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 자본 중심의 육계수직계열화사업으로 본 '농민의 종말'

  • Published : 2011.07.01

Abstract

Keywords

몇 년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소개된 연구공동체 ‘연구공간 수유 +너머’ 대표인 고병권 박사의 ‘고추장,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라는 책의 출판 소식을 접하고 책 제목이 재미 있어 구입을 해 읽었다.

당시 정치사회적 이슈를 고병권 박사가 읽었던 책을 통해 해석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방식으로 쓰여졌는데 당시 한미 FTA 정부간 협상이 막 타결된 때인지라 FTA 그리고 가장 피해를 많이 입계 되는 농업부분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 더 집중해 읽게 됐다.

이 책에서 고병권 박사는 농업부분을 다루며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가 쓴 ‘다중’이라는 책을 인용했는데 자본주의 체제와 공산주의 체제에서 농민의 위치에 대한 내용이 크게 와 닿았다.

고병권 박사의 짧은 인용에 공감했던 필자는 조금 부담스러운 두께의 다중이라는 책을 구해 읽었다. 다중에서 저자들은 자본주의 그리고 공산주의 양 체제 모두 결국 농업과 농촌에서 농민을 퇴출 시킨다고 지적했다.

공산주의체제 속 농민은 불안 요소다.

토지개혁이란 명목으로 농민에게 땅을 몰수하고 집단농장을 꾸린 북한이나 대규모 기계농업을 통해 식량을 생산해 전 인민에게 배급하고자 했던 구 소련 모두 농민사회를 해체하고 농민을 집단농장 내의 노동자로 만들었다.

공산주의 체제 속의 농민은 기득권 층(토지를 소유)이었고 전 인민의 기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농지를 특정한 사람들이 소유해서는 안된다는 인식이 크게 작용했다.식량을 골고루 분배하기 위해서는 소규모 자영농 대신 규모화 기계화를 통한 농지의 효율적 이용 등이 필요했다. 이로 인해 공산권에서는 정책적으로 토지에서 농민을 분리해 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체제속의 농민은 왜 퇴출되는 것일까?

저자는 자본주의 체제 속 농민은 공산주의 체제에서와 같이 정부의 정책에 의해 노동자로 전락시키지는 않았지만 거대 자본이 농업으로 흘러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농민들이 땅을 팔고 떠나게 된다고 지적한다.

미국의 서부개척 역사는 막장 인생들의 마지막 꿈이었다. 전혀 개발되지 않은 땅에 소를 끌고 다니던 카우보이 시대를 지나 작은 울타리를 치며 목장을 만들어 정착하기 시작했고, 이후 이들 목장을 사들이는 중간규모의 대농이 생겨난다.

시간이 지나자 대형목장을 사들이는 거대 자본이 생겨나고 상당수의 농장은 이들 자본으로 무장한 농업회사에 하청 농장으로 전락하면서 예속된다.

예전처럼 자주적으로 농장을 경영하는 농장주는 사라지고 회사에 예속되어 회사가 제공하는 자재를 사용해 회사가 요구하는 규격의 축산물 또는 농산물을 생산하는 노동자들만이 남게 된다는 것이다.

결국 자본이 농업을 돈벌이 대상으로 인식하는 순간 점차 농지와 목장에서 농민들을 몰아내거나 농민을 노동자로 전락시킨다는 것이다.

공산권 중 혁명과정에 농민의 도움을 크게 받은 중국이라는 예외가 있고 농민이 사라지고 있는 미국과 브라질과 같은 극단적 자본주의 농업이 있는가 하면 지금도 농업인들이 주류인 유럽과 같은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극단적 자본주의,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는 농민은 살아 남지 못하고 만다.

자본주의 체제를 받아들인 우리 대한민국의 농업은 어떨까?

미국과 브라질과 같이 농업을 자본이 지배하게 될까? 아니면 유럽처럼 농업인들이 지속적으로 주류로서의 위치를 유지할 것인가?

대한민국의 농업은 자본이냐, 사람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1990년대 까지 대한민국의 농축산업은 농업인이 주류로서 역할을 해왔다는데 부인할 사람은 없다. 그 핵심에는 협동조합이 있다.

하지만 몇몇 협동조합을 제외하고는 1)축산업도 일반 경종농업분야도 농축산물 가공과 유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크지 않았다. 협동조합을 이전까지 주된 역할은 농업인의 금고역할이었다. 하지만 개방이라는 커다란 변화가 예정되어 있었지만 협동조합은 그에 맞는 역할 변화에 적극적이지 못했다.

정부는 대형화된 서구의 거대 협동조합 모델의 필요성을 느꼈지만 우리의 협동조합들은 소규모 조합들이 난립해 있었고 농축산물의 가공과 유통보다는 신용사업에 너무 집중한 탓에 협동조합 육성을 통한 개방 대비는 힘들어 보였다. 자연히 협동조합 무용론이 고개를 들었고 UR협상 타결될 즈음 축산업 경쟁력 강화라는 명목으로 1990년을 전후해 자본농업의 씨앗이 축산분야에 뿌려졌다. 자본농업의 씨앗은 정부의 정책적 지원 속에 싹을 틔우면서 2000년대 들어 열매를 맺었고 농업=농민, 농업=협동조합이라는 공식에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국내 농업에 자본 중심이 된 첫 모델은 축산계열화사업이라 할 수 있다.

하림, 마니커, 체리부로 등의 계열화 사업체들은 육계사육농가들에게 원자재를 제공하고 닭을 키우게 해 납품 받고 있다.

위탁사육을 하는 농장의 경영이 독립적으로 이뤄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닭 생산의 필수 원자재인 사료와 병아리의 공급권이 계열주체에 있기 때문에 농가는 입추나 출하시기 조정과 같은 가장 초보적인 경영적 판단도 할 필요가 없다.

계열화사업자가 필요로 하는 규격의 닭을 계열주체들이 필요로 하는 시기에 키워 납품하도록 하고 있다 보니, 생산된 축산물은 다양성을 잃어 버리고 획일화 됐고 농가들은 계열업체만 바라보며 언제 병아리를 줄 것인지 제공받는 원자제의 품질은 어떤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신세가 돼버렸다.

이러한 모델은 양돈부분(약20%)에서도 일부 도입이 되었고 경종농업부분도 농가와 기업 간의 계약에 의해 농산물을 생산해 납품하는 시스템이 육계계열화사업과 엇 비슷한 부분이 많이 있다.

파종시기에 산지도매상들에게 선급금을 받고 밭떼기를 하는 거래 방식이나 김치공장, 이마트와 같은 대형소매유통업체 등과 계약재배를 하는 배추나 무 생산 농가들의 형태가 여기에 속한다.

이렇게 축산부분을 중심으로 시작된 자본이 중심이된 농업은 30여년이 지난 지금 회사는 성장했으나 농가들은 과거나 지금이나 별반 다른 것이 없다.

육계계열화사업이 우리 농업의 구원투수가 될 것이라는 기대 속에 도입되어 육성되었지만, 협동조합들이 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사기업들의 세상이 되었고 육계사육농가가 사업에서 소외되는 현상일 일어나고 말았다.

농업인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도입된 계열화사업이 계열주체의 경쟁력은 키워주었지만 육계농가의 경쟁력은 오히려 약화시켰다. 이기간 계열화사업자는 계속 사업을 확장하며 국내 육력식품회사로 굴림하기에 이르렀다. 자본농업이 강세를 떨친 육계부분에 있어 더 이상 전통적 의미의 농민은 없다. 90%가 계열화사업에 참여하며 그냥 닭만 키워주는 닭공장으로 변화하고 말았다.

과거처럼 영농계획을 세우고 자금을 융통해 입추계획을 세우고 출하시기를 조절하던 자주적 농업인은 사실상 사라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토니오네그리와 마이크하트가 다중이라는 책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 농업에도 농민의 종말이 시작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