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POE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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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시화(惺叟詩話)』 속 풍격(風格) 용어(用語)를 통해 본 허균(許筠)의 '청(淸)'계열(系列) 풍격(風格) 연구(硏究) - 청경(淸勁)'·'청절(淸切)'·'청초(淸楚)'·'청월(淸越)'을 중심으로 - (A Study on Heo Gyun's 'Clean(Cheong: 淸)' Kind Style Examined through Style Terminologies in Seongsushihwa(『惺叟詩話』))

  • 윤재환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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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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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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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이 글은 허균의 "성수시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풍격 용어 중'청(淸)'계열에 주목하여 '청(淸)'계열에 해당하는 풍격 용어가 지니는 각각의 변별적 지점을 알아보고자 한 것이다. 허균의 "성수시화"에는 "청경(淸勁), 청량(淸亮), 청려(淸麗), 청섬(淸贍), 청소(淸?), 청월(淸越), 청장(淸壯), 청절(淸絶), 청절(淸切), 청창(淸?), 청초(淸楚)" 등 '청(淸)'계열의 풍격 용어가 모두 11종류 사용되었는데, 이 글에서는 실제 작품을 거론하여 그 풍격을 제시한 '청경(淸勁)', '청절(淸切)', '청초(淸楚)', '청월(淸越)'에 주목하여 살펴보았다. 분석의 결과 "성수시화"에 나오는 '청(淸)'계열의 풍격 용어 '청경(淸勁)' '청절(淸切)' '청초(淸楚)' '청월(淸越)'은 모두 제1자인 '청(淸)'의 이미지를 공통 속성으로 하면서도 제2자에 의해 구분되는 변별적 자질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4개의 풍격 용어들은 모두 맑고 깨끗함을 뜻하는'청(淸)'의 이미지 속에 각각의 개별적 특성에 해당하는 제2자의 속성을 두었다.'청경(淸勁)'은 강직하고 굳셈을 의미하는'경(勁)'의 이미지를 투사하여 맑은 시의 경계 속에 강직하고 굳건한 시인의 기상이 엿보이는 시를 뜻하고, '청절(淸切)'은 절박하고 절실함, 또는 애처롭고 서러움을 의미하는'절(切)'의 이미지를 투사하여 맑고 깨끗한 시의 경계 속에 절박하고 애처로운 시인의 정서를 담고 있는 시를 뜻하며, 청초(淸楚)'는 여리고 고움, 또는 가늘고 부드러움을 의미하는'초(楚)'의 이미지를 투사하여 맑고 깨끗한 시의 경계 속에 화려하지 않은 아름다움이나 섬세하고 부드러운 시인의 정서를 담고 있는 시를 뜻하고, '청월(淸越)'은 탈속적이고 빼어남을 의미하는 '월(越)'의 이미지를 투사하여 맑고 깨끗한 시의 경계 속에 세속을 뛰어넘는 빼어난 풍모와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시를 뜻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허균이 사용한 풍격 용어의 제1자가 가지는 속성에 비해 제2자의 속성은 선명하게 나타나지 않았다. 특히 제2자가 유사한 의미를 지니고 있을 경우 그 범주를 명확히 하기는 더욱 쉽지 않다. 따라서 풍격 용어의 명확한 변별적 자질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먼저 제1자를 중심으로 풍격 용어들의 계열을 구분하고, 이후 이렇게 구분된 동일 계열의 풍격 용어를 다시 제2자를 중심으로 정리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이 경우 풍격 용어 각각의 제2자가 지칭하는 내용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 그것은 풍격 용어가 작품의 미적(美的) 특질(特質)과 함께 작가(作家)의 개성(個性)을 동시에 설명하는 것이고, 작품의 미적 특질에 대한 설명은 작품이 만들어 낸 최종적인 시경(詩境) 또는 의경(意境) 뿐만 아니라 작품의 형성 과정과 표현 기법까지도 포괄하기 때문이다. "성수시화"에서 허균이 사용한 풍격 용어들을 보면, 허균은 표현 기법이나 창작 방법보다 시 속에 드러난 작가의 기상과 시가 만들어낸 최종적인 의경(意境)에 주목하여 시를 평가하였다. 이와 같은 허균의 풍격 비평이 지니는 전반적인 양상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료를 보다 확충하여 더 자세하게 확인해 나가도록 하겠다.

허균과 매창의 시조 (Hu Kyoon and Maechang of Sijo)

  • 김명희
    • 한국시조학회지:시조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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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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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5-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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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허균과 매창은 사대부와 기녀의 관계로 알게 된 사이다. 그러나. 허균은 매창을 여성 문학인으로 재능을 인정하고 평생 시우로 존경하며 사랑한 사이였다. 허균은 천재 시인, 혁명가, 이상향을 꿈꾸는 평등주의자여서 여성과 서얼을 인간으로 대접하려는 따뜻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그러한 허균이 매창을 중국에 기녀시인 설도에 비견하고 매창을 조선의 최고 기녀시인으로 손꼽는 데는 매창 시의 한 특성이 있다고 본다. 그녀의 시조는 상실감에 가득한 비애 가운데서도 임과의 재회를 꿈꾸는 소망의식이 가득한 시 의식을 지니고 있다고 본다. 또한, 그녀는 사대부와의 관계에서 나름대로 등거리 사랑을 추구하였고 그에 성공하였기 때문에 성적 욕망의 대상인 기녀 신분이면서도 성이 뒤로 앉은 정조 어린 여성으로 자리 잡아 사대부들의 존경과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시인이었다. 허균의 폄하 발언으로 얼룩진 평가를 재평가하고, 매창의 시가 비애 의식에 머물러 있지 않고 소망의식으로 발돋움하였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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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시에 수용된 마르크 샤갈 그림 - 김영태 시집 "유태인 사는 마을의 겨울" 김춘수 시 "샤갈의 마을에 내리는 눈" 이승훈 시집 "시집 샤갈$\lcorner$에 수용된 샤갈의 그림세계 (Mark Chagall's Paintings Transferred into Contemporary Korean Poems: Youngtae Kim's Anthology, Winter in the Village of Jews, Chunsoo Kim's "Snow Falling on the Village of Chagall," and Sunghun Lee's Anthology, Poetic Anthology of Chagall)

  • 윤호병
    • 인문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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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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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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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In his discussion of some desirable tuning points in comparative literary studies, Henry H. H. Remark has emphasized the importance of literary approach to other forms of art. Understanding the significance of such a method of comparative literature, the present study focusses on three contemporary Korean poets who have transferred Mark Chagall′s paintings into their poetry: Youngtae Kim, Chunsoo Kim, and Sunghun Lee. They are usually evaluated as surrealist/modernist in our literary circles. In transforming Chagall′s paintings into his poems, Youngtae Kim has incorporated a variety of surrealist mosaic techniques such as montage and collage. The resultant peculiarity of his poetry makes it hard to lay bare the correspondence or similarities between his poetic world and the world of Chagall′s artistry. It is nonetheless possible to see how Kim, as a poet and painter, had interpreted Chagall′s world with a bird′s-eye view of it. Chunsoo Kim′s "Snow Falling on the Village of Chagall" relates specially to one of Chagall′s paintings, "I and My Village." The present study has taken notice of this correlation in sorting out some basic elements of poetic transfiguration. One of the techniques employed in the poem under discussion is that of juxtaposing the Russian village of Chagall and the Korean village the poet visualizes, with the effect of putting two national traditions in contrast. A reading of the poem reveals that it is not so much the result of a detailed analysis of the painting as a revival of its lingering impression as a whole. In Sunghun Lee′s poetry, surrealist techniques are again a hallmark. But his method of transferring the images of the paintings into his poems falls somewhere between those of Youngtae Kim′s and Chunsoo Kim′s: it is akin to the ′bird′s-eye method′ of the former and shares the impressionistic touch with the latter, but at the same time Lee is analytical by disposition and opts for concrete descriptions. ′Love,′ ′farm,′ and ′time′ are the keywords that are brought under discussion in the present study. There is a growing demand in the current international comparative literary studies for broadening the area of comparative literature. This study hopes to be a small contribution to endorsing the importance of comparative approach to fine 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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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계(漁溪) 조려(趙旅)의 은둔과 문화경관 (The Eyogye Cho Lyeo and His Secluded Cultural Landscapes)

  • 이행렬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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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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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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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어계 조려 선생의 시작품과 그의 세거지 및 후대에 조성된 문화경관 요소들을 통하여 조선전기 은둔자로서, 선비로서 지켜 나갔던 은둔문화 경관의 특징을 파악하는데 연구의 목적을 두었다. 연구대상지로는 그의 세거지였던 원북재, 채미정, 고마암, 묘소 등을 중심으로 하였다. 연구방법으로 "어계집(漁溪集)" 등과 같은 관련 고문헌의 조사와 현장조사를 통하여 세거지에 나타난 경관요소의 파악, 그리고 조려의 은둔문화 경관 특정 분석, 시문에 나타난 의경미학의 분석 등으로 구분하여 진행하였다. 연구의 결과, 1) 조려는 단종의 폐위와 함께 성균관에서 고향으로 은둔하여 세상과 결별하면서 단종에 대한 충절을 지켰다. 2) 그의 출처관에 영향을 주었던 인물로는 성균관 동학이었던 류계분, 배중후 등과 생육신으로 교분을 나누었던 원호, 김시습 등을 들 수 있으며, 이들과 은둔관을 같이 했다. 3) 조려의 은둔이 갖는 의미는 호 '어계'에서처럼 어부로서의 은둔관을 표명한다. 이러한 은둔문화는 독특한 행동양식으로 나타나는데, 행동의 집중화 현상, 절대 은둔의 기행, 산천유람과 풍수지리학의 조예, 은둔의 고집스런 지속성, 실천효행의 유가적 자세 등이 있다.4) 은둔문화의 경관영역을 네 곳으로 구분하여 각각의 특징을 살펴본 바, 조려 당대의 은둔문화 경관과 후손과 사람들에 의해 전승되어진 경관전승으로 파악할 수 있다. 5) 시문에 나타난 의경미학을 분석한 결과, 경물로는 식물, 자연요소와 인공요소 등이 있었으며, 표현되어진 주제의식으로는 '유가적 은둔', '아취있는 은둔', '충절의 은둔' 등으로 나타났다.

조지훈의 한용운 인식방법 비판 (Criticism on Cho Ji-hoon's Recognition of Han Yong-un)

  • 이선이
    • 비교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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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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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5-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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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조지훈은 해방 이후 한용운에 대한 인식을 주도적으로 생산한 논자이다. 그는 한용운을 민족시인으로, 그의 시를 저항적 민족시의 한 전형으로 평가함으로써 한용운에 대한 현재적 인식의 시각과 방법을 제시하였다. 여기에서는 조지훈이 남긴 세 편의 '한용운론'을 분석하면서, 한용운에 대한 조지훈의 인식이 어떻게 논리화되었는지 살펴보았다. 이를 위해 시인론과 작품론에 대한 인식을 분리하고, 각각의 인식이 조지훈의 역사인식 및 문학인식과 어떤 정합성을 갖는지에 대해 추적해 보았다. 그 결과, 조지훈이 한용운의 생애와 작품을 파악하는 인식의 근저에는 정신사로서의 세계인식이 전제되어 있었다는 점, 절대가치로 상정된 민족이 이질적인 차이들을 봉합하는 논리였다는 점, 민족정신과 시의 결합이 시인지사론(詩人志士論)과 민족시의 논리로 표출되었다는 점을 파악할 수 있었다. 또한 그의 논리에는 인권과 민족주권의 결합, 민족과 선(禪)의 결합으로 인한 논리적 균열이 내재해 있으며, 시인의 사명에 대한 다른 가능성이 충분히 논리화되지 못한 채 미완인 채로 논의가 끝나버렸음을 밝혔다.

차경(借景)을 통해 본 소쇄원 원림의 구조 - 「소쇄원시선(瀟灑園詩選)」과 「소쇄원30영」을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Structure of Soshaewon Landscape Garden Featuring Borrowed Scenery - Focusing on the Soshaewon Sisun and the Thirty Poems of Soshaewon -)

  • 소현수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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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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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9-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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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자연친화적 전통경관을 이해하기 위해서 차경(借景) 개념에 착안하고 "원야(園冶)"의 차경론과 의경론(意境論)이라는 중국 원림 이론을 빌려 전통정원을 해석하였다. 연구 방법론으로 원림 감상자가 취사 선택한 차경의 양상과 그 결과로서 의경이라는 추상적 경지에 도달하는 차경 구조를 도출하는데 적합한 시문 분석을 선택하였다. 구체적으로 조선시대 소쇄원 방문자들의 감상 기록을 모아 번역한 "소쇄원시선(瀟灑園詩選, 1995)"과 양산보(梁山甫, 1503~1557)의 5대손 양경지(梁敬之, 1662~1734)가 지은 "소쇄원30영(1696)"을 중심으로 소쇄원의 차경 양상을 고찰하고, 차경과 연계하여 원림의 구조를 도출하였다. 연구의 첫 번째 결과로서 기존에 시각 틀을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이해한 차경 개념을 넘어서 시각적, 공감각적, 일시적, 관념적 차경으로 유형화하였다. 이에 소쇄원 방문자들은 실경과 허경으로 구성된 원림을 네 가지 유형으로 차경함으로써 소쇄원을 시적 정취와 미적 감성을 제공하는 공간으로 재창조하여 의경을 성취한다는 차경 구조를 제시하였다. 두 번째 결과로서 현재 계정(溪亭) 위주의 내원(內園)으로 인식되는 소쇄원에 시각적, 공감각적, 일시적 차경이 이루어진 조망권과 함께 후대에 담장 밖 부지에 다양한 기능을 담았던 외원(外園), 그리고 소쇄원가 사람들이 도학적으로 교류한 인맥에 의한 증암천(甑岩川) 권역과 신선세계를 갈망하며 읊은 명산(名山) 등 관념적 차경으로 형성된 영향권원을 규정함으로써 세 가지 유형의 원림으로 이루어진 소쇄원의 영역과 구성요소들을 도식화하였다.

춘당(春塘) 오수영(吳守盈)의 생애와 교유 양상 (A Study of the Life and Companionship of Chundang Oh Su-yeong)

  • 박동욱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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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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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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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오수영(吳守盈, 1521~1606)은 자는 겸중(謙仲), 호는 춘당(春塘) 또는 도암(桃巖)이다. 이황(李滉)과 이해(李瀣)의 문인으로 알려져 있다. 글씨를 잘 써서 금보(琴輔) 이숙량(李叔樑) 등과 함께 선성삼필(宣城三筆)의 칭호를 얻었다. 저서로 "춘당문집" 2권이 있다. 그는 퇴계(退溪)의 문도(門徒)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인물이다. 아직까지 그에 대한 연구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 본고에서는 그의 생애와 교유 양상에 대해 살폈다. 이를 통해서 문학사에서 사라진 한 명의 인물을 복원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춘당(春塘) 오수영(吳守盈)의 가계와 도학적 생애에서는 그의 가계와 생애에 대해 간략히 정리했다. 그에 대한 연구는 아직까지 한 번도 이루어지 않았기에 이 부분에 대한 정리는 매우 의미가 있다 할 수 있다. 다음으로 퇴계 문도와의 교유를 살펴보았다. 그가 교유한 인물들은 거의 모두가 퇴계의 문도였으니 이러한 사실에서도 그의 지향하는 바가 드러난다 할 수 있다. 오수영과 예안 지역 퇴계 학파와의 교유를 통해서 퇴계 학맥의 실체적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시에는 우도(友道)에 관한 시가 많은데, 여기에는 진솔한 인간미가 표출(表出)된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의 인물들이 퇴계문도였음도 확인할 수 있었다. 따스한 감성을 보이는 영물시(詠物詩)에서는 그의 번뜩이는 재치를 느낄 수 있다. 전란(戰亂)의 체험을 담은 시들을 통해 노년에 겪은 전란의 체험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거기에는 노년이라 직접 참전(參戰)할 수 없는 무력감이 짙게 깔려 있다. 본격적인 그의 시세계에 대한 탐색은 추후의 연구 과제로 남겨둔다.

송대 '대나무' 도상의 상징에 대한 고찰 - 『성화집(聲畵集)』의 '대나무' 제화시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symbols of bamboo icon in bamboo paintings - Focused on 'bamboo' Ti-hua-shi(題畵詩) in 『Sheng-hua-ji(聲畵集)』)

  • 서은숙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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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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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1-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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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고는 그림에 제하거나 그림을 대상으로 한 제화시(題畵詩)의 특성에 비추어볼 때 묵죽(墨竹)의 형상성이나 형상 과정이 잘 묘사될 수 있다고 여겨, 송대(宋代) 제화시를 수록한 대표적 제화시집인 "성화집(聲畵集)"에 실린 '대나무' 제화시를 통해 북송대 이후 묵죽화의 발전 양상과 그것의 도상학적 의미를 살펴본다. 묵죽화 발전 양상과 그 유형을 살펴보면, 북송대에는 당시 어부(御府)에 148축의 묵죽화가 있었다고 전해질 정도로 묵죽화가 성행했다. 화면 속에 등장하는 묵죽의 모습, 즉 그림 속의 '도상'은 와룡처럼 누운 횡죽(橫竹)이나 교룡처럼 굽은 우죽(紆竹)이 많이 등장하고, 특히 많은 대나무가 겨울에 서리를 맞고 서 있는 모습으로 나타난다. 송대에 오면 '대나무' 도상에 대한 인식은 유가적 이상형인 군자라는 보편적 인식과 더불어, 대나무를 자기표현의 한 수단으로 여기고 문인 사대부 특유의 문인성을 표현할 수 있는 대상으로 보게 된다. 그 결과, 전업화가들이 단청(丹靑)과 형사(形似)에 몰두해 그린 대나무가 아니라 문인 사대부 즉 자신들이 '묵죽'을 창작하고 감상하는 것을 최고로 여겼다. 묵죽에 대한 송대 문인사대부의 애호와 관심에는, 유가적 이상형인 군자 외에 시련에도 불요불굴하는 의지의 구현자이자, 부귀와 공명이 아니라 사회를 위해 도덕적인 책임과 문화적 과제를 온전히 수행할 수 있는 진정한 '문인성'의 체현자라는 인식이 그 바탕에 깔려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중기 밀턴의 종교적, 윤리적, 정치적 이상주의 -그의 영웅적 소네트와 산문의 관련성을 중심으로 (Religious, Ethical, and Political Idealism in Middle Milton: Focusing on the Relationship between His Heroic Sonnets and Prose Works)

  • 최재헌
    • 영어영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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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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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5-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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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In the 1640's and 1650's, Milton wrote many prose works on a variety of topics such as education, church polity, divorce, censorship, regicide, tithing, civil liberty, and blindness. Much of his prose shows us turbulent decades of English history. In this period, he also published his first collection of poems and wrote sonnets. He wrote 23 sonnets in his life, and many sonnets Milton wrote after he had become Latin secretary are occasional poems in historical time. Milton's sonnets, as Annabel Patterson says, are a marker in his personal development, in his life, in his career as a writer, and in the history of his time. Four sonnets (15, 16, 17, 23), written between 1648 and 1655, were not published in the collected edition of Milton's poem in 1673. These sonnets, addressed to leaders of the Parliamentary party during the English revolution, Thomas Fairfax, Oliver Cromwell, and Henry Vane, and to his friend Cyriack Skinner, have been known as "commonwealth" sonnets. They are also called as "heroic sonnets" because they have the common style and theme with his later heroic epic poems. These sonnets were finally published in 1694 by Milton's nephew John Phillips. Milton was interested in religious, domestic, and political liberty for his lifetime, and his heroic sonnets also deal with these ideas of liberty. Milton asks civil liberty from Fairfax, freedom in religion from Cromwell, and from Vane for the reconciliation of both. The aim of this article is to examine how the rhetorical strategies of his "left-handed" prose interact with those of his "right-handed" poetry. This paper explores the relationship between Milton's heroic sonnets and his prose works, such as The Second Defense of the People of England, A Treatise of Civil Power, and The Likeliest Means to Remove Hirelings. Milton deals with the critical issues of religious tolerance, the separation of church and state, liberty of conscience and defense of his blindness, and attempts to define the statesman's role in peacetime England in these heroic sonnets and prose works.

우잠(愚岑) 장태경(張泰慶) 생애(生涯) 연구(硏究) (A Study on the life of WooJam, Jang-Taegyung)

  • 박상영;이정화;권오민;한창현;안상우
    • 한국의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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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4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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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7-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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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With the discovery of WooJam JabJeo, Jang-Taegyung[1809~1887] was highlighted as a noted doctor who won fame in the neighborhood of Gwangju, but with 'WoodJam Mango' seeing the light of day, this study was able to confirm the appearance of a literary man enjoying a reputation enough to sway literary circles with his writing of poems. It's possible to confirm his past related to medical service only until age of 42, which is because description in "WooJam JabJeo" came to a halt there. The situation is that the contents of 'WooJam Mango' started from age of 46 and were carried on even until after his death by his followers. Therefore, there exists a very intense impression that he might have put a focus on the life as a literary man ever after his mid-40s. and considering that he breathed his last at the age of 79, it's not difficult for us to estimate that his life was predominantly a series of literary activities rather than a health care provider. The place names appearing in "WooJam JabJeo" and "WooJam Mango" are limited to today's Jeonlanam-do, and this researcher would say that the through-composed poems, which sang of the beauty of Gwangju area scenery are the works, deserve to get a spotlight in local history even today. Through the above discussion, this study could prove that WooJam is a flawless figure enough to represent Gwangju and Jeonlanam-do as a health care provider and a literary person as wel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