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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멀칭 이앙재배에서 잡초발생과 벼의 생육 및 수량 (Weed Occurrence and Yield of Rice in Transplanting Rice Culture with Paper Mulching)

  • 이변우;최일선;이학래
    • 한국잡초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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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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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68-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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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
  • 국내에서 개발된 멀칭지에 의한 벼 멀칭이앙재배시 멀칭의 분해, 잡초 발생, 벼의 생육 및 수량을 1996년과 1997년 2년에 걸쳐 검토하였으며 그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멀칭 후 15일에 질소 사용량의 25%을 분얼비로 시용한 1996년 실험의 경우 멀칭지가 50% 분해되는데 멀칭지의 종류 및 시비량에 다라 28-50일이 소요되었는데, 습윤지력 증강제를 처리한 멀칭지가 처리하지 않은 멀칭지에 비하여 분해가 늦었으며 또한 질소 18kg/10a시용구 보다 12kg/10a시용구에서 분해가 늦었다. 그러나 기비중점 시비를 하도 분얼비를 생략한 1997년 실험의 경우 50% 분해에 42일 이상 소요되었다. 2. 1996년 실험의 경우 벼 생육 초기에는 종이 멀칭에 의하여 효과적으로 잡초가 방제되었으나 후기에는 여뀌바늘 등이 발생하여 잡초 방제효율이 떨어졌다. 1997년 실험의 경우 무멀칭 잡초 방제구를 포함하여 모든 처리구에서 잡초발생이 미미하여 멀칭지의 잡초 발생 억제 효과를 판단할 수 없었으나 멀칭지의 분해 정도로 판단해 볼 때 잡초방제 효과가 충분히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3. 1996년 실험의 경우 무멀칭 잡초 무방제구의 수량은 약 185kg/10a인데 비하여 습윤지력 증강제를 처리한 멀칭지 멀칭구의 경우 질소18kg/10a였다. 1997년 실험의 경우 무멀칭 제초제 처리구와 종이 멀칭구 간의 수량 차이는 없었다. 4. 이상의 결과를 종합하여 볼 때 종이 멀칭 재배는 멀칭 후에 분얼비를 시용하는 경우 멀칭지의 분해를 촉진하여 후기의 잡초 발생이 다소 우려되나 기비 중점시비를 하고 분얼비를 생략하면 잡초를 효율적으로 방제할 수 있으며 수량 또한 제초제에 의하여 잡초방제를 하는 경우와 차이가 없을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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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인장방법에 의한 SBR 폴리머 개질 콘크리트의 부착강도 특성 평가 (Evaluation For Adhesion in Tension of SBR Polymer Modified Concrete Tensile by Uniaxial Method)

  • 윤경구;장흥균;이남주;이승재;홍창우
    • 한국도로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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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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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7-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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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본 연구는 일반 콘크리트와 SBR 라텍스 개질 콘크리트의 부착강도 특성을 분석하고자 신 구 콘크리트로 구성된 직접인장 시험체를 제작하여 부착강도를 측정하였다. 이때, 시험체와 측정기의 연결장치가 $360^{\circ}$ 회전이 가능하도록 시험장비를 개선하여 시험체의 편심이 부착강도 측정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였다. 주요 실험변수로는 라텍스 혼입율, 표면 처리상태, 표면 함수상태로 정하였으며 실험결과는 다음과 같다; 라텍스 혼입률이 증가함에 따라 부착강도도 증가하였으며, 혼입률 15%에서 37%의 증진을 보였다. 이것은 라텍스가 골재와 시멘트 페이스트 사이에 충전되어 필름 막을 형성하고 부착력을 증진시켰기 때문인 것으로 판단된다. 표면처리에 따라 부착강도의 변화를 고찰한 결과, 샌드 그라인딩과 와이어 부러쉬에 의해 표면처리를 하였을 경우 부착강도는 단순 절단한 경우보다 약 49% 증가하였다. 표면함수 상태에 따른 영향을 고찰한 결과, 부착강도는 기존 콘크리트 표면이 건조하였을 경우에 가장 작게 나타났고, 자유수가 표면에 있을 때가 그 다음을 나타냈으며, 표면건조포화상태에선 37% 증가하여 가장 크게 나타났다. 따라서 부착강도를 증진시키기 위해서는 적절한 표면처리와 표면함수상태의 유지가 필수적임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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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국리유적 재고 (Reevaluation of the Songguk-ri site)

  • 손준호
    • 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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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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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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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송국리유적은 1974년 비파형동검이 부장된 석관묘가 발굴됨으로써 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1975년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통하여 한반도 청동기시대에 획기를 이루는 중요한 유적임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개된 송국리유적 보고문에는 전체 평면도조차 제시되지 못하고 있어 유적의 전모를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송국리유적의 보고서와 관련 보고문을 재검토하여 발굴된 전체 유구의 배치도를 작성함으로써 연구의 기초자료를확보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과 개별 유구및 출토유물에 대한 분석결과를 최근의 발굴.연구성과와 비교 검토함으로써 송국리유적의 시기와 성격에대한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였다. 송국리유적에서는 주거지, 부속유구, 저장공, 요지, 목책렬, 녹채, 굴립주건물지 등의 생활 유구와 석관묘, 옹관묘, 토광묘 등의 분묘 유구, 그리고 대지조성면과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의 증거들이 확인되었다. 이들은 유구의 분포 양상이나 유물상의 유사성 등을 통하여 볼 때 동일시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되는데, 구체적인 시기는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치에 의하여 대략 B.C. 850-550년의 범위로 산정되었다. 한편,송국리유적에서는 논농사의 집약화를 통하여 생산량을 증대시켰으며, 이러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유력자또는 유력 집단이 등장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고 더 많은 잉여생산물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하여 방어 취락을 형성하였으며, 이를차지하기 위한 빈번한 전쟁이 있었던 것으로추정된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였으리라 생각되는데, 이는 인구 증가에 의한 주거 공간의 확대를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송국리유적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주변의 여러 취락과 관련을 맺으면서 그 정점에 위치하는 중심취락으로 성장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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