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stract
Social historical geography is interested in geographical elements related with a social group and perceives the diverse dimensions of a geographical phenomenon.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and interpret the multi-layers of meanings associated with the ancestral places of lineage group, i.e. Bonkwans(本貫)in Korea with a viewpoint to social historical geography. The term Bonkwan does not appear in any historical records prior to ths 10th century. Thereafter it is used continuoushy by lineage groups or by govermment agents till the 17th century. I believe that during this long-term period Bonkwan assumed multiple geographical meanings which varied from period to period, such as residence place, a place of origin, and a place symbolizing power. Each layer of meaning was the product of a certain period and of a cetain lineage. Its first meaning was produced in the early Koryo kingdom. Its second meaning from late in the same kingdom to the early part of Chosun kingdom. In order to understand the meaning of Bonkwan correctively, we need to see it at a large perspective. That is to say, it needs to be viewed in the framework of immigration study of each lineage because the term is more is moreof a social construct than a fixed notion.
사회역사지리학은 지리적 현상을 사회집단과 관련하여 인식하고 해석한다. 이 글은 한국 성씨집단을 지리적 사회집단으로 인식하고 그들의 본관 문제를 사회역사지리학의 시각에서 살핀 것이다. 필자는 현재의 본관 개념이 단일한 의미가 아닌 다양한 의미층을 갖는다고 인식하였다. 고려전기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한 우리 나라의 본관 개념에는 그 후 조선시기까지는 몇 개의 의미층이 누적되어 왔음을 알 수 있었고, 그 기원을 사회역사지리적 관점에서 해석하였다. 결과적으로 본관의 의미는 시대마다. 성씨집단에 따라 다양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를 요약하면 실제로서의 본과, 기원으로서의 본관 권력에의 의지로서의 본관이다. 첫 번째 의미층은 <본관=거주 장소>의 의미로서 시기적으로 고려시기에 두 번째 의미층은 <본관= 기원 장소>의미로서 본관과 거주지가 분리된 상황 즉 여말선초에, 그리고 세 번째 의미층은 <본관= 상징 장소>라는 소위 권력에의 의지를 보여주는 허구적이고 상징적인 의미로서 조선 전기를 과도기로 하여 조선중기의 전란기이후에 형성된 것으로 보았다. 오늘날 우리나라 각 성씨집단들이 사용하고 있는 본관의 의미는 이상의 세 가지 의미중 한가지 이상으로 규정할 수있다. 그러나 구체적인 성씨집단별 본관의 의미 문제는 종족집단의 거주지 기원과 공간적 이주과정이라는 보다 넒은 주제의 틀에서 조명될 필요가 있다. 이것은 본관이 단순한 물리적 공간을 넘어선 컨텍스트상의 사회적 구성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