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tudy on the Sijo of Da-seuck Ryu Yeung-mo

다석 유영모의 시조 연구

  • Published : 2005.01.01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show Da-seuck(다석) and his Sip those were never introduced to the academic world of Korean literature yet. Daseuck who kept company with Yook-dang(육당) and Chun-won(춘원) was a great philosopher of religion. He had ranged over world wide philosophy and founded his own angle of view to God. He had written diary in which many Sijo Poems more than 2,200 were written for 20 years from 1955 to 1974. The special features of his Sijo and the historical meanings are: First, Daseuck had written the most numerous Sijo Poems in number. Second, one of the special features of his Sijo is that most of his Sijo Poems contains his own ideas of God that is caused by his religious belief and his angle of view to Sijo. Third, his poetic words are too difficult to understand because he had used Korean old language that he understand them peculiarly.

이 논문은 국문학사상 최다의 시조(2,254수)를 남긴 다석 유영모와 그의 시조를 국문학계에 최초로 알리고, 그 시조의 특징과 시조사적 의의를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육당$\cdot$춘원과 교유하며 동시대를 살았던 다석은 동서양의 사상을 두루 섭렵하고 독자적인 신관을 수립한 위대한 종교사상가였다. 다석은 1955년부터 1974년까지 20년 간 일기를 썼는데, 거기에 2,200수가 넘는 시조를 남겼다. 그의 시조의 특징과 시조사적 의미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1) 다석은 국문학사상 최다의 시조를 지었다. 2) 그의 시조의 대부분이 그의 종교사상을 담았다는 특징을 지니는데, 이는 '인간은 악기이고, 하느님은 연주자라는 자신의 믿음과 '자신의 시조에는 죽음을 사모하는 자신의 뜻이 담기기 마련' 이라는 시조관에 기인한다. 자신의 시조를, 하느님이 자신을 연주하여 나오는 음악으로 여긴 것이다 3) 다석 시조의 시어는 대부분이 심오한 의미를 담아 특이하게 구사한 우리말로 되어 있다. 그래서 매우 난해하다. 이것은 그의 사상과 학문이 자연스럽게 유로된 결과다. 다석은 우리에게 '시조는 진리를 담는 최선의 그릇'이 될 수 있다는 시조의 새로운 경지를 보여주었다. 다석의 시조가 지금까지는 국문학사의 영역 바깥에서 방치되어 왔지만, 지금부터라도 심도있게 다루어져야 한다. 다석 시조의 시어, 시세계. 영향관계 등 계속 논의되어야 할 것들이 많다.

Keyword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