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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경관을 이용한 연구들

Research Using Energy Landscape

  • Kim, Hack-Jin (Department of Chemistry, Chungnam National University)
  • 발행 : 2007.12.20

초록

에너지 경관은 협동 과정이 일어나는 계에 대한 연구 방법으로, 액체, 유리, 분자 뭉치, 단백질 등 매우 다양한 대상들에 대한 이론적 연구 방법으로 이용되고 있다. 본 총설에서는 에너지 경관의 쓰임과 관련 실험에 관하여 간략히 살펴보았다.

Energy landscape is a theoretical tool used for the study of systems where cooperative processes occur such as liquid, glass, clusters, and protein. Theoretical and experimental researches related to energy landscape are introduced in this review.

키워드

서 론

‘Energy Landscape’(이하 EL)이라는 용어는 에너지 경관(景觀)으로 번역할 수 있지만 화학자들에게 아직 익숙하지 않은 편이다. 화학 전반에서 보편적이지 않다는 점에서, EL은 레이저 분광학 분야 연구자들에게만 익숙한 티타늄-사파이어(Ti:sapphire) 레이저와 비교될 수 있다.1 극초단 펄스 레이저인 티타늄-사파이어 레이저가 화학 전 분야에서 두루 사용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EL은 이론, 실험을 망라하여 물리, 화학, 생물학 분야 등 다양한 연구에서 널리 이용되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2000년 이후 발표된 EL과 관련된 대부분의 문헌은 유리(glass), 원자, 분자 뭉치(cluster), 단백질과 같은 거대생물 분자들을 대상으로 문헌들로, 이론 연구에 주로 사용되고 있으며, 실험 결과들을 해석하는데도 자주 언급되고 있다.

EL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전부터 이론 물리화학자들은 액체, 고체의 구조와 상전이를 비롯한 응축상의 구조와 관련 동역학을 연구하는 도구로 EL과 유사한 개념을 사용해왔다.2 1990년대 이후 EL이라는 용어가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는데,3 간단히 말하면 EL은 많은 입자로 이루어진 계의 자유 에너지(간혹 포텐셜 에너지 potential energy)를 다소 임의적인 집합적 변수에 대하여 도식한 것이다. EL로 표현되는 계들은 분자 간 상호 작용이 중요한 여러 가지 응축상(condensed phase)으로, 이들 계에서 협동 과정(cooperative process)이 일어난다는 특징이 있으며, 복잡계(complex system)로 분류될 수 있다.

본 총설에서는 EL에 관한 일반적 의미, 관련 연구의 예, 관련 실험 방법들을 간략하게 살펴보았으며, 마지막에 EL과 관련하여 가장 널리 연구되고 있는 단백질과 관련되어 좀 더 상세한 내용을 요약하였다.

 

에너지 경관 (EL)

Fig. 1(a)은 두 개 입자 사이의 포텐셜 에너지를 보여주며, Fig. 1(b)는 AB+C→A+BC와 같은 3개 입자사이의 화학 반응을 설명하는 포텐셜 에너지 함수를 등고선 표기법으로 그린 것이다. 일반화학이나 물리화학 교과서에 나오는 이러한 포텐셜 에너지 함수는 화학 결합, 에너지 구조, 분자 간 상호 작용, 화학 반응에 관한 정보를 제공한다. 정확한 포텐셜 에너지 함수를 가지면 열역학적 특성과 물리 화학적 변화에 관한 정량적인 예측을 할 수 있다. 계의 크기가 커져 많은 수의 입자들이 관련되면, 계의 구조와 관련 동역학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포텐셜 에너지 함수를 결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된다. 많은 입자로 이루어진 계에 대한 통계역학적 연구 방법으로, 위치와 운동량의 위상 공간(phase space)에서 위상 공간 분포함수의 시간에 따른 변화를 추적하는 방법 (Liouville 방정식)이 있지만 포텐셜 에너지 함수의 구체적인 형태를 알지 못하면 이와 같은 통계역학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정량적 연구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4 포텐셜 에너지 함수가 알려져 있는 경우에도 응축 상과 같이 많은 입자들로 구성된 계의 경우 원하는 정보들을 계산에 의해 얻어내는 것은 쉬운 작업이 아니다.

Fig. 1의 경우보다 조금 더 많은 입자(원자)들이 관련된 포텐셜 에너지 함수 중 쉽게 접할 수 있는 에너지 함수는 단일 결합의 회전에 따라 변화하는 유기 화합물의 에너지 함수이다. 유기화합물의 형태 이성질체(conformer)의 에너지 도식은 유기 화합물의 탄소 수가 증가하면 복잡해진다. 사이클로헥산과 같은 고리 화합물들의 형태 변화와 관련된 포텐셜 에너지 함수 역시 같은 유형에 속한다. 단일 결합의 회전 또는 비틀림(torsion)으로 인한 형태 변화는 단백질과 같은 거대 분자의 구조에 특히 중요하다.

Fig. 1.(a) 2개 입자 사이의 거리의 함수로 나타낸 포텐셜 에너지. (b) 3개 입자 사이의 화학 반응을 나타내는 포텐셜 에너지.

Fig. 2.입자간 평균 거리의 함수로 나타낸 계의 포텐셜 에너지 함수5.

Fig. 2는 가상 응축계의 포텐셜 에너지를 입자간의 평균 거리의 함수로 나타낸 것으로, 계는 두 가지 안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5 입자간 평균 거리(R)는 계의 밀도(d)와 관계한다(R∝d-1/3). 높은 밀도 구조보다 낮은 밀도 구조가 더 안정하며, 높은 밀도 구조의 에너지 우물의 폭이 더 넓은 것으로부터 높은 밀도 구조가 더 큰 엔트로피를 갖는 구조임을 알 수 있다. 높은 밀도에서 큰 엔트로피를 갖는 구조는 결정이기 보다 유리질일 가능성이 높다. 높은 대칭성을 갖는 결정 구조의 엔트로피는 높지 않아 Fig. 2의 낮은 밀도 구조와 같이 그 폭이 좁은 에너지 우물 구조를 보인다. Fig. 2에 나타난 것과 같은 포텐셜 에너지 함수를 실험적으로 결정하기 위해서는 대단히 넓은 압력 범위에서의 실험이 필요하기 때문에, 실험을 통해 이러한 포텐셜 에너지 함수를 결정하는 일은 쉽지 않다. 계를 구성하는 입자간 포텐셜 에너지 함수가 알려진 경우 시뮬레이션에 의해서 Fig. 2과 같은 계의 에너지를 계산할 수 있지만, 이 역시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한 작업이다.

Fig. 2의 포텐셜 에너지 함수 도식을 EL로 분류할 수도 있지만, 보다 일반적 의미의 EL은 Fig. 3에 나와 있다.6,7 Fig. 3은 그 모양이 깔때기(funnel)와 유사하다고 하여 깔때기 모형이라고 불리는 단백질 접힘 과정과 관련된 EL이다. Fig. 2와 3의 차이는 포텐셜 에너지 대신 자유 에너지가 도식되었다는 점이다. 자유 에너지는 계의 안정성과 직결된 양이기 때문에 입자의 상대적 위치만으로 결정되는 포텐셜 에너지보다 보편적이다. 특히 자기 조직화(self-organization)가 일어나는 계에서는 엔트로피가 감소하기 때문에 자유에너지가 계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도움이 된다. 포텐셜 에너지와 자유 에너지의 또 다른 차이는 온도 의존도이다. Fig. 1, 2의 포텐셜 에너지 함수는 온도에 무관하지만 EL의 자유 에너지는 온도에 따라 민감하게 변화한다. 따라서 자유 에너지로 표시된 EL은 주어진 온도 조건에서만 유효하다.

Fig. 3.단백질 접힘 현상과 관련된 깔때기 모형인 EL.

EL에서 x축은 보통 질서 변수(order parameter)라고 부르는데,8 위상 공간에서와 같은 6N 차원의 벡터가 아니라, 계의 밀집도(compactness), 거대 분자의 회전 반경(radius of gyration), 활성 상태 단백질 분자와 비교한 수소 결합의 수, 용매에 노출된 표면적, 3차 구조에 편입된 아미노산 수와 같이 임의적인 변수들이다. 이 변수들은 계에 속한 전체 입자와 관련된 집합적 의미의 좌표(collective coordinate)이다. Fig. 2의 전체 입자간 평균 거리 역시 집합적 좌표의 하나이다. EL의 모양과 특성은 그 변수에 따라 변화하기 때문에, 변수를 선택할 때 그로부터 원하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는지를 고려해야 한다. x 축 변수의 집합적 의미로 인해 EL에서의 변화는 여러 변화들의 집합 - 경로들의 앙상블이다. 따라서 EL에서의 변화를 추적하는 것은 보통의 포텐셜 에너지 곡면에서의 변화를 추적하는 것과는 다르며, EL의 x 축 변수의 장단점에 대한 충분한 이해는 EL의 해석과 사용에 필수적이다.

단백질 분자의 3차원 구조는 구성 아미노산의 결합 순서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단백질 접힘 현상은 생물학은 물론 화학, 물리 분야에서도 관심을 갖는 주제이다. Fig. 3의 깔때기 모형 윗부분은 아미노산 사슬이 무질서하게 풀어져 있는 경우로, 단백질 분자의 자유 에너지는 높고, 엔트로피가 크다. 단백질 분자가 2차, 3차 구조를 만듦에 따라 단백질 분자의 엔트로피는 감소하지만 많은 상호 작용(주로 수소 결합)으로 인해 자유 에너지 역시 감소한다. 단백질 분자는 3차 구조를 형성한 경우에도 구성 원자들의 위치에 어느 정도의 자유도를 가지고 있으며, 깔때기 모형 아래 부분의 안정된 에너지 우물의 폭이 결정상(crystal)에 비해 넓다(Fig. 2의 에너지 우물의 폭과 직접 비교할 수 없다). Fig. 3의 y 축은 자유 에너지인 동시에, 단백질의 활성을 가진 활성 구조(native structure)와의 닮은 정도를 나타내는 요소인 Q -활성 구조 접촉 비율(fraction of native contact)이라고 부름 - 로도 표시된다. 단백질 분자가 활성 구조를 가지면 Q는 1이며, 아미노산 사슬이 무질서하게 풀려져 있는 상태의 Q는 0이 된다(하지만 Q는 단백질 접힘과 관련된 절대적 변수는 아니다). Fig. 3의 EL은 원래 Q 또는 A(활성 구조의 결합각과 비교 결과 비율)의 함수로 계산한 자유 에너지를 평면에 투사한 것이다.7

단백질 접힘 과정 중에 여러 가지 요인에 의해서 활성 구조를 만들지 못하고 다른 구조를 만들 수 있다. Fig. 3의 오른쪽에 별표로 표시된 구조와 같은 경우인데, 활성 구조보다 에너지도 높고 그 구조도 다르다. 이러한 단백질을 잘못 접힌 단백질(misfolded protein)이라고 부른다. 광우병, 치매(Alzheimer), 파킨슨병(Parkinson disease) 등과 같은 병들은 독성을 가진 단백질이 원인으로 생각되고 있는데, 이 단백질들은 잘못 접힌 구조의 단백질들인 경우가 많다.9

EL을 이용한 관련 연구 분야

EL이 적용되는 연구 대상들의 공통점은 협동 과정(cooperative process)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액체의 부피가 담겨진 용기의 모양과 무관하게 일정한 것은 구성 입자들의 협동 상호 작용 때문이다. 액체에서 협동 과정이 일어나는 길이 단위는 수 nm에 불과하지만 계의 밀도와 같은 거시적 특성과 연관된다. 액체가 냉각하면서 고체가 될 때 생기는 균열도 미시적 협동 과정의 결과가 거시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나노 입자나 분자 뭉치와 같이 미시와 거시의 중간 척도(mesoscopic)를 갖는 물질에서도 협동 상호 작용을 볼 수 있다. 단백질 접힘 과정에는 아미노산 분자들뿐만 아니라 단백질 분자를 둘러싸고 있는 물분자들도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용매 분자들의 움직임이 단백질 접힘 과정을 조절하는 것을 종속 제어(slaving)라고 하며, 이 역시 협동 과정의 하나이다.10,11 협동 과정으로 인한 구조 변화 등 계의 거동은 단일시간 상수를 갖는 지수함수로 표현되지 않는 동역학인데, 고분자의 거동이나 단백질의 구조 변화 등에서 직접 관찰할 수 있다.12 응축 상 입자들이 접촉하고 있는 입자들을 넘어 많은 입자들을 인식하며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협동 과정은 상전이와 같은 갑작스러운 변화를 일으키며, 복잡계의 자기 조직화에 동력으로 작용한다. EL은 협동 과정 유무와 무관하게 적용할 수 있지만 협동 과정으로 인해 특이한 현상을 보이는 계들을 이해하는데 효과적이다.

아래에 열거한 EL이 적용된 연구 분야들은 특별한 기준 없이, 필자의 주관에 따라 화학자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것들을 정리한 것이다.

액체, 유리, 용액

액체는 EL 개념이 처음 도입된 연구 대상의 하나이다.2 액체 상태는 고체와 같은 응축상이어서 구성 입자간 상호 작용이 중요한데, 고체와 달리 그 구성 입자들이 끊임없이 움직인다. 액체 상태에는 거시적 대칭성이 없는데, 이 역시 액체 상태를 정량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어렵게 한다. 액체 상태의 특성을 이해하는 데는 방사 분포 함수(radial distribution function, 쌍 상관 함수(pair correlation function) 혹은 쌍 분포 함수(pair distribution function)라고 부르기도 함)가 중심 역할을 하는데,4 액체 상태에 대한 EL은 방사 분포 함수를 계산할 수 있는 기초가 된다.

유리는 미시적으로 액체와 그 구조가 같지만 액체와 달리 비평형 상태이다. 유리에는 3 차원적 병진대칭성(translational invariance)이 없기 때문에 구조에 변화를 주는 이탈(dislocation) 현상이 공간적으로 퍼져 나가지 못한다. 공간 대칭성의 부재와 높은 밀도로 인해 유리는 기계적 측면에서 안정하다. 유리는 보통 액체로부터 만들어지는데, 냉각 속도에 따라 그 특성이 달라진다. 창문, 플라스틱, 식품 등 생활 주변에서 많은 유리들을 볼 수 있으며, 매우 추운 날씨나 수분을 빼앗긴 상황에서도 살아남는 곤충들의 생존 과정에서 sucrose, trehalose와 같은 이당류들이 유리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13

유리는 이와 같은 실용적 특성이외에도 이해하기 쉽지 않은 흥미로운 현상들을 보여주는데, 그 중 하나가 Kauzmann paradox이다.14 액체를 냉각할 때 비열이 급격하게 변하여, 과냉각 액체의 엔트로피가 결정의 엔트로피와 같아지는 온도(Kauzmann 온도)가 존재할 것 같은 상황이 관찰된다. Kauzmann 온도 이하에서는 과냉각 액체의 엔트로피가 결정의 엔트로피가 작아지는 열역학적으로 받아드릴 수 없는 현상이 예상된다. 이는 유리질로의 전이, 유리의 균열 강도 등과 관계가 있는데 이러한 현상을 이해하는데 EL은 도움을 준다.15

여러 가지 성분으로 이루어져 있는 용액에 관한 연구는 다양한 상호 작용에 관한 이해가 필요하기 때문에 매우 복잡하고 어렵다. 수용액에 녹아있는 단백질 분자, 마이셀(micelle) 등도 용액의 범위에 포함 된다. 용액의 성질은 온도, 농도, 용질의 종류 등에 따라 달라지며,16 미시적으로 큰 공간에 영향을 주는 이온들의 효과를 다루는 것은 까다롭다.17 또한 용액의 여러 구성 입자들에 대한 방사 분포 함수들을 실험적으로 측정하기 위해서는 동위원소를 사용하는 실험이 필요하며, 또한 방사 분포 함수의 온도, 농도 의존도 등을 결정해야 한다.18 이러한 용액의 연구에 EL이 적용되고 있다.

원자 분자 뭉치와 나노 입자

원자 분자 뭉치(cluster)는 기체 상태와 응축상의 중간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끄는 대상이다. 일반적으로 원자 분자 뭉치보다 큰 나노 입자는 특이한 성질이나 기능을 가진 물질이라는 느낌을 준다. 원자 분자 뭉치와 나노 입자의 공통점은 높은 표면/부피 비로, 표면 화학이나 촉매 등이 이들과 연관이 큰 분야들이다.

원자 분자 뭉치에 대한 이해를 위해 여러 가지 포텐셜 함수들을 사용한 가상 입자들에 대한 이론적 연구들이 행해져 왔다. 구성 입자의 수에 따른 입자 뭉치의 구조 변화는 입자 뭉치를 기체-액체의 중간 상태라고 생각할 때 우선 떠오르는 문제인데, LJ(Lennard-Jones) 포텐셜 함수를 사용한 입자 뭉치,19 Morse 포텐셜 함수를 사용한 입자 뭉치의 구조에 관한 보고가 되어 있다.20 또한 (NaCl)xCl-과 같은 알칼리할로겐 뭉치,21 물 분자 뭉치,22 플러렌(C60)23,24의 구조와 동역학 연구에 EL은 사용된다. 원자 분자 뭉치의 안정성을 조사해보면 매직 넘버라고 불릴만한 안정성을 보이는 뭉치들이 있는데, EL은 이러한 뭉치들의 안정성 문제를 연구하는데 효율적이다. 펩타이드 역시 넓은 의미에서 분자 뭉치에 포함되는데, 펩타이드의 포텐셜 에너지 곡면에 관한 실험 데이터를 해석하거나,25 분자 뭉치나 간단한 펩타이드의 구조 변화 속도를 계산하는데 EL을 사용한다.26 다양한 원자들이 나노 입자를 만드는데 사용되기 때문에 이들의 상호 작용을 설명할 수 있는 만족할만한 포텐셜 에너지 함수를 갖는 것은 쉽지 않다. 나노 스케일로 가공된 구조에서 움직이는 DNA 물질의 거동에 대한 연구,27 나노미터 단위의 자성 물질의 에너지 구조에 대한 연구는 이러한 물질을 소자로 사용하는 기구의 작동 원리에 대한 이해에 EL이 활용된다.28

여러 가지 물질들

의약 물질들은 수소 결합과 같은 비공유 결합을 통해 연결된 분자 집합체(molecular assembly)들로, 초분자(supramolecule)로 볼 수 있다. 이들 물질의 결정화 과정은 자기 조립(self-assembly) 과정의 하나이며, 약리 활성에는 분자 인식(molecular recognition)이 중요한 활성 메커니즘으로 작동한다. 이러한 물질들의 약리 기능과 열역학적 안정성은 구성 분자나 결합체의 사소한 변화로도 달라진다. 분자 인식과 보완성(complementarity) 문제는 이러한 물질의 제조와 활성을 이해하는데 필수적이며, EL은 이러한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29

고분자 물질에는 결정, 비결정 영역이 혼합되어 있지만 결정성이 증가하면 방탄조끼에 사용되는 aramid와 같이 매우 유용한 성질을 보여준다. 고분자 물질이 용액에서 결정을 만드는 과정 - 핵을 형성하고 자라나 층(lamella)을 만드는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에 EL은 활용될 수 있다.30 고분자로 이루어진 계를 연구하는데 원자 수준의 포텐셜 에너지 함수를 이용할 수 없지만 단순한 모형으로 이루어진 EL을 통해 용액 속의 액체 흐름이 고분자 결정 성장에 주는 영향 등에 관한 이해를 구할 수 있다.

외부 충격에 의한 물질의 변형이나 흐름 등은 화학적 관점에서 큰 관심을 끄는 주제는 아니지만 물질을 가공하거나 폭발과 같은 현상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고무, 합성수지와 같은 고분자에 압력을 가할 때 일어나는 변형에는 압축과 흐름이 수반되며, 이러한 복잡한 변화를 이해하는데 EL은 도움을 줄 수 있다.31 또한 고체 유기화합물들의 기계적 특성을 EL을 이용하여 연구하기도 한다.32 이 경우 거대분자인 고분자보다 정확한 포텐셜 에너지 함수를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체계적이고 정량적인 연구가 가능하다.

2007년 노벨 화학상이 표면에 관한 연구 업적에 대하여 수여되었지만, 표면 혹은 계면은 응축상이 관련된 복잡계로, 이론적 실험적 연구가 쉽지 않다.33 표면에서 일어나는 화학적 변화인 촉매 작용에 관한 이론적 연구는 메커니즘 제안 정도에 그치는 수준이며, 대부분의 표면 계면에 대한 이론적 연구는 주로 분자 구조에 변화가 일어나기 전 단계인 흡착과 같은 물리적 변화를 주 대상으로 하고 있다. 용매에 가해진 계면활성제가 확산하여 표면에서 핵을 만들고 성장하여 안정한 계면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속도론 연구에 EL이 도움을 준다.34 일반적으로 계면에 대한 연구는 안정한 계면 - 평형 상태 계면에 관한 연구가 주를 이루지만 계면의 불안정성과 같은 주제를 이해하는데 EL이 이용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MgF2, Na3N, MgO-Al2O3 등과 같은 고체 무기 화합물에 관한 이론적 접근은 보편화되어 있지 않다. 고체 입자들의 구성비, 구성 입자의 반지름 비와 분극 정도가 구조에 미치는 영향, 화학 결합 길이와 결합 세기의 관계와 같은 다소 고전적인 접근법들은 국부적인 상호작용만을 고려하고 있으며, 고체 무기 화합물에서 중요한 원거리 상호 작용은 고려하고 있지 못하다. 다양한 금속 원자들과 같은 무기화합물을 구성하는 여러 가지 원자들 사이의 상호 작용과 관계하는 포텐셜 에너지 함수가 정확하게 알려져 있지 않아 유기 화합물들에 비해 이론적 연구가 활발하지 못한 편이지만, 고체 무기 화합물의 연구에 있어 새로운 화합물의 존재 가능성과 그 구조를 예측하고, 화합물의 합성 경로에 관한 연구에 EL이 이용되기도 한다.35

2007년 노벨 물리학상이 수상된 연구 분야인 거대 자기 저항 물질의 하나로 최근 많은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망간 산화물(LaMnO3과 그 유사체들)에는 금속성과 절연성을 가진 상들이 혼합되어 있다. 이 불균일성을 조절하여 전기적 자기적 특성을 제어 하는데, 망간산화물의 불균일성은 nm 단위부터 μm 스케일로 나타난다.36 불균일성이 만들어지는 기작에 관한 이해에 EL은 도움을 준다.37 전자와 격자 운동의 강한 상호 작용은 여러 가지 파장의 운동 방식들이 비조화 탄성 에너지(anharmonic elastic energy)에 관여하는데, 전자적 상태의 밀도(density of state) 변화로 인한 망간산화물의 전기적 자기적 불균일 상들을 이해하는데 - 격자의 변형 여부가 전기적 특성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EL은 정확하게 보여준다.

 

관련 실험 연구

MD(molecular dynamics) 혹은 MC(Monte Carlo) 시뮬레이션을 반도체에서 수행하는 실험이라고 한다면 EL 연구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실험 도구는 컴퓨터이다. 주어진 포텐셜 에너지 함수를 사용하여 관심이 있는 구조나 변화를 추적하는 연구와 실험 결과에 근거하여 포텐셜 에너지 함수를 개선하는 연구가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루어진다. 아래에는 컴퓨터이외의 실험장비들을 사용하여 이루어지는 EL과 관련된 연구들을 그 사용 장비 별로 - 핵자기 공명 분광법, 질량분석기, 적외선 및 형광 분광법, x-선, 중성자, 전자 등을 이용한 회절법, 현미경 - 간략하게 정리하였다.

핵자기 공명 분광법

분광법 중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NMR 분광법은 단백질 관련 연구에서 매우 효율적이다. NMR 분광법을 통해 용액을 포함한 여러 가지 상태의 단백질 분자의 3 차원 구조를 규명할 수 있으며, μsec에서 msec 시간 영역에서 일어나는 동역학 정보를 얻을 수 있다.38-40 단백질 분자에 대한 MD 시뮬레이션 결과와 NMR 스펙트럼의 비교 연구는 단백질 분자구조 결정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41,42 또한 고체상태 시료에 대한 NMR 연구가 보편화됨에 따라, 알츠하이머, 광우병 등의 원인 물질로 간주되는 amyloid fibril 등 고체 상태 단백질의 3 차원 구조를 밝히는데 고체 상태 NMR이 사용되고 있다.43-45 이러한 단백질 분자의 구조와 거동에 관한 연구는 관련 EL 연구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질량분석기

전통적으로 질량 분석기는 원자 분자 뭉치의 연구에 사용되어 왔다.46,47 한 가지 문제점은 질량 분석기에서 관찰하는 화학종들이 전기적으로 중성이 아닌 이온들이라는 점이다. 비교적 작은 입자 뭉치들은 이온화하면 그 구조에 변화가 생기므로 기체 상태와 응축 상태의 중간 상태로서의 입자 뭉치의 구조를 연구하려는 본래의 목적과는 다른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최근에는 입자 뭉치가 만들어진 상태 그대로 연구할 수 있는 고분해능 분광법들이 입자 뭉치의 연구에 이용된다(아래 분광법 부분 참조).

최근 들어 질량 분석기를 이용한 연구의 주된 대상물질의 하나는 생물학적 거대분자들이다. MALDI(matrix-assisted laser desorption/ionization)과 전자 분무(electron spray) 방법은 생물학적 거대분자를 질량 분석기의 대상으로 포함시키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48 전자 분무 방법을 사용할 때 시료를 기체 이온으로 만들기 위한 가열과 고진공이 필요하지 않다. 또한 시료의 이온화 조건을 정교하게 조절하여 다양한 이온들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단백질 접힘 과정에 따른 여러 가지 형태의 단백질 분자들을 분석할 수 있다.49 용액에서 기화하는 과정에서 비공유 결합으로 결합된 거대 분자 복합체를 그 구조를 유지하면서 질량 분석기에 주입할 수 있게 되어, 질량 분석기를 사용한 생물학적 거대 분자의 연구에 더욱 활발하게 되었다. 이온성, 소수성, 반데르발스(van der Waals) 상호 작용을 통해 생물학적 거대분자에 결합된 작은 분자들은 기체 상태에서도 거대분자들을 안정화한다. 질량 분석기는 다른 실험 방법을 통해 얻을 수 없는 정보를 제공하여 EL에 관한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한다. 단백질과 결합하는 배위자(ligand), 공동 인자(cofactor), chaperone 등이 단백질 접힘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가 활발하다.50

형광 및 적외선 분광법

형광은 가장 감도가 뛰어난 분광법의 하나이며, 형광 특성은 발색단의 주변 환경 변화에 민감하게 감응하기 때문에, 미시적 분자 환경을 이해하는데 오래전부터 널리 사용되어 왔다.51 세포막과 같이 실험적으로 연구하기 어려운 계에 형광 분광법을 적용하여, 전기적 특성, 다른 분자들과의 상호작용 등을 관찰하여 세포막의 EL 변화에 관한 정보를 얻기도 한다.52 계의 동역학적 변화를 관찰하는 고전적인 분광법인 여기-탐침(pump-and-probe)의 탐침 방법으로53 혹은 단분자(single molecule) 형광 분광법54을 통해 단백질 분자의 접힘 과정과 관련된 EL을 연구한다. 단분자 형광분광법은 고분해능 현미경과 결합하면 nm 수준의 분해능으로 핵산과 단백질의 상호 작용을 연구하는데 이용될 수도 있다.55

여러 가지 실험 기술과 관련 장비의 발전으로 인해 다양한 적외선 분광법이 발전하고 있다. 예를 들어 VRT(vibration-rotation-tunnelling) 분광법은 적외선 영역에서 MHz 단위의 분해능을 보여준다.56-60 이러한 분광법을 통해 얻은 스펙트럼을 분석하면 분자 뭉치의 상호 작용에 관련된 포텐셜 에너지 곡면을 매우 정확하게 결정할 수 있다. 이 결과 (H2O)2와 같은 분자 뭉치의 Joule-Thomson 계수와 방사 분포 함수를 정확하게 재현할 수 있다.61 또한 He 나노방울(nanodroplet)과 같은 매질에 포함된 분자에 대한 고분해능 분광법은 tautomer들과 관련된 EL을 연구할 수 있도록 하여 핵산의 돌연변이 현상에 관한 지식을 제공하기도 한다.62 장기적으로 다차원 적외선 분광법(multi-dimensional IR spectroscopy)도 단백질 분자의 EL을 연구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화학자들이 널리 사용하지 않은 분광법으로 유전율 손실 분광법(dielectric loss spectroscopy)이 있다.63 이 분광법은 매질의 유전 상수(dielectric constant)와 관계된 성질을 측정하는 방법으로, 10-6 Hz의 진동수 영역부터 자외선 영역(1016 Hz)까지 외부 전기장에 감응하는 전자, 원자, 이온, 쌍극자 모멘트의 거동을 관찰한다. 관련 이완 시간 상수(relaxation time)로부터 물질의 움직임과 관련된 속도를 알 수 있는데, 이분광법은 유리질에서 일어나는 입자들의 운동에 관한 정보를 얻는데 주로 사용된다.

회절

x-선 및 중성자 회절 실험은 오래전부터 3 차원 구조를 결정하는데 사용되어 온 방법이다. 회절 실험을 통해 3 차원 구조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시료가 결정 상태이어야 하는데, 단백질 분자를 회절 실험에 사용할 수 있는 크기의 결정으로 성장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NMR을 통해 단백질 시료의 용액 상태 3 차원 구조를 규명할 수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결정 상태 구조와 유사함을 볼 수 있다. 극초단 시간 영역에서 x-선 회절을 관찰하여 단백질 구조 변화에 관한 정보를 얻어내려는, 쉽지 않은 연구를 한국과학기술원 이효철 교수연구실에서 수행하고 있다.64

x-선 및 중성자 회절 실험은 주로 액체, 유리와 같은 비결정질의 방사 분포 함수를 결정하는데 사용된다. 회절 실험에서 측정된 산란 세기에서 계산되는 구조 요소(structure factor)는, 방사 분포 함수와 푸리에 변환(Fourier transform)으로 연결된다.65,66

x-선, 중성자와 더불어 회절 산란 실험에 사용할 수 있는 요소는 전자인데, 전자를 이용한 회절 실험은 전자 현미경에서 알 수 있듯이 보편화되어 있다. 전자를 이용한 회절 실험의 단점은 시료가 진공 상태에 있어야 하며, x-선이나 중성자에 비해 정량적인 실험이 힘들다는 점이다. 전자 회절의 장점은 그 산란 세기가 x-선이나 중성자에 비해 강하다는 점으로 다음에 언급되어 있는 고분해능 현미경 실험에서 전자 회절을 이용하려는 시도가 있다.

고분해능 현미경

대상물질의 3 차원적 구조 변화를 원자 수준에서 정확하게 추적하는 것은 물리화학자들의 꿈이라고도 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화학 결합 변화를 알 수 있는 정도의 공간 분해능과 진동 운동 시간 범위 이내의 시간 분해능이 필요하다. 이러한 배경에서 수행되고 있는 연구가 Zewail 교수 연구실에서 진행하고 있는 연구들이다.67,68 작은 분자의 화학 반응,69 표면에 흡착된 분자들의 거동,70 산화구리의 상변화 현상,71 핵산의 접힘과 풀림 현상72과 관련된 EL을 파악하는데 초고속 전자 현미경을 사용하고 있다.

여러 가지 고분해능 현미경들 통해 분자의 이미지를 얻을 수 있는데, 그 중 원자 힘 현미경(AFM, atomic force microscope)은 거대분자의 EL에 관한 많은 정보를 제공한다.73 평형 상태 자유 에너지 변화와 이와 관련된 비가역적 일의 관계를 보여주는 Jarzynski 관계식74에 기초하여 AFM를 이용한 단분자 힘 분광법(single-molecule force spectroscopy)75,76은 생물거대 분자의 EL을 결정하는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유사한 정보를 레이저 족집게(laser tweezer)를 이용한 실험에서 얻을 수 있다.77

 

단백질 분자와 EL

EL과 관련된 단백질 분자의 거동은 크게 두 가지로, 하나는 3 차원 구조를 만드는 접힘 과정이고, 다른 하나는 단백질 분자가 그 기능을 수행하는 과정이다.

용액 상태에서는 고유한 구조 없이 존재하다가 다른 목표물(단백질이나 핵산)과 결합한 이후에만 3 차원 구조를 이루는 단백질도 있지만78 대부분의 단백질 분자들은 고유한 3 차원 구조를 갖는다. 많은 단백질 분자들은 소수성 변화(hydrophobic collapse)를 거쳐 엉긴 구형체(molten globule)라고 부르는, 3 차구조는 갖추지 않았지만 부분적으로 2 차 구조들을 가지고 있는 형태를 만드는데 수 msec 밖에 걸리지 않는다. Fig. 3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단백질의 활성 상태는 자유 에너지가 최소인 최대 안정(global minimum) 상태이다. 하지만 단백질 접힘 과정에서 최소 자유 에너지는 단지 필요조건이며, Levinthal’s paradox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활성 상태는 속도론적으로 도달 가능한 상태이어야 한다. 활성 상태의 성질은 최대 안정 상태와 그와 관련된 EL의 배열 부피(configuration volume)에 의존하지만, 활성 상태에 도달하는 속도는 최대 안정 상태에 도달하기 전거쳐야 하는 국부적 안정 상태(local minimum)들의 연결 형태에 달려 있다. 국부적 안정 상태들은 활성 상태에 이르는데 사다리가 될 수도 있고, 덫이 될 수도 있다. 단백질의 접힘 과정의 반대인 풀림(unfolding) 과정 역시 흥미롭다. 활성 상태 단백질은 여러 가지 조건 변화에 의해서 풀림 현상을 보여준다. 단백질을 가열하면 변성(denaturation)하는데, 역으로 온도를 낮추어도 변성한다. 냉각 변성(cold denaturation)에 관한 이해는 아직 부족한데, 용매인 물 분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측된다.79

단백질 분자의 기능과 관련된 동역학 측면에서 보면 생체 내에서 산소를 운반하는 Myoglobin이 가장 많이 연구된 예이다.80 Myoglobin의 결정 구조를 보면, 단백질 내부에 존재하는 Heme에 산소 분자가 도달할 수 있도록 작은 분자들이 출입할 수 있는 틈을 전혀 볼 수 없다. 활성 상태의 단백질 분자는 짧은 시간 동안 산소가 출입할 수 있는 틈을 만든다. 활성 상태 단백질은 고정된 구조를 갖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안정 상태들의 합(ensemble)이다. 단백질 분자가 고유한 기능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구조의 동요(fluctuation)가 필수적이며, 여기에는 용매(물)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81

단백질 분자의 접힘이나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동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되는 점은 그 속도가 Arrhenius 형태가 아니라는 점이다. 이 비-지수 함수적 거동은, 그 과정에 관련된 에너지 장벽이 일정하지 않음 혹은 단일 경로가 아닌 다중 경로를 따라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의미한다. Fig. 3의 EL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아미노산의 자유 사슬이 활성 상태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많은 국부적 안정 상태를 거쳐야 하며 그 경로 역시 하나로 규정할 수 없는 ensemble로 나타난다. 산소 분자가 Myoglobin 속의 Heme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많은 국부적 안정 상태들을 거쳐야 한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EL은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는 단백질 분자의 거동과 관련된 에너지 장벽들이 온도에 따라 변화함을 가리킨다. 포텐셜 에너지 곡면에서 국부적 안정 상태의 수는 관련 입자의 수에 따라 지수 함수적으로 증가하며, 안정 상태들 사이의 전이 상태 역시 지수 함수적으로 증가한다.82 단백질 분자에 대한 정량적 이해를 위해서는 관련 EL을 보다 정확하게 분석하고 EL에서의 움직임에 관한 이해가 필요한데, 이를 위한 한 가지 방법이 단절 그래프(disconnectivity graph)를 사용하는 방법이다.83,84

Fig. 4는 단절 그래프를 사용하여 EL을 분석할 때 나타나는 3 가지 유형을 보여준다. 단절 그래프는 국부적 안정 상태들의 특성 - 안정성 (에너지)과 다른 안정 상태로의 전이에 필요한 에너지 장벽 - 을 분석한 것이다. 실제 계들은 근사적으로 Fig. 4에 나타난 유형으로 분류할 있지만, 이 유형들이 여러 가지로 합쳐져 복잡하게 나타난다.

Fig. 4(a)는 야자수(palm tree) 형태인데, 주어진 EL 내에서 최대 안정 상태가 잘 정의되며, 한 국부적 안정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전이하는데 관련된, 내리막 에너지 장벽이 비교적 작다. 따라서 최대 안정 상태를 찾아가는데 무작위적 변화가 아닌 효율적 변화가 가능한 자기 조직화가 일어난다. 빠른 접힘이 일어나는 단백질이나 고유 수(magic number)가 관찰되는 결정은 야자수 형태의 EL을 갖는다. Fig. 4(b)는 버드나무(willow) 형태인데, 최대 안정 상태가 잘 정의되어 있지만, 인접한 국부적 안정 상태들을 분리하는 내리막 에너지 장벽은 국부적 안정 상태의 에너지 차이에 비해 크다. 따라서 최대 안정 상태로 전이하기 위해서 계는 충분한 에너지가 있어야 한다. C60의 경우 버드나무 형태 EL을 갖는다. Fig. 4(c)는 보리수(banyan) 형태인데, 최대 안정 상태를 결정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국부적 안정 상태들의 에너지 차이에 비해 에너지 장벽이 훨씬 크기 때문에 비교적 큰 변화 없이 안정한 계를 이루지만 관찰된 상태가 최대 안정 상태인지 판단하는 것은 어렵다. (H2O)20과 같은 분자 뭉치는 보리수 형태 EL을 보여준다.

Fig. 4.단절그래프로 표시한 EL84.

야자수 형태의 EL로부터 단백질 분자의 여러 가지 특성들을 이해할 수 있다.85 단백질 분자는 최대 안정 상태 부근에서 매우 안정한 구조를 갖는다. 단백질은 많은 수의 아미노산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 중 한 개의 아미노산이 바뀌는 돌연변이가 일어날 확률은 작지 않다.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에너지는 높아지지만, 그 에너지 변화는 최대 안정 상태에서 벗어날 정도로 크지는 않다. 따라서 아미노산 하나가 바뀐 돌연변이들도 그 구조가 원래 단백질의 구조와 별로 다르지 않고,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86 (아미노산 하나가 바뀌어 적혈구의 구조와 기능에 현저한 차이를 가져오는 sickle cell anemia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이다.) 따라서 단백질 분자의 1 차 구조가 진화에 의해 변화하는 정도에 비해 단백질 분자의 3 차 구조 변화는 느리게 진행하며, 1 차 구조가 비슷한 단백질들은 거의 같은 3 차원 구조를 갖는다.87 야자수 형태 EL에서 최대 안정 상태로 진행하는 속도는 두 가지 요소, 안정화 에너지와 접힘으로 인한 엔트로피 감소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 두 요소에는 최대 안정 상태보다 국부적 안정 상태들 사이의 에너지 차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단백질 분자의 접힘 과정은 용액에서 결정이 만들어지는 것과 비슷하게 많은 단일 단계들이 정상 상태(steady-state)를 이루기 때문에 단백질 분자 자체의 안정성이 속도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야자수 형태 EL은 단일 분자뿐만 아니라 단백질 분자 결합체에도 적용되어 유사한 단백질 분자들이 결합하는 기작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단백질 결합체는 구조적으로 유사한 단백질들이 결합하여 이루어지며, 앞에서 언급한 잘못 접힌 단백질(misfolding proteins)들이 결합하여 병을 일으킬 때 단일 단백질이 뭉쳐 문제를 일으킨다(Alzheimer를 일으키는 단백질은 대표적 예외이다).9

단백질 사슬이 안정한 3 차원 구조를 이룰지, 혹은 안정한 구조의 단백질 분자를 실험실에서 합성할 수 있는지 여부는 EL의 형태와 연관된다. 단백질 분자의 구조 안정성을 예측할 수 있는 변수는 단백질 분자의 변화와 관련된 온도들이다. 가열하면 단백질 분자가 변성하는 것은, 높은 온도에서 최대 안정 상태가 달라짐을 의미한다. 활성 상태가 EL의 최대 안정 상태에 해당하는 온도 범위에서 단백질 분자는 활성을 갖는다. 활성을 갖는 최대 온도를 접힘 온도(folding temperature TF)라고 한다. 유리질은 국부적 안정 상태에 놓인 비평형 상태이지만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충분하지 않아 에너지 장벽을 넘어 최대 안정 상태로 변화하지 못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국부적 안정 상태에 존재하는 단백질 분자 역시 에너지가 충분하지 못하면, 다시 말하면 온도가 충분히 높지 못하면 최대 안정 상태로 변화하지 못하는데, 국부적 안정 상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최고 온도를 유리 전이 온도(glass transition temperature, TG)라고 한다. 당연히 접힘 온도 TF가 유리 전이 온도 TG보다 높아야 접힘이 일어날 수 있으며, 두 온도의 비 TF/TG가 클수록 단백질 분자의 접힘이 잘 일어난다. TF는 활성 상태 단백질과 변성된 단백질의 용매에 의한 안정화 에너지 차이(ΔEs)에 의존하며, TG는 국부적 안정 상태들의 엔트로피와 에너지 분산(δE)과 관계한다. TF/TG 값이 큰 것은 ΔEs/δE의 비가 큰 것과 같은데, Z-score라고 부르는 이 에너지 비는 이론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88,89

EL을 분석하는 또 다른 방법으로 인터넷 연결이나 세포내 물질 에너지 분배와 같은 복잡한 현상을 분석하는 도구로 사용되어 온 네트워크 이론이 있다.90 네트워크 모형을 사용하면 EL 위에서의 여러 가지 변화 과정을 보다 자세히 보여주어 실험적으로 관찰되는 단백질 분자의 변화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만 아직 물리 화학자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복잡한 네트워크 이론을 사용하여야 하기 때문에 널리 사용하고 있지 않다.91,92

 

결 어

EL은 복잡계에서 관찰되는 많은 현상을 이해할 수 있는 틀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L을 통한 사고의 확장은 자연과학 분야에서 흥미로운 대상들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범주의 대상과 현상에 대한 직관을 제공해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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