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lacquer w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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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다호리 출토 칠기와 초본류의 보존처리 (Conservation of Wooden Lacquerware Excavated at Daho-ri, Changwon)

  • 김수철;윤보경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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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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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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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목제, 칠기, 초본류 등 출토 유기물은 매장환경에서 수분을 함유한 수침상태로 발굴된다. 이러한 유물은 수침상태 그대로 보관하지 않는 경우 수분이 장기간 서서히 증발되어 건조상태가 된다. 수침칠기 목질부는 부후되어 외형의 칠만 남았고, 초본류는 토양에 고착된 상태가 대부분이다. 본 처리에서는 철기시대 유물인 창원 다호리 출토 칠기와 초본류를 밀납, 레이온지를 사용하여 배접기법을 응용한 보존처리하였다. 그 결과 토양이 고착된 유기물에서 토양을 제거하고 칠과 초본류만을 보존처리하는 것이 가능하였다.

『구입유물공개전(購入遺物公開展)』 전시유물(展示遺物) 보존처리(保存處理) - 금속유물(金屬遺物)을 중심(中心)으로 - (Conservation Treatment of the Collections Acquired Recently - focused on the collections of metal -)

  • 권혁남;이용희;김종오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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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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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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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국내외에서 구입한 유물들을 전시하기 위하여 보존처리를 실시하였다. 처리유물은 금속제 유물을 비롯하여 목제, 회화, 목·칠기 등 다양한데, 이중 금속유물 42점의 보존처리 내용을 재질별로 소개하였다. 유물의 현재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현미경 조사 및 X-선 촬영을 실시하였으며 재질에 따라 이물질 제거 방법, 안정화 처리 방법 등의 처리 방향을 설정하였다. 또한 역사적 자료를 보존하고 일반인들에게 전시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하였다.

한국전통수공업의 육성과 방향 (In Search of Developmental Strategies for Korean Traditional Handicraft Industry: Forcused on the Woodenware Handicraft)

  • 한홍렬
    • 한국경제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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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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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7-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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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3
  • 본 연구는 목기 수공업을 통해서 전통 수공업의 현황과 육성정책 및 방향을 모색하였다. 인류는 석기문화를 형성하였고 아울러 목기문화도 병용하였다. 목기문화는 보존이 불가능하여 곧 칠기 출현의 계기가 되었다. 옻칠은 방부, 방수의 역할을 함으로써 해서 오랫동안 보존이 가능하게 되었다. 목기는 삼국시대, 고려, 이조시대를 통하여 상용으로 널리 쓰였으나, 1900년대 이후 스테인 그릇, 플라스틱 그릇 등 저가의 상품이 등장하면서 쇠퇴의 길을 걸었으나 전통산업으로서 목기수공업을 고부가가치의 산업으로 육성할 수 있는 정책과 방향이 모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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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폐장내(密閉欌內) 실리카겔의 습도조절(濕度調節) 효과(效果) 연구(硏究) (A Study on Buffering Effect of Silicagel to Control Relative Humidity in Air-tight Case)

  • 김명남;유혜선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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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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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7-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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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본 실험은 국립박물관을 비롯한 현재 국내외 박물관 및 미술관에서 주로 사용하고 있는 습도조절제(ART-SORB)의 효능을 측정하여 미소환경 조절시 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초자료를 축적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실험은 외기의 영향을 배제시키고 습도조절제만의 효과를 측정하고자 밀폐조건하에서 수행하였다. 보관장 크기를 고려한 일정량의 ART-SORB 및 카세트(cassette) 형태의 ART-SORB를 투여하여 습도조절능력을 측정하였다. 실험결과 체적당 정량을 사용한 실험에선 10~17시간 후 목표습도에 도달하였고, 카세트 단위의 과량의 ART-SORB 사용시에는 5~6시간 내에 목표습도에 도달하였으며, 50~70% RH 범위내에서 습도조절이 가능함을 확인 할 수 있었다. 또한 ART-SORB는 저습조건에서 습도를 상승시키는데 탁월한 효과가 있었으며, 고습조건에서는 습도조절 능력이 미약했다. 그러므로 ART-SORB는 높은 습도조건이 요구되는 유물(목기, 칠기류, 서화류 등)의 미소환경관리에 보다 효과적인 완충재임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본 실험은 밀폐성이 우수한 보관장에서의 실험이므로 실제 진열장에 그대로 적용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따라서 밀폐성이 보장되는 진열장이 우선 마련되어야 습도조절제의 효과가 크게 발휘될 수 있다.

고려시대 칠기에 나타난 묘금기법 연구 (A Study on Investigation of Gold Painting Technique in the Lacquerwares of Goryeo)

  • 박정혜;이용희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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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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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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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고려시대의 칠기는 10세기 초에서 14세기에 이르는 동안 다양하게 변화하였으며 화려한 전성기를 이루고 독창성이 돋보이는 나전칠기로 발전하게 되었다. 고려나전칠기는 나전과 대모, 금속선등을 이용한 세밀한 문양과 여기에 화려함을 더하는 묘금기법이 특징이다. 금분을 이용해 선묘를 하여 칠기를 장식하는 묘금기법은 회화적 장식적 측면에서 대단히 화려하지만 묘금에 의한 문양표현을 찾아볼 수 있는 유물은 극히 드물고 묘금기법에 대해 참고할 수 있는 문헌자료도 많지 않다. 본 연구에서는 고려시대 칠기의 묘금을 대상으로 미시경적 관찰을 하여 금분의 특징과 교착제, 교착상태 등에 관해 밝히고 고대기술의 복원연구 자료를 제공하고자 하였다. 연구결과 금분의 입자는 불규칙한 방형과 다각형, 삼각형 모양으로 크기가 2 ㎛에서 20 ㎛까지 다양하게 보이며 금분의 입자는 끝이 말려들어가 중첩되어진 부분이 보이고 전체적으로 금분입자는 종이가 구겨진 듯한 형상과 비슷하게 관찰되었다. 이번 연구를 통해서 고려시대 묘금에서 사용된 금분은 금박을 분말상태로 분쇄하여 만든 금분을 묘금에 사용하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경주지역 목관·목곽묘의 전개와 사로국 (Development of Wooden Coffin(木棺) and Chamber(木槨) Tombs in Gyeongju(慶州) and Sarokuk(斯盧國))

  • 이주헌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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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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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6-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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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고는 경주지역에서 발굴된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3세기대까지의 목관묘와 목곽묘에 대한 구조분석과 그 변화양상을 추적하여 사로국의 정치, 사회적인 동향과 성장과정을 살펴본 것이다. 한반도 서남부지역의 적석목관묘(積石木棺墓)가 기원전 2세기 후반 무렵 영남지방으로 파급되면서 경주지역에서도 철기가 부장된 군집묘(群集墓)가 조성되기 시작하며 이후 기원전 1세기 후반에는 한군현(漢郡縣)의 설치에 따라 대동강유역의 유이민이 진한(辰韓)으로 남하, 정착하면서 전한경(前漢鏡)과 와질토기(瓦質土器)가 부장된 중소형의 단순목관묘(單純木棺墓)가 경주지역에 등장하게 된다. 청동유물을 다량 부장한 독립묘(獨立墓)의 주인공은 군집묘보다는 상대적으로 높은 최상위 계층의 것으로 사제왕(司祭王)일 가능성이 높으며 경주의 각 곡간지역을 범위로 하는 지역집단의 수장묘(首長墓)로 추정된다. 기원후 2세기에 접어들면서 단순목관묘는 규모가 확대되고 부장유물의 종류와 양이 풍부해지는 경향을 보이는데 이를 잘 보여주는 것이 사라리 130호묘이다. 이것은 피장자의 주관 옆에 부장품을 넣은 목갑(木匣)을 설치하여 칠기(漆器)나 동경(銅鏡) 등의 위신재(威信財)를 부장한 것으로, 이와같은 구조는 평양을 중심으로 한 낙랑지역의 목곽묘에서 보이고 있다. 기존의 목관묘와 구조상에서 차이가 보이는 이러한 목관계목곽묘(木棺系木槨墓)의 출현은 변 진한의 철(鐵)을 매개로 한 낙랑과 이 지역과의 활발한 교섭관계를 대변해 주는 것이며 지리적으로 물류의 집산지 역할을 한 사라리 집단은 외부와의 유통과 교역을 장악하여 경주지역의 정치와 사회문화적인 거점으로서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2세기 후반대 이후 정치체의 규모가 크게 성장한 경주지역의 분묘시설에는 부장유물의 안정적인 공간을 위한 곽(槨)이라는 개념이 정착하게 되었고, 소형묘와 입지상에 있어 차별성을 가진 대형의 장방형목곽묘가 3세기 전엽에 보편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는 지배집단 내 계층분화의 양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해석되며 대형묘가 소재하는 지역이 소국의 중심지로써 자리를 잡게 되었다. 이후 이 지역 목곽묘의 평면구조가 점차 길어지는 경향은 묘곽 내에 보다 넓은 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결국, 3세기 후반대 부곽이라는 시설을 갖춘 경주식목곽묘(慶州式木槨墓: 동혈주부곽식목곽묘)의 등장을 가져온다. 소형의 부곽은 점차 길이가 길어져 4세기대에는 주곽의 크기에 이르는데, 이는 집단 내 계급의 분화가 급속도로 진전되면서 권력의 집중화가 표면화된 것으로 경주와 주변지역 대소집단간의 통합이 진전되는 분위기 속에서 집단 내의 질서를 일원화해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해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