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confucian thou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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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상사에서의 묵가(墨家) 비판 - 벽리단론(闢異端論)의 전개 양상을 중심으로 - (The Critic on Mohism in the History of Korean Thoughts Centered on the Theory of Rejecting Heterodoxy)

  • 윤무학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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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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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9-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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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이 글은 선유(先儒)들의 묵가에 대한 비판을 개괄하고, 이를 전제로 하여 고려말부터 시작하여 조선조 후기에 이르는 묵가 비판의 전개 양상을 고찰한 것이다. 우리나라 고려 이전의 문헌에서는 묵가나 묵자를 비롯한 제자백가를 명시적으로 배척한 사례가 보이지 않는다. 여말선초에 이르면 성리학의 수용과 더불어 맹자의 벽이단론의 관점이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양주와 묵적에 대한 비판을 전제로 불교와 노자를 배척하기 시작하였다. 조선조 지식인들의 묵가에 대한 이해와 비판 양상의 특징은 묵가의 이념 자체에 대한 비판보다는 주로 다른 이념이나 부조리에 대한 비판의 도구로 활용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말선초의 불교와 노자, 중후기의 문장학(과거학), 서학(천주교), 나아가 관료들의 부패 등이 포괄된다. 내용면에서 본다면, 묵가의 십대 주장 가운데 「겸애」와 「절용」(절장, 비악)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조선 중후기에 이르면서 「명귀(明鬼)」와 「천지(天志)」에 대한 비판이 포함되고 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중국사상사에서와 마찬가지로 침략전쟁을 반대하는 평화 이념이 반영된 「비공(非攻)」이나 운명론을 부정하는 「비명(非命)」에 대한 비판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유가의 인문주의적이고 현실주의적 측면에서 볼 때 적극적으로 비판할 여지가 없었던 데 연유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묵가 이념과는 별도로 묵자 개인의 묵수(墨守)와 관련된 행위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 또한 후기에 이르면서 묵자서는 이념서가 아니라 유교 경전 내용을 고증하기 위한 사료로서 활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치인(治人)의 차원에서 본 『대학(大學)』에서 『성학집요(聖學輯要)』로의 학문적 심화 (Academic Enrichment from The Great Learning(大學) to The Essentials of Sagely Learning(聖學輯要) when looking at it in the dimension of Governing of Others or Governance of humankind (治人))

  • 신창호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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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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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5-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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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 연구는 치인(治人)의 차원에서 중국 유학이 조선 유학으로 전변(轉變)하는 과정을 정돈한 것이다. 특히, "대학"의 재해석이자 학문적 심화인 "성학집요"를 분석하여 조선시대 "대학"의 수용 양상을 탐구하였다. "대학"은 조선 시대 전반에 걸쳐 제왕학(帝王學)이자 성학(聖學)의 기본교재였고, 율곡의 "성학집요"는 그것의 총결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율곡은 "성학집요"의 체제를 크게 다섯 편으로 구성하고, "대학"의 삼강령팔조목(三綱領八條目)을 적절하게 배치하였다. 이중 치인은 제3편 "정가(正家)"와 제4편 "위정(爲政)"에 집중적으로 논의되고 있다. "정가"는 "대학"의 제가(齊家) 내용을 세분화하여 실제로 가문에서 행해야 하는 핵심 사항을 명확하게 정돈하고 있고, "위정"은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내용을 심화하여 시대정신의 인식 및 국가 경영의 실제를 적극적으로 제시하였다. 제3편 "정가"에서는 "대학"의 '제가(齊家)' 내용을 세분화하여 '효경(孝敬)', '형내(刑內)', '교자(敎子)', '친친(親親)', '근엄(謹嚴)', '절검(節儉)' 등, 실제로 집안에서 행해야 하는 핵심 사항을 명확하게 정돈하였고, 제4편 "위정"은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내용을 심화하였는데, '용현(用賢)', '식시무(識時務)', '법선왕(法先王)', '안민(安民)', '명교(明敎) 등 시대정신의 인식과 국가 경영의 실제를 적극적으로 제시하였다. 이는 제2편의 "수기(修己)"를 바탕으로 치인(治人)으로 나아가는 유학의 기본 체제를 잘 보존하면서도 상황에 맞는 실천 지침을 제시하여 학문의 타당성을 입증한다. 그것은 중국 유학보다 훨씬 풍부하고 심화과정을 거친 조선 유학의 특징을 담고 있다. 따라서 조선 민족이 지닌 인간과 학문, 정치의 특성을 이해하는 기준이 될 수 있다.

성재 유중교의 가평 옥계구곡 위치추정 연구 (A Study on an Estimated Location of Seongjae Ryu, Junggyo's Okgye Gugok in GaPyeong-Gun)

  • 강기래;이해주;이현채;김희채;김동필;하성근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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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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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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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조선건국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던 성리학의 도입과 그 모태가 되었던 유학은 우리의 생활과 학문, 사상의 근원이 되었다. 또한 이들 학문의 주창자인 공자(孔子), 맹자(孟子), 자사(子思), 주자(朱子) 등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최고의 선이라 여기었다. 그들 중 자기 수행의 길을 구체적으로 제시한 이는 주자이며, 이(理)와 기(氣)의 발현과 그 관찰을 통한 심성(心性)의 체득을 목표로 하였다. 그는 진리의 체득을 위한 수신의 장소와 도구로서 산과 물이 있는 자연을 택하였고, 이러한 존주자(尊朱子), 학주자(學朱子)의 신념이 조선유학자들의 기본적 사상과 실천 철학이 되었고, 위정척사파의 유중교도 옥계구곡을 명명하고 경영하였다. 이러한 사상적 바탕으로 조선후기 유학자인 유중교가 설정한 옥계구곡의 위치를 비정하기 위한 본 연구는 옥계구곡의 위치 비정을 위한 기본적인 텍스트인 성재 유중교의 "가릉군옥계산수기(嘉陵郡玉溪山水記)"를 기본으로 하여 그 장소 추정을 위한 기본자료를 수집하였다. 그리고 옥계구곡 현장을 10회 답사하여 그 위치를 추정하였으며, 검증을 위해 옥계구곡에서 태어나고 자란 원주민 3인에게각각 그 위치를 탐문 하여 추정하였다. 연구로 비정된 각 곡의 위치는 공간정보자료로서 좌표와 사진을 취득하였으며, 이러한 자료는 향후 옥계구곡의 스토리텔링이나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경우 기초적이고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의 성과는 옥계구곡의 곡(曲)을 지정하는데 기초적 자료가 되었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동무(東武) 이제마(李濟馬)의 의학사상(醫學思想)에 대한 연구(硏究) (Research on Tongmu I Je-ma's medical idea)

  • 백상용
    • 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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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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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7-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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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Tongmu I Je-ma(1837-1900) set up Sasang Constitutional Medicine(四象體質醫學), a medical theory that would be original in the Korean medical history through his book ${\ll}$Tang-uisusebowon(東醫壽世保元)${\gg}$. In this book, he writes that he found the clue to his sasang Constitution(四象體質) theory from ${\ll}$Hwangjenaegyong(黃帝內經)${\gg}$. But the main logic that gives shape to the Constitution(體質) theory is $s{\check{o}}ng-ch{\check{o}}ng$ theory(性情論) of Confucian. Therefore, Tongmu(東武)'s Constitution $s{\check{o}}ng-ch{\check{o}}ng$ theory(體質性情論) is fundamentally based on confucian thoughts. Kongmaeng(孔孟) saw $s{\check{o}}ng$(性) as a base for connecting the entire mankind to be united, and $ch{\check{o}}ng$(情) as a individual thing that can exalted differently according to one's state of mind. Chuja(朱子) weakene the human's active volition by dividing $s{\check{o}}ng$ and $ch{\check{o}}ng$ as ibal(理發) and kibal(氣發) and therefore describing mankind to be submitted to Heaven's will. On the other hand Yolgok(栗谷) generalized $s{\check{o}}ng-ch{\check{o}}ng$ in the active mind of man himself by saying that $s{\check{o}}ng$ is when i-ki(理氣) does not act as a bodily function of the mind and $ch{\check{o}}ng$ is when it does. Furthennore he emphasized man's activeness on pursuing good by saying that the division of good and bad does not start from the origin of motion but is divided by the condition of ki(氣) which leads motion. Tongmu, who was influenced by Yulgok linked both $s{\check{o}}ng$and $ch{\check{o}}ng$ through, happiness, anger, sadness, pleasure(喜怒哀樂), and saw $s{\check{o}}ng$ as the ability to recognize good which is in the kijil(氣質) formed from the integration of i-ki, and saw $ch{\check{o}}ng$ as $s{\check{o}}ng$ blurred by man's greed. In addition to this, he says that the direct connection between each person's divergence in $s{\check{o}}ng-ch{\check{o}}ng$ and the condition of Four-organ(四臟) which is ki, not the mind which is i(理) forms sasangch'ejirin(四象體質人). His theory that illness comes from the partiality of $s{\check{o}}ng-ch{\check{o}}ng$ and therefore can prevent this by clarifying the mind and adjusting $s{\check{o}}ng-ch{\check{o}}ng$ through volition, has led Korean oriental medicine to be human bas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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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제례악 사상과 선율의 미의식 연구 (Aesthetics melodic thought research Jongmyojeryeak)

  • 김현호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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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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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3-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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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현재 이루어진 종묘제례악의 미의식과 다른 관점에서 여러 사상을 배경으로 완성된 종묘제례악의 피리 선율을 중심으로 미적 요소를 찾아보고 그에 따른 미의식을 살펴보았다. 종묘제례악은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곳에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유교제사 의례의 결정체이자 제례문화의 대표적 문화유산으로 1964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國歌重要無形文化財) 제 1호로 지정되었다. 또 2001년 5월 18일에는 유네스코(UNESCO)지정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한국에서는 가장 먼저 등재되어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오랜 기간 조선왕조와 명운을 같이한 제례문화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일 뿐만 아니라, 우리조상들에 의해 창조된 악 가 무에 따른 총체적 예술형태의 아름다움을 집대성한 우리음악의 정수(精髓)로 인정받으며 전해지고 있다. 또 유교사상 뿐 아니라, 예악사상을 비롯하여 음양오행사상과 삼재사상(三才思想), 팔괘사상(八卦思想)의 전통사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종묘제례악에는 정관미 유장미 자연미 장려미 조화미가 내제되어 있다. 정관미는 희문과 전폐희문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유장미는 정대업에만 나타나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자연미는 변주시 선율진행에서 노련한 연주기교로 자연스런 창작이 연결되는 부분으로 희문과 전폐희문에 잘 나타나고 있다. 장려미는 보태평 악장선율의 가장 두드러진다. 또 조화미는 종묘제례악의 불협화음이 협화로 음악에서 자연스러운 조화미적인 관점의 미의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정대업의 소무에 잘 나타나고 있다.

운임(雲林) 예찬(倪瓚)의 사상(思想)과 그의 문인화(文人畵) 경계(境界) (Unlim Yechan's Thoughts and his literati paintings land)

  • 권윤희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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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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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19-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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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예찬은 중국 원말 사대가의 한 사람이다. 그는 이민족의 지배를 받은 시대적인 환경하(環境下)에서 자신의 독특헌 예술세계룰 구축하였다. 그의 화론인 흉중일기(胸中逸氣)는 동양 전통사상인 유(儒), 불(佛), 선의(禪) 영향으로 이루어진 정신적인 산물이다. 일기사상(逸氣思想)은 도가적(道家的)인 청담(淸淡)이나 허무(虛無), 무위사상(無爲思想)의 영향으로 문인(文人) 사대부(士大夫) 사이에 일어난 자연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다. 이는 세속을 초월하여 일어났으며 남종 문인화(文人畵)의 이론적인 토대가 되었다. 예찬(倪瓚)의 일필(逸筆)은 흉중(胸中)의 일기(逸氣)를 그리는 방법이다. 이는 그가 오랫동안 노력하고 실천한 가운데 얻어진 문인화 경계이다. 예찬(倪瓚)은 생활의 체험 속에서 깨달은 선의(禪) 오경(悟境)으로 시서일체(詩書一體), 시선일치(詩禪一致)의 높은 경지를 실현하였다. 그의 예술정신은 흉중일기로 대변되는 탈속원진(脫俗遠塵), 일소부주의 고답(高踏), 시서일체(詩書一體)의 높은 경지를 표출하였다. 이를 통하여 그는 원말(元末) 명초(明初)의 화단에 독창적인 문인화(文人畵) 세계를 구축하였다.

퇴계의 주자철학에 대한 이해와 그 특색 - 리(理)의 동정(動靜)·발(發)·도(到)를 중심으로 - (T'oegye's Understanding of Zhuzi's Philosophy and its Characteristics)

  • 정상봉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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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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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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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일반적으로 퇴계가 주자철학을 계승 발전시켰다고 평가를 한다. 그러나 평가의 내막을 구체적인 살펴보면 연구자들 사이에 원전자료에 대한 해석의 차이부터 취하는 관점에 이르기까지 편차가 너무도 크다. 물론 주자성리학 자체에 다양한 논의가 가능한 여지가 있고 퇴계철학 또한 상이한 해석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퇴계이후의 유학자들부터 오늘날의 연구자에 이르기까지 퇴계철학에 대하여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대부분 리(理)의 동정(動靜)과 리(理)의 발(發), 그리고 리(理)의 도(到)에 대한 이해가 다르기 때문이다. 주자 서거후 300년이 훨씬 넘어 활동하였던 퇴계는 주자가 말했듯이 무정의(無情意) 무계탁(無計度) 무조작(無造作)의 측면을 들어 리(理)가 운동(motion)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리(理)가 능발능생(能發能生)한다는 점을 들어 리의 형이상적 활동(activity)을 긍정하였다. 이것은 그의 우주론에서 인식론에 이르기까지 그 이론적 토대를 마련해 주었다. 그는 주자철학에서 제기된 리(理)의 동정(動靜)에 대하여 우주론적 의미를 부각시켰고 리(理)의 발(發)에 대해서는 본체론적 의미를 토대로 심성론적 의미를 부여하였으며, 마침내 리도(理到: 리의 자기발현)로써 물격(物格)의 인식론적 의미를 밝히게 됨에 따라 마침내 이론 정합적 체계를 정립하였다. 이와 같이 퇴계는 주자의 철학을 충실하게 계승하면서도 주자 당시에 미처 이론화하지 못했던 문제에 대하여 이론 정합적으로 체계화함으로써 주자철학을 발전시켰다.

동아시아의 인구사상: 홍량길과 맬서스의 비교 (Population Thoughts in East Asia: A Comparison of Hung Liang-Chi and Malthus)

  • 박상태
    • 한국인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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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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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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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오늘날 전 세계 학문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서구 학문의 기초는 그리스와 로마 문명임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결과 이집트와 페르시아를 포함하는 아랍세계의 훌륭한 업적과, 인도대륙의 심오한 사상, 그리고 중국을 포함하는 동아시아의 탁월한 업적이 등한시되거나 도외시되어 왔다. 인구에 관한 사상과 이론도 예외는 아니다. 본 연구는 우리가 간과(看過)한 과거 인구사상 중 동아시아 부분을 중국학자들을 중심으로 고대, 중세, 근세 등 시기로 나누어 유럽학자들과의 비교를 통해 재조명해 보았다. 중국을 위시한 동아시아에서는 고대로부터 과잉 및 과소 인구에 대한 우려가 자주 거론되었다. 춘추시대 인구에 대한 주요 관심은 인구와 자원과의 균형관계였으며 인구가 국부의 원천임은 대체로 인정하고 있었으나 과소인구에 대한 대책뿐만 아니라 과잉인구에 대한 단점도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어 적정인구와 근대 맬서스주의의 기초는 이미 고대 춘추전국시대에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서양고대 그리스와 로마시기의 인구 사상의 발전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적정인구론과 로마시기 팽창주의적 인구증가 장려책으로 대표된다. 천년이란 장기간의 중세 시기 유럽의 발전은 정체되어있었으며, 동아시아의 발전 역시 부진했으나 아랍세계의 발전은 주목할만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근세에 들어와 유럽 특히 서구에서는 눈부신 학문적 발전을 이룩한데 비해 동아시아의 발전은 매우 저조한 것이었다. 그러나 맬서스가 그의 인구이론을 발표하기 수년전 중국의 홍량길은 불완전하나마 인구의 기하급수적 증가율의 문제를 논하고 인구증가에 대한 규제로서 맬서스의 적극적 규제 및 궁극적 규제에 해당하는 천지조제법과, 소극적 규제 및 즉각적 규제에 해당되는 군상조제법을 들고 있다. 특히 그가 상대적 과잉인구에 대해 논의를 전개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마지막으로 고대 탁월한 동아시아의 학자들과 근세 맬서스 직전 홍량길과 같은 학자도 있었으나 동아시아에서의 학문발전은 근세 이후 서양에 비해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부진하게 된 이유를 학문내적 요인과 학문외적 요인으로 나누어 검토했다.

우리나라 전통적 부덕의 현대적 고찰 (An Implication to Traditional Concepts of Women's Virtues in Korea)

  • 이정덕
    • 대한가정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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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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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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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9
  • The main objective of the present study is to examine the traditional concepts of women's virtues which originated mainly from Confucian ethical thoughts. According to Naefoon, a moral text for women which was highly respected in the Yangban society of Yi dynasty, the main virtues for women were as follows : 1. Fidelity ; A woman had to be faithful for life to only one man who was, or was going to be, her husband. 2. Filial piety ; Sons and daughters were supposed to dedicate their hearty love and respect to their parents, parents in law, and whole ancestors. 3. Obedience ; A woman was required to be completly obedient to her husband as well as to her father. She was also supposed to be obident even to her sons when she was old. 4. Diligence and Thrift ; It was highly advisable for a woman to work hard for household matters. 5. Hospitality ; Hearty hospitality for domestic guests was one of the main duties of women in traditional Korean society. 6. Maternal wisdom ; a mother was supposed to be both stern and merciful to her children. 7. Kindness to relatives ; Special Kindness to her husband's relatives was required as a duty to a married woman. The above mentioned seven main virtues cannot be said to be fit , as such to the contemporary Korean society. Many of them are unacceptable when we evaluate them form the democratic viewpoint . But we still find some valuable ideas at the bottom of the concepts of these virtues. If we properly modify them so that they fit to our own age, they might become a source of wisdom even for the contemporary moral life. It's tried to give some suggestions concerning how to modify the concepts of women's virtues in question, and them gave a sketch of an ideal figure of women in this industrial socie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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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목답문의 분류체계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classification systems of the Shu-mu Da-wen)

  • 박재혁
    • 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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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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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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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7
  • The results of the study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The Shu-mu Da-wen was selected and compiled by Zhang Zhi Dong at the end of Qing Dynasty as a reading list for students preparing for the state examination and for the purpose of choosing the best from several versions. Whether it was compiled and edited by Zhang was in dispute. But it is almost certain that Zhang was the main editor because Shu-mu Da-wen showed his political, educational and scientific thoughts and knowledge distinctively. The followings are characteristics of Shu-mu Da-wen being compared with Si-ku Quan-shu Zong-mu Ti-yao. 1. In Jing-bu, the Confucian classics are divided into Zheng-jing Zheng-zhu and 'Lie-chao Jing-zhu Jing-shuo Jing-ben kao-zheng. Zheng-shi lei is divided into Zheng-shi fen he ke ben and Zheng-shi zhu bu biao pu kao-zheng. It is the special sorting method to include Du-ben lei in Jing-bu and Chu xue du-ben in Bie-lu in order to provide first learners for reading order. 2. Shi-bu included Gu-shi newly and Di-li lei is divided into Gu Di-li and Jin di-li in Shi-bu. Tian-wen Suan-fa lei is divided into Zhong-fa and Xi-fa in Zi-bu. Zhang distinguished between old books and contemporary ones to find out the origin and include newly published books in the East and the West. 3. Zhou-Qin zhu-zi is newly added to Zi-pu. In Ji-pu, Bie-ji and Zong-ji are categorized according to their style and period respectively. This show the new sorting method which added classifying system concerning academic development. It is the prominent feature in the compiling system to make Bie-lu and Cong-shu respective chapters. With those characteristics the Shu-mu Da-wen had been edited and published several times. It had a wide effect not only on compiling methods of cataloging afterwards and but also on classification systems before decimal classification was introduced in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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