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sandae Nor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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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산대놀이> 문화재 지정 전후 연희자 연구 ( Research on performers of Songpa Sandae-nori before and after the designation as cutural heritage)

  • 이효녕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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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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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83-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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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고는 문화재 지정을 전후로 한 송파산대놀이 연희자들의 삶과 연행을 살펴보면서, 그 속에서 나타나는 송파산대놀이의 변화 및 전승양상을 고찰한 연구이다. 2장에서는 송파산대놀이의 유래설과 을축년 대홍수 이전 연희자들에 대한 기존의 논의를 검토하면서, 이를 통해 발견되는 연희자들의 인식과 특징에 대해 논의했다. 이어 을축년 이후 송파산대놀이를 주도 했던 돌마리 연희자들을 중심으로 문화재 지정 전까지의 전승양상을 살폈다. 그 결과 그동안 부족했던 돌마리 연희자들의 연행과 삶의 행적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게 됐으며, 특히 이범만, 여태산, 엄준근 등에 대한 실상은 기존 연구와 분명한 차이가 있었다. 3장에서는 허호영을 중심으로 문화재 지정과 그 이후의 전승양상을 고찰했다. 이제까지의 논의에서는 허호영이 문화재 지정에 큰 기여한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졌는지는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또한 허호영 자체에 대해서도 밀도 있게 논의되지 않아, 마치 수수께끼의 인물과 같은 인상을 갖고 있었다. 여러 문헌과 기록을 재검토하고 제자들, 현지인들의 증언을 종합한 결과, 허호영이 송파산대놀이는 물론, 다양한 전통예술의 현장에서 활발히 활동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외에도 허호영이 남긴 재담, 춤사위, 탈 등은 그의 연행을 새롭게 평가할만한 것이라고 판단된다. 아울러 위와 같은 사실들은 송파산대놀이를 떠나 현재 그 실체가 선명하지 못한 본산대놀이의 연행양상을 고구하는데 기여할 것으로 생각한다.

양주별산대놀이 무대복식 연구 (A Study on the Stage Costume of Yangju-Byeolsandae-Nori)

  • 박민재;조우현
    • 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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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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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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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The Korean folk drama is one of the traditional art performances of Korean folklore, and it is usually characterized by mask dances. An investigation on the costume of Korean folk drama is of great historical significance because they present the variety of typical costume according to the characters. The Sandae-Nori drama of Seoul Gyeong-gi province which was designated as im- portant culture property, has the closest form to general Korean folk costume. The usual characters have their typical costume and reflect the costume of the latter Choson Dynasty period. The costumes are used as a tool of the drama to indicate the character, and the impression of the dance. The costume of the Korean folk drama is made to indicate the character because it is for the play. What is more, the costume of the Sandae-Nori drama of Seoul Gyeong-gi province shows the general aspect of folk costume of the world, which remains as the symbol of the traditional culture and shows more decoration and visibility.

양주별산대놀이 상좌·옴중춤의 전승양상 고찰 (A review on the transmission aspect of Sangjwa chum and Omjung chum in Yangju Byeolsandae Nori)

  • 박인수;김지훈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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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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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8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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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고는 양주별산대놀이의 주요배역 중 하나인 상좌와 옴중의 '춤'을 중심으로 전승양상을 살펴본 연구이다. 먼저 1929년부터 1942년까지 조종순, 정한규, 박준섭, 김성태 연희자를 토대로 조사된 자료들을 살펴본 결과, 현재 거드름춤으로 유명한 두 배역 모두 타령장단의 깨끼춤만 연행하였다. 상좌의 경우 다섯 종류의 깨끼사위를 중심으로 연희자의 재량에 맞춰 자유롭게 연행되었다. 제2과장에서 연행된 옴중은 춤보다는 재담이 주가 되는 배역이었다. 일제강점기의 연행을 살펴본 결과 두 배역은 물론 다른 배역의 춤에도 큰 변화가 보이진 않았다. 이는 당시 일제의 억압으로 인해 제한된 환경 속에서 탈놀이의 명맥만을 유지해왔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해방이후부터는 김성대를 중심으로 탈놀이의 복원에 많은 힘을 쓰게 된다. 한국전쟁 중에도 연희자들은 탈놀이의 명맥을 이어가기 위해 연희자들을 길러내는 등의 노력을 해왔다. 종전 이후 살아남은 연희자는 박준섭, 박상환, 김성태, 이장순이었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탈놀이 복원을 꾸준히 이어갔다. 이시기부터 두 배역에 거드름춤의 연행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상좌는 그간 타령장단에 행하던 벽사의식무가 염불장단에 연행되었고, 의식무였던 깨끼춤은 매우 활발한 춤으로 변모된다. 옴중도 용트림이라 불리는 거드름춤의 연행이 추가되어, 춤의 비중이 매우 높아졌다. 이때까지 거드름춤의 연행을 사위로 구분하지 않고, 행위만을 서술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춤사위가 완벽하게 정립되진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 지정이후, 상좌춤의 연희자가 박상환에서 이병권으로 넘어가면서 이전의 연행을 중심으로 한층 더 정리된다. 당시 상좌가 연행한 거드름춤은 연잎이 연행하는 거드름춤의 구조와 같았으며, 본 구조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춤의 순서를 정립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옴중춤은 박준섭 이후의 연행부터 기존에 비해 장삼을 쓰는 전개가 조금 더 순차적으로 정리되었다. 정리된 옴중춤의 연행구조도 노장춤의 연행구조와 놀라울 정도로 흡사하였다. 두 배역 모두 연잎춤과 노장춤의 구조를 직접 분석하여 안무하였다기 보다는 연희자가 춤을 연행해오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그 구조가 차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처럼 두 배역 모두 오랜 기간 보존해오는 과정에서 연행되는 장단과 춤사위가 늘어났으며, 사위가 장단에 맞게 정리가 이루어져 춤이 더욱 깔끔해졌다. 여러 연희자들의 노력 덕분에 상좌춤은 '상당한 경지에 오른 연희자만이 출 수 있는 춤'으로 옴중춤은 '양주별산대놀이를 대표하는 춤'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