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portrait of human be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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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도하가>의 현대적 변용 양상 (Modern transformation phrase of )

  • 하경숙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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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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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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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공무도하가>는 다른 고대가요와 마찬가지로 오랜 시간 동안 구비전승(口碑傳承)되면서 유동과 적층을 걸쳐서 이루어진 작품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시가작품이라는 점에서 문학사적인 가치를 부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우리 시가문학의 전통성을 확립하는 데 그 의미가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공무도하가>는 그 문학적 소재가 보편적 정서를 지니고 있어서 많은 공감을 얻어서 현재에도 다양한 장르로 변형, 재창조되고 있다. 고대가요 <공무도하가>는 현대시로 재창조되면서 현실의 혼란한 시대상황을 구체적으로 형상화시켜 보여주면서 기존의 신화적인 해석의 요소를 배제하고 인물의 인간적인 모습과 현재의 상황을 대변해 준다. 또한 현대소설로 재창조 된 <공무도하가>는 원전의 기본모티프에 충실하기 보다는 서사구조를 확대하고 다양한 인물들의 군상을 보여주면서 복잡다양한 인간사를 토로하면서 그것에 대한 대처방안을 제시한다. 현대 대중가요 <공무도하가>에서는 원전의 정서를 강하게 전달하면서, 새로운 분위기를 접목시켜 세대를 아우르는 감동을 주고 있다. 개별의 작품이 가진 특질을 통해서 현대작가들이 바라보고 있는 <공무도하가>에 대한 안목을 살피고 시대적 상황과 결부시켜 그 의미를 점검하고 원전의 가치를 인식하고자 하였다. <공무도하가>를 현대적으로 변용한 작품들을 통해 인간이 지니는 보편적인 정서는 시 공을 초월하여 대중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주지하게 했고, 우리 민족정서를 재확인하는 참신한 발견이면서 가능성의 계기가 되었다. 다양한 장르간의 변용을 통하여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현실의 상황을 제시하면서, 작가가 지향하는 시대정신을 담고 있는 고대가요 <공무도하가>는 그 유연성으로 인하여 세대를 초월해서 앞으로도 생명력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도시적 인간상 연구 - 본인 작품을 중심으로- (Human Being in the Contemporary Society)

  • 박성원
    • 한국콘텐츠학회:학술대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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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콘텐츠학회 2004년도 춘계 종합학술대회 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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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53-5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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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20세기 이후 우리의 경우는 숨가쁘게 유입되는 세계문화와 기존 우리 문화와의 소화 불량적 만남으로 혼돈의 문화를 이룩하였으며, 반도체 수출이나 IT산업에 있어서, 최강의 기술력 보유국(保有國)이라는 자리를 점유하면서도 공허한 심정을 떨칠 수 없게 되었다. 그러한 한국의 현대사와 동시대적 상황 가운데 작금의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들은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측면에서 혼돈과 현기증을 복합적으로 체감하게 된다. 대중화(大衆化), 소비화(消費化)된 사회는 경제력 향상을 초래(招來)하였으나 그 출발은 익명(匿名)의 대중출현에 의해 가능했으며, 군중(群衆) 속에서의 고독, 소외(疏外), 익명성(匿名性), 몰개성성(沒個性性), 문화의 상품화(商品化) 등의 삶을 동반하고 있다. 본인의 작품에는 이와 같은 사회 현상(現想)들이 도시적 인간상을 통해 드러난다. 소비문화에 노출된 채 그것이 내뿜는 시각 이미지와 유혹에 포위되어 살아가는 인간은 끊임없는 소유욕(所有慾)에 둘러싸여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모든 것을 공간 안에 가둔다. 이들은 몰개성화된 모습으로, 때로는 동물인지 사람인지 알아볼 수 없는 형상으로 도시의 공간에 존재한다. 이는 산업화된 도시의 파괴되어가는 자연 환경을 고발하기 위한 하나의 상징체(象徵體)로서 인간의 소유욕(所有慾)안에 속해있는 제 3의 존재이며 도심속에 갇혀 사는 우리들의 초상화(肖像畵)인 것이다. 본인은 위와 같은 형상을 통하여 현대 도시문명의 현실 속을 살아가는 인간의 객관적 삶과, 익명성(匿名性)에 묻혀 표현되지 못한 욕구와 감정의 대립을 분석해 봄으로써 우리들이 가져야 할 자생성(自生性)과 정체성(停滯性)을 제시하고자 한다.eferences.촉진, 중요 연구 주제의 도출 및 연구 진행 계획을 수립하고, 국제적 산학 협력 강화를 통해 공동 연구를 도출하는 자리를 마련함. $\textbullet$본 학술회의에서 발표된 논문들을 취합하여, 논문집 및 CD-ROM을 제작하여 세계적 수준의 연구 결과를 알리고 이 분야에 관련된 학문, 기술 발전에 큰 도움이 됨.emove effectively radioactivity with in Adsorbent. As cleaning heavy water adsorbent and drying on each condition (temperature for drying and hours for cleaning). Because there is something to return heavy water adsorbent by removing impurities within adsorbent when it is dried o high temperature. After operating, we have been applying this research to the way to dispose heavy water adsorbent. Through this we could reduce solid waste products and the expense of permanent disposal of radioactive waste products and also we could contribute nuclear power plant run safely. According to the result we could keep the best cond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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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영상기구, 카메라 옵스쿠라의 문화사적 의미 (The Cultural Meanings of the first optical insturment, Camera obscura, in the pre-modern Age)

  • 이상면
    • 영상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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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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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1-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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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본 논문은 그동안 국내에서 연구가 미흡했던 최초의 영상기구 카메라 옵스쿠라(Camera obscura)를 영상이론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근대문화에서 그것의 의미를 파악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르네상스 이후 카메라 옵스쿠라의 역사·문화·과학적 발전과정을 추적하고, 화가들의 미술작업과 연관되며 사용된 사례를 검토한다. 카메라 옵스쿠라의 원리는 중세이후 천문학자들의 개기일식 관찰과정에서 알려지기 시작했으며, 르네상스 이후 다 빈치와 델라 포르타의 영상 실험, 아타나지우스 키르허, 요하네스 차안 등과 같은 과학자들에 의해 이론적으로 발전되었다. 17세기 후반에는 '휴대용 카메라 옵스쿠라'가 제시되고 실용화되기 시작했으며, 화가들이 스케치와 드로잉할 때 사용하기 시작했다. 카메라 옵스쿠라는 인간 스스로 세계상(世界像)을 관찰하려는 점에서 탈중세적이고 시각중심주의적인 근대 과학정신을 반영하는 매체이며, 자연세계의 모습을 인공적 이미지로 보여주는 점에서 최초의 영상기구이다. 국내에 카메라 옵스쿠라는 조선 후기 정조(正祖) 때 북경(北京)을 갔다온 연행사(燕行使)들에 의해 유입되었으며, 정약용을 비롯한 서구 학문에 개방적인 실학자들에 의해 적극 수용되었고, 당시 초상화의 대가 이명기는 카메라 옵스쿠라를 이용해서 공신상(功臣像)을 그리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