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the late of Joseon Dynasty

검색결과 451건 처리시간 0.025초

조선시대 궁궐건축의 우물천장 구조 종이반자 연구 (Research on Paper Board Banja With Woomul(井) Structure of Royal Palaces in the Joseon Dynasty)

  • 이종서
    • 건축역사연구
    • /
    • 제32권1호
    • /
    • pp.61-72
    • /
    • 2023
  • Korean architecture classifies Banja (the decorated flat of the ceiling visible from the inside) of Royal Palaces into two types: Woomul(water-well, 井) banja, which inserts rectangular wooden board into lattice frame, and paper banja, which applies paper to the flat ceiling. Such classification was established in the 19th century. Before that, Banja was classified according to what was inserted into the lattice frame, either wooden or paper board. At first, the banja that used paper board was widely installed regardless of the purpose or nobility of the building. However, since the 17th century, the use of paper board banja became mostly restricted to Ondol (Korean floor heating system) rooms which are characterized by private usage and the importance of heating, and it was considered inferior to wooden board banja in terms of rank or grace. The contemporary paper banja was mainly installed in low-rank ondol rooms until the late 19th century to early 20th century, when roll-type wallpaper was introduced from the West and the paper banja came to decorate the King's and Queen's bedrooms. The traditional paper board banja benefits heat reservation, reduces the weight of the ceiling, and allows the adjustment of the lattice frame size. Furthermore, it can feature unique artistry if covered with blue, white, or red Neung-hwa-ji (traditional flower pattered paper).

초분광영상 분석을 활용한 김정희 필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의 과학적 조사 (Scientific Examination of Kim Jeong-hee's "Buliseonrando" by Using Hyperspectral Image Analysis)

  • 고수린;박진호;이수진
    • 박물관보존과학
    • /
    • 제30권
    • /
    • pp.127-144
    • /
    • 2023
  • <김정희 필 불이선란도>(이하 <불이선란도>)는 추사 김정희가 그린 작품으로 그림 중앙에 그려진 난초 주위로 4가지의 제발이 여러 서체로 쓰여 있고, 15과의 인장이 날인되어 있다. <불이선란도>에 날인된 인장과 보존처리된 부분을 중심으로 초분광영상 분석(HSI), 현미경조사, 엑스선형광분석을 실시하였다. 분석 결과 인주는 바륨 성분 유무의 2가지로 구분되었다. 인영은 추사의 인장 5과에서만 확인되어 시기별로 성분 및 재료적 특징이 다른 것으로 추정하였다. 특히 초분광영상 분석으로 15과 외에 확인된 인장 및 결실부에 대한 보존처리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초분광영상 분석의 활용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위생(衛生), 매약(賣藥), 그리고 시점(視點)의 전이: 한국사회 생명정치 시선에 대한 고찰 (Viewpoints: Exploring the Biopolitical Gaze in South Korea)

  • 김태우
    • 과학기술학연구
    • /
    • 제14권1호
    • /
    • pp.35-57
    • /
    • 2014
  • 본 논문이 주목하는 것은 서구에서 형성된 생명정치가 어떻게 한반도에서 전사회적으로 받아들여졌는가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구한말, 일제강점기의 주요 의료담론인 "위생"과 "매약"을 통해 생명정치 시선의 대두를 조망해 보고자 한다. 개항이전의 위생과 개항이후의 위생은 음도 같고 한자도 같지만 의미는 괄목할 만한 차이를 보인다. 그 의미의 간극에서 관찰되는 것은 1인칭에서 3인칭으로 전이된 몸을 바라보는 시점의 변화이다. 이 시점의 변화를 통해서 수동형의 몸과 몸에 개입하는 정치의 고리가 구축된다. 매약은 이러한 시점을 확대강화 시키며 구매 가능한 재화로서의 건강을 일상화시킨다. 위생과 매약은 과거의 담론과 실천이지만 결코 과거에만 남아있지 않다. 지금 한국의 의료체계가 바탕으로 하는 몸과 질병에 대한 관점이 위생, 매약과 깊은 연관을 가진다. 본 논문은 지금 한국사회의 강력한 의료담론인 검진의 예를 통해서 현재진행형인 위생, 매약 담론과 거기에서 관찰되는 한국사회 생명정치의 시선을 드러내보이고자 한다.

  • PDF

3차원 구조해석에 의한 수원 화령전 운한각의 구조성능 평가 (Evaluation of Structural Performance of Unhangak in Suwon Hwaryeongjeon by Three-Dimensional Structural Analysis)

  • 김영민
    • 한국전산구조공학회논문집
    • /
    • 제37권3호
    • /
    • pp.197-204
    • /
    • 2024
  • 본 논문에서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전통목구조인 수원 화령전 운한각의 구조성능을 평가하였다. 운한각의 가구구성 방식에 맞추어 3차원 구조해석 소프트웨어인 midas Gen으로 해석모델을 정교하게 구축하였다. 정적해석으로 주요 구조부재의 안전성과 사용성을 평가하였고, 고유치해석으로 동적거동특성을 평가하였다. 대부분의 부재가 안전성 및 사용성 기준을 여유 있게 만족하고 있으나, 외목도리에서 휨응력비가 기준을 20.7% 초과하고 있어 이 부재에 대해서는 장기적인 모니터링이 필요하다고 사료된다. 운한각의 고유주기는 1.079초로 비슷한 규모의 전통목구조보다 약간 긴 편이며, 특히 후면 화방벽의 영향으로 2차모드에서 비틀림이 발생한 것으로 분석된다.

꼴레쥬 드 프랑스 소장 한국 고서의 현황과 활용방안 (A Study on Status and Utilization of Korean Rare Books in Collège de France)

  • 이혜은;이희재
    • 한국문헌정보학회지
    • /
    • 제45권4호
    • /
    • pp.235-251
    • /
    • 2011
  • 이 연구는 그 동안 밝혀지지 않았던 꼴레쥬 드 프랑스에 소장된 한국고서를 실사(實事)하여 소장본의 규모와 전래경위, 자료적 특징을 살피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를 위하여 꼴레쥬 드 프랑스 도서관에 한국고서가 유입된 역사적 배경과 과정을 조사하였으며, 서지목록을 작성하고 이를 대상으로 주제별 판종별 시기별로 분석하였다. 특히 구한말 한국고서의 현황과 프랑스 내 한국고서 소재파악의 중요한 참고문헌인 "한국서지(Bibliographie Cor$\acute{e}$enne)"를 저술한 모리스 꾸랑(Maurice Courant, 1865-1935) 개인 소장본과 꼴레쥬드 프랑스 소장본과의 관계를 규명하였다. 또한 이들 자료에 대한 서지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공동활용의 방안을 모색하여, 본 연구가 앞으로 국외소재 한국 전적문화재의 발굴과 조사에 일조하고자 하였다.

서울 입정동 일대 도시조직의 적응 유형 (Adaptation Types of Urban Tissue in Ipjeong-dong Area, Seoul)

  • 우동선;조윤오
    • 대한건축학회논문집:계획계
    • /
    • 제34권7호
    • /
    • pp.99-106
    • /
    • 2018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adaptation types of urban tissue in Ipjeong-dong area, Seoul. Ipjeong-dong area has urban tissue those were made during Joseon dynasty and this is remaining even in the present time. This area was originally urban hanok residential districts till late 1950s. However, it has changed into machinery manufacture business area after demolition of Cheonggyechon shantytown. After several workshops and stores moved in this area, manufacturer and merchants required for more spaces due to lack of room for machinery. To place more workshops in the block, lot alteration were happened and accessibility to workshops inside the block were required. Adaptive road network which is main form of adaptative urban tissue were made to adapt in this kind of poor urban condition. To research about adaptive urban tissue making, distribution were explored and comparison tasks between various cadastral map of 1940, 1964, 1970s and 2017 were conducted. From these tasks, certain types of adaptive urban tissues and characteristics of these elements were found. First of all, forms of adaptive road depend on the surrounded environment. Connecting internal building corridor with original road system is categorized as Type A. Altering a portion of the buildings to make adaptive roads is categorized as Type B. Second, there were two types of formation of adaptive road. Type 1 is for adaptive road which is independent gesture from original road network. Type 2 is for adaptive road which is altering the form of original road network by lengthening or connecting two different dead-end roads.

유진경 가옥(현 북촌문화센터)의 원형과 궁궐요소 차용 (A Study on the Original Form and Architectural Elements in the Palace of Yu, Jin gyeong's Hanok)

  • 박상욱
    • 건축역사연구
    • /
    • 제23권5호
    • /
    • pp.7-22
    • /
    • 2014
  • It is identified that an initial person who built of 'Seoul Gyedong Modernized Hanok(former Min Hyeong-gi house)' used as 'Bukchon Culture Center' in present, was not Min Hyeong-gi, but his wife, Yu Jin-gyeong, and she built it when 8 years went on after his death(1879~1973), and the construction year was at the gate of Chuseok in 1921. Yu Jin-gyeong was Head Family's Eldest Daughter-in-law in family of Yeo Heung-min who was an influential person at the late Joseon Dynasty and was widow who had only son for 3 generations. And she built this house and moved to gain daughter and live futher grandchilds together in law in new nest. It is arranged that an annex surrounds with main building as the central figure. And this house emulates Yeonkeong-dang in backyard of the Changdeok Palace for 'preservation of main building' and Chim-bang-ga-toe applied on a bedroom in a palace is applied around nobleman family's the main room. It is rare case and expresses that a palace factor is borrowed. Yu Jin-gyeong's house is that a tradition Hanok is adjusted closely in city and central and basing mode as 'protective bedding' and building concept as 'a noble and protective architecture' is realized. So it has a character that development of Hangrang architecture is appeared and Head Family's Eldest Daughter-in-law widow of modern upper class had a special benefit. As well as, a meaning that it is experimental house based on tradition and is build of Hanok with housekeeping as the central figure for appear a form which has minimal Hangrang for housekeeping in yangban family of modern city, can be found.

『진묵조사유적고』와 『전경』에 나타난 진묵 설화의 차이에 대한 재해석 -문헌 전승과 구전 전승의 차이를 중심으로- (A Reinterpretation of the Differences between the Tales of Jinmuk shown in The Investigation of Historical Remains of Patriarch Jinmuk and The Canonical Scripture: Highlighting Differences between Literary Transmission and Oral Transmission)

  • 김태수
    • 대순사상논총
    • /
    • 제41집
    • /
    • pp.179-217
    • /
    • 2022
  • 『진묵조사유적고(震默祖師遺蹟攷)』(이하 『유적고』)와 증산(甑山) 및 대순사상에 나타난 진묵(震默) 설화의 차이와 관련, 선행연구에서는 증산이 종교적 이유로 설화의 원 의도를 변형한 것으로, 또는 믿음과 가치관의 차이로 본다. 이는 한국불교와 증산·대순사상 간 가치관의 차이를 전제로 양자를 회통하려는 해석이다. 본 연구는 가치관에 따른 기술 차이라는 이상의 관점을 수용한다. 다만 이러한 기술 차이를 불교와 대순사상 간 세계관 차이가 아닌, 문헌 전승과 구전 전승의 차이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접근한다. 이는 각각 19세기에 최초 문헌설화로 구성된 『유적고』와 18세기 이래 전래 된 민간전승을 의미한다. 이러한 해석 지평에서 진묵-봉곡(鳳谷) 관계를 조명하면, 『유적고』는 초의(草衣)·김기종(金箕鍾) 등 지식층의 가치관·의도를, 구전설화는 조선 후기 민중들의 희망을 투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증산 또한 천지공사에서 민간전승을 활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16C에서 19C에 이르는 유불 관계 맥락에서 『유적고』 찬술 경위와 의도를 분석했다. 특히 『완당집(阮堂集)』·승려 문집 등을 통해, 유학 측에서는 예도 정신의 진작이라는 시대 이념에 따른 자료의 순화·교정이 필요했고 초의 역시 불교에 불리한 구비전승을 윤색·삭제한 것으로 보았다. 반면 『유적고』에 수록되지 않은 진묵 설화가 18세기에도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영당중수기」 및 현존 구비전승을 볼 때 증산의 기술은 민중의 염원을 담은 시속의 민간전승을 수용한 것으로 평가했다. 즉 정치·사회적 이유로 유불 화합 내용만 채택한 『유적고』에 비해 『전경』은 조선 후기 회자 된 구비전승을 충실히 반영한 것으로 이해했다. 근거로는, 진묵-봉곡 관계를 조명한 구전설화에서 봉곡의 시기나 살해에 관한 서사가 많다는 점, 증산이 정치적 입장·신분이 아닌 마음과 뜻에 따라 모든 계층의 인물을 아울렀음을 들었다. 따라서 구전 전승의 특성상 면면히 이어 내려오는 서사 내용을 개작할 필요가 없었고 민중의 소리를 투영한 것으로 해석했다.

고문헌과 바위글씨로 조명한 지리산 용호구곡(龍湖九曲)의 입지 및 경관특성 (A Study on the Location and Landscaping Characteristics of Yonghogugok of Jiri Mountain Illuminated by Old Literatures and Letters Carved on the Rocks)

  • 노재현;강병선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 /
    • 제32권3호
    • /
    • pp.154-167
    • /
    • 2014
  • 김사문의 "용호구곡경승안내"와 "용성지" 그리고 바위글씨 의 위치와 내용 및 ArcGIS10.0의 투영기법을 활용한 지형분석 등을 통해 지리산에 설정된 남원 용호구곡의 장소 및 경관 특질을 밝히고자 한 본 연구의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남원팔경 제1경인 용호구곡의 협곡은 감입곡류천으로 변성암과 화강암 풍화층이 급류에 깎이면서 곳곳에 소(沼)와 단애(斷崖) 그리고 반석(盤石)이 특징적인 지형경관을 이루었다. 제3곡 학서암을 제외한 구곡 바위글씨 위치의 GPS좌표를 측정하고, 바위글씨를 기종점(起終點)으로 다음(Daum)지도 상의 API(Application Programming Interface) 기능을 이용하여 거리를 측정한 결과, 용호구곡의 총 연장거리는 약 3.5km이었으며 각 곡간의 평균거리는 436.5m로 계상되었다. 용호구곡은 1927년 용호서원의 전신인 용호정사(龍湖精舍)의 경영주체인 원동향약계와 관련된 기호학파 사림에 의해 구한말에서 일제 강점 초기 사이에 설정된 것으로 판단된다. 그 근거는 "용호정실기(龍湖亭實記)"에 언급된 용호영당(龍湖影堂)의 존재와 "하은유고(荷隱遺稿)"의 기록, 불신당(佛神堂)의 '용호품제(龍湖品題)' 와 '용호정사동구(龍湖精舍洞口) 갑자춘(甲子春)' 바위글씨 그리고 용호서원 목간당에 게판(揭板)된 "용호구곡십영(龍虎九曲十詠)" 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용호서원과 용호정을 중심으로 풍호대(風乎臺) 석벽에 새겨진 다수의 시사명단(詩社名單) 그리고 제6곡 유선대(遊仙臺)와 그 곳의 돌절구, 불신당과 교룡담의 '방장제일동천(方丈第一洞天)' 및 '용호석문(龍湖石門)' 바위글씨 그리고 1곡 주변의 여궁석(女宮石)과 비보풍수 시설 등을 종합해 볼 때, 용호구곡은 유 불 선(儒 佛 仙)과 풍수지리사상이 습합되면서 형성된 독특한 구곡문화의 현장으로 이해된다. 김사문의 "용호구곡경승안내"는 조선 말기 지역민이 가졌던 용호구곡의 지명과 승경관을 이해하는데 매우 유용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또한 "용성지" 내용으로 미루어 볼 때 용호구곡 용추동(龍湫洞)에는 불영추(佛影湫), 구룡추(九龍湫), 이수추(梨樹湫), 괴음추(槐音湫), 대야추(大也湫) 등 총 12개의 추(湫)가 언급되고 있으나 아쉽게도 일부는 현재 확인이 곤란하다. 한편 용호구곡 주변에 충만된 구룡(九龍) 관련 지명과 시설은 이곳 장소정체성의 핵심일 뿐 아니라 12개 추의 정확한 장소 규명과 경관의미 전달은 용호구곡의 경관매력도 제공은 물론 경관 스토리텔링을 위해 매우 유효한 콘텐츠이자 스토리보드의 키워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조선후기 회화식 고지도를 통해 본 평양성의 인문경관 특성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of Humanistic Landscape in Pyongyang Castle through Pictorial Maps in the Late Joseon Dynasty)

  • 김미정;소현수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 /
    • 제38권2호
    • /
    • pp.14-30
    • /
    • 2020
  • 본 연구는 조선후기 회화식 고지도가 제작 당시 선조들이 인지했던 장소명이 표기된 개념도라는 점에 착안하였다. 이에 평양성(平壤城)의 회화식 고지도 다섯 점을 대상으로 하여 역사적 고도(古都), 상업 도시, 풍류 도시라는 문화적 정체성을 지닌 평양성의 인문경관 특성을 다음과 같이 도출하였다. 첫째, 평양성의 역사적 정통성은 제례·종교시설이 대표하였는데, 국가의 시조와 관련된 '단군전(檀君殿)'과 '기자궁(箕子宮)', 고구려 유적인 '문무정(文武井)', 그리고 '사직단(社㮨壇)', '평양강단(平壤江壇)' 등 국가 제사를 지내던 곳, 교육과 제례 기능을 담당한 향교와 서원, 불교 사찰과 도교 시설들, '용신당(龍神堂)', '산신당(山神堂)', '제신단(諸神壇)'과 같은 민간신앙 공간이 포함되었다. 소중화(小中華) 의식과 기자 존숭 풍조로 평양성의 상징이 된 기자 관련 시설이 평양성 전체 영역에 분포된 반면, 북성에는 고구려 동명왕 관련 시설, 대동강 변에는 기복신앙 공간이 분포한다. 둘째, 평안도 경제 중심도시 평양의 상업 경관은 물류·교통시설로 드러났는데, 운수 기능을 담당한 대동강에 '양명포(揚命浦)', '청룡포(靑龍浦)', '왜성진(倭城津)' 등 포구와 주요 교통로를 연결하는 '영제교(永濟橋)', '강동교(江東橋)' 등 많은 다리가 있었다. 외성 영역에 물류 운반과 관리에 편리하도록 '정전도로'가 펼쳐지고, 주요 성문의 도로변과 감영 근처에 평양부 관할 읍의 이름이 붙여진 많은 창고들이 분포하였다. 또한 위계를 가진 도로로 질서정연하게 구획된 시가지와 평양성 주요 진입 도로변에 조성된 버드나무의 '북장림(北長林)'과 느릅나무가 포함된 혼합림으로 구성된 '십리장림(十里長林)'이 만든 선형 경관이 특징적이었다. 셋째, 풍류 도시는 위락시설의 분포로 가시화되었다. 내성에 인접한 대동강변은 성 안쪽으로 연결되는 운하와 축대를 쌓은 접안시설, 화물선이 정박한 포구 등 인공경관 특성을 보이지만, 자연스러운 하안을 가진 북성 주변은 '부벽루(浮碧樓)', '을밀대(乙密臺)', '최승대(最勝臺)', '함벽정(涵碧亭)' 등 다수의 누·정·대와 '청류벽(淸流壁)', '장방호(長房壺)'라는 바위글씨가 있었다. 대동강이 보이지 않는 내성에는 '오순정(五詢亭)'과 '벽월지(壁月池)', '사창(司倉)' 인근 반월지, 방지 내 섬에 조성된 '애련당(愛蓮堂)'이 수경관을 연출하고, 중성 서쪽 성곽에는 실용적 목적으로 지당들이 배치되었으며, 기자와 관련된 버드나무 식생 경관이 반복되었다. 또한 칠성문(七星門) 부근에 입지한 기생들의 장지 '선연동(嬋娟洞)'은 문인들의 시제로 사용되며 평양성의 풍류 이미지를 만드는데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