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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향문화(香文化)와 향로(香爐) (Goryeo Dynasty Incense Culture and Incense Burners)

  • 박지영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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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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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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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향을 피우는 행위는 불교 의례나 관습에서 유래되었으나 점차 일상의 습속(習俗)이 되어 향문화를 형성하였다. 고려는 종교나 국가적인 의례 외에도 일상 속에서 향을 폭넓게 향유하였는데, 특히 고려의 문인들은 연거분향을 통해 삶의 고아한 정취를 즐겼다. 이러한 분위기는 동아시아 향문화의 일환으로 분향방식 역시 동시기 중국과 같은 방식을 공유하였는데, 이는 고려 문인들의 문집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분향방식은 향로의 크기나 형태 등에 영향을 주었는데, 일상화된 분향 문화에 적합한 간소화된 소형의 향로들이 널리 사용되었다. 대표적인 소형 향로로 배(杯) 형태의 향완이 대표적이다. 향완은 종교적 용도의 금속제 거향로로 인식되어 왔지만, 송대에는 소형 향완이 도자로 활발히 제작되면서 일상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다. 송과 같은 향문화, 분향방식을 공유했던 고려에서도 도자 향완에 대한 수요가 점차 증가하였다. 이는 개경에서 발견된 다수의 송대 백자향완, 그와 유사한 형태로 제작된 고려의 청자향완들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2~13세기에 제작된 청자 향완은 고려 내부의 적극적인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제작된 것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시기에는 중국 백자향완과 유사한 형태의 청자향완 외에도 금속기를 모방하거나 고려청자의 기법과 문양을 적극적으로 반영한 고려만의 청자향완들이 제작되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고려시대 향로는 기본적으로 각종 의례·의식의 필수품이었지만, 개인 향문화의 확산으로 아취를 위한 기호품으로도 사용되었다. 금속제 향로나 고급 청자 향로들이 주로 국가나 종교의 의례·의식에 사용되었다면, 비교적 생산이 용이한 간소화된 도자 향로는 개인적인 수요에 부응하며 향문화의 확산에 기여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청주 사뇌사 유물 퇴장(退藏) 시기에 대한 검토 (A Review of the Time Cheongju Sanesa Buddhist Temple Relics Were Hoarded)

  • 윤용혁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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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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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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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30년 전인 1993년에 발견된 청주 사뇌사 유물은 유물의 양이 방대하고, 고려 청동 기물의 우수성을 보여주는 것인데, 특히 제작 시기에 대한 여러 정보를 담고 있는 자료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물의 퇴장 시기에 대해서는 13세기 중반, 13세기 말, 14세기 초 등 여러 견해가 엇갈린 상태에서 견해가 정리되어 있지 않다. 본고는 논란이 많은 청주 사뇌사 유물의 퇴장 시기를 원(元) 카단(哈丹)의 고려 침입이 진행중이었던 1291년 4월의 일로 추정하였다. 카단 군은 고려에 침입하여 1291년 1월에 양평과 원주, 4월 충주를 거쳤으며, 5월 1일 연기현에 출현하였다. 본고에서는 충주에서 연기현(세종시)에 이르는 중도에 이들이 청주를 거치게 되었다는 점을 기록을 통하여 확인하였고, 이것이 바로 사뇌사의 폐사 또는 유물의 퇴장 배경이 된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사뇌사 유물의 퇴장 시점을 카단 침입이 진행중이던 1291년으로 설정하게 되면,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무오년, 경신년, 기유년 등 간지(干支)가 적힌 유물의 연대를 합리적으로 정리할 수 있게 된다. 즉 기유년 금고(金鼓) 1249년, 무오년 향로 1258년, 경신년 향완 1260년 등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