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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지역 팔경의 내용 및 분포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Contents and Distribution of Palgyeong in Gangneung Area)

  • 권지영;김성균;성종상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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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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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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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본고에서는 여러 문헌에 흩어진 강릉지역의 팔경을 수집하고, 팔경과 역사문화와의 관계 팔경의 지역적 분포 경관구성 요소 및 내재적 의미를 다각도로 분석 및 해석하였다. 강릉지역의 팔경은 고려에서 근현대까지 오랜 시간 동안 축적 확장되어 왔으며, 단순히 자연경관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이 지역을 배경으로 한 역사적인 사실과 그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 또한, 강릉지역 팔경의 형식과 분포를 종합하여 볼 때, 가장 많은 형식을 차지하는 것은 소상유사형(瀟湘類似型)이다. 그 중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저녁밥 짓는 연기'나 '고기 잡기' 등은 당시 강릉지역민들의 생활상을 보여주고 있으며, 이는 마을단위로 이루어진 팔경이라는 사실을 말한다. 강릉지역의 팔경은 넓게는 시(市) 전체, 좁게는 누정(亭)까지 다양한 범위에 분포되어 있다. 대부분의 팔경은 현재 강릉시의 동쪽, 그리고 강동면과 구정면이 접하는 지역에 몰려있다. 강릉 지역의 팔경이 대부분 이곳에 분포되어 있는 상황으로 볼 때, 이 지역이 강릉경관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강릉지역 팔경은 자연요소 60%, 인문요소 36%, 기타 4%로 나타났으며 자연요소에서는 대상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인문요소와 기타에서는 대상 속에 담긴 전설이나 역사를 담고 있다. 팔경이 표현하는 경관들은 별개의 대상이 아니다. 남대천과 죽도봉, 군선강과 풍호 등 하나의 풍경이 되었다. 또한 신라의 화랑의 이야기가 얽힌 풍호, 군선강 등은 강릉지역의 대표적인 역사경관이 되었으며, 강릉지역의 팔경은 견조도, 한송정, 한송사 등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 강릉의 유적 및 전통경관을 유추해 볼 수 있는 중요한 기초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결론적으로 강릉지역의 팔경은 미적대상인 동시에 역사 문화적 장소이고 더 나아가 심상적(心象的) 공간으로 남아 있음을 알 수 있다.

동학농민혁명 기념공원 설계공모에 나타난 메모리얼 설계 경향 (A Study on the Design of Memorial in the Design Competition for Donghak Peasant Revolution Memorial Park)

  • 이진욱;성종상;손용훈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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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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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6-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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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기념성을 구현하기 위한 형태와 기법들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가운데 지난 2014년 동학농민혁명 기념공원 설계 공모가 진행되었다. 이는 집단의 기억을 강요하던 기념(記念) 사업에 대한 재고의 과정이며, 현재 우리나라에서 계획하고 있는 메모리얼 설계에 대한 동시대 설계가들의 인식을 고찰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소재이다. 본 연구는 동일한 대상지에서 이뤄졌던 동학기념사업들에 대해 시계열적으로 그 형성 배경을 살펴보고, 기존의 문헌 연구 등을 통해 설계공모를 분석하는 과정을 거쳤다. 이를 통해, 과거 정치적 목적의 수단으로써 조성되던 기념물이 공개공모를 통해 다양한 의견 수렴과 형태를 모색하는 방향으로 변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다층적 분석을 통해 마련된 분석의 틀은 일상성, 상호작용 및 자발성, 추상성, 임시성, 장소성, 통합성 그리고 조화성이다. 이를 통해 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일상 속에서 기념성을 전달하기 위해 기존의 특수성을 갖는 산재한 기념공간들을 일상적 활동 프로그램과 연계하였다. 둘째, 기념물과의 상호작용을 위하여 직접적인 참여와 감성적인 체험 방법을 사용하였다. 셋째, 추상적 재현을 위해 색상, 수직요소, 군집화, 공원의 틀 조작 등의 기법을 사용하였다. 넷째, 임시성과 변화성을 추구하기 위하여 식물을 이용한 애도의 방식과 물리적 변화가 가능한 건축물과 구조물들을 도입하였다. 다섯째, 대상지를 장소성이 있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하여 과거 지형을 복원하고, 현장의 모습을 재현하였다. 여섯째, 기존 기념물들과의 연계성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순환동선과 축선 조작 기법을 사용하였다. 일곱째, 주변과의 조화를 위하여 지형에 순응하는 동선과 건물을 배치하였다.

문헌으로 찾은 양근·지평 관아의 흔적 - 관아의 연혁·규모·터[址]를 중심으로 - (Traces of Gwan-a in Yanggeun and Jipyeong in Literature - with the Focus on the History, Scale and Sites of Gwan-a -)

  • 유동호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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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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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0-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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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전근대 사회에서 지방고을의 중심공간은 官衙(관아)가 있던 邑治(읍치)였다. 해안가 고을의 읍치는 읍성 안에 있었으나, 내륙 고을의 읍치는 성곽이 없이 관아만 있었다. 현재 양평군(楊平郡)인 양근군(楊根郡)과 지평현(砥平縣)은 관아만 있던 고을이었다. 양근군과 지평현에 관아가 정식으로 설치된 시점은 조선 초기이다. (1)조선 초부터 두 지역에 수령(守令)이 정식으로 임명되었던 점, (2)1703년(숙종 29)과 1465년(세조 11)에 양근군 동헌(東軒)과 지평현 객사(客舍)가 중수(重修)되었던 점, (3)조선 초부터 향교가 있었던 점 등이 조선 초부터 두 지역에 관아가 존재하였음을 증명한다. 조선시대 양근 지평관아의 주요건물은 아사(衙舍) 향청(鄕廳) 작청(作廳) 객사(客舍) 군관청(軍官廳) 등의 공해(公?), 향교 등의 교육시설, 사직단(社稷壇) 성황사(城隍祠) 여단(?壇) 등의 제단(祭壇)이었다. 현재 양근관아와 지평관아의 흔적은 거의 없다. 하지만 조선시대 지방관아의 공간구성 원칙 속에서 남아있는 문헌 고지도 유물 등을 분석한다면, 두 관아의 터[址]는 대략 찾을 수 있다. 문헌상 양근 아사[동헌] 터로 지목된 지역은 '현 양근중학교 앞 양평읍 관문1길 15(양근리 151)'이다. 실제 관문1길 일대에서 조선시대 백자편 기와편 등이 발견되며, 일부 주택에서 옛 동헌의 장대석을 재활용하는 모습도 확인된다. 한편 양근 객사 터로 추정되는 지역은 '현 양평경찰서 주변'이다. 하지만 양평경찰서 주변에서 객사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다만 양평경찰서 근처의 양평역 앞에 천주교 성지 표석이 있어, 이 일대가 관아 터였음을 알 수 있다. 지평관아의 주요건물(동헌 내아 작청 장청 군향고 연무정 화약고 향청 객사 등)은 현 관교길(지평리 238~250)을 따라 설치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비교적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는 건물 터는 객사와 아사[동헌] 터이다. 객사 터로 지목된 지평리 238번지는 주민의 구술과 문헌 내용이 일치하며, 아사[동헌] 터로 추정된 지평리 248~250번지 일대는 백자편 기와편 옛 동헌의 담장 등이 발견된다.

동중국해권 민가의 성역(聖域)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Sanctuary of the Residence in East China Sea Skirts Area)

  • 윤일이;尾道建二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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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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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0-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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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우리나라 제주도에는 바다를 통해 전달된 수평적 신화가 널리 분포하고, 가족 내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고, 민가 역시 한반도 민가와 건물배치, 난방 취사 분리, 거주유형 등에서 확연한 차이를 보여, 민가형성에 북방문화 외에 다른 문화의 전래도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러한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 한반도의 남해안과 제주도 이남에 펼쳐진 동중국해(혹은 동지나해)에 접한 민가를 비교하였다. 쿠로시오가 흐르고 계절풍이 부는 동중국해 지역에는 대륙의 북방문화뿐만 아니라 단속적이지만 바다를 통한 남방문화가 복합화되어 이곳 주문화권만의 특색을 이루었다. 이에 가신들이 좌정하는 성역을 통해 동중국해 민가에 나타나는 남방문화의 특성을 살펴보았다. 첫째, 동중국해 지역에는 해양과 관련된 수평적 신화가 주류를 이루고, 척박한 자연화경으로 반농반어 반농반채 등 이중적 생계수단을 지닌다. 가족구성은 전체적으로 모계 쌍계사회의 특성이 강한 연령계제제의 남방계 특성이 잔존하면서도, 외부적으로 대륙북방계에 원류를 두고 있는 가부장권의 특성이 상류계층과 도시에 나타나는 이중체계를 유지한다. 그래서 주택구조는 종적위계 남녀구별의 수직적 공간구성 대신에 세대별 기능별에 따른 수평적 공간구성을 이룬다. 둘째, 동중국해 지역은 정령신앙 조상숭배를 기반으로 한 토속신앙으로 가신들은 여성 농경 불과 관련성이 깊다. 부엌에서는 화신(조왕신), 곡창에서는 곡령신, 측간에서는 측신을 섬겼는데, 이들은 대부분 여신이고 사제도 주부들이 담당하였다. 이후 한 중 일 본토에서 불교 유교가 들어오면서 기존 여성중심의 무속의례에 남성중심의 불교 유교의례가 공존하는 이중적 성역을 이룬다. 셋째, 동중국해 지역에서 조왕신, 조령신, 측신들을 모시는 곳을 통해 별동형 부엌, 곡창, 돼지뒷간 등이 별동으로 존재했다가 점차 주택내로 흡수되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는 건축기술의 발달과 생활양식 변화에 연유하였다. 또 곡창 돼지 뒷간의 고상식은 중국남부 경로와 별동형 부엌과 화신의 성격은 남양 경로와 관련이 있는 등 해양문화의 혼합성이 나타난다. 그러나 별동형 부엌 곡창 돼지 뒷간에 석재의 사용은 동중국해권 주문화권만의 특징이라고 하겠다.

시문(詩文)에 나타난 태산(泰山) 경관요소 및 분포특성 연구 (A Study on the Landscape Elements and Distribution Characteristics of Mount Tai Appearing in Poems)

  • 위잉;정태열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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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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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0-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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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태산(泰山)은 해발 1,532m로 중국에서 제일 높은 산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악독존(五嶽獨尊)'과 같은 높은 명성을 가지고 있다. 역대 문인 묵객들은 태산 경관을 원천으로 삼아 많은 작품을 만들었다. 전통문학은 민족의 특징과 풍모를 그대로 반영한 민족 문화로서 인문 과학의 중요한 부분이고 원림과 일맥상통한다. 이에 본 연구는 전통문학의 대표적인 시문(詩文)에 나타난 태산 경관요소에 대해서는 경관유형 및 요소 분석과 경관요소의 핵밀도(kernel density), 평균중심(mean center), 표준차타원(standard deviational ellipse) 분석을 통해 경관요소 및 분포의 특성을 시대별로 파악하였다. 연구 결과를 요약하면, 첫째, 태산의 경관유형은 인간활동이 가장 많이 나타났으며, 이는 지금까지의 풍경명승지와 관련된 선행연구의 자연경관과는 다르다. 둘째, 태산의 경관요소 가운데 '일출', '청색', '우뚝'과 '웅장', '신룡'의 중요성을 확인하였으며, 이는 태산의 희망과 광명, 활기참, 국가 안정과 번성, 우두머리의 지위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셋째, 시대별 경관요소는 선진과 수당시대에 신앙(봉선, 신선)이 많이 나타났고 근현대에는 행동(등반, 멀리 바라보기)이 많이 나타났다. 이는 신앙경관에서 경관 체험위주로 변했다고 할 수 있다. 넷째, 경관요소의 공간분포는 전시대에 걸쳐 태산 대정(岱頂)에 많이 분포되어 있고, 근현대로 올수록 평균중심이 태산 외부의 남쪽에서 태산정상 중심으로 이동하였으며, 넓은 분산 분포에서 태산을 중심으로 좁은 선형 분포로 변했다. 본 연구의 결과는 향후 태산의 경관 보전 및 복원에 중점을 두어야 할 요소나 공간을 제시하는데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