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질병관리 - 산란계 질병동향과 위기관리 및 해법(3)

  • 손영호 (반석가금진료연구소 반석LTC)
  • Published : 2013.03.01

Abstract

Keywords

3. 양계산업 주요 이슈 및 사건들

양계산업에 있어 발생하는 위기는 전국적이거나 농장단위의 질병발생에 기인한 경우도 있지만 예기치 않은 사건과, 갑작스런 규제와 제도의 변화, 국제적인 동향, 무역관계, 메스컴의 역할, 생산조절 실패로 인한 생산량 증가, 사료가격 인상 등에 의해 발생해 왔다. 수십 년 전에 일어났던 사건과 이슈들이 지금 생각하면 단순하고 별일 아니었던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같은 성격의 이슈들이 규모와 시대상황이 다를 뿐 반복되는 경우도 우리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양계산업 발전에 기여하거나 경제적 손실과 타격을 입혀온 이러한 이슈들을 되짚어 보다보면 양계산업 발전을 도모하거나 미래에 발생할 지도 모를 위기들을 예견하여 그 위기들에 대해서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양계산업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시대별로 겪어 온 이슈와 사건들을 되돌아보기로 한다.

1) 1970년대

전국적으로 전기(電氣)가 다 보급되지도 않던 1970년대는 양계산업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사육수수가 늘어나기 시작하는 시기였다.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과 배경을 반영한 양계산업의 변화와 위기는 지금 생각하면 매우 단순한 것처럼 느껴질 수 있을지 모르나 당시에는 이러한 이슈가 양계산업에 있어서 결코 가볍지 않은 문제였을 것이다. 1974년 서울시가 시청을 중심으로 10km 이내에서 가축을 사육하지 못하도록 조례를 제정한 사건이 있었다. 최근 전국적으로 지방조례는 몇 백 미터 안에 인가(人家)가 있을 경우 축사를 허가해주지 않는 것과 성격이 비슷한 사건이나 현재 서울의 발전상을 보면 격세지감이 느껴지는 사건이었다. 겨울철 계사 난방을 목적으로 사용하던 연탄의 품귀현상으로 농가들이 갑작스런 어려움을 겪었던 일은 당시 시대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한 사건과 이슈였다. 그리고 질병발생과 연관하여 1970년 마렉병(MD)이 국내에 처음 발생한 이후 피해가 늘어나면서 이를 예방하기 위해 1971년 4월 미국 엘크사로부터 마렉 예방백신을 수입하여 일정한 시험을 거친 후 보급이 시작되었다.

2) 1980년대

계란가격은 생산량과 소비량, 그리고 돌발적인 사회적 이슈에 따라 요동을 쳐왔다. 1981년에는 생산과잉으로 인해 국내 계란가격이 하락, 9천만 개의 재고가 쌓이자 이를 회복시킬 목적으로 싼 가격에 홍콩과 사우디아라비아에 81만개의 계란을 수출하는 일이 벌어졌다. 반면 이를 계기로 국제 계란시장 동향을 파악하게 된 점이 큰 수확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이는 국내의 저난가의 위기를 통해 국제 동향을 파악하게 된 사례라 할 수 있다.

1982년 국내에서는 발병된 적이 없었던 전염성후두기관염(ILT)이 강화를 비롯한 국내 양계장에서 발병되면서 농장에 큰 피해를 주기 시작하였다. 질병이 확산되자 같은 해 TV를 통해 ILT 피해사례에 대해 발표하고 방역홍보를 대대적으로 펼치는 등 질병 근절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며, 백신을 긴급 수입, 보급하는 등 대책마련에 부심하였다. 계사시설에 대한 규제는 보온덮개 간이계사에 대해 1983년 농지 불법전용으로 농토가 잠식된다는 이유를 들어 강제 철거령이 내려진 일이 있었다. 당시 육계는 80%, 산란계는 30% 정도의 계사가 간이계사에서 사육되고 있는 상태에서 철거가 강행될 경우 수급차질로 인한 사회적 문제로 우려의 소리가 높았었다.

1988년 2월에는 축산물 수입개방과 관련된 이슈가 있었다. 서울역 광장에서 서울경기지역 양계업자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닭고기, 계란수입 결사반대’, ‘30만 양계인의 생존권을 보호하라’, ‘안보적 차원에서 축산물 수입개방 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벌였었다. 1989년에는 메스컴을 통해 발생할 수 있는 심각한 위기가 있었다.

그해 2월 KBS-TV는 국민건강을 위한다는 차원에서 이상구 박사의‘새로운 출발’을 황금시간대에 방영하였는데, 이 프로에서 이상구 박사는 축산물 소비는 국민의 건강에 유해하고 오히려 야채가 더욱 좋다는 내용 등 축산물 소비를 위축시키는 발언으로 축산농가에 막대한 피해를 가져왔다. 한 사람의 생각이 메스컴을 통해 전국민의 소비를 위축시킨 사건이었으며 당시 이 일은 농가에 심각한 위기를 불러 일으켰을 뿐 아니라 온 국민들에게도 엄청난 이슈가 된 사례이다.양계산업이 대형화 되면서 뉴캐슬병이 농장에 처음으로 타격을 준 것은 1989년 12월로 기록되고 있다. 당시 1종법정전염병으로 분류되던 뉴캐슬병이 산란계 농장에서 진성으로 판명되면서 농장에 있던 1천수에 대해 살처분 명령이 떨어져 모두 매몰 처분한 사건이 있었다.

3) 1990년대

1990년 10월 26일 대한양계협회를 비롯한 전국농민단체협의회 회원들은 서울역 광장에 모여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 협상 저지 서명운동을 전개하였는데, 서명운동의 목적은 우루과이라운드 농산물 협상에서 한국농업에 불리한 안을 강요하는 미국과 한국 협상대표에 실상을 알려 우리 농민과 국민의 뜻을 전달하기 위함이었다.

같은 해 보건사회부는 축산물에 대한 항생제 사용이 증가하면서 닭고기, 돼지고기, 쇠고기 등 축산물의 항생제 잔류물질 기준을 12월 6일 고시하고 1년간 경과시간을 거쳐 90년 12월 1일부터 시행키로 하였다.

고시 내용에는 항생제, 합성항균제, 성장호르몬 등 항생물질 잔류량이 기준치를 초과한 축산물은 수거, 폐기하기로 되어있다. 1992년 6월 11일 축산물에 대한 시장개방 압력이 날로 거세지면서 대한양계협회를 비롯한 농민단체들은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한미 쇠고기 수입개방 협상 반대 등 시장개방 저지대회에 참석하였다.

한편, 대한양계협회를 비롯한 축산관련 6개 단체는 축산물 수입개방 저지 범국민운동추진위원회를 발족시켜 쇠고기 쿼터량 증대와 SBS물량확대 요구 등을 저지키 위해 100만인 서명운동을 전개하였다. 대한양계협회에서는 당초 5천명을 훨씬 넘긴 12,900여 명의 서명을 받아 추진위에 전달하였으며, 제출된 서명지 400만명분은 내외신 기자에 공개하였고 사본은 미국, 호주, 뉴질랜드 등 축산물 수입개방에 적극 공세를 펴는 대사관에 전달하여 한국축산업자의 강력한 의지를 전달했다.

유통구조의 문제점과 예방백신의 부재로 인해 1992년부터 일부 지역으로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가금티푸스가 1994년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1995년도는 지역, 계절에 관계없이 만연되어 생산성 저하를 일으키며 농가에 큰 피해를 주었다. 이때 항생제 사용이 늘면서 항생제 잔류가 사회문제로 비화되기도 하였으며, 가금티푸스 생균백신의 허가가 발생 10년 후인 2002년에 허가되기까지 농가들은 본병으로 인한 경제적인 피해를 감수해야만 했다. 농가에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유발하고 있는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백신의 허가와 관련한 숙제들을 남긴 일이라 할 수 있다. 항생제 사용이 늘고 소비자들의 축산물 안전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정부에서는 1996년 7월 1일부터 닭고기에 대한 항생제와 합성항균제 등 닭고기에 대한 유해물질 잔류검사가 실시되었다. 이후 계란에 대해서도 항생제에 대한 관리가 강화되었으며, 90년대 후반 HACCP(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의 중요성이 부각되면서 최근에 이르기까지 사료, 도계장 등이 대부분 HACCP가 적용되고 있으며, 2008년부터는 닭 사육단계 HACCP이 적용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저병원성조류인플루엔자(LPAI)가 1996년 3월 20일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S농장에서 처음 발견되면서 당시 농림수산부(현 농림수산식품부)는 이 종계에 대해 폐쇄명령을 내리고 살처분시키는 조치를 취하였다.

이 조치는 저병원성조류인플루엔자(LPAI)를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일이었다. 그 후 2000년대 초반부터 양계산업에 심각한 경제적 피해를 유발한 LPAI 사독백신이 국내 근절을 목적으로 2007년부터 사용되기 시작해서 현재까지 사용하고 있다. 수의과학연구소(현 농림수산식품부검역검사본부)는 1997년 그동안 외국 수입품에 의존해 오던 IB백신을 우리의 실정에 맞게 한국형 사독오일 백신을 개발, 민간업체에 기술이전을 하여 2월부터 약품이 출시되어 육계, 산란계, 종계 농가에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 주었다. 이 백신은 오랫동안 농가의 피해를 막아주는데 지대한 역할을 했다고 평가받고 있다.

1999년 3월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원란 형태의 계란 32만개가 태국으로부터 수입되면서 채란농가들로부터 큰 비난을 받았다. 당시 한국계란유통협회를 중심으로 한 상인들의 주도하에 수입된 계란은 2, 3월 난가가 100원 넘게 형성되면서 초래된 현상으로 수입가격은 C&F 도착가격으로 40원 선에 수입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생산자들은 양계업계가 어려운 시점에서 수입을 하는 것은 망국행위로 규정하고 수입 이후 수입업자를 찾아가 강력 항의를 하는 일도 있었다. 당시 물량이 많지 않아 채란업에는 당장 큰 영향을 주지 못했지만 수입자유화 이후 언제든지 계란이 수입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었다.

4) 2000년대 ~ 현재

2000년대 이후의 이슈들은 4차례에 걸친 고병원성조류인플루엔자 발생, FTA의 타결 및 발효, 사료가격 인상, 친환경축산, 복지농장인증, 그리고 생산량 증가에 따른 가격하락이다. 이 가운데 농가에서 가장 크게 체감하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사료가격 인상이다.

2008년에는 국제 곡물파동이 신흥국들의 수요증가와 곡물의 바이오연료 사용 확대에 따른 수요측의 충격에 의해서 일어났고, 2012년의 곡물파동은 이상기후로 인한 곡물생산량이 감소한데 기인하여 발생했다. 생산비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사료가 어떤 이유로든 생산량이 감소하여 수급불안정 상태에 이르는 일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반복될 수 있는 일이다. 미국의 경우뿐 아니라 향후 식량생산 전쟁은 이미 예고되었으며, 곡물의 99%를 수입하는 우리나라는 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또 이달(3월) 대폭 인상될 사료값이 현재의 국면에 쓰나미처럼 닥칠 예정이며, 각 농장은 자구책이 필요하다. 

대체곡물 수입, 대체 영양소 자급, 사료 절감방안 확보, 효율성의 증가를 위한 보조제품들의 출현 등이 예상되며 사료의 품질도 차별이 심해질 것이다. 1년여 기간 동안 저 난가가 이어지는 현재 상황에서 사료값 인상은 산란계 농장에 막중한 위기를 더하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2003~4년 국내에 처음 발생한 고병원성조류인플루엔자는 발생 당시 국내 양계산업의 근간을 송두리째 흔들만한 사건으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예상과는 정반대로 생산량의 숫적 감소가 몇 년간의 호황을 가져왔고 이에 탄력을 받은 농가들의 재투자에 의한 사육수수의 팽창과, 현대화시설 지원 자금이 겹쳐 2012~2013년의 저 난가는 우리나라 양계역사에 큰 이슈로 남을 만한 사건이라 할 수 있다. 대한민국 양계산업의 가장 큰 숙제는 생산량 조절과 소비 증진이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