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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移民)에서 이산(離散)으로의 여정 - 김창걸의 해방 후 작품을 중심으로 - (A Journey from Immigration to Diaspora - Focusing on Kim Chang-keol's Works After Liberation -)

  • QIAN CHUNHUA
    • 한국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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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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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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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고는 김창걸의 해방 후 작품을 대상으로 국공내전과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중국의 동북지역에 남아 있던 만주의 조선인들이 어떻게 신(新)중국 조선족으로서의 정체성을 획득하여 가는지를 고찰하였다. 김창걸은 중국 조선족문학의 개척자이자 선구자로 평가받는 작가이다. 재만조선인문학과 중국 조선족문학 양쪽 모두에 걸쳐있으면서 중국조선족문학의 연속성을 가능하게 하는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해방 전에 『만선일보』 를 통해 등단하였고, 한동안 『만선일보』 지면을 통해 창작활동을 진행하지만 1943년 절필을 선언한다. 김창걸이 다시 창작을 재개한 것은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되고 나서인 1950 년 1월이다. 『동북조선인민보』의 1950년 신춘문예 당선작인 「새로운 마을」은 새 나라 새정부의 지도 밑에 호조합작(互助合作) 사업을 성공적으로 전개시켜 나가는 모범 농촌의 전형을 보여주었다. 이어 내놓은 「마을의 사람들」(1951), 「마을의 승리」(1951) 두 작품은 외적으로는 반혁명분자 색출이라는 당시 범국가적으로 전개되었던 활동을 소설화한 것으로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한국전쟁 발발 당시 동북지역 조선족사회의 반향과 그들의 한국전쟁에 대한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당시 중국 조선족에게 있어서 한국전쟁은 미국과 이승만의북한 침략을 막기 위한 전쟁이었고 그것은 곧 북한의 사회주의 혁명의 승리를 위한 길이었다. 중국의 조선족들에게 있어서 이 시기는 민족적인 정체성보다는 중국 국민이라는 자각과함께 이념적인 측면이 훨씬 강하게 작용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이에 반해 「행복을 아는 사람들」은 개인의 욕망이 국가 건설이라는 대의 앞에서 소거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신중국 건설시기 조선족 젊은이들은 중국조선족이라는 민족적 정체성을 형성하기에 앞서 중국 국민으로서의 정체성을 요구 받았고 그것은 모택동이라는 우상과의 조우를 통해 달성되는 모습이다. 이처럼 김창걸의 광복 후 작품은 역동적인 시기를 거치면서 변화해가는 중국 조선족의 운명과 그에 상응하게 변화 발전하는 그들의 정체성, 그리고 소수민족이면서 중국 국민으로 살아가야 하는 한민족의 이산의 삶을 그대로 보여준다.

중국(中國) 소수민족(少數民族) 문화접변(文化接變) 양상(樣相)의 변화(變化): 회족(回族)과 이족(彝族)의 문화(文化)를 중심으로 (Modality and implication of chinese minority group's cultural change: focused on hui-zu's culture and yi-zu's culture)

  • 김덕삼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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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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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3-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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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This study focused on concretely how minority group's attitude accepting han-zu's culture changes. In the past, minority group's culture and han-zu's culture were acculturated spontaneously, not forcibly. But as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was founded and control of chinese government was intensified, control and interference of minority group area became aggressive, and acculturation became compulsory. However, after chinese economic reform, by economic affluence and modernization and urbanization according to economic affluence, acculturation of minority group's culture and han-zu's culture is changing from forced acculturation to spontaneous acculturation. Still there are some areas where mutual friction lasts because of forced acculturation. But except some areas the stream is changing rapidly to spontaneous acculturation. In the text, this study investigated process and present state of acculturation focused on hui-zu that implemented aggressive acceptance of han-zu's culture relatively early. Then this study investigated yi-zu society and cultural change focused on their spontaneous acculturation. In the modern society setting a high value on convenience and personal happiness rather than ideology and value, value of race becomes less attractive to young people of minority group who know modern civilization and convenience of city. In this respect, maybe hui-zu society is future of yi-zu society and minority group society.

칸트에서 '가능한 세계의 최고선' (Kant on 'the Highest Good of a Possible World')

  • 백종현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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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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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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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칸트의 '최고선'을 윤리론과 도덕종교론 내에 위치시키려면, 칸트의 '최고선'을 두 가지 한정된 의미로 이해할 수밖에 없다. 첫째는, 이성적 존재자의 덕행과 그의 윤리성에 정비례하는 만큼의 행복을 요소로 갖는 최고선이다. 이러한 의미의 최고선에서 행복은 그 행복을 누릴 품격인 각자의 윤리성의 정도에 따라 다소와 증감이 있을 것이고, 그러니까 완벽한 것이라 할 수는 없으되, 감성세계에서도 가능한 것이라 하겠다. 만약 자연운행과 윤리질서를 조화시키는 신의 현존을 전제할 수 있다면 말이다. 둘째는, (문자 그대로) 이성적 존재자의 내적 도덕법칙과의 온전한 부합과 그에 상응하는 완벽한 복, 즉 지복(至福) 내지 정복(淨福)을 요소로 갖는 최고선이다. 이러한 최고선은 신의 현존과 함께 영혼의 불사성을 전제하고서 예지세계에서나 기대할 수 있는 것으로, 앞서의 물리적 행복을 성분으로 갖는, 그러니까 제한된 의미에서의 최고선의 '이상(理想)'이라 하겠다. 이제 '가능한'을 '실현 가능한'으로 새기면 '가능한 세계의 최고선'은 첫째 의미로서일 것이다. 이 최고선은 한낱 "예지 세계에서의 최고선"이 아니라 "이 세계에서의 최고선"이다. 물론 이 세계에서의 최고선, 곧 행복과 덕의 부합 가능성을 위해서 우리는 "하나의 보다 높고 도덕적이고, 최고로 신성하며 전능한 존재자를 상정하지 않을 수 없다." 윤리적 행실과 행복은 모두 자연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인 만큼, 이 양자가 합치하기 위해서는 "자연의 원인(따라서 창시자)인 존재자, 다시 말해 신"이 전제되지 않을 수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칸트는 사람들은 예지계인 하늘나라와 같은 '최선의 세계'가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을 발원한다고 ${\ll}$성서${\gg}$를 이끌어 해석한다. 모든 선량한 마음씨를 가진 이들의 소망은, "신의 나라가 오고, 그의 뜻이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의 나라를 현실에서 현시하기 위해서 신이 무엇을 직접적으로 행하는가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그 나라의 성원으로 적합하게 만들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만 하는가는 충분히 아는 바이다." 그것은 각자가 윤리적 의무를 다 해야 하고, 그리고 더불어 윤리적 공동체를 세우는 일이다. 그러니까 윤리적 공동체는 '목적들의 나라'와 같은 한낱 이상적인 것이 아니라, "지상에 실존"하는 것으로서, 인간들의 기구이고 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