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Song dyna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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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악(安岳) 명산사석굴(茗山寺石窟) 초론(初論) (A Preliminary Study on the Mingshansi Grottoes)

  • 쑨 화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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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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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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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중국 사천성 안악현(安岳縣) 명산사(茗山寺) 석굴은 유본존(柳本尊) 교파의 중요한 석굴사원이다. 석굴은 호법신장감(護法神將龕), 관음 대세지병좌상, 대일여래입상, 문수보살입상, 문수 보현병입상 그리고 조지봉(趙智鳳)의 전법륜탑으로 구성되어 있고 하나의 통일체를 이룬다. 이 석굴사원은 남송 중기에 건축되었고, 아마도 대족(大足), 안악(安岳) 일대 유본존(柳本尊) 교파의 2대 교주인 조지봉이 일찍이 수륙법회 등의 석굴사원은 의식을 거행하던 도량으로 추정된다. 조지봉은 규모가 큰 중경시 대족구 보정산석굴을 개착하였는데, 명산사 법회의 수입이 그 주요 자금 중 하나였다.

남헌(南軒)장식(張?)의 수양론 연구 - 호상학과 주자학의 상호 영향을 중심으로 - (A study of Nan xian(南軒) Zhangshi(張?)'s cultivation - Focusing on the mutual influence of Huxiangxue and Zhuzixue)

  • 이연정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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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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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7-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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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학술교류가 활발하던 남송(南宋)시대에 장식은 수양론 형성과정에서 그만의 독자적 사상체계를 정립한다. 수양론을 정립하는 과정에서 사상적 전향을 보이는 것이 특징적인데, 이 과정에서 장식은 당대 주류와의 학술적 교류를 통해 그들의 사상정립에 상당한 영향을 주며, 그 안에서 자신만의 사상을 체계화시켜 나간다. 그러나 당대 주류학파에 대한 연구는 상당부분 이루어진 것에 비해, 주류학맥이 이어져 오기까지의 당대의 사상적 흐름과 동향에 대한 연구는 미비한 상태이다. 이에 논자는 장식의 수양 공부론의 형성 과정을 통해 당대의 사상흐름 전반을 이해하고, 아울러 주류학파와의 교류 과정을 수양공부라는 영역을 통해 알아보고자 한다. 이러한 작업은 송 대 철학 전반을 이해하고, 그 흐름을 객관적으로 살피는 데 있어서 유의미한 과정이 될 것이다. 본 논고는 장식 공부론의 형성과정을 전기와 후기로 구분하여 검토하는 방식을 취한다. 우선은 장식사상의 연원에 대한 기술을 시작으로 영향을 주었던 학파의 사상적 영향을 언급하고, 수양 공부론의 변천과정을 검토하여 그의 철학사상적 전향(轉向)을 고찰한다. 이 작업은 장식만의 독자적 사상에 대한 전반을 이해하고, 사상교류를 이루었던 주희의 사상정립에 대한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다.

유학의 흐름과 하도낙서(河圖洛書) 및 사단칠정을 통한 동무(東武) 이제마(李濟馬)의 사상인 형성에 대한 연구 (Stream of Confucianism and a Study of Dongmu Lee Jema's Formation of Sasang through Hado and Nock-seo, along with Four Character and Seven Feeling Theory)

  • 송시원;강정수
    • 동의생리병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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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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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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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According to Confucianism, the world before Confucius focused on respecting the heaven which meant that everything could be done by the heaven. After the period of Confucianism, Joo-Ja asserted that everything could be done by nature. During the Chosun Dynasty, philosophers such as Seo Kyung-duck, Lee Hwang, and Lee Yi talked about four characters and seven passions of human being. They started to focus more on the inside of human nature. During the later period of the Chosun Dynasty, a philosopher by the name of Dongmugong Lee Jema analyzed that one's nature and feelings can change his or her external matter and the function of internal organs by purity or impurity of one's mind. Based on these analysis, Dongmugong discovered 'sasangin' which puts more emphasis on one's state of mind compared to the outside the world. Also, Dongmugong tried to figure out the connections between Confucianism and medical science. If you use change fire and stone theory which is difference between hado and nock-seo to expain four seven theory one's mind could be define as four natural characters and seven feelings. From four seven theory four is ying and seven is yang. This is the method of cure and understand the structure of human body. And also, four natural characters and seven feelings can be divided into heaven and earth. You can see Four natural characters is far more similar to heaven and seven feelings are similar to earth. According to four-seven theory hado is permanent and you can find out 'sasangin' is permanent also. Since seven feelings are influenced by sam-jae, you can analogize there are 21 different types in 'sasangin'. An underlying principle should there be 28 different types of sasangin instead of 21 different types of sasangin but one quater of sasangin is hidden according to samhyuniljang theory. All creations in the world are organized by unification of the great absolute and symmetry distinction of yingyang. With these facts identity of the heaven, earth and man which is named samjae generates symbols of independent sasang. And also, sasang generates relations between five element, six energy and the six family relation. From six family relation comes seven feelings of man which creates a category of the eight trigrams for divination and unification of nine palace. All these process are united.

사천 구암 출토 미투리 보존처리 (Conservation Treatment of Mituri (hemp shoes) of the Choseon Dynasty in Sacheon, South Korea)

  • 송지애;정아름
    • 보존과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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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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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0-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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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사천 구암 발굴현장 내 출토된 조선시대 회곽묘에서 복식류와 함께 미투리가 출토되었다. 미투리는 목재와 초본류로 제작된 복합재질로 앞총부가 소실되거나 매우 약한 상태로 수습되었다. 보존처리를 위하여 미투리에 대한 과학적 재질분석과 강화제 선정 예비실험을 먼저 진행하였다. 재질 분석 결과, 미투리는 벼속(Oryza spp.), 마섬유, 쌍자엽식물 1종이 사용됨을 확인하였으며 또한 뒤쪽 도갱이에 붙어있었던 직물은 면섬유로 분석되었다. 강화제 선정을 위해 약품 5종(Polyethylene Glycol, Paraloid-B72, Dammar gum, Methyl Cellulose, Silicone resin)을 선정하여 예비실험을 실시하였다. 색차, 광택성, 내절강도와 인장강도 변화를 약품별로 측정하여 결과를 비교하여 PEG를 강화제로 선정하였다. PEG는 색도 및 광택변화가 적고, 인장강도가 높게 확인되어 가장 적합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미투리 보존처리는 클리닝 후 PEG 4000을 5%에서 80%까지 농도를 높여 유물에 견고성을 부여하였으며 조절건조를 통해 보존처리를 완료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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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국원종공신녹권(光國原從功臣錄券)"의 서지적(書誌的) 연구(硏究) (A Study on Gwang-Kuk Wonjong Gongsin-Nokgwon)

  • 송일기;진나영
    • 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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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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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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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광국원종공신녹권(光國原從功臣錄券)"은 선조가 1591년 조선 왕실의 종계변무(宗系辨誣)에 공을 세운 신하들을 광국원종공신으로 책봉한 후 반사(頒賜)한 책이다. 이 연구는 현존하는 재주갑인자(再鑄甲寅字)인 경진자(庚辰字)로 인출된 "광국원종공신녹권" 4책을 대상으로, 녹권이 반사된 사유 및 경위를 알아본다. 녹권의 형태와 그 체제를 자세히 분석하여, 이를 바탕으로 녹권에 기재된 공신들을 각 등급별로 나누어 책봉된 공신들의 직함과 그들의 신분에 대한 특성을 분석하고자 하였다. 연구결과, "광국원종공신녹권"은 경진자로 찍은 금속활자본으로 크게 권수(卷首) 본문(本文) 권말(卷末)의 3부분의 체계로 구성되었다. 또한 354개의 직함에 모두 872명(1등 137명, 2등 136명, 3등 599명)이 기재되어 있었으며, 직함이 비교적 자세하게 기술되었으며 1등원종공신 직함의 품계가 2등과 3등에 비해 높았다. 문관이 무관에 비해 많았다. 그리고 원종공신들을 4개의 신분(身分)으로 분석한 결과, 다양한 신분으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양반 748명, 중인 103명, 양인 13명, 천인 8명 등의 순으로 나타났으며, 양반이 원종공신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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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괴 성분 분석을 통한 18세기 초상화의 채색 특성 비교 고찰 - 유언호 초상화를 중심으로 - (Comparison of Painting Characteristics on Portraits by Nondestructive Analysis of Joseon Dynasty in 18th Century - Focusing on Yu Eon-ho's Portrait -)

  • 송유나;이한형;정용재;이혜윤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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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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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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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18세기 제작된 유언호 초상화에 대한 비파괴분석 통해 채색에 사용된 안료의 종류와 채색기법을 추정하였으며, 이를 바탕으로 18세기의 초상화 11점과의 채색특성을 비교해보았다. 유언호 초상에 사용된 안료는 백색에 연백, 황색에 염료, 적색에 진사, 연단, 적색염료, 녹색에 석록, 청색에 석청, 갈색에 적색산화철, 갈색염료, 자주색에 청색과 분홍색의 염료 등을 사용하였다. 11점의 초상화와 채색 안료를 비교한 결과 18세기 초상화에 사용된 안료는 시기별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으며, 동일 화첩에 수록된 초상화일지라도 안료의 사용은 초상화마다 개별적으로 나타났다. 채색기법에서는 유언호 초상 이후의 초상에서 얼굴에 진사를 사용하지 않고 산화철만 사용하였으며, 의복의 배채에 녹색 안료 대신 염료를 사용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18세기 전반에 걸쳐 제작된 초상화의 채색 특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연구결과가 조선 후기 초상화의 채색기법 연구에 기초자료로 활용되기를 기대해 본다.

견우성의 이중적 의미에 대한 해석 (DECIPHERING THE DOUBLE MEANINGS OF THE COWHERD STAR)

  • 안상현;김동빈;이용삼;송두종
    • 천문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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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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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9-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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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The Cowherd Star and the Weaving Maid Star have been famous stars in East Asian countries. Nowadays Altair is defined to be the Cowherd Star in public materials including science books, mass media, public outreach programs, and movies played in public planetariums and science museums. However, in astronomical books and star-charts in history, the Cowherd Big Star (牽牛大星) has been known to be Dabih or $\beta$ Cap in the constellation Capricorn, and the asterism Cowherd consists of six stars including Dabih. Since the same title is given to the different objects simultaneously, considerable misunderstanding and confusion among the public have occurred. In this paper we consider this problem in two aspects. One aspect is which star has been defined to be the Cowherd Star in ancient literatures; the other is which stars were regarded as the Cowherd or the Cowherd Star in the historical records of occultation or conjunction in History of Koryo, Annals of the Choson Dynasty, and Daily Records of Royal Secretariat of the Choson Dynasty. As a result, we see that Altair has been regarded as the Cowherd Star in folklore and literature, but Dabih has been defined to be the Cowherd Big Star in astronomical works. An explanation proposed by previous researchers on the reason why such double meanings have been appeared is introduced. In the explanation, the fact that the Altair was defined as the Cowherd Star in ancient times had not been handed over properly, and the name of Cowherd was later put to the Dabih and its surrounding five stars to form one of 28 lunar lodges. Based upon these facts, we suggest the following ideas: (1) Altair should be introduced to be the Cowherd Star in public-friendly programs, and Dabih should be noticed to be the Cowherd Big Star in the field of history of astronomy. Dabih should be added as the astronomical Cowherd Big Star in academic books such as a dictionary of astronomical terminology. (2) The Korean pronunciation for Altair should be al-tear instead of al-tairu in accordance with the definition in the astronomical terminology dictionary compiled by the Korean Astronomical Society.

황해도 사찰 간행불서의 서지적 연구 (A Bibliographical Study on the Buddhist Scriptures Published in Temples Located in Hwanghae-do Province)

  • 송일기;박지숙
    • 한국문헌정보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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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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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95-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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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이 연구는 조선시대 황해도 지방의 사찰에서 개판(開板)된 불서를 대상으로 시기별 간행 현상과 불서의 성격 등에 대해서 서지학적으로 분석한 글이다. 황해도에서 간행된 불서는 모두 85종으로 파악되었으며, 그 중 "용감수감(龍龕手鑑)" 등 5종은 황해도 사찰에서만 유일하게 개판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 불서는 조선전기에 64종이 간행되어 전체 75%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이 중에서도 명종 대에 문정왕후 등 왕실의 후원으로 집중적으로 개판되었던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그러나 임란 이후 조선후기에는 급격하게 쇠퇴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바, 이는 임진과 병자의 양난을 거치면서 황해도 지방의 민생이 파탄에 이른 역사적 사실과도 일치하는 것으로 이해하였다. 또한 이들 불서를 대상으로 주제별로 분류하여 성격을 분석해 본 결과 대체로 경전류와 종의류 불서가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적으로 사찰에서 개판불사에는 각수의 소임이 매우 중요한데, 대부분의 각수(刻手)는 황해도 지방의 사찰에서 활동하면서 2-3종의 불서를 판각하는데 그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하지만 각수 중에 도성(道成)과 수연(守衍)은 황해도는 물론 다른 지방으로 이동하면서 불서를 판각하였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 주목되는 각승(刻僧)으로 보인다. 이 연구는 향후 북한지역 내 다른 지방의 개판 불서 연구에 비교 대상 논문으로써 의미를 지닐 것으로 기대한다.

주자학과 양명학, 그리고 '국학'의 형성 - 주체성과 실심(實心)의 계보학 - (Zhuzi Learning, Yangming Learning, and Formation of "Gukhak": Genealogy of Subjectivity and Silsim)

  • 김우형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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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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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7-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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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고는 정인보의 '국학' 사상에 나타나는 주체성과 실심(實心, 참된 마음) 정신의 역사적 계보를 추적하고 그 특징을 조명하였다. 근세 동아시아 사상사에서 주체성과 실심이 주요 화두로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중국 송대(宋代) 신유학(新儒學)에서 비롯된다. 정이(程?)는 주체의식을 강조한 최초의 사상가이며, 주희(朱熹)와 왕양명(王陽明)은 정이의 주체성의 원리에 입각한 사상을 계승하되 방법론에서 차이를 보일 뿐이다. 조선시대 정제두(鄭齊斗)와 강화학파는 신유학의 주체성과 실심의 정신을 발휘한 하나의 사례이다. 정인보(鄭寅普)는 학맥에 있어 강화학파에 속하지만, 양명학이 실심의 자각과 실천에 있어 더 효과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방법론적으로 활용했을 뿐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주체성의 원리가 정인보로 하여금 주희 도덕이론(인심도심론)의 골격을 거의 그대로 따르도록 이끌었다는 점이다. 이기적인 욕구(자사심)를 옳고 마땅한 것을 자각한 마음(실심)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은, 인심(감각욕구)과 도심(도덕심)의 갈등상황에서 도심을 선택하여 인심이 도심의 명령을 받도록 제어하라는 주희의 견해와 일치한다. 이 같은 윤리학은 행위의 내적 동기나 의무감을 중시하는 입장으로서, 사실상 주희와 왕양명에 있어서도 근본적 차이는 없는 것이다. 적어도 이점에서 근현대 한국학을 유교전통과의 단절이 아닌 연속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타난 의례(儀禮)의 연구(硏究) - 관(冠)·혼(婚)·상(喪)·제례(祭禮)를 중심(中心)으로 - (A Study about Formality on Samkookyusa - focus on the ceremonies of coming of age, marriage, funeral and ancestral worship)

  • 송재용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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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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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3-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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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삼국유사(三國遺事)"는 고대(古代)의 의례(儀禮)를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로 민속학적으로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그러므로 필자는 여기에 주목하고, "삼국유사"에 나타난 의례(儀禮), 특히 관(冠) 혼(婚) 상(喪) 제례(祭禮)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삼국유사"에 나타난 관례는 왕이나 귀족계층들의 자제들이 행했으며, 그 연령도 13세, 15세, 18세로 추정되는데 확실하지 않다. 고대에는 우리 나름대로의 관례를 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유사"에 나타난 혼례, 그 중에서 수로왕과 허황옥의 혼례 절차에 대한 기록은 고려 이전의 왕실의례의 일면을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최초의 왕실 혼례 절차라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그리고 유화와 해모수의 사통 내용을 통해 당시의 혼인이 중매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엿볼 수 있을 뿐 아니라, 고려 초에 근친혼을 했다는 기록은 자료적으로도 가치가 있다. "삼국유사"에 나타난 상례 가운데 혁거세왕의 상례에 대한 기록은 최초의 상례(특히 왕실 상례) 기록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수로왕의 장례 내용을 통해 제후에 준하는 봉분을 사용했다는 점과, 탈해왕의 장사 기록을 통해 세골장 풍속과 소상을 만들었다는 것 등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고대의 상례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는바, 자료적 가치가 높다. "삼국유사"에 나타난 제례, 특히 수로왕의 제사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 예컨대 제사방식과 절차, 제전(祭田), 제수(祭需), 사당(祠堂), 진영(眞影) 등에 대한 기사들, 그리고 고대의 국가 제의의 일면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자료적 가치가 크다고 하겠다. "삼국유사"는 신화, 설화적인 요소와 후대의 문식이 가미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고대의 관례, 혼례, 상례, 제례를 살펴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라는 점에서 민속학적으로나 예학사적으로 그 가치가 매우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