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Over-Politiciz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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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문제의 과잉정치화와 극단적 양극화 분석: 갈등전환(Conflict Transformation)의 제도화 모색 (Overcoming Over-Politicization and Extreme Polarization of North Korean Issue: The Institutionalization of Conflict Transformation in South Korean Society)

  • 이무철
    • 한국과 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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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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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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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는 북한의 남남갈등 개입과 이를 둘러싼 한국사회의 갈등구조를 '갈등전환' 개념에 입각한 접근방법으로 분석함으로써, 북한문제의 과잉정치화로 인한 극단적 양극화의 극복방안을 모색하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했다. 우선 한국사회에서 진행된 2007년과 2012년 두 차례의 대선 국면과 2008년 광우병 문제로 전개된 촛불집회 국면, 그리고 2014년 세월호 사건으로 진행된 촛불집회 국면에서 북한이 어떻게 개입했는지를 분석하였다. 이를 위해 북한의 공식 매체인 『로동신문』이 게재한 기사 내용을 분석하였다. 그리고 북한의 남남갈등 개입 양상과 성격, 한국사회에서 북한문제의 과잉정치화와 극단적 양극화의 실체와 원인을 갈등의 맥락, 관계, 기억의 차원에서 분석하였다. 그 결과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뿐만 아니라 한국사회 내 보수-진보세력 간 관계의 재설정이 필요하고, 이러한 새로운 관계설정을 바탕으로 한 상호 기억의 재구성 및 공유 작업이 요구됨을 확인하였다. 본 연구는 갈등전환적 접근을 통해 기존 연구의 한계를 보완함과 동시에 종합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 연구의 의의를 찾을 수 있다.

프랑스 이중국적자의 국적박탈 논쟁과 안보화 (securitization) (Nationality Deprivation of Double Nationals in France and Securitization)

  • 박선희
    • 국제지역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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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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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7-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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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프랑스에서 테러범의 국적박탈을 가능하게 한 것은 1996년 법부터로 이후 두 차례(1998년 법, 2006년 법)의 관련 법 개정이 있었다. 이어 2010년 이민 법안에 국적박탈 구문 수정안이 발의된 바 있고 2015-2016년에 국적박탈 대상 확장을 가능하게 하는 헌법개정안이 논의되었지만 채택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이중국적자와 테러범과의 관계가 쟁점으로 떠오르고 이민자와 안보문제는 더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게 되었다. 특히 2016년에는 올랑드의 헌법 개정안이 포기되었지만 비상사태는 계속 연장되고 이중국적자 국적박탈 문제는 뜨거운 논쟁으로 남겨졌다. 4개월 넘게 지속된 논의 끝에 국가비상사태 조항 삽입과 함께 국적박탈 확장 계획을 담은 헌법개정안이 철회되었지만 그 동안 비정치적인 사안(non-politicized)이었던 이중국적자 문제는 정치적 쟁점(politicized)이 되어 안보문제로 규정되는 안보화(securitized)의 경로를 거치게 된다. 이는 부잔(Buzan)을 위시한 코펜하겐 학파가 주장하는 안보화의 '두 단계 과정(Two-stage process of securitization)'을 거쳤음을 보여준다. 코펜하겐 학파의 안보화 개념이 중요한 것은 안보화 과정의 구성적 요소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안보화의 경로를 프랑스에서 이중국적자의 국적박탈 논쟁에 적용해보면 쟁점이 되지 않았던 비정치적인 이중국적자 문제가 화행(speech-act) 또는 공표효과(announcement effect)를 통해 어떻게 정치화되어 사회적 어젠다로 규정되는 지를 고찰할 수 있다.

신구(新舊) 관념의 교차와 전통 지식 체계의 변용 (The Conceptual Intersection between the Old and the New and the Transformation of the Traditional Knowledge System)

  • 이행훈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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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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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5-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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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고는 서양 근대 문명 수용 초기(1890~1910)에 발생한 신구 관념의 대립과 충돌을 중심으로 전통 지식 체계의 변용을 역사의미론적으로 탐색함으로써 한국의 근대를 성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한국에서 신구 관념을 놓고 벌어진 주체 간의 투쟁은 전통개신론자들과 문명개화론자들의 주장에서 첨예하게 드러났다. 서양의 충격에서 비롯된 신구 관념의 대립과 충돌은 우주 자연으로부터 사회 정치체제, 학술?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였지만, 전통 지식 체계를 이해하는 시각에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신구 관념에 따른 전통 지식 체계의 구축과 변용과정에서 문명개화론자들에게 '구(舊)'는 단순히 과거의 '지나간', '오래된' 것이 아니라 파괴하고 제거하지 않으면 새로운 문명 건설을 방해하는 장애물이었다. 그러나 전통개신론자들에게 '구(舊)'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의 이념 속에서 다시 '신(新)'으로 거듭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함하고 있는 '개신(改新)'의 대상이었다. 박은식의 "유교구신론(儒敎求新論)"이나 한용운의 "조선불교유신론(朝鮮佛敎維新論)"은 전통 지식 체계를 '신학(新學)'으로 재편하려한 대표적인 시도였다. 보편성과 객관성, 합리성을 추구하는 과학적 방법을 수용함으로써 전통 지식 체계는 근대적인 학문으로 변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학(新學)으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성학(聖學)으로서의 위상은 탈각되었고, 신앙과 종교적 전통 또한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전통 지식 체계의 변용과 '구학의 신학화' 과정에서 신구 관념의 교차가 발생하였다. 여기서 특히 신구 관념의 교차를 가능하게 한 '실(實)(학(學))' 개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전후 발간된 다종의 근대 매체는 신구 관념의 다층적 전개 양상을 여실히 보여주는데, 전통 지식 체계가 신학(新學)으로 변용될 수 있었던 계기로서 '실학'이라는 개념적 준거틀이 작동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이 시기 실학이 지칭하는 대상은 대체로 서양의 학문인 '신학(新學)'을 표상하고 심지어 등치되기도 했지만, 전통개신론자들은 문명개화론자들이 점유하였던 '실학' 개념과 그 의미를 재해석함으로써 전통 지식 체계를 신학으로 바꿀 수 있었다. 이들은 과학 기술에 압도되어 점차로 거세되어가던 전통적 가치를 '신학' 수용의 토대로 인식하고, '실학(實學)'을 개념을 준거로 하여 '신학(新學)'을 재전유(再專有)(re-appropriation)하였다. 일제의 강점이 구체화 되어 전통 지식 체계의 주체적 변용 시도는 일정한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었지만 '구학의 신학화'는 '동도서기(東道西器)' 논리가 지닌 모순과 문명개화론의 탈주체성을 넘어서는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도덕 원리와 경쟁 원리가 충돌하고 '진화'와 '진보'가 대세인 현실에 대응하려했던 '동도서기(東道西器)' 논리는 이미 분리될 수 없는 도(道)와 기(器)를 분리 가능한 것으로 상정해야만 성립되는 모순을 안고 있었고, 문명개화론은 서양을 내면화하여 자기 비하와 멸시로 주체의 균열을 야기하고 전통 지식 체계로부터 단절됐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