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Palace Gard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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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 궁원구성의 특징 (Configuration of the Royal Garden in Gyeonghuigung Palace)

  • 백지성;김민선;조태동
    • 한국환경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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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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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73-16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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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Gyeonghuigung palace is an important site as it was the secondary palace in Hanyang from the $17^{th}$ century to the mid-$19^{th}$ century. Its original state was lost because a number of buildings were damaged and the palace area was reduced. The entire palace can be seen only in "Seogwoldoan" a drawing of the western palace. With "Seogwoldoan" to show the complete configuration of Gyeonghuigung palace in detail as the main data and other relevant data used as supplementary sources, the aim of this work was to identify the figurative features around the plantings and the space configuration of the royal garden in Gyeonghuigung palace. The space configuration observed in the royal gardens in Gyeonghuigung palace deviated from the norms and strict systems of royal palaces. The free and uninhibited configuration of the royal garden was allowed in Gyeonghuigung palace because it was built as a secondary palace in a lower hierarchy. Furthermore, a royal garden characterized by unique and unlimited planting was created, with several spaces acting as both royal garden and rear garden as the rear gardens could not be separately configured due to the narrow space of Gyeonghuigung palace.

동북아시아 고대 궁원과 왕도의 위치 관계에 대한 연구 (A Study on the Location Relationship between Ancient Royal Garden and Royal Capital in North-East Asia)

  • 전용호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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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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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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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동북아시아 고대 궁원은 왕도와 왕궁에서의 위치 관계에 따라 왕궁 내부의 북쪽, 왕궁 외부의 북쪽, 왕궁 내부나 외부의 남쪽에 위치하는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전조후침(前朝後寢)의 중국 고대 궁실제도를 따른 전형적인 궁원이다. 두 번째는 왕궁과 독립적으로 위치하거나, 금원(禁苑)으로 확장되는 궁원이다. 세 번째는 왕궁의 남쪽에 위치하면서 유락(遊樂)이나 향연(饗宴)으로 특화한 궁원이다. 동북아시아 고대 궁원의 유형은 정궁(正宮)과 별궁(別宮) 혹은 이궁(離宮), 금원(禁苑)과의 관계에 따라 구분되고 각각 독특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 번째는 익산 왕궁리 유적의 궁원을 비롯하여 한 장안성, 북위 낙양성과 남조 건강성, 당 대명궁 등에 이르기까지 정궁의 궁원으로 자리잡아왔다. 여기에서는 왕궁 안으로는 궁원이 내원(內苑)으로, 왕궁 밖으로 금원이 외원(外苑)으로 분리되어 있다. 반면에 두 번째는 궁원(宮苑)과 금원(禁苑)이 일체화되어 있다. 세 번째는 왕궁의 일부분을 구성하거나 왕도에서 정궁과 독립된 공간으로 별궁이나 이궁의 궁원으로 특화되어 왔다. 중국은 동북아시아 고대 궁원의 전형(典型)을 만들었으며, 이를 기초로 하여 한국의 백제와 신라, 일본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나름대로 독창성을 발휘하여 독특한 궁원을 발전시켜 나갔다. 백제왕도 익산의 궁원은 위진남북조시대의 궁원을, 사비도성의 궁원은 진·한대와 수·당대의 궁원을, 신라왕경의 궁원은 사비도성과 당의 궁원을, 일본 아스카~나라시대의 궁원은 백제와 신라의 궁원을 영향을 각각 받았다. 그렇지만 이들 궁원은 각각 나름대로 자신만의 독특한 궁원의 특징도 지니고 있다. 이런 점으로 보아, 동북아시아 고대 궁원은 지역에 따라 계통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평양 안학궁은 궁원으로 보아서는 삼국시대부터 조영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안학궁 하부의 유구 중복 관계나 유물로 보아 그 초축 시기는 5~6세기로 올려보기 어렵고 대체로 7세기 중엽으로 추정된다. 평양 안학궁의 궁원은 평양 장안성의 정궁에 대응하는 별궁 혹은 이궁의 궁원으로서 한국 통일신라시대 동궁과 월지나 일본 나라시대 평성궁 동원정원(東院庭園)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판단된다. 이런 점으로 보아, 평성궁 동원정원(東院庭園)은 고구려, 백제, 신라의 궁원과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본 연구는 동북아시아의 고대 왕도라는 큰 틀에서 궁원의 위치 관계로 그 특징과 변천을 중점적으로 다룬 연구로 적지 않은 한계를 지니고 있다. 이런 한계들을 조금씩 해결하여 나간다면, 동북아시아 고대 궁원에 대한 이해의 폭이 훨씬 넓어지리라 기대해 본다.

창경궁 후원 이용의 역사적 고찰 (Historical Studies on the Uses of the Rear Garden at Changkyung Palace)

  • 정우진;심우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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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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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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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의 목적은 창경궁 복원을 위한 후원의 물리적 형태와 인문학적 경관에 대한 고찰에 있다. 이 연구에서는 동궐도,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연구대상지에 관련된 도상자료와 문헌자료들의 종합적인 분석을 실시하였다. 본 연구를 통해 이곳 후원에서 행하여졌던 행위의 실재와 구체적 장소 간의 연결을 시도하여 창경궁 후원에 내재된 고유의 특질과 정체성을 조명하고자 하였다. 창경궁 후원은 왕실의 휴식과 왕과 계비의 사생활을 위한 금원으로서의 공간뿐만 아니라, 국가의 다양한 행사를 수용하는 공적인 공간이었다. 최초 조영 당시에는 친경과 친잠을 위해 조성되었고, 이후 왕실의 정치적 행위인 과거시험과 활쏘기 경기(시사(試射)), 군사훈련, 친경(親耕), 신하인견의 행위들이 이곳에서 이루어 졌다. 창경궁 후원에서는 춘당대, 관풍각, 관덕정이 특정행위의 거점이 되며, 이들 영역 내에서는 기능, 용도, 형태, 구조, 식재, 수요소가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음을 밝힐 수 있었다.

고종조 중창된 경복궁 후원 영역 및 건축 규모 분석 연구 -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본 북궐후원도형 및 북궐도형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Area of Rear Garden and its Architectural Dimension at Gyeongbok Palace Constructed during King Gojong's Reign)

  • 김성도
    • 대한건축학회논문집:계획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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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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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5-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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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This thesis aims to determine the size of the rear garden and its architectural dimension at Gyeongbok Palace constructed during King Gojong's reign by analyzing Bukgyeol dohyeong(Site plan of Gyeongbok Palace) and Bukgyeol huwon dohyeong(Site plan of Rear Garden of Gyeongbok Palace) applied of scale unit and made from 1905 untill 1909. The results of this study were as follows; With respect to its site, the maximum horizontal length is estimated to be around 448m, the maximum vertical length is around 544m, and the entire area is around $203,905m^2$. Concerning the architecture, the total number of the buildings made up of one or more gan(間) is 32 and the total number of its gan is 292.5, etc.

창덕궁 후원의 경관에 관한 소고 -정조의 "상림십경(上林十景)"을 중심으로 (An Interpretation of Landscape of Ch'angdok Palace Rear Garden -Focused on the king Jongjo's "Sangrimshipkyong" Poem-)

  • 이수학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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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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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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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The rear garden of the Ch'angdok Palace is considered to be representative of gardens of the 15th century to the end of Choson Dynasty in the early 20th century and is very well preserved. Therefore with its long history, it's been represented in various way. This study tried to interprete the rear garden of the Ch'angdok Palace in terms of 'text through king Jungjo's "Sangrimshipkyog". Jungjo's "Sangrimshipkyng" that describes scenery related to ten place of the rear garden of the Ch'angdok Palace was written when he was a crown prince. And the scenery of ten places can't be separated from their physical looks and those ten places were quite different from now. For that reason, to begin with, this study recomposed those ten places through maps and drawings that revived the current looks and rear garden. And what poems tried to tell and what meanings whey had in the literacy of that age that allowed "poem enchained ten scapes" were studied in the context of co-relationship with space. As a text it is very ancient and questions arise on how to correctly interpret the information it holds. But this interpretation is only one side of the various aspects that the rear garden of the Ch'angdok Palace has compared to its long history. In light of the present age an interpretation can have richer and more varied meanings, creating many new viewpoints. creating many new viewpoi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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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trategic Impact of the Summer Palace on China′s ″Silicon Valley″

  • Gao, Da-wei
    • Journal of the Korean Institute of Landscape Architecture International Edi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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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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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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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The Haidian Garden of Zhongguancun Science and Technology Zone is an area with high intellectual intensity. It is therefore known as China's Silicon Valley. The Summer Palace, a World Heritage Site, sits in the northwest part of it. 250 years ago, the construction of imperial gardens in this area, including the Summer Palace, gave birth to the appearance and prosperity of the town of Haidian. This will also provide various opportunities for the growth of the science and technology. Today the green space, the cultural and ecological environment of the Summer Palace, and its 3-kilometer buffer zone are becoming one important strategic factor for the Haidian Garden to attract talents, improve international competitiveness and realize sustainable development. How to taking advantage of the favorable resources, to achieve balance between protection of the environment around the Summer Palace and urban development, will be of great importance in the future plans of the science and technolo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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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궐도상의 존덕정 영역에 나타난 무편액 건물의 조영사적 고찰 (Historical Studies on the Nameless Buildings at the Jondeokjeong Area in Donggwoldo)

  • 정우진;심우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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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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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8-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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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창덕궁과 창경궁이 공유하는 후원인 동궐 후원은 조선왕조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기술과 사상이 집약된 후원으로서 단연코 한국 조경문화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왕실의 휴식공간이었을 뿐만 아니라 국가의 상징적 의례와 인재양성의 장이 되었던 동궐 후원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상당부분 훼철되어 과거의 면모가 일축되었다. 창경궁 북쪽의 후원권역은 일제에 의해 완전히 변형되어, 현재는 주합루에서 옥류천에 이르는 몇 개소의 영역이 후원으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이중에서 본 연구의 대상이 되는 존덕정 영역은 인조 연간에 옥류천 개발이 완료된 직후부터 화원(花園)으로 조성된 정원으로서, 심추정, 척뇌당, 폄우사, 망춘정, 천향각, 청심정 등의 정자가 존덕정을 중심으로 승경의 요점지에 자리 잡은 화목류와 연지 중심의 공간이었으나 현재 존덕정과 심추정, 폄우사만이 남아 있고, 그 외의 정자들은 멸실되거나 변형된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각 건축물에서 감상되는 수요소, 식생, 점경물 등을 분석함으로써 원형적인 조영의도를 구명하는데 주력하였으며, 동궐 후원의 진정성 있는 복원 정비와 조경 시설물을 둘러싼 환경의 보전에 관한 기초적인 지식정보 구축을 위하여 존덕정 영역의 정자인 심추정, 망춘정, 척뇌당, 천향각, 청연각의 5개 정자의 역사적 기록과 조영실태가 고찰되었다. 이들은 "궁궐지"와 실록에는 명칭이 언급되어 있지만 "동궐도"에는 그 이름이 나타나지 않는데, 관련된 문헌자료가 망라되어 고증이 시도되었다. 이중 척뇌당과 심추정은 동궐도상에서 추정 건물을 뚜렷하게 밝힐 수 있었고, 존덕정 서북쪽에 위치한 용도가 불분명한 건물은 천향각 내지는 망춘정이었다고 추정하였으며, 태청문의 담장이 본래 청연각에 둘러쳐져 있었던 담장이었다는 가설도 제시하였다. 뿐만 아니라 이제껏 동궐도와 동궐 후원연구에서 난관으로 여겨졌던 창덕궁 동북쪽 모퉁이에 위치한 용도와 명칭이 불분명한 건물일곽에 대해서는 연산군과 숙종이 사용했던 기록이 발견되었고, 궁궐 사람들 모르게 유희생활을 하는 임금만의 별당이었음을 밝힐 수 있었다.

경복궁 후원 수림의 변화과정 및 주요 노거수군의 역사적 가치규명 (A Study on the Historical Values of the Changes of Forest and the Major Old Big Trees in Gyeongbokgung Palace's Back Garden)

  • 신현실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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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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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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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본고는 최근 74년만의 개방으로 수많은 관람객이 방문하고 있는 청와대 경복궁 후원 공간의 변화과정을 통하여 후원 경관의 역사적 가치를 규명하고자 조선일기와 조선왕조실록, 도성대지도, 북궐도형, 경복궁 복원기본계획 등의 사료와 도면 등을 근거로 경복궁 후원의 시원과 발달과정을 고찰하였고 이를 통하여 다음의 결과를 도출하였다. 첫째, 조선시대 경복궁 후원은 고려시대부터 명당으로 이름난 지역이었고 당시 남경으로 명명되며 신궁이 조성된 지역이었고 고려시대 이미 풍수도참사상과 주국의 고공기의 영향을 받아 궁성과 궁궐이 조영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조선시대 전기 경복궁 후원은 궁궐의 후원으로 각광받지 못하였으나 고종 시기부터 현재까지 국가 통치권자의 생활공간으로서의 장소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둘째, 후원의 경계는 도성지도, La Coree, 경무대일원, 일본지리풍속대계, 한국사진첩, 조선건축도집, 경성부 도시계획 조사서 등의 문헌을 통해 신무문 밖 현재의 청와대 권역이 경복궁의 경외에 조성된 후원임을 규명하였다.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황폐화된 지역을 고종시기 중건과정을 거쳐 공사(公私)가 결합된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후원의 전각들이 이건되거나 훼철되며 법궁의 후원으로서의 장소성이 훼손되었으나 광복 후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며 다시금 통치자의 장소라는 가치를 회복하게 되었다. 셋째, 경복궁 후원은 왜란과 일제강점기를 통해 공간의 변화가 크게 일어났다. 지형적 변화가 가장 큰 곳은 조선총독부관저가 건립되었던 경농재 일원으로 토지의 용도변화가 빈번하였다. 반면 현 경무대지역과 소정원 옆 수림과 백악의 수림은 전통적 수림의 형태를 계승하며 보존되었다. 이를 명확하게 규명하기 위하여 1:1200의 경무대관저경내부지배치도와 위성사진을 신무문 기준으로 중첩하였고 그 결과 백악에서 발원한 물길이 현재에도 여전히 유존하고 있음을 확인하였고 물길을 따라 오늘날까지도 수림지역이 변화하지 않고 존재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넷째, 전통적 수림경관이 계승된 지역들은 지형의 기능적 변화가 미비하였고 더불어 주요 노거수군이 존치되고 있다. 이 지역에서 확인되는 노거수는 역사적 가치를 가지는 지표수종들이었다. 대표적으로 녹지원에 자리한 반송은 융문당 옆 식재된 반송 중 일부가 보존되어 온 것으로 추정되며 국가원수와 중요 귀빈들의 만찬 시 포토존으로 활용되어온 역사성을 지니고 있다. 마지막으로 청와대 내 경복궁 후원의 가치를 지속적으로 보존관리하기 위해서는 일제강점기 사료들에 대한 발굴을 통해 공간의 가치를 명확히 규명하고 시대별 정원고고학적 층위의 위계를 설정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또한 경복궁으로부터 청와대로 이어지는 조선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역사경관을 보존하기 위한 근거는 과거부터 영속되어온 청와대 경복군 후원 노거수군의 영역대를 훼손하지 않아야하며 청와대 내 수림을 전수 조사하는 후속연구가 필요하다.

한·중·일 궁궐정원의 경관 구성 비교 연구 - 창덕궁(昌德宮), 이화원( 頤和園), 선동어소(仙洞御所)를 중심으로 - (A Comparative Study on Landscape Composition of Palace Gardens in Korea, China, Japan - Focused on Changdeokgung Palace, Summer Palace and Sento Imperial Palace -)

  • 윤상준;안승홍;윤성융;염성진;박희성;이원호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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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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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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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본 연구는 동아시아 삼국 한국, 중국 그리고 일본 고정원 문화의 정수이자 역사적 배경과 정치, 문화적 관계성 등을 공간적으로 잘 대변할 수 있는 궁궐정원을 대상으로 형성배경, 입지와 배치, 공간구성, 공간구성요소 그리고 조성계획 및 경관연출기법과 조망적 특징을 비교, 분석하였다. 이를 위하여 유사한 위상을 가진 한국의 창덕궁, 중국의 이화원 그리고 일본의 선동어소를 선정하여 3국의 궁궐정원에 대한 이해와 연구기반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또한 경관 연출을 중심으로 한중일 궁궐정원의 원형에 대한 비교와 분석을 통해 동질성(유사성) 및 이질성(차별성)을 찾아 한중일 궁궐정원이 가지는 정체성을 규명하고 나아가 한국 궁궐정원이 가지는 가치를 제시하고자 하였다. 동질성과 이질성을 기반으로 도출된 비교특성은 다음과 같다. 첫째 자연을 훼손하지 않은 정원의 조성으로 자연에 순응한 한국 고유의 양식을 보여준다. 둘째 동아시아적 사상을 반영한 다양한 상징적 정원요소가 표현되고 있다. 우리 궁궐정원의 발달에 있어 중국의 사상과 기술, 기법 등이 큰 영향을 끼쳤고 또한 유사한 방식으로 공간에 구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수경관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유사함은 한국과 중국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도 찾을 수 있다. 셋째 창덕궁 후원은 엄격한 왕권의 권위보다 풍류적 취향의 문화 예술적 수용체 역할을 하였다. 창덕궁과 이화원, 그리고 선동어소가 문화수용체의 성격을 지니듯이 한중일 3국이 문화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에도 그 형태와 재현의 방법이 다르며 각각 독자적인 궁정정원의 양식을 수립할 수 있었던 것은 각 정원이 각 나라 고유의 문화와 예술을 수용하면서 발전해왔기 때문이다.

조선시대 궁궐 후원 농경지(農耕地) 조영의 특성 (Studies on the Construction Characteristics of Rear Garden Farmland at Joseon Palace)

  • 정우진;심우경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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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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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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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본 연구는 조선시대 궁궐 내에 조성된 농경지 조영의 양상과 공간적 특성을 분석하여 유교적 농본 중심의 시대상이 궁궐 안에서 특수한 권농의 공간으로 반영되었음을 구명하고자 하였다. 대상지는 경복궁 후원, 창경궁 후원과 경복궁 신무문 밖 후원이 되며, 문헌조사를 중심으로 수행되었다. 궁궐 후원 농경지는 "농사직설"의 편찬, 친경례와 기곡제의 설행으로 대변되는 조선 통치집단의 권농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임금이 자신의 거주지인 궁궐 안에 한 해 농사의 풍흉을 가늠할 포지를 조성한 것이며, 국초부터 일제 강점기 직전까지 각 궁궐에서 운영되었다. 조선시대 후원 농경지 4개소에 대한 분석 결과로는 첫째, 세종 때 조성된 경복궁 후원 농경지는 현 향원지 내부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선진농법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포지로 조성되었다. 성종이 조영한 창경궁 후원 농경지는 조선 최초의 친경례 직후에 조성되어 적전친경의 맥락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인조는 경덕궁이 임시로 거처했던 시어소임에도 불구하고, 체류의 기간이 장기화되자 정전의 뜰을 파고 농포로 조성하였는데, 조선시대 정치사에서 후원 농경지의 비중이 매우 높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고종이 조성한 경농재 일곽의 농포는 선대의 권농행보를 계승하면서 창경궁 후원 농경지의 공간 구성을 그대로 가져온 특성을 보이고 있다. 둘째, 관수와 수체계, 관경대의 명칭, 입지에 있어서 일정한 공통점이 도출되었는데, 이는 조선시대 농본공간의 보편적 형식으로 판단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후원 농경지 외에 궁궐 내에서 내관들에 의해 관리되던 채전과 국가의 큰 제사에 쓰일 과일을 위한 궁궐 내 과수원의 운영 양상을 고찰하여 조선시대 궁궐 조경이 엄숙함, 질서정연함이나 장식성에만 치중되지 않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 생산적 조경공간으로 존재하고 있었음을 밝힐 수 있었다. 또한 궁궐에서 왕실의 주도로 생산적 조경의 다양한 활동이 전개되고 있었고, 임금이 솔선수범하여 선진농법을 시험하였다는 점은 우리의 고유한 궁궐조경의 일면이 되며, 조선의 독자적인 궁궐문화로서 그리고 여타의 유교 국가에는 없었던 유일한 애민농본의 조경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