병명으로서의 傷寒을 광의와 협의로 구분하고 온병의 개념과 비교한다. 사실 이러한 분류의 원인은 劉完素 이후로 吳又可, 葉桂 등이 상한과 온병을 겸하면서도 구별하는 복잡한 진술태도와 관련이 깊다. 어쨌든 의미범위에 대한 복잡한 설명에도 불구하고 교육현장에서 ‘傷寒’이라는 말의 의학적 개념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현재의 우리들에게 분명치 않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 발간되는 일반적인 학술논문들에서 傷寒이나 傷寒病을 영어로 번역할 때 typhoid fever라 하는데 여기에는 청말 이후 나름의 역사적 수용과정이 있었다. 그렇지만 <傷寒論>전문서적들은 그렇게 설명하지 않는다. 또 우리나라에서의 傷寒에 관한 인식은 보통 感冒를 지칭하며 실제 임상 현장에서 겪는 傷寒病 의 내용은 주로 상부호흡기질환들이다. 이러한 문헌적 이해와 임상적 인식의 불일치가 존재함에도 해결을 위한 깊이 있는 연구는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고 국내의 상한론 관련교재나 관련 논문들을 보면 기존의 상투적인 온병과 상한의 분류이론들을 반복하고 있다.
이같이 이론적인 다의성과 거기서 비롯되는 애매모호함을 제거하고 ‘傷寒’이라는 용어의 의학적 개념을 명확하게 하려면 상한학설의 역사적 전개에 따른 변화과정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단순히 역사주의에 입각하여 사실을 분석하는 것만으로는 지금까지의 문제를 반복할 수 있다. 그러므로 傷寒 개념의 廣義와 狹義 등에 대해 평면적인 의미 전개로 보지 않고 의학적으로 公約된 총체적인 개념으로서의 傷寒과 구체적인 개인에 의해 사용되는 실천적 개념으로서의 傷寒으로 분류하여 구조주의적 분석을 시도하고자 한다. 이것은 지금의 우리가 겪고 있는 개념적 혼란과 마찬가지로 이전 시대의 의사 개인들도 겪었던 실제 정황을 반영하여 고찰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구조주의는 처음 언어학 분야에서 시작된 분석 방법인데, 여기서는 구조주의적인 방법을 차용하여 랑그와 빠롤, 기표와 기의 및 통시태와 공시태 등을 정의함으로써 도출 가능한 함의를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傷寒’ 개념에 대한 명료하고 체계적인 인식을 확립하고자 한다. 이 같은 ‘傷寒’의 명징한 개념인식으로부터 비로소 타당하고 합리적인 변증논치체계를 설계할 수 있는데 본고에서도 傷寒論治理論에 대한 향후의 개괄적인 연구방향을 검토하고자 한다.
본 론
1. 언어에 대한 구조주의적 이해방식
본고에서 사용하는 ‘구조주의적 이해방식’이라는 말은 Ferdinant de Saussure(1857~1913)가 20세기 초에 제시한 구조언어학의 원리에 대하여 우리나라에서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국내에 소개된 이해방식을 지칭한다. 소쉬르는 당대 언어연구의 일반적 경향이었던 史的 언어학에 대하여 언어 자체의 형식적 체계화, 혹은 언어활동(langage)의 일반체계를 제시하였다.2) 여기서 사적 언어학이란 언어의 역사적 변천이나 비교문법에 주안을 두고 진화의 관점에서 비교연구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반해 소쉬르는 언어를 하나의 자율적인 체계로 보고 그에 내재된 법칙을 발견하려 한다.
그는 언어의 역사적 변천을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通時態와 수직관계인 共時態의 관점을 정립하였다. 즉 어느 특정한 시점에 있어서 한 언어실체와 타 언어실체의 변별적 관계에 의해 결정되는 언어의 총체를 체계(systeme)라 하는데, 언어체계는 통상 사회적 관습에 의해 각 개인의 머릿속에 저장된 것이고, 문법적 규칙과 제약의 체계이다. 이 체계라는 용어가 프라하 언어학파에 의해 구조(structure)로 대체되고 점차 언어학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간문화 및 정신의학분야(Jacques Lacan)에까지 원용되었다.
소쉬르는 인간의 언어활동(langage)을 랑그(langue, 言語)와 빠롤(parole, 言辭)로 구별하고, 랑그가 언어공동체 구성원들의 거대한 사회적 제약의 총람으로써 언어연구의 목표이자 대상이라면 빠롤은 이러한 제약의 한계 안에서 각 개인이 구사하는 다양한 표현들과 變異로써 언어연구의 자료가 된다. 따라서 랑그는 위에서 든 systeme와 structure이고 發話(énoncé, utterance, 言表)를 하거나 해석하는데 이용되는 가능성의 총람으로써 발화 이전의 것이라면 빠롤은 구체적인 발화의 총체로써 원전(text)과 자료(corpus) 등을 포함하는 물리적 실체이다.㈁(97-100면)
또한 소쉬르는 언어활동이 청각정보 송수신에 의해 이루진다는 점에서 記號(signe)의 체계로 파악하고 記號는 음성으로 표현되어 청각에 수용되는 記標(시니피앙, signifiant)와 그것이 전달하는 개념, 즉 감각으로는 지각되지 않는 의미내용인 記意(시니피에, signifié)라는 불가분의 두 요소로 결합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기표와 기의의 관계는 본래 자의적(arbitrary)이지만 한 언어공동체 내에서는 필연적(necessary)이고 발화과정에서는 線條的(linear)인 특성을 갖는다고 하였다.3) 發話(言表)의 선조적인 특성과 관련하여 하나의 발화된 문장은 이미 顯在的(in praesentia)으로 선행、후행하는 단어(기호) 사이에 連詞(syntagme, 統合體)의 관계에 있고, 동시에 連詞軸上의 각 단어들은 언제라도 동격관계인 다른 기호(단어)들로 대치할 수 있으므로 잠재적(in absentia)으로 範列 (paradigme, 系列體)의 관계에 있는데 이러한 관계를 야콥슨은 각각 換喩와 隱喩로 구분하고 언어활동에서 단어들의 결합은 결국 이러한 패턴들의 集散으로 이해한다. 즉 發話된 文章에서 연사의 단위를 얻으려면 切斷(découpage)을 하고 範列을 얻으려면 類別 (classement)이라는 분석작업을 해야 하는데 이를 각각 線分 (segmentation)과 換入(commutation)이라 한다. 특히 연사와 범열의 이분법은 범주상 각기 빠롤과 랑그에 해당하므로 이 범열적 동일성을 확인하기 위한 換入의 법칙은 범주 확장을 위해 중요하다. 한편 소쉬르의 직계 제자인 옐름슬레우(Louis Hjelmslev)가 제시한 外示(denotation, 顯示)와 共示(connotation, 含示)가 있는데 전자는 언어공동체의 합의가 이루어진 안정적이고 비주관적인 언어의 의미요소이고, 후자는 문맥에 따라 바뀔 수 있는 주관적인 의미요소이다. 즉 外示는 記標와 記意로 이루어진 일차언어라면 共示는 외시를 한 덩어리로 하여 새로운 記標를 형성하고 주관적인 表意부분은 새로운 記意로써 기능하게 된다.(95-119면)
그러나 탈구조주의자로서 소쉬르와 레비스트로스의 음성, 즉 기표중심사고를 강하게 비판한 데리다에 이르면 텍스트를 구성하는 문자(에크리튀르, écriture1), 기표의 또 다른 기표)는 그에 내재된 ‘주체의 부재’, ‘이미지’, ‘인공물’, ‘대리보충’ 등을 함의하며, 발성되어야만 비로소 활성화되는 본질적 결여의 존재라 하고, 역으로 문장을 ‘빠롤’로 현전시킬 때 시공간적으로 차연(差延, différance)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로고스는 드러날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4) 이러한 탈구조는 구조를 비판하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 구조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본고에서의 구조주의는 탈구조주의에 이르기까지 이론가들의 사고방식을 원용하여 서술하였다.
2. 歷代 傷寒病論의 구조주의적 구조화
1) 傷寒의 통시적 개념 변천
<內經>에서 “지금의 熱病이란 것은 다 傷寒의 종류이다”<素問熱論>라 한 것은 당대의 정통적인 주류의학의 인식구조 속에서 傷寒은 본래 發熱을 주요한 증후로 나타내는 질병을 포괄적으로 지시하는 것이고, <難經 五十八難>에서 “傷寒에 다섯 가지가 있는데 中風과 傷寒과 濕溫과 熱病과 溫病이다”라고 한 것은 年間 발생하는 모든 외감병들을 총괄하여 지칭하는 것이며 이 양자는 漢 이전의 텍스트이다. 이들을 보통 廣義의 傷寒槪念이라 하는데 이것은 晉唐 이전까지 ‘傷寒’에 관해 통용된 공통적 인식이라 할 수 있다. 예를들면 晉代 <肘后方 卷二 傷寒時氣溫病方>에 “傷寒과 時行과 溫疫의 세 이름은 같이 하나의 종류일 뿐이니 처음 발생하는 바탕이 약간 다르다. 겨울에 寒에 상하여…여름에 發하는 것이 상한이고, 추위는 不甚하고 따뜻한 게 많아서…봄철에 發하는 것이 時行이며, 연중에 癘氣가 鬼毒과 겸하여 相注하는 것을 溫病이라 한다. … 상한은 貴하고 높은 사람들이 항상 하는 표준말로 모두 상한이라 불렀고 세속에서는 전처럼 時行이라 불렀다”고 하였다. 唐代의 <千金要方>과 <外臺秘要>에서도 공히 <短劇論>을 인용하여 “古今에 傳하여 오기를 傷寒은 難治의 병이고 時行과 溫疫은 毒한 病氣라 하지만 論治하는 데는 傷寒과 時行과 溫疫을 구별하지 않고 異氣라 여길 뿐이니 傷寒이라 말하는 것은 고상한 선비들의 말이고 天幸과 溫疫은 농민과 평민들 사이에서 불러진 말이다”라고 하였다. 이렇게 보면 약간의 다른 점은 있지만 일체의 전염성을 가진 계절성 외감병을 통틀어 傷寒이라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內><難>이후 唐以前에 위치한 <傷寒雜病論>의 ‘傷寒’도 응당 이러한 개념이어야 함을 알 수 있는데, 王士雄도5) 역시 이와 같은 견해이며2) 현대 학자인 王琦6) 도 역시 그러하다. 비록 中風、傷寒이 상세하고 溫病과 <金匱要略方論 痓濕暍脈證> 중의 濕、暍의 理法方藥이 簡略한 차이는 있지만 이는 仲景 당시에 연평균기온이 현재보다 1~2℃가 낮아 風寒邪가 많고3) 溫暑濕의 수가 적었던 기후상황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7)
그런데 송대에 이르면 인쇄기술 발전과 국가의 대대적인 의서간행이 맞물리면서 의학지식이 보급되고 임상의학이 발달하여 龐安時, 朱肱, 成無己, 許叔微 등에 의해 <傷寒論>에 대한 체계적 해석과 임상경험이 축적되었고 100여년이 더 경과한 후에는 劉完素를 비롯한 金元四大家가 등장하여 각기 自家類의 독창적인 학설을 표방하였지만 그 근본은 傷寒病類의 병리해석과 논치에 <內經>이론을 적용함으로써 새로운 치법과 처방 및 약물을 확충하는 것이었다.8) 특히 劉完素는 <素問> 運氣七篇의 運氣論을 도입하여 寒邪를 포함한 六氣가 모두 火熱로 변한다 하고 傷寒方을 응용하여 天水散4), 防風通聖散5), 雙解散 등을 창방하였다. 張從正 또한 河間을 따르되 仲景의 汗吐下法을 중용하였고9) 朱丹溪 역시 濕熱을 주로 하여 상한의 病證을 論治하였지만 “仲景諸方,實萬世醫門之規矩准繩”<局方發揮>이라 하였으며, 金元時期의 기후는 현재의 날씨와 비슷하게 따뜻하였다7) . 明代의 傷寒論治에 관한 이론으로는 明末의 吳又可가 두드러지는데 竺7) 은 長江 유역의 湖水結氷을 기준으로 현재보다 온난했던 겨울은 1550~1600년과 1770~1830년이고 한랭했던 겨울은 1470~1520, 1620~1720년 등이라 하였는데, 특히 溫病이 유행하고 吳又可와 葉天士, 薛雪, 王士雄 등의 溫病學派가 활동했던 江蘇省과 인근 浙江省은 모두 上海 이남의 南方에 위치하고, 吳又可가 <溫疫論>自敍에서 언급한 崇禎辛巳는 59세인 1641年이다. 당시의 <吳江縣志에 의하면 “當時에 해마다 瘟疫이 流行하여 한 마을 100여호 중에 한 집도 면한 곳이 없고 한 가문의 수십명 중에서 한 사람도 겨우 살아나지 못했다”6)고 하였다.
더구나 <傷寒論>에서의 太陽傷寒과 太陽中風과 太陽溫病은 태양병 중에서 惡寒과 惡風 및 不惡寒을 주로 하는 병증유형을 특정하기 위한 것인데, <瘟疫論>에 의하면 溫疫7) 은 初起에 하루 정도 憎寒하다가 二三日부터 脈數 晝夜發熱하고, <溫病條辨>에 의하면 溫病은 太陽이 아닌 上焦手太陰에서 시작하며 脈大數動 微惡風寒午後熱甚과 口渴이 있어 구분된다10).
또한 상한병이라는 질병도 인체의 내환경에 따라 혹은 주변환경과 물리적 조건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되는 유기체적 특성을 나타내므로 形骸化된 고유명사로 간주할 수는 없다.
2) 傷寒病의 共時的 槪念
소쉬르가 말하는 공시태(Synchronie)란 특정 시기에 언어가 가진 특정 상태에 대해 그 기능 작용을 고찰하는 것인데, 이는 역으로 그 특정 시기까지의 역사적 변화과정을 추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다시 통시태를 공시태와 관련시켜 정의한다면 공시태의 繼起的 連續이라 할 수 있다.2)
이런 공시적 관점에서 傷寒病을 파악하면 다음과 같다.
傷寒病은 仲景序文에 의하면 일차적으로 後漢 建安紀年(AD 196년) 이래로 혹독하게 번졌던 전염성 외감병이다. 화이트헤드의 개념으로 표현하자면11) 傷寒病의 본질은 그 당시에 빈발했던 전쟁과 그로 인한 유랑걸식과 기아 상태 등의 사회적 조건과 河南省 南陽郡이라는 공간적 조건, 지구사적 주기에서 한냉 시기에 속하는 기후적 조건 등의 多者(many, data)가 개별적 인체 안에서 合生(concrescence)된 一者(novel one)로서 이것은 이미 세계를 자신속에 포함하고 있다. 이러한 조건들은 仲景이 이미 三陰三陽病의 체계로 병변을 분류하고 방약이론을 구성한 <傷寒論> 속에 구조적으로 종합하여 제시되었다. 그러한 근거는 六病分類와 증후특징 및 方藥 등에서 추출할 수 있다. 또한 仲景이 당면했던 질환들로는 인플루엔자, 장티푸스, 콜레라, 기타 다양한 전염성 질환을 포괄하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共時的 조건들의 合生에 의한 질병이고, 그 속에는 이미 세계가 포함되어 있다는 점에서는 明淸代에 유행했던 溫病도 완전히 동일하다. 명대는 장강 하류의 경제적 번영으로 강남지역을 경제의 중심지뿐만 아니라 새로운 문화의 중심지로 부상하게 된다.8) 명초부터 농업을 장려하여 耕地를 늘려 벼농사 구역이 확대되고 동남 연해와 영남 지역은 다모작을 하며, 품종도 늘어나 吳江縣에 멥쌀은 70종, 찹쌀은 37종이 있었다고 한다. 기타 잠업, 주단, 자기 등의 수공업품 생산과 교역이 활발해지고 南京, 松江, 蘇州, 杭州 등에 대도시가 발달하였다. 한편 文學은 時代相을 반영하는데 당시에 출판된 <金甁梅>에는 色慾을 중심으로 金權이 얽힌 세태가 잘 묘사되어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成化嘉靖연간에 宦官, 方士, 僧, 士流를 막론하고 宮闕에 房中藥術을 바치면서 富貴權勢를 얻는 일이 많았다. 한편 생태학적 환경을 보면 1550~1850년까지는 기후적으로 지구표면온도가 3℃ 낮아지는 小氷期에 처하는데9) 明末 후반기엔 특히 심하여 嚴冬이 많아지면서 乾旱、酷冷 등으로 饑荒과 疾疫이 증가하게13) 되었다.
이것은 결국 火熱氣의 有餘와 陰精消耗를 일으키게 되는데, 실제로 漢代와 달리 熱性 轉歸를 초래한 것이다14) . 이러한 온열성 역병을 다룬 <溫疫論>과 <溫病條辨>에서도 <傷寒論>에 기술된 질병항목들을 역시 다루고 있는데, 다만 치료이론과 方劑가 시대에 따라 변화된 의식주와 욕망조건 등에 기반하여 병리성질이 변화되면서 달라졌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것도 역시 환경의 邪氣特性과 合生한 것으로 추론되며, 온병도 결국은 상한병을 파악하는 공시태와 동일한 체계(구조)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純粹한 外邪要因으로 한정한다면 漢末과 明末의 疫病 원인이 다를 이유가 없으며, 보다 중요한 것은 當代의 사회문화적 특성과 그 속의 인간들에게 집단적으로 표현되는 心身兩面의 病理生態的 구조요인이라 할 수 있는데, 이것이 共時態的 관찰의 의의를 명백하게 드러내는 예이다. 따라서 거시적으로 구조라는 틀안에서 보면 邪氣로서의 傷寒病論의 구조를 벗어나는 溫病論이라는 체계는 불필요하고 기존의 傷寒病論的構造 안에서의 範列과 連詞 의 치환으로 서술될 수 있다.
고 찰
한의학의 토대이론인 <內經>의 陰陽五行論은 <周易>의 陰陽時位論과 마찬가지로 視空間的 整合性과 天人合一論에 바탕하고 있다. 이는 인간은 본래 천지자연을 母本으로 하여 구조․기능적으로 결함이 없이 상응하는 완전한 존재이자 체계라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傷寒論>은 본래 脈證幷治의 임상체계이므로 方과 病과 證의 감별을 통한 대응에 기초하므로 어떤 토대이론이 선행하는 것이 아니고 따라서 구조적 정합성을 전제하지도 않는다. 그렇기는 하지만 傷寒病은 외감이기 때문에 시공간적 한랭조건에 대한 인체의 적응여부에 따라 발생되고 변화한다는 점에서 시공간적 영향과 직결된다고 할 수 있다. 또한 陰陽論으로 한정하여 보면 <內經은 三陰三陽 의 생리구조를 채용하고, <傷寒論>은 三陰三陽病에 의거한 병리변화체계를 사용하며, <周易>은 三重陰陽으로 형성된 八卦의 錯綜構造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 공통점은 時와 位, 즉 시공간적 相互交織關係가 이론체계의 구조적 토대라는 점이다.
19세기 말에 소쉬르는 기존의 비교언어학의 통시적 변천과 비교를 통한 연구를 허상이라 비판하고 언어를 사회적 규범이 내재된 ‘랑그’(체계)로써 간주하고 ‘빠롤’(구체적 발화언어)은 이 구조 속에서 비로소 의미를 갖는 것으로 파악하였다. 또한 언어의 시공간적 교직관계를 종합하는 通時態와 共時態의 관점을 수립하고, 특히 공시태를 중시하여 구조주의적 연구방법을 闡發하였다. 또 그는 “언어에는 차이만 존재한다.” 하여 언어를 ‘차이에 근거한 체계’로 가장 단순하게 이해하며 역사적 변화보다는 한 사회 안에서 자의적으로 이해되는 구조적 맥락을 중시한다. 즉 언어는 체계 내의 다른 요소들과의 ‘대립적’ 차이에 의해서만 존재한다는 것인데15,16) 여기서 차이란 한 낱말(기호)을 다른 낱말(기호)과 구별시켜주는 음성적 차이(音素)와 그 낱말(기호)의 ‘특정한 위치’이다. 이처럼 構造에 내재하는 관계중심의 사고방식은 <內經>과 <周易> 및 <傷寒論>에서 比類와 차이에 대한 辨別을 중시하며 생명현상에 나타나는 모든 單位事象의 거동을 全一的 체계로 이해하는 특성과 잘 문합한다.
또한 이러한 ‘차이’ 개념의 표면화는 플라톤-데카르트-헤겔로 이어지는 서양의 고전적 형이상학을 근본부터 허물었는데 그 이유는 주체(실체)를 구조 안에서의 위치나 차이로부터 파생되는 부수적인 것으로 전환시켰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사유의 주체인 이성은, 인간을 구조의 관점에서 볼 때, 일부에 불과하고 무의식과의 관계를 고찰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구조주의는 필연적으로 니체 -프로이트적 사유에 접근하게 되는데16), 이후 야콥슨과 레비스트로스 등은 소쉬르의 관계적/대립적 차이의 원리를 ‘변별적 차이’의 개념으로 바꾸면서 예술, 신화, 이데올로기 등의 영역으로 확장하는가 하면, 데리다나 들뢰즈는 ‘과학적 차이’에 선행하는 ‘원천적/수직적인 차이’에 주목하여 “差延(데리다)”이나 “차이 자체18) (들뢰즈)” 등의 새로운 개념을 통하여 존재론적 차이를 드러냄으로써17,19) ‘중 심’、‘동일성’、‘원리’ 등 구조의 폭력에 의해 무시되는 개체와 타자들을 살려내고 있다. 특히 데리다의 差延이라는 해체주의적 독법은 한의 본질적이고 절대적 실체나 개념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 개인에게서 구체적으로 差延되면서 실현되는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구체적인 개별 임상사례 辨證과 질병진단의 본질을 설명하는 이슈이기도 하다.
<傷寒論>에서 다룬 傷寒(病)은 기본적으로 다수의 사람들이 외환경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여 발생한 일련의 감염성 질환군이며, 그 경과는 환경조건과 人體正氣의 相爭勝負 관계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 소쉬르는 언어를 하나의 자율적인 체계로 보고 그에 내재된 법칙을 발견하려 하였는데, 이를 원용하여 傷寒(病)에 구조개념을 比定하고 傷寒論(學)도 원인과 병리와 치료방약을 포괄하는 대응체계로 간주하여 연구할 수 있다. 또한 언어가 통시태와 공시태를 가지며 두 視軸이 종합되어야 전모를 파악할 수 있듯이 傷寒(病)도 通時的으로 일정한 기간에 걸쳐 사회지리적 환경과의 상호작용으로 체내에 형성된 病脈證의 결과를 共時的으로 종합하여 몇 가지의 양태로 파악한 것이다. 이렇게 구조로 환원하여 보면 ‘寒’의 病性的 의미에 집착하여 ‘溫熱’과 다르므로 온병과는 달라야 한다는 논리는 자연히 성립될 수 없음을 알게 된다. 왜냐 하면 공시태 속에는 寒이나 溫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외부세계만 있을 뿐이며 寒溫은 단지 관찰자가 추상화를 통하여 기술한 것일 뿐이기 때문이며, 실제로 溫疫의 발생에는 寒邪가 더 많았다.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면, 먼저 소쉬르가 언어공동체의 사회적 제약과 총람이라 규정한 랑그와 개인적인 發話라 규정한 빠롤은 각각 <內經>과 <難經>과 <傷寒論> 등 당시 경전의서에서 사용되던 표준개념(시니피앙)으로서의 傷寒(病)과 그 병증체계 전체/孫思邈, 王燾, 葛洪 등 의사 개인들이 그들 의서에서 다양한 의미와 수준으로 설명한 傷寒(病)과 병증들이다. 따라서 傷寒 개념을 얻기 위해서는 물론 전자인 랑그를 파악하는 것이어야 하지만 이는 시공간적으로 달라지는 구체적인 임상실제인 빠롤을 확인함으로써 비로소 얻어질 수 있다. 漢代의 시점은 이미 과거이므로 醫書를 통하여 파악할 수밖에 없으므로 텍스트언어라는 점에서 기표와 기의로 나누어볼 수 있다. 본론에서 外示와 共示의 관계를 통하여 이전의 記意들이 기표와 결합하여 끊임없이 새로운 기표를 형성한다고 하였는데 이렇게 보면 傷寒은 과거에 고정된 固形的 實體가 아니고 지금 현재도 임상의사들에 의하여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로 이해하여야 한다. 즉 시대가 달라지면서 상한의 최초 기표와 기의는 外示가 되고 임상을 통해 확장된 새로운 상한 개념(金元四大家, 溫病家)들이 共示로서 더해지며 寒은 溫의 변수로 환입되므로 랑그로서의 상한은 온병의 범열을 결합한 외감병 총람으로서의 개념을 갖는다.
이렇게 보면 溫疫과 溫病은 寒邪와 다른 外邪일지라도 範列의 치환일 뿐 구조는 상한의 랑그를 벗어나지 않으므로 傷寒家들이 온병논치가 <傷寒論>과 다른 점이 있다 하더라도 傷寒理法의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다. 또한 共時態와 共時的 槪念논의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傷寒의 ‘寒’은 비단 병인으로서의 寒邪만일 수 없고, <難經 五十八難>의 中風이나 溫病 등 五種外感에 한정되지도 않으며, 仲景 당시의 時點에서 地理․氣候․社會․文化的 環境條件들이 개별적인 인체와 合生하여 형성된 天人合一的 사태이기 때문에 ‘寒’만을 강조하는 것은 전혀 타당하지 않다.
만일 傷寒病의 개념이 구조적으로 溫病을 포괄할 수 있고 理法方藥이 換喩와 隱喩로 대리될 수 있는 것이라면 論治의 근거도 또한 구조적으로 확장될 수 있다. 즉 중국과 한국에서 사용하는 대학 교재들을 보면 지금까지 傷寒病의 논치는 六經辨證, 溫病은 衛氣營血 혹은 三焦辨證 등으로 규정하여 왔지만 구조주의적 시각에서 보면 傷寒과 溫病의 理法方藥 체계도 분리해야 할 필연성이 없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어쩌면 본래 둘 다 외감병이었으므로 당연한 논리이다. 바뀐 것이 있다면 共時態로서 시대의 문물환경조건과 발병 주체인 인간개체의 조건인데 이에 관한 근본적 해석이 없이 寒에서 溫으로 邪氣의 특성이 변화한 것으로만 해석한다면 外感病을 두루 포함한다고 하는 溫病論治理論의 該括性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실질적으로는 溫病論方 중에 불필요한 개념의 중복문제를 초래하거나 필연적으로 傷寒方을 차용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중의학에서는 이전부터 상한과 溫病論治를 통합하자고 하는 寒溫統一論이 등장하였지만 아직 소수의 주장에만 그치고 있는데, 이러한 논리의 연장에서 보면 寒溫의 통합이후에도 여전히 부족한 요소가 남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 론
이상의 구조에서 탈구조에 이르는 광범한 구조주의적 논의로부터 비로소 ‘傷寒(病)’의 명징한 개념을 얻을 수 있다. 傷寒(病)의 본질은 단순히 寒邪에 傷한 병도 아니고 廣義 傷寒에서 말하는 五種 의 外感病만도 아니며, 地理․氣候․社會․文化的 環境條件들이 개별인체와 合生하여 형성된 天人合一的 질병현상이다. 前者, 특히 사회문화적 환경에 대해서는 사회 구성원들의 전반적인 욕망추구와 병리양상을 관찰하여 주도적인 病機를 추론하고, 후자에 대해서는 이들 특징과 관계하는 인체의 상응인자를 도출한 다음 구체적인 병변부위와 병증을 해석하여야 한다. 따라서 단순하게 病位나 病期 등에 근거하여 단지 신체적인 질병의 단위로 치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또한 傷寒(病)의 개념은 <內經> <難經>과 <傷寒論> 이래로 金元四大家나 溫病家 등의 역사상 많은 醫家들을 거쳐 새로이 公示가 더해지면서 현재까지 부단히 갱신되고 있으므로 傷寒을 이해하고 분석하는 체계도 계열체 관계에 있는 他者들을 수용하면서 확장되어야 한다.
이러한 인식으로부터 傷寒(病)의 論治에 있어서도 기후적 요소뿐만 아니라 患病主體의 생리적 특성과 사회문화적 변인들을 반영하여 방제구성과 연계할 수 있는 이론적 기초가 확립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타당하고 합리적인 변증논치체계를 설계할 수 있는데, 그 맹아는 이미 <東醫壽世保元>에서 발견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은 傷寒論治理論에 대한 향후의 개괄적인 연구방향을 안내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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