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status symbol

검색결과 120건 처리시간 0.029초

정조(正租)의 화성행차(華城行次)에 나타난 의장(儀仗)과 복식(服飾)에 관(關)한 연구(硏究) (Honor Guards' Ceremonial and Dress by King Jung-jo Hwa-Sung Hang-Cha)

  • 이혜영;심화진
    • 패션비즈니스
    • /
    • 제6권2호
    • /
    • pp.29-40
    • /
    • 2002
  • Honor guards‘ dress represented by royal carriage parade. This thesis studies the ceremonial dress worn by the ceremonial troops during the Hwa-sung Hang-hang Ban-cha drawing (華城幸行班次圖) in the Chosun dynasty of King Jung-jo.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understand the national level ceremony by closely looking into the traditional ceremonial dress and the various signs that were used at these events thereby enhancing the cultural status of the Jung-jo King period. The Hwa-sung Hang-hang Ban-cha drawing(華城幸行班次圖) has its characteristics and also has commonality between the garments worn at these ceremonies. These garments are a traditional heritage brought down from many ages before and is a reflection of the changes that have occurred within our everyday life. Among these many records the Bancha-do(班次圖) is a representation of records that show what was worn by both nobles down to the ceremonial troops. The uniforms of the ceremonial troops were not only huge in size but also very diverse according to rank and grade. They used strong true colors with colorful flags, ceremonial items and musical instruments. These all added to the grandeur of the ceremony. The ceremonial flag was itself a symbol and was the core of the whole ceremony and parade. These ceremonial flags represented the heaven, sun, moon, hill and animals as well as supernatural gods. All these showed change in shape, color and content by age and time. Also the Yongmun Gichi(Dragon flag: 龍紋旗幟) is a supernatural being representing the power and wish of the ruler. The Chunsang-mun represents the indivisible relationship between man and heaven and also a metaphor for absolute power. A close look at ceremonial instruments show a direct representation towards power such as an axe, spear and sword and integrated with other large ceremonial items not only provided a shade but was also a representation of worship. These all were a more or less representation of authority. The musical instruments expressed the absolute authority of the ruler and maintained the marching order and also added grandeur to the parade. A summary of the ceremonial troops in the As seen above, these national ceremonies were a representation of the present power of authority and the will to rule. These ideas and the philosophy of “ruled by heaven” is represented here in the uniforms and the ceremony itself. The Bicentennial anniversary of the Nung - hang of February 1795 will be an excellent opportunity to show and inherit the tradition and recreation of our heritage. In this view we must look at the color and shape of traditional dress to be able to inherit and learn from our ancestors.

고전 텍스트의 계승과 변용에 따른 재창조 텍스트의 지도 방법 연구 -<온달전>과 윤석산의 <온달의 꿈>을 중심으로- (Study of instruction of recreation text according to the inheritance and acculturation of Korean classical literature text -Focused on 'On Dal Jeon' and Yoon seok san's 'On Dal's Dream'-)

  • 이영택
    • 고전문학과교육
    • /
    • 제16호
    • /
    • pp.147-179
    • /
    • 2008
  • Classical literature texts have been transmitted and recreated as subjective meanings in a wide variety of genres. Authors recreate another world with their own imagination and classical literature texts. This study has been conducted to analysis 'OnDal's Dream' which is an adaptation from 'OnDalJeon' in order to figure out the method of inheritance and the subject and message of the adaptation. The process of inheritance and acculturation appears in the literary world. Some adaptations stick to the genre of the original text, other adaptations change to various genres. There is the process of inheritance and acculturation in the aspect of structure of the adaptation 'OnDal's Dream'. lntertextuality can be found between 'OnDalJeon' and 'OnDal's Dream' in terms of the stages such as 'confrontation' between the ego and the world and 'overcoming' hardships. However, the recreation text has acculturation of the structure that shows the potential desire for elevation of social status at the end part of the work so I could possibly show that the adaptation has limitation because it was far from the dream of common people and laborers at that time. There are different structures and recognition systems between 'OnDal Jeon' and 'OnDal's Dream' because the formal is an epic tale the other is lyric tale. An epic tale has some partial symbols in its story line, while an lyric tale is a symbol as a whole. There is an exhibition of deep emotion which is subjectivized and symbolized against the world in the adaptation 'OnDal's Dream'. And the inheritance of unreality, which is acculturation to the world of dream, from the original text can be found in the adaptation. First of all, study between the original text and the recreation text should be conducted in terms of intertextuality. Secondly, an instruction on the inheritance which is based on intertextuality between the original text and the recreation text should be conducted. Thirdly, an instruction about the structure of a genre and differences of recognition systems according to inheritance or conversion of a genre. It will be helpful for children to stimulate to take an interest in classical literature texts and traditional arts, to learn more recreation texts, and to develop the practical ability to recreate works. Based on above study, an instruction which shows a spiritual value of literature should be conducted.

산지형 사찰에 있어 조경식물 배치형식에 관한 연구 (A Study of The planting Arrangement of Ornamental Trees And Shrubs in Intermane Buddhist Temples.)

  • 심재성;배정관;서병기
    • 자연과학논문집
    • /
    • 제14권1호
    • /
    • pp.63-81
    • /
    • 2004
  • 본 논문은 한국 전통사찰의 경관현황을 개관하고 조경식물을 통한 가람의 종교적 이미지를 부각시켜 불교신도들의 경건한 수도와 함께 관광적 효과를 한층 거양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자 산지형 사찰인 낙산사, 부석사 및 불국사를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하였다. 이에 얻은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1. 사찰경 내 수목의 식재현황 및 유형조사대상 사찰에서 석가모니불을 주로 모시는 곳인 대웅전 앞에는 아무런 교.관목이 식재되어 있지 않았다. 극락보전과 무량수전에서는 공통적으로 주목이 식재되어 있었으며 사찰에 따라 매자나무 외 15종이 식재되어 있었다. 또한 불국사의 비로자ㅣ불에서는 백목련을 위시하여 25종의 수목이 식재되어 있음을 볼 수 있었다.한편 낙산사와 불국사의 원통전 및 관음전에는 사철나무 외 26종의 수목이 식재되어 있었다.2. 수목과 사찰 건물과의 연관성 및 산지형 사찰의 교관목 식재모형수목과 각각 건물의 특성과는 특별한 연관성을 발견할 수 없었다. 다만 불교적 의미를 갖는 수종으로서 배롱나무와 불두화가 식재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또한 대체적으로 지역적 특성, 기후 환경과 친화적인 식물이 식재되어 있었으나 수목과 사찰 건물과의 관계를 고려한 배식형식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본 조사를 토대로 산지형 사찰에서 교.관목을 식재할 때 활용할 수 있는 모형을 제시하였다.

  • PDF

조선시대 궁궐에서의 양학(養鶴) 사례 (A Cases of Crane Breeding(養鶴) in the Palace of the Joseon Dynasty Period)

  • 홍형순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 /
    • 제38권3호
    • /
    • pp.1-10
    • /
    • 2020
  • 본 연구의 목적은 조선 시대 궁궐에서도 학을 길렀는가에 대한 확인과 함께 그 사례를 고찰하는 것이다. 본 연구의 시간적 범위는 조선 시대이며 공간적 범위는 외전, 내전, 궐내각사, 궐외각사 등 궁궐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본 연구를 위한 문헌 자료는 일부 원문 자료를 발췌·번역하여 고찰하였으며, 이와 함께 한국고전번역원 데이터베이스(http://db.itkc.or.kr)에 탑재되어 있는 고전번역서를 활용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 시대 최고 관부인 의정부에서는 전기 때부터 학을 길렀다. 임진왜란 이후 위상 변화와 청사의 훼철로 인해 의정부에서의 양학은 중단된 것으로 보인다. 둘째, 조선 시대에 경연과 언론 기능을 담당하며 왕을 측근에서 보좌한 홍문관에서의 양학은 조선 전기 중종 대부터 임진왜란 이후 정조 대에까지 이어졌다. 셋째, 정조 대에는 왕권 강화를 위해 학문의 중추기관으로 새롭게 설치한 규장각에서도 학을 길렀다. 당시 규장각에는 여러 쌍의 학을 기르기도 했던 것으로 보인다. 넷째, 의정부, 홍문관, 규장각 등 조선의 핵심적 관부에서의 양학 행위는 그 기관의 위상이나 성격 등 정체성을 나타내는 표상으로서의 의미가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다섯째, 홍문관 등 궁궐에서 기르는 학은 관례적으로 황해도 배천군 등에서 충당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관례는 영조 대에 이르러 중앙 관서와 지방 관아 간에 마찰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이후 정조 연간에도 지속된 것으로 보인다. 본 연구에서는 대부분 국역 자료에 의존하여 연구를 진행했다는 한계가 있다. 추후 자료의 발굴과 번역 성과가 더욱 축적된다면 보다 풍부한 사례를 확인할 있을 것이다. 또 지방의 관아, 사찰 등에서의 양학 사례 등 보다 심화된 후속 연구도 필요하다.

역사도시경관으로서 세종대로 (구)국세청 별관 부지 설계 (Design of the Former National Tax Service Building Site on Sejong-daero as a Historic Urban Landscape)

  • 서영애
    • 한국조경학회지
    • /
    • 제44권1호
    • /
    • pp.107-118
    • /
    • 2016
  • 서울시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일제 강점기에 지어져 최근까지 사용했던 세종대로 (구)국세청 별관을 철거하고 시민의 공간으로 재조성하고자 설계공모를 시행했다. 본 연구는 설계공모에 출품된 설계안 중 하나로 대상지의 역사 맥락을 통해 장소 특성을 분석하고 개념을 도출하여 설계 전략과 내용을 서술했다. 지침서상 광역 분석과 세종대로의 가치와 문화 유산과의 연계방안을 고려하여 과거와 현재, 미래로 이어지는 공간이 되도록 명시하고 있다. 세종대로는 조선 건국에서 대한제국기, 일제 강점기와 현대에 이르기까지 도로구조의 변화와 함께 중요한 사건과 활동이 일어나는 중심공간이다. 대상지 배후지역인 정동은 근대 태동기 문물이 도입되는 첨단의 장소였으며 인접한 덕수궁, 성공회성당, 서울시 의회건물도 많은 변화를 거치며 현재에 이르렀다. 본 연구는 역사도시경관 관점으로 광역 분석을 통해 길과 광장의 의미를 고찰했다. 정동과 대상지 주변의 변화와 현황을 분석하고 설계의 주요 개념을 공공성의 회복으로 설정했다. '리-퍼브릭'은 고종이 선포한 대한제국의 이념을 상징하는 중의적 개념이다. 대상지의 공공성을 확보할 수 있는 열림, 연결, 비움으로 설계 키워드로 주요 전략을 수립하여 대안 검토를 통해 8% 경사 광장을 계획했다. 대상지 현황을 반영하여 장애자, 노약자 등 누구나 편하게 접근 가능한 램프 구조로 계획하며 인접 대지와의 자연스러운 연결을 도모했다. 성공회 성당 레벨의 테라스 광장과 보도에서 이어진 주 광장은 계단실 등과 같은 건축물의 신축 없이 완전히 비움으로써 열린 조망을 확보하고 다양한 현대 도시 활동을 담을 수 있도록 계획했다. 설계안은 고종이 지향하던 근대적 민주개념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으로 장소의 가치를 다시 공공에게 환원하는데 기여하도록 했다. 본 연구는 역사적 배경과 중층의 시간이 쌓인 대상지 설계에 대한 방향성을 제고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우리나라 생태숲조성 기본계획 실태 및 개선방향 (The Actual Conditions and Improvement of the Eco-Forests Mater Plan, South Korea)

  • 허재용;김도균;정정채;이정
    • 한국환경생태학회지
    • /
    • 제24권3호
    • /
    • pp.235-248
    • /
    • 2010
  • 본 연구에서는 우리나라 생태숲조성 기본계획 수립의 실태를 파악하고, 문제점 및 개선방향을 제시 하였다. 우리나라 생태숲조성 계획의 제한요소로는 입지여건, 지형적 측면, 기존식생 등의 문제가 높은 빈도로 나타났다. 토지이용현황은 사유지의 평균 비율이 29.7% 이었으나 실질적인 사업비의 투자는 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도입빈도가 높은 시설은 기반시설, 건축시설, 휴게시설, 편익시설, 안내시설 등 이었으며, 도입빈도가 낮은 시설은 식물재배시설, 생태시설, 상징시설 등으로 나타났다. 식물 종 보유현황은 500종류 이상을 보유한 곳이 1개소이었고, 산림청이 제시한 생태숲조성 기준의 식물종다양성 기준 이하는 11개소 이었다. 사업비는 시설투자비가 식재비보다 매우 높았으며, 후기투자사업비 보다 초기투자사업비 월등히 많았고, 조성 이후의 유지관리에 대한 예산 계획 수립이 거의 없었다. 산림청이 제시한 생태숲조성의 기본 개념은 충실하게 계획 하고 있었으나 세부적인 도입 계획에서는 이용자 중심 위주로 계획 되어져 생태숲조성 기본 취지에 어긋나고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생태숲조성을 주관하는 지방자치단체가 사업추진을 위한 과정에서는 산림청이 제시한 내용을 제안하고, 사업이 확정된 이후에는 산림청이 제시한 내용을 대부분 무시하여 전시효과를 위한 생태숲조성 방식으로 변화하기 때문이다. 산림청에서 제시하는 생태숲조성을 위해서는 산림청의 감독이 강화되어야 하고, 지방 자치 단체장, 감독부서, 계획 및 설계자 등 담당자들이 생태숲에 대한 명확한 개념 정립을 하여야 할 것이다.

외환위기 이후 계층의 양극화: 변화된 일상과 소비생활 (The Gap between Social Stratification in the Aftermath of the 1997 Financial Crisis: The Change of Living Conditions and Daily Life as a Consumer.)

  • 남은영
    • 한국조사연구학회지:조사연구
    • /
    • 제10권1호
    • /
    • pp.1-32
    • /
    • 2009
  • 이 연구에서는 외환위기가 발생한 후 년 동안 한국사회에서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를 소득 및 소비생활의 변화와 소비의식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이와 함께 외환위기를 전후하여 경제적인 난관과 동시에 발생한 개인해체 및 사회해체를 포함하여 제반 사회문제들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외환위기에 따른 충격의 정도와 범위가 개인 및 집단에 미친 영향을 고찰한다. 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안의 중산층 귀속감을 통하여 중산층 잔류 및 이탈을 살펴보았을 때, 과거에 중산층이었던 사람들의 약 60%가 중산층에 잔류하였고 나머지 40%는 중산층에서 이탈하여 지위의 하락을 경험하였다. 외환위기 이후 3명 중 1명 이상이 소득과 자산이 감소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자산 및 소득의 감소는 개인들의 일상생활과 소비생활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자산이나 소득이 감소한 사람들에게서 실업, 부도와 신용불량, 건강악화, 우울증과 자살충동, 그리고 가족해체 등을 경험한 비중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계층이동에 따라서도 유사한 양상을 보여, 중산층에서 이탈한 사람일수록 이러한 개인해체 및 가족해체와 같은 일상의 부정적인 변화를 많이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외환위기의 충격으로 소비심리가 위축되고 생활비규모의 축소 및 건전소비가 확산되었으나, 소비행위는 양극화되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명품선호 경향과 지위소비의식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계층별 소비생활에서도 핵심적 중산층은 교육비부담을 하층은 생계비 부담을, 가장 많이 지목하고 있는 가운데, 소득이나 자산이 감소한 집단과 중산층에서 이탈한 집단일수록 사교육비의 부담을 많이 느끼며 강한 교육가치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자녀교육에 대한 투자는 지속성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와 같이 외환위기의 굴절양상이 계층별로 차별화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특히 자산과 소득의 증가 및 감소여부와 계층이동의 양상이 일상의 변화 및 소비생활의 양극화를 초래하는 주요한 원인이 되고 있다.

  • PDF

진 제품 구매자의 추구혜택에 따른 평가기준 및 선호 이미지 (Evaluation Criteria and Preferred Image of Jeans Products based on Benefit Segmentation)

  • 박나리;박재옥
    • 한국의류학회지
    • /
    • 제31권6호
    • /
    • pp.974-984
    • /
    • 2007
  • WTO체계 이후 급속히 변화하는 의류시장의 환경 속에서 진 제품 시장 역시 소비자의 다양한 취향에 따라 세분화 되고 있다. 이에 국내 진 브랜드들이 수입 진 브랜드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하여 소비자들이 추구하는 혜택은 무엇이며 그 혜택에 따른 제품을 평가하는 기준과 선호하는 이미지에 대한 연구의 필요성 이 대두되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진 제품 구매자의 추구혜택을 알아보고 추구혜택 집단에 따라 제품평가기준과 선호 이미지에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보고자 한다. 본 연구의 대상은 청바지 시장에서 주요 표적고객으로 선정되고 있는 20대 남, 녀 대학생으로 선정되었다. 표본추출법으로 할당표본추출법이 실시되었다. 자료수집은 설문지 응답방식으로 이루어 졌으며, 추구혜택, 제품평가기준 및 선호 의복이미지를 측정하기 위하여 선행연구에서 사용된 척도들을 본 연구에 맞도록 수정, 보완하여 사용하였다. 총 492부의 설문지가 자료의 분석을 위하여 사용되었으며, SPSS 11.5를 사용하여 cluster analysis, factor analysis, Cronbach's ${\alpha}$, ANOVA 및 Duncan test를 실시하였다. 진 제품 구매자의 추구혜택에 따라 소비자를 유형화시킨 결과, 4개의 집단으로 분류되었다. 집단 1은 성적매력, 유행, 개성, 실용성과 같은 의복의 표현적, 도구적인 혜택을 모두 추구하는 집단으로써 다혜택 추구 집단이라 명명하였으며, 집단 2는 유행을 가장 추구하는 집단으로써 유행추구 집단이라 명명하였으며, 집단 3은 경제성을 가장 추구하는 집단으로써 경제성 추구 집단이라 명명하였으며, 집단 4는 유명상표를 가장 추구하는 유명상표 추구 집단이라 명명하였다. 추구혜택 집단에 따른 평가기준의 차이를 알아본 결과 심미적 기준, 외재적 기준, 품질성능적 기준에서 유의미한 차이를 나타내었다. 즉 다혜택 추구 집단은 제품을 평가하는 단서로 심미적 기준과 품질 성능적 기준을 다른 집단보다 더 중요시 여기고 있었으며, 유명상표 추구 집단은 제품의 외재적 기준을 더 중요시 여기고 있었다. 반면 경제성 추구 집단은 진 제품에 있어서 심미적 기준이나 외재적 기준은 별로 중요하게 여기고 있지 않았다. 추구혜택 집단에 따라 선호 의복이미지에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 본 결과 개성적 이미지, 활동적 이미지, 섹시한 이미지, 세련된 이미지, 심플한 이미지에서 유미한 차이가 나타났다. 즉 성적 매력, 유행, 개성, 실용성을 모두 추구하는 다혜택 추구 집단의 소비자들은 진 제품에서 개성적 이미지, 활동적 이미지, 섹시한 이미지, 세련된 이미지, 심플한 이미지 모두를 다른 집단에 비해 더 선호하고 있었으며, 유행을 추구하는 소비자들은 개성적 이미지를 더 선호하고 있었다. 또 유명상표를 추구하는 소비자들은 청바지를 착용함으로써 개성적 인 이미지와 세련된 이미지를 표현하는 것을 더 선호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려말선초(麗末鮮初) 제천례(祭天禮)의 의례적 분석 - 명대와의 비교를 중심으로 - (The rite of worshiping heaven's ritual analysis from end of Koryo to beginning of Choson period)

  • 김상태
    • 역사민속학
    • /
    • 제45호
    • /
    • pp.291-325
    • /
    • 2014
  • 본 연구는 제천례의 변화양상을 고려, 조선 그리고 중국과의 의례비교를 통해 그 차이를 살펴보고자 하는 것이다. 고려와 조선의 제천례는 표면적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내용상 의식의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유교적 의례인 제천례가 중국의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고려하여 중국의 어떠한 시기의 영향을 받았는지를 살피고자 하는 것이다. 본 연구는 여말선초 제천례의 변천과정을 의례 분석을 통하여 검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 역대 예서와의 비교를 하였다. 이를 통해 중국 우리나라 제천례의 차이점 및 변화의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다. 또 실제로 시행된 제의를 분석하여 여말선초 제천례의 역사적 성격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연구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방법론적 접근을 하였다. 각종 연대기와 의례서를 통해 고려부터 세조대에 이르기까지의 제천례의 역사적 변천과정 및 기본 의식을 살펴보았다. 제천례 시행의 변화추세 파악은 동일한 제천례의 시행일지라도 당대의 시대상황에 따라 달리 표현된다. 기존의 연구는 여말선초 제천례에 대한 국내의 자료만을 주된 대상으로 하여 고찰하였다. 그러나 제천례의 정착과정은 유교적 의례의 정착과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제도적 변천은 국내의 자료만을 대상으로 하였을 경우 나타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없다. 때문에 반드시 중국에서의 제천례의 변화모습과 관련하여 그 변화의 추이를 살펴보았다. 이를 통해 중국에서의 제천례가 우리나라에서는 어떠한 방식으로 정착되고 있는지, 또한 중국 역대 예서와의 비교를 통해 양자의 차이점 및 변화의 원인을 찾아내고, 아울러 실제로 시행된 제의를 분석하여 여말선초 제천례의 역사적 성격을 파악하였다. 여말선초와 중국 제의 절차는 고려와 조선이 비슷하지만 실제의 내용상 차이가 존재한다. 또 당나라와 송나라 그리고 명나라에서의 의례절차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차이는 우리나라와도 직결되고 있으며, 황제권의 변화와도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된다. 대체로는 당과 송이 비슷한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명나라가 이들 두 나라와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예컨대, 절을 하는데 있어서의 차이, 초헌 아헌 종헌의 주관자 차이가 다르게 나타난다. 또 배위의 변화 등이 있다. 배위의 변화는 황제권의 위상과 관련하여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제단의 크기, 신주, 분헌관, 옥폐(玉幣), 배위(配位), 종사(從祀) 등 구체적 분석은 막연하게 다른 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차이들을 고찰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토대위에 국가간, 시대간 차별성을 규명할 수 있었고, 그러한 차이에 대한 의미를 부여하였다.

조선시대 양양(襄陽) 하조대(河趙臺)의 유래와 경관에 따른 명승의 향유 방식 (The Origin of Hajodae(河趙臺) in Yangyang(襄陽) and the Way of Enjoying Scenic Sites(名勝) According to the Landscape in Joseon Dynasty)

  • 김세호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 /
    • 제40권1호
    • /
    • pp.55-64
    • /
    • 2022
  • 이 글은 양양 하조대의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그 유래와 경관의 내용을 분석하여 조선시대 문인들이 향유한 하조대의 문화사를 조명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이에 따른 연구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하조대는 하륜(河崙)과 조준(趙浚)이 유람한 고사가 전하는 공간이다. 다만 이러한 전설이 문헌에서 확인되지 않았기에 역사에서 는 다양한 이견이 공존했다. 조위한(趙緯韓)은 양양 부로들의 의견을 인용해 조준이 아닌 조인벽(趙仁壁)일 수 있다고 하였고, 조덕린(趙德鄰)은 '멀리 보는 대'라는 의미의 '遐眺臺'로 기록했다. 문헌적 근거를 밝혀 하조대의 유래를 명확하게 제시할 필요성이 요구된다. 둘째, 하조대는 조선 중기 관동 최고의 명승으로 회자되었다. 당대 문인들은 하조대를 관동 최고의 명승 가운데 하나로 거론했고 이는 곧 양양의 상징이 되었다. 이러한 하조대의 기록은 조선 후기로 접어들며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를 보인다. 이는 관동팔경이 정립되고 낙산사(洛山寺)가 명성을 얻으면서 하조대의 위상이 다소 줄어든 데 기인한 결과로 판단된다. 셋째, 조선의 문인들은 하조대의 다양한 경관을 통해 명승을 향유했다. 삼면이 탁 트인 지세는 바다를 조망할 수 있었고 호연지기를 기르거나 스스로를 성찰하는 계기를 제공했다. 한편, 근경에 해당하는 기암절벽은 유람객의 이목을 사로잡았고, 하조대 일대에 핀 해당화는 기이한 매력을 보이기에 충분했다. 이는 하조대가 지닌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고 이와 같은 경관에 대한 관리가 필요함을 암시한다. 넷째, 하조대를 읊은 한시는 하조대가 지닌 그 공간적 의미를 보여준다. 하조대를 주제로 한 한시의 면면을 살펴보면, 경관을 바탕으로 회포를 풀어낸 경우, 자연경관에 자신의 존재를 견주거나 의식을 투영한 면모, 조선 전기 명신 하륜과 조준을 회고한 사례 등이 확인된다. 경관을 통해 자신의 소회를 표출하고 역사를 회고하는 양상으로 귀결됨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