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scenary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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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족(濯足)의 배경과 그 문화현상에 담긴 조경적 의미 - 시문과 그림에 나타난 탁족지유(濯足之遊)를 중심으로 - (A Review on the Background of Takjok(濯足; Washing Feet) and the Landscape Architectual Meaning of Its Cultural Phenomenon - Focused on Takjokjiyu(濯足之遊) Shown on Poetry, Prose, and Painting -)

  • 노재현;서효석;최종희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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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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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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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본 연구는 옛 문헌과 그림에 담긴 탁족(濯足)의 문화현상과 그 기저에 담긴 배경 및 의미를 고찰함으로써 탁족 문화를 계승하기 위한 조경적 대안을 제안해 보고자 한 것으로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자연 질서에 순응하고 세속으로 부터 초연(超然)한 삶을 비유한 '탁영탁족(濯纓濯足)'의 고사는 '은일(隱逸)'을 통해 유유자적하는 탁족지유(濯足之遊)로 승화되었다. 선비가 유연(柔軟)한 계류에 발을 담그는 것은 자연과 물아일체(物我一體) 함으로써 도(道)와 상합(相合)되고자 하는 것으로 이러한 모습은 자유로운 정신세계인 '유(遊)'의 경지이자 본질과 상통한다. 탁족의 문화현상은 고려 말 이후 조선시대 전래경관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팔경시(八景詩)에 나타난 탁족은 고답적(高踏的)인 것이라기보다는 일상에 깃든 생활경이기도 하였다. 탁족도에 묘사된 맑은 물이 흐르는 계류[淸溪]와 바위, 그리고 소나무 등 교목이 우점(優占)하는 산수는 뜻 높은 선비의 은일공간으로 기호화되고, 그 정신세계는 더욱 부상되었다. 중국의 탁족도에서는 '청계(淸溪)'와 '창랑(滄浪)'을 강조함으로써 더러움에 대비되는 청류(淸流)의 이미지와 상고성(尙古性)이 강하게 부각되고 있는 반면, 조선시대 그것은 상대적으로 은일과 탁족지유라는 내면적 즐거움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탁족도에 나타난 자연관은 자연의 섭리를 그림 속에 그려진 선비의 상황 및 태도로 비유하여, 산수에 대한 사랑과 그 속에서 여유를 즐기는 가운데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를 깨닫게 하는 도가적(道家的) 관점의 표현이 잘 드러난 것으로 이는 중국은 물론 조선의 시대정신과 미의식의 한 단초를 보여준다. 요컨대 양국의 '탁족지유'는 인격수양이나 처신, 또는 은둔과 고답(高踏)의 상징으로 해석되면서 한편으로는 현실세계에서 납량의 수단으로 수용되어 왔다. 탁족 행위에는 선비들의 이상과 상고주의(尙古主義) 정신이 깃들어 있을 뿐 아니라, 일반 서민의 더위를 이기는 지혜가 담겨 있음은 깊이 되새겨 봐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환경적 지원성에 입각한 수공간과 탁족바위 그리고 물의 활용은 휴양 레크레이션 공간에서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대상이며, 탁족 행위에 깃든 정신이야말로 고전적 치유(治癒)의 정신문화였음을 일깨워 준다.

기문(記文)을 중심으로 고찰한 임대정원림(臨對亭園林)의 입지 및 조영 특성 (Location and Construction Characteristics of Imdaejeong Wonlim based on Documentation)

  • 노재현;박태희;신상섭;김현욱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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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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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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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임대정원림은 전라남도 화순군 남면 사평리 상사마을 끝자락에 서북향하여 자리하는데, 16C 남언기에 의해 조성된 고반원을 기반으로 1862년 사애 민주현에 의해 작정되었으며, 봉정산과 사평천을 배산임수하여 풍수적으로 번영과 행복을 상징하는 학체형국(鶴體形局)의 서출동류하는 길지이다. 공간구성은 '사애선생장구지소'로 각자된 표석과 향나무가 어우러져 있는 앞뜰(전원(前園))과 정자와 방지원도형 연못을 포함하는 '대상부(臺上部)'의 내원(內園), 신선도를 둔 2개의 연못으로 이루어진 '대하부(臺下部)'의 수경원(水景園) 그리고 봉정산 수림과 외남천(사평천) 및 농경지를 포함하는 외원(外園) 등 총 5개 권역으로 구성됨으로써 임대정을 중심으로 위요 중첩된 원림적 속성이 강하게 표출된다. 시문과 현장조사 결과, 임대정원림은 안분지족의 의미를 담고 있는 기임 등 임수대산(臨水對山)한 터에 수심양성의 거점을 경영코자 했던 은일처로서의 장구지소, 귀거래를 위한 별서원림, 대자연의 도와 일체화를 이루고자 한 세심처(洗心處) 등의 작정동기가 확인되며, 애련설에 근거한 향원익청(香源益淸)적 개념의 피향지와 읍청당, 방지원도 그리고 도합 3개로 이루어진 삼신선도의 신선사상 등 다양한 의경 요소가 함축된 원지(園池)를 보이고 있다. 임대정원림의 경관처리기법으로는 봉정산의 원경과 달빛 투영미를 의도한 인경(引景), 사방에 펼쳐진 산수경관과 문화경관의 환경(環景), 대경(對景)으로서 도입된 목가적 전원의 차경, 수륜대로의 앙경(仰景)과 연못으로의 부경(俯景), 정자와 오솔길에서 취할 수 있는 정관(靜觀)과 동관(動觀), 계류수와 연못 등 수경공간의 인경(隣景), 버섯 또는 우산처럼 보이도록 유도된 임대정으로의 관경(觀景), 버드나무 어우러진 연못의 간경(看景), 격물치지의 의미를 담아 관념을 대입한 암각글씨의 의경(意境), 해돋이와 해넘이를 동시에 취할 수 있는 취경(取景) 등이 중첩되어 펼쳐지는 다양한 경관기법이 발견된다. 건립 초기에는 주로 은행나무, 대나무, 버드나무, 소나무, 잣나무, 전나무, 뽕나무, 가래나무, 오동나무 그리고 매화와 연 등의 식물이 도입된 것으로 보이는데, 전반적으로 유가적 품격을 반영하거나 도가적 풍류관, 미래번영을 염원하는 봉황사상 등이 내재된 의미경관적 면모를 엿볼 수 있다. 더불어 연못 주변에 도입된 열식법, 정자 주변에 펼쳐진 총식과 환식법, 녹음수를 활용한 점식법, 기념식수한 오동나무 등의 고식법, 소나무와 전나무를 양과 음으로 대응시킨 대식법 등 다양한 식재기법을 추적할 수 있다.

가오별업(嘉梧別業)의 복원 설계를 위한 공간구성 및 정원 특성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Space Formation and Garden Characteristics of Garden Remains, Gao-Byeoleop for Restoration Design)

  • 노재현;김순기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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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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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8-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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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는 조선 말기 대표적 정치인이며 경세가, 그리고 다인이었던 귤산 이유원의 은거 유적인 남양주 천마산 기슭에 위치한 가오별업의 공간구성과 정원 특성을 고구함으로서 향유 별서원림 복원의 기초자료를 제시하고자 한 것이다. 문헌고찰과 시문 분석 그리고 현장조사와 주민인터뷰를 결과를 종합해 얻은 가오별업의 정원 모습은 다음과 같다. 종남산을 상징하는 '귤산'이라 자호한 이유원은 왕유의 망천별업과 서계 박세당의 은거 및 별서 경영을 동경하고 이를 스스로 실현하기 위해 선영이 있는 양주 가오곡에 별업을 조성하였다. 천마산 아래 가오곡을 중심으로 조성한 가오별업은 크게 내원과 외원으로 구성되며 별업공간의 영역은 '가오복지' 바위글씨 표식으로부터 시작된다. 가오별업의 내원은 사시향관, 오백간정, 임하려, 퇴사담 등의 건물과 행랑채 주변의 채원과 후원의 과원을 주요 정원구성요소로 하였으며 내원으로부터 약 850m 떨어진 상부에 조성된 영귀정은 별업 속에 또 다른 별서로서의 이중적 공간구성을 보인다. 가오별업의 내원은 장서각이자 고동서화의 보관소로서 사랑채 역할을 한 사시향관과 익랑 형태로 연결된 작은 사랑채 오백간정이 있었으며 주변에는 유상곡수거가 시설되었다. 또한 서재이자 벽려원(??園)이라 편액한 임하려는 별업 가장 높은 곳에 입지한 서옥이자다실이었다. 방지원도형의 연당 퇴사담에 도입된 태호석 이외에도 가오별업에는 여러 기의 태호석이 도입되었으며 내원에는 다양하고 희귀한 정원 식물들이 식재되었는데 이는 이 시기 원예취미 사조 및 이유원의 재력과 고동서화 수집과도 무관하지 않다. 한편 별업에서 만회암으로 이르는 가오천계곡에 세운 영귀정 일원은 이유원 시기 이후 옥산 또는 우암이란 호를 가졌던 또 다른 인사가 향유했던 명소 '우암폭'이었던 곳으로 보인다. 이유원은 우암폭을 제삼폭으로 규정하고 '귤산'이라 새김으로서 이곳이 자신의 별업 영역임을 알렸으며 이곳에 영귀정을 세우고 주변에는 다수의 복사나무를 심어 도화경을 재현하였다. 영귀정 상부에는 만회정에 이르는 교량 앞에 새겨진 벽파동천 바위글씨는 가오복지 속에 형성된 또 다른 선계로 가름된다. 이유원은 그가 중창에 큰 역할을 한 사찰 만회암 후면 계곡의 거대한 바위에는 제일산이라 바위글씨를 새겨 이곳이 가오별업 외원의 종국임을 알렸다. 본 연구는 문헌연구와 현장연구에 의해 가오곡 일대의 별업 흔적을 추정한 것으로 현재까지 확인된 현장 유적에 의해 추정된 결과이다. 제일산과 제삼폭 사이의 제2의 경물이나 바위글씨를 확인을 위한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향후 시굴조사 등을 통해 가오별업의 정확한 배치특성이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이를 위해서는 특히 가오별업 복원을 위한 남양주시의 관심과 역할이 있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