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historical sen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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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송강호의 사실적인 캐릭터와 연기 ; 영화 <택시운전사>(2017)를 중심으로 (Actor Gang Ho Song's Realistic Character and Acting ; Based on the film (2017))

  • 이아영
    • 한국엔터테인먼트산업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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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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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7-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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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1990년대 후반 한국영화의 새로운 흐름 속에 등장한 배우 송강호는 소박한 소시민에서부터 역사 속 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영역을 넘나들며 특유의 개성(말투와 외모)을 캐릭터의 개인적인 뉘앙스로 활용해 매작품마다 자신의 유형으로 캐릭터의 성격을 확장시켜나갔다. 특히 영화 <택시운전사>처럼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영화들에서 우리의 역사성과 민족성을 체현하는 송강호의 캐릭터는 진지하지만 무겁지 않은 연기, 짜여지지 않은 듯 일상적인 송강호의 연기 스타일과 조화를 이루어 친근함이라는 인간적인 감수성을 실현하며 '송강호 캐릭터'라는 장르로 인식하게 할 뿐만 아니라 배우로서의 영역을 더욱 견고히 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 연구는 그의 사실적인 표현성과 창조적 능력을 배리 킹Barry King이 말한 작가성authorship의 개념으로 주목하고, 영화 <택시운전사>를 통해 그의 캐릭터와 연기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먼저, 실제 사건과 실존 인물을 재현하는 송강호 캐릭터의 역사성과 민족성은 어떠한 특징을 갖고 있는지 분석하고, 캐릭터에 생동감을 부여하는 송강호 연기의 일상성과 즉흥성을 분석한다. 이를 통해 자신의 신체적 특성을 캐릭터의 성격으로 재지시하며 캐릭터의 사실성을 높이는 송강호의 연기를 자기지시적인 연기 스타일로 보고, 송강호의 자기지시성은 캐릭터의 성격과 어떠한 조화를 이루며 사실적으로 표현되는지, 송강호의 캐릭터와 연기는 어떠한 연속성을 갖고 있는지 분석해 본다.

베트남에서 한국인의 이문화 갈등 요인과 유형, 그리고 해결방안 (Factor, Type and Resolution of Cross-Cultural Conflict faced by Korean in Vietnam)

  • 송정남
    • 국제지역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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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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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1-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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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본 연구의 내용은 베트남에서 거주하고 있는 한국인과 동시에 이들과 접촉하고 있는 베트남인이 겪고 있는 이문화적 갈등 원인들을 가장 보편적이라 할 수 있는 의사소통방식, 생활방식, 경영방식을 중심으로 유형별 사례를 통하여 살펴보고, 극복방안을 제시하였다. 전통시대에 양국은 중국의 문화권에 속했음으로 인하여 역사, 문화, 사회면에서 비슷한 점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동일문화에서 다름으로 비롯된 일반적 갈등 외에도 국외 이문화, 특히 상이한 자연환경과 체제 등과 같은 요인 때문에 베트남에서 양국인이 의사소통, 생활방식, 기업 등에서 겪는 갈등은 적지 않다. 이문화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베트남 거주 한국인들과 이들과 접촉하고 있는 베트남인들의 부단 없는 노력 외에도 양국 관민의 관심과 지원, 그리고 협력도 필요하다. 중국의 반한감정에서 볼 수 있었듯이 인터넷의 발전을 타고 조그만 아니면 근거 없는 것들이 부풀려지고 조작되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까지 갔었던 예를 한국인과 베트남인의 관계에 반면교사로도 삼아야 한다. 더욱이 한국은 과거에 경제를 목적으로 35만에 가까운 군인을 파월시킨 부끄러운 역사가 있다. 우리 선배들이 조국의 빵 해결을 위해 이 땅에서 부끄러운 역사를 만든 주연이었다면, 이제 우리 세대는 결자해지(結者解之)의 차원에서 접근했으면 한다. 공산주의 이론만으로 빵을 만들어 낼 수 없다는 뼈저린 시행착오를 거쳐 1987년에 문을 열어젖힌 베트남에 지나치게 경제논리로만 접근하지 말았으면 한다.

치유환경 조성을 위한 어번 커뮤니티 탐구 (Exploration on the Range of an Urban Community to Form Healing Environment)

  • 박훈;이해경
    • 예술인문사회 융합 멀티미디어 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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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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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7-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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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지난 반세기 동안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를 통해 도시 및 교통수단의 발전은 도시거주민들의 활동영역을 지속적으로 넓히는 계기가 되었고, 한편으로는 근대적 도시계획의 구체화 이후 사회 전반적으로 도시구성원간의 관계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이루어져 왔다. 탈근대적 개념 속에서 적절한 규모의 커뮤니티를 바탕으로 하는 공간을 설정하고자 하는 노력이 지속되었으며, 특히 1800년대 중반 이상적 도시구성을 통한 공동체 사회 구현의 노력과 함께 이후 등장한 뉴어바니즘, 어번빌리지 등의 개념은 건강한 커뮤니티를 회복하고자 하는 현시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부여한다. 따라서 본 연구는 건강한 도시구성의 근간은 도시 공동체를 바탕으로 한다는 전제 아래 치유 환경적 의미에서의 커뮤니티 개념 및 그 범위 설정 방안을 모색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연구를 통해 도출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커뮤니티는 도시의 역사적 발전과정에서 지속적인 고려의 대상으로서 이를 구현하기 위한 다양한 전략적 접근 및 범위 설정이 이루어져 왔다. 둘째, 건강한 공동체의 활동은 다양한 유형의 환경 속에서 이루어졌으며, 대표적으로 교회와 상업시설, 도시 광장 및 공원, 다양한 스케일의 가로 등의 형태 특성으로 반영되어 왔다. 셋째, 건강하고 지속가능한 도시의 설계과정에서는 적절한 규모의 커뮤니티 설정과 함께 위치의 결정이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이는 기능적 접근 이외에 다양한 고려가 필요하다. 넷째, 현대 도시 공동체의 구성 및 설계는 치유 환경의 개념 속에서 그 실제적 방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유대교 미쉬나 나쉼(Nashim)의 기독교교육을 위한 적용 방안 (The Study on the Application for Christian Education by Nashim, Jewish Mishna)

  • 옥장흠
    • 기독교교육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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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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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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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연구 목적 : 본 연구의 목적은 유대교 미쉬나 나쉼(Nashim)의 기원과 텍스트를 분석하고, 교육신학적인 측면에서 고찰하여, 기독교교육에 적용할 방안을 제시하고, 특히 여성의 결혼생활과 관련된 인권 문제를 분석하는 데에 있다. 연구내용 및 방법 : 연구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연구내용을 첫째, 미쉬나 나쉼의 기원과 텍스트를 분석하기 위하여 미쉬나 나쉼이 편집되기까지의 역사적 과정을 살펴보고, 미쉬나 나쉼의 텍스트의 내용을 분석하기 위해 연구자의 관점에서 7개 마섹콧을 먼저 결혼관계법, 이혼관계법, 약혼관련법, 간음관련법, 서원과 서약 관련법으로 나누어 텍스트를 정리하고, 그 내용을 살펴보았다. 둘째, 미쉬나 나쉼(Nashim)을 교육신학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먼저, 결혼관계법으로 시형제 결혼제도와 혼인의 순결제도, 이혼 관계법, 약혼 관계법, 간음 관련법, 서원과 서약 관련법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셋째, 미쉬나 나쉼을 기독교교육에 적용하기 위한 방안은 결혼생활교육, 이혼예방교육, 서원과 서약을 위한 교육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결론 및 제언 : 본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그리스도인 가정을 이루기 위한 결혼 교육이 필요하다. 둘째, 그리스도교의 측면에서 이혼 예방교육이 필요하다. 셋째, 영적으로 건전한 서원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 참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건전한 서약교육이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한국 사회는 아직 가부장적 권위 의식이 뿌리 깊게 깔려 있으며, 양성평등 의식도 여전히 뒤처진 실정이다. 이것은 교회 내에서 여성 차별과 비하, 이혼과 재혼에 대한 금기, 성 역할에 대한 고정관념 등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으며, 그리스도교가 해결 대안을 제시해야 된다.

서구 종교학의 역사에 대한 지성사적 재조명: 키펜베르크의 논의를 중심으로 (The History of the History of Religions and Intellectual History : Concerning with the Work of Hans G. Kippenberg)

  • 조현범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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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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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3-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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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According to Hans Kippenberg, the foundation of an academic study of religions coincided with the beginnings of modernization. Since the second half of the nineteenth century most European countries were involved in a process of rapid social change. The repercussions that this had for daily life were momentous. Instead of working for their traditional needs, people now had to produce goods for a market. Old customs ceded to private contracts and political laws. The superior knowledge of science replaced the inherited worldview. This deep changed severed societies from their ties to the past. Many educated people in Europe believed in an imminent end of all religions. Had not the scientific progress superseded the religious worldview? Historians had to come to terms with that expectation when they directed their attention to historical religions. Friedrich Max Muller introduced a new science, so-called Religionswissenschaft through the study of the ancient Vedic sources. He thought that genuine religion was a taste for, and sense of, the infinite. From his point of view, the Indian sources confirm that nature is more than mechanical laws. Thus his interpretation sought to contradict the materialist ideology of his day. Edward Burnett Tylor described religions as a kind of natural philosophy. His notion of 'soul' functioned to explain natural events. This legacy of the past cannot be missed even in modern society. Only the concept of the soul may preserve human dignity in an age of materialism. Gerardus van der Leeuw, also tried to perform the same function of the cultural critique for the renewal of the religious imagination in modern, rationalized Europe imprisoned in the iron-cage. In this respect, we could think that the interpretations of the history of the History of Religions in the light of the intellectual history are very suggestive for the korean student of religion. It helps them to describe the early history of the study of religion in Korea. For example, Yi Neung Wha(李能和) is regarded as 'a father of korean religious studies, but no one could present a proper answer for the question of why and through which connection of his intellectual milieu he was interested in the religious history and the study of religion. We would discover its signification in his confrontation of the prevailing social thought, such as social evolutio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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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버린스 걷기'에 대한 고찰과 그 활용 방안 (Walking the Labyrinth in the Korean Church)

  • 류삼준
    • 기독교교육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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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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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7-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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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연구 목적 : 본 연구는 이론과 실제를 다룬 다양한 문헌들을 바탕으로 아직 한국교회에 널리 소개되지 않은 기독교 영성훈련의 하나인 '래버린스 걷기'를 고찰하고 그 활용 방안을 제안하는 연구이다. 연구 내용 및 방법 : 이에 본 연구는 먼저 래버린스 걷기가 무엇인지를 역사적으로 고찰하여 래버린스 걷기가 바닥에 설치된 주로 하나의 경로를 가진 래버린스 위를 걸으면서 기도나 묵상을 하는 중세에 있었던 영성수련이었고 현재의 래버린스 걷기는 수백 년간 명맥이 끊겼던 전통을 20세기 중후반에 다시 재해석해서 실천해 온 것임을 밝힌다. 이어서 예수님의 고난과 구원, 세례, 순례, 정화 등을 상징하는 래버린스를 걷는 활동은 준비하기, 기도나 묵상을 하면서 걷기, 중심에 머물기, 돌아 나오기, 기록하고 나누기의 다섯 단계의 과정으로 구성됨을 설명한다. 이처럼 순례, 걷기, 기도, 묵상 등이 어우러진 래버린스 걷기는 일상으로부터의 벗어남, 하나님과의 만남 및 동행, 평안과 치유의 경험, 자아와 삶의 성찰, 삶의 변화를 위한 결단, 공동체의식의 함양 등의 의미와 역할을 지니고 있어 한국교회에서도 성도들의 신앙과 영성의 성숙을 도울 수 있기에 그 활용의 가치가 높다고 볼 수 있다. 결론 및 제언 : 이에 본 연구는 한국교회가 다양한 방법으로 기도를 실천하는 의미에서 예식 및 교회 활동의 일부로, 또 순례를 구현하는 차원에서 정적이며 비언어적 활동인 래버린스 걷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 이때 한국교회는 래버린스 걷기의 적절한 목적을 선정하고 래버린스를 제작하고 설치할 때 다양한 유의사항을 고려하며 몇 가지 중요한 규칙을 준수할 필요가 있다.

일제강점기 '전위미술론'의 전통관 연구 - '문장(文章)' 그룹을 중심으로 (A Study on Avant-Garde Fine Art during the period of Japanese Colonial Rule of Korea, centering on 'Munjang' (a literary magazine))

  • 박계리
    • 미술이론과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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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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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7-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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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From the late 1920s to the 1930s, Korea's fine art community focused on traditional viewpoints as their main topic. The traditional viewpoints were discussed mainly by Korean students studying in Japan, especially oil painters. Such discussions on tradition can be divided into two separate halves, namely the pre- and post-Sino-Japanese War (1937) periods. Before the war, the modernists among Korea's fine art community tried to gain a fuller understanding of contemporary Western modern art, namely, expressionism, futurism, surrealism, and so forth, on the basis of Orientalism, and borrow from these schools' in order to create their own works. Furthermore, proponents of Joseon's avant-garde fine arts and artists of the pro-fine art school triggered debate on the traditional viewpoints. After the Sino-Japanese War, these artists continued to embrace Western modern art on the basis of Orientalism. However, since Western modern fine art was regressing into Oriental fine art during this period, Korean artists did not need to research Western modern fine art, but sought to study Joseon's classics and create Joseon's own avant- garde fine art in a movement led by the Munjang group. This research reviews the traditional view espoused by the Munjang group, which represented the avant-garde fine art movement of the post-war period. Advocating Joseon's own current of avant-garde fine art through the Munjang literary magazine, Gil Jin - seop, Kim Yong-jun and others accepted the Japanese fine art community's methodology for the restoration of classicism, but refused Orientalism as an ideology, and attempted to renew their perception of Joseon tradition. The advocation of the restoration of classicism by Gil Jin-seop and Kim Yong-jun appears to be similar to that of the Yasuda Yojuro-style restoration of classicism. However, Gil Jin-seop and Kim Yong-jun did not seek their sources of classicism from the Three-Kingdoms and Unified Silla periods, which Japan had promoted as a symbol of unity among the Joseon people; instead they sought classicism from the Joseon fine art which the Japanese had criticized as a hotbed of decadence. It was the Joseon period that the Munjang group chose as classicism when Japan was upholding Fascism as a contemporary extremism, and when Hangeul (Korean writing system) was banned from schools. The group highly evaluated literature written in the style of women, especially women's writings on the royal court, as represented by Hanjungnok (A Story of Sorrowful Days). In the area of fine art, the group renewed the evaluation of not only literary paintings, but also of the authentic landscape paintings refused by, and the values of the Chusa school criticized as decadent by, the colonial bureaucratic artists, there by making great progress in promoting the traditional viewpoint. Kim Yong-jun embraced a painting philosophy based on the painting techniques of Sasaeng (sketching), because he paid keen attention to the tradition of literary paintings, authentic landscape paintings and genre paintings. The literary painting theory of the 20th century, which was highly developed, could naturally shed both the colonial historical viewpoint which regarded Joseon fine art as heteronomical, and the traditional viewpoint which regarded Joseon fine art as decadent. As such, the Munjang group was able to embrace the Joseon period as the source of classicism amid the prevalent colonial historical viewpoint, presumably as it had accumulated first-hand experience in appreciating curios of paintings and calligraphic works, instead of taking a logical approach. Kim Yong-jun, in his fine art theory, defined artistic forms as the expression of mind, and noted that such an artistic mind could be attained by the appreciation of nature and life. This is because, for the Munjang group, the experience of appreciating nature and life begins with the appreciation of curios of paintings and calligraphic works. Furthermore, for the members of the Munjang group, who were purists who valued artistic style, the concept of individuality presumably was an engine that protected them from falling into the then totalitarian world view represented by the Nishita philosophy. Such a 20th century literary painting theory espoused by the Munjang group concurred with the contemporary traditional viewpoint spearheaded by Oh Se-chang in the 1910s. This theory had a great influence on South and North Korea's fine art theories and circles through the Fine Art College of Seoul National University and Pyongyang Fine Art School in the wake of Korea's liberation. In this sense, the significance of the theory should be re-evalu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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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軍) 정보수사기관의 대통령 경호활동 고찰: 1950년 한국전쟁 이후부터 현재까지 (A Study on Presidential Security Activities of Military Intelligence Investigation Agency - Since the Korean War, from 1950 to the present -)

  • 최종영;정주호
    • 시큐리티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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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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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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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군(軍) 정보수사기관은 군내 정보업무와 내란 반란죄 등 특정범죄수사를 맡고 있는 국군 기무사령부가 유일하다. 기무사의 대통령 경호활동은 경호처 경찰과 함께 대통령 경호의 3대 축을 형성할 만큼 그 역할이 중요함에도 그동안 군(軍)의 특성상 일반에 알려진 내용은 매우 미미한 실정이다. 이에, 핵심인물 일대기 언론보도 공개자료 등을 토대로 기무사의 모체인 특무부대에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기무사의 경호와 관련된 부분을 살펴보았으며, 기존 연구에서 다루지 않았던 새로운 내용들을 발굴할 수 있었다. 첫째, 한국전쟁이 발발한 1950년대 남한 도처에 북한 무장병력과 좌익세력들이 위협하는 상황 하에서 특무부대는 공식적인 경호책임기관인 경찰보다 더 측근에서 1선 경호를 담당했다. 둘째, 1963년 경호실 출범 후에도 방첩부대, 보안부대, 보안사령부는 과거 특무부대 당시 이승만 대통령과 국가주요직위자들에 대한 경호책임활동의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그 역할이 확대되어 왔다. 셋째, 1990년 기무사로 개칭이후 더욱 경호임무가 추가되고 법적 근거가 강화되었으며, 뛰어난 전문성을 바탕으로 G20 등 국가급 행사에서 중추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국방개혁 조치로 기무사의 기능이 축소 폐지되는 가운데서도 경호분야는 오히려 조직을 보강하여 경호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이러한 경호역량 강화는 아직도 주적 북한과 정전체제로 대결하고 있는 상황에 효과적으로 대처함은 물론, 경호행사시 상시적으로 수상한 병력 움직임과 군부내 경호위해요인에 대한 감시가 필수적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증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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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승 종합정비계획 수립을 위한 조사 및 계획 항목의 도출에 관한 연구 (Study on Deriving the Items related to Investigation and Planning for the Comprehensive Maintenance Plan of Scenic Sites)

  • 이재용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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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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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8-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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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는 지속가능성을 고려한 명승의 종합정비계획 요소를 발굴하고 필요성을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이에 따라 명승의 지정이 확대되기 시작한 2006년부터 2017년 사이에 수립된 35건의 종합정비계획 보고서를 토대로 '조사 분야'와 '계획 분야'에 사용된 항목을 검토하여 전국 60개 지자체의 명승 실무 담당자를 대상으로 "리커트 5점 척도"로 필요성에 대한 설문을 실시하였다. 전국 60개 지자체로부터 회수된 45개 설문지에 대한 실무 담당자 48명의 의견을 분석하였다. 응답에 대한 일관성을 검증하기 위해 "신뢰도 분석(Reliability Analysis)"를 수행하였으며 크론바흐 알파계수(Cronbach's Alpha)가 조사 분야에서 0.968, 계획 분야에서 0.970으로 나타나 높은 신뢰성을 보였다. 설문조사결과, 종합정비계획의 6개 조사 분야에 대한 항목의 필요도에서도 전반적으로 필요하다는 의견이 다수를 이루었다. 특히, '역사환경'과 '자연환경', '인문환경', '경관'에 대한 조사의 필요성이 높게 평가되었다. 또한 '일반환경'과 '이용자'부문에서도 주요 문화재 및 유적의 분포(4.04), 지역주민 및 이해관계자의 의견 수렴(4.15) 등 특정 항목에 대한 필요성도 보통 이상으로 나타났다. 한편, 계획 분야에 대한 항목의 필요성에서도 대체적으로 필요(4.0)의 수준으로 평가 결과가 나타났다. 그 중에서도 '역사환경'의 지정가치 및 위상강화(4.26), 문화재 지정구역 및 역사문화환경보존지역의 정비계획(4.25), 그리고 '인문환경'의 명승 내 역사적 건축물에 대한 수리(4.28), '경관'부문의 경관탐방로계획(4.28)에 대한 항목들은 필요도가 높았다. 이처럼 명승의 종합정비계획 수립에 필요한 것으로 확인된 조사와 계획 항목들은 새로 마련된 "명승 종합정비계획 수립 및 시행에 관한 지침"과 함께 종합적 차원에서 명승의 효율적인 보존과 관리에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고촌락 역사문화공간 보존을 위한 보호구역 설정 방안 연구 - 중국 굉촌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Establishment of Preservation Area for the Preservation of Historical and Cultural Space in the Ancient Village - Focused on the Hongcun, China -)

  • 신현실;대개영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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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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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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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본 논문은 굉촌 고촌락의 특성과 변화과정을 통해 변화된 굉촌 역사문화공간의 보존을 위한 보호구역의 재설정 방안을 분석하였다. 이를 위해 굉촌과 관련한 고문헌, 고화, 각종 보호 관련 정책자료를 분석하고 인터뷰와 현지조사를 실시하여 굉촌 내 보존지역과 활용지역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통해 보존지역의 재설정 문제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굉촌은 유교, 불교, 도교사상의 영향을 받아 조성된 촌락으로 공간구성은 유교의 위계에 따라 조성되었다. 이로 인해 중앙정부의 보존이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선조들의 유산이 계승 보존될 수 있었다. 둘째, 굉촌 고촌락은 고대부터 이어져온 문물의 개념으로 인식되어온 협의적 보존의 개념이 적용되어 왔으나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 등으로 인하여 촌락 공간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후 굉촌 보호계획을 계기로 신축 및 증축 등의 규제를 통하여 고건축물, 수체계, 수림 등이 보존되었으나 지속된 개발 압력과 개혁개방으로 인한 원주민의 생활 변화로 보존지역 내의 개발이 진행되고 있다. 셋째, 고촌락 원주민들은 유산에 대한 가치 인식은 높았으나 생활의 개선과 수익 창출을 위한 방안 및 이를 위한 촌락의 적극적인 활용을 요구하였다. 넷째, 노거수로 이루어진 수림은 복원이 진행되고 있으나 고택 내 정원들은 활용을 위하여 원림공간이 축소되거나 변형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 도로는 본래 고 촌락 진입구인 서측 지역에서 확장된 남측지역에 다리와 주차장이 신설되어 기존 진출입구의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관광객의 진출입이 편리하도록 도로체계를 변형한 것으로 고촌락 공간변화의 주요 원인으로 나타났다. 다섯째, 기존의 보존지역을 월소를 중축으로 하는 보존 루트로 재설정하여 보존을 진행하는 한편 주변 지역을 직접·간접체험공간으로 설정하여 각 공간의 위계에 따른 보존과 활용을 교차하여 보존 가운데 활용이 진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