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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파괴 분석을 활용한 공주 대통사 추정지 출토 주칠흔 기와의 제작기술 검토 (Consideration of Making Techniques for Red Painted Roof Tiles from Presumed Site of Daetongsa in Gongju Using Nondestructive Analysis)

  • 이찬희;이규혜;정제원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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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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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5-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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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대통사는 삼국시대 사찰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창건주체와 목적 및 사찰명 등은 고문헌과 공주지역에서 출토된 '대통' 명의 유물에서 확인할 수 있으나, 사찰의 위치와 사역에 대해서는 다양한 논의가 진행 중이다. 이 연구에서는 공주 반죽동 일대의 대통사 추정지에서 출토된 주칠흔(적색안료) 기와에 대해 비파괴 분석으로 제작기법을 검토하였다. 연구대상 기와의 등면에는 주칠흔이 선명하며, 원료는 정선과정을 거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태토를 점토판으로 제작하여 와통에 포목을 둘러 붙이는 방식으로 성형하였으며, 일부 기와는 모골와통을 활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한편 등면에서 나타나는 주칠흔의 산출상태와 조성으로 볼 때 산화철을 주성분으로 하는 석간주 또는 주토를 활용한 단청 안료로 해석된다. 고문헌에 알려진 석간주의 산출지는 공주에서 원거리에 있으나, 산화철은 다수의 암석에서 비교적 쉽게 나타나는 물질로서, 근거리의 원료수급과 관련하여 대통사 추정지를 중심으로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제올라이트와 활성 황토를 혼입한 시멘트 모르타르의 광촉매(TiO2) 코팅에 따른 NOx 저감성능평가 (Evaluation of NOx Reduction Performance by Photocatalytic (TiO2) Coating of Cement Mortar Mixed with Zeolite and Activate Hwangtoh)

  • 박장현;김혁중
    • 한국건설순환자원학회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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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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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83-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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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미세먼지는 머리카락 두께의 약 1/5 수준인 PM10(입자의 지름 10㎛이하)과 PM2.5(입자의 지름 2.5㎛이하)로 구분되며, 인체에 미치는 영향으로 폐질환, 혈관을 통한 동맥경화 및 심장 질환 등 각종 질병을 유발하는 발암물질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미세먼지의 주요 원인은 도심지 도로변에서 발생되는 약 57.3%가 자동차에서 배출되는 이산화질소(NOx)로 알려져 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도로이동오염원에서 발생하는 NOx를 저감하기 위한 기능성 건설재료 개발의 일환으로 시멘트를 다공성 소재로 치환한 시멘트 모르타르의 치환율에 따른 NOx저감성능 비교 평가를 실시하였다. 또한 시멘트 모르타르의 광촉매 적용방법 및 도포 횟수에 따른 NOx저감성능을 비교 평가하였다. 실험결과 활성황토를 30% 치환하여 사용한 경우 약 32.7%의 저감효과를 나타내 가장 우수한 저감성능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휴대용X선형광분석기를 이용한 통도사 영산전 벽화 안료의 과학적 성분분석 (A Scientific Analysis of Ancient Pigments on Wall Paintings at Yeongsanjeon in Tongdo Temple Using a Field-XRF)

  • 한민수;이한형;김재환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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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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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2-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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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고대에는 단청이나 고분벽화, 사찰벽화, 불화 등 문화재에 다양한 색상을 구현하고자 무기안료 또는 유기안료를 많이 사용하였다. 이 연구는 통도사 영산전내 벽체에 그려진 사찰벽화의 안료를 휴대용X선형광분석기로 정성분석하여 사용안료의 종류를 밝히고자 하였다. 성분분석 결과와 기존 고대 벽화 안료의 분석 결과들을 종합해 볼 때, 영산전 벽화에 사용된 적색은 주사와 석간주로 추정되며, 백색은 연백이 사용되었고, 일부 호분이나 백악, 백토 등의 사용 가능성도 있다. 녹색은 2가지가 사용되었는데 주로 바탕칠에 사용된 밝은 녹색은 녹토이고, 광배부분 등의 진한녹색은 석록이나 동록, 녹염동광으로 판단된다. 황색과 흑색은 각각 황토와 먹이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육색과 분홍 등 원색이 아닌 안료들은 적색에 백색안료를 혼합하거나, 진적색에 황색안료를 혼합하는 것과 같이 2가지 이상의 안료를 적절하게 섞어서 사용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결론적으로 성분분석으로만 판단하였을 때 통도사 영산전에 사용된 안료는 모두 고대에 주로 이용되었던 무기 안료임을 알 수 있었다. 다만, 문화재임으로 안료의 일부를 채취하여 결정구조분석 등의 방법으로 광물을 동정한 것이 아니므로 특정 원료 광물을 명확하게 판단하기는 어려웠다.

조선 세종대 삼물회(三物灰) 도입에 따른 석실릉 구조개선과 의의 (A study on the significance and structural improvement of the stone chamber tomb by the application of a compound lime - Mortar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ng in the Joseon Dynasty)

  • 신지혜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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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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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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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본 연구는 세종대에 삼물회를 조선왕릉에 도입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1446년(세종 28년) 영릉의 구조적 변화가 갖는 의미를 살펴보는 데 중점을 두었다. 조선초 왕릉은 고려의 석실릉을 답습하여 조성하였다. 조선왕릉으로 처음 지어진 신덕왕후의 정릉은 고려의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정릉·현릉을 건립한 경험을 갖고 있는 김사행이 주도적으로 건립하였다. 이후 박자청이 이어받아 조선 초 석실릉을 건립하였으므로, 고려의 석실구조를 기반으로 조선왕릉이 조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러나 성종대의 『국조오례의』에 기록된 석실의 구조를 살펴보면 고려의 것과는 매우 다르다. 뿐만 아니라 『세종실록』에 기록된 태종과 원경왕후의 석실제도와도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석실에 삼물회를 도입하여 구조적인 보강을 시도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1446년(세종 28년) 소헌왕후의 국상으로 영릉(英陵)을 건립할 때, 석실 내에 물이 스며들거나 고이지 않는 밀실한 구조를 만들고자 했던 세종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1446년 세종과 소헌왕후의 합장릉으로 조성된 영릉(英陵)과 1452년에 조성된 문종의 현릉(顯陵)은 석실구조 바깥에 삼물회격을 추가로 시공한 석실과 회격의 복합구조체이다. 이것은 1468년(예종 즉위년) 세조의 유교에 따라 석실을 폐지하고 회격만으로 현궁을 만드는데 구조적 기반이 되었다. 즉, 영릉과 현릉의 구조에서 내부의 석실구조를 제거하고, 바깥의 회격만을 시공함으로써 회격 현궁이 조성된 것이다. 이로써 조선왕릉은 『국조오례의』에 기록된 석실과 회격의 복합 구조체인 회격석실릉에서, 석실을 제거하고 회격만을 조성하는 회격릉으로 정착하게 된다. 이러한 전개과정을 살펴볼 때, 1446년(세종 28)에 삼물회로 만든 회격구조를 석실에 결합한 회격석실릉은 조선만의 특별한 석실구조이며, 조선왕릉의 지하구조가 회격릉으로 변천하게 되는 기반이 되었음을 논증한다.

조선말기 백선도(百扇圖)의 새로운 제작경향 - 독일 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 소장 <백선도(百扇圖)>와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백선도(百扇圖) 초본(草本)>을 중심으로 - (New Trends in the Production of One Hundred Fans Paintings in the Late Joseon Period: The One Hundred Fans Painting in the Museum am Rothenbaum Kulturen und Künste der Welt in Germany and Its Original Drawings at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 권혜은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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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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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9-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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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논고는 19세기 이후 형성된 서화(書畫)의 유통과 확산의 양상을 당시 활발히 제작된 장식병풍 중 하나인 <백선도(百扇圖)>의 예를 통해 살펴본 글이다. 백선도는 화면에 다양한 형태의 부채를 겹쳐서 배치하고 각각의 선면(扇面) 안에 여러 종류의 화제(畫題)를 그린 것을 말한다. 부채와 선면화(扇面畫)라는 소재는 이전부터 존재하였지만 장식용 회화의 소재로 등장한 것은 19세기 이후로, 호사취미 경향을 반영하여 주로 병풍(屛風)으로 활발히 제작되었다. 지난 2016년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미술 속 도시, 도시 속 미술'에서 독일로텐바움세계문화예술박물관 소장 <백선도>가 새로이 소개된 바 있다. 6폭으로 구성된 이 병풍에는 한 폭 당 5개 이상의 다양한 종류의 부채들이 등장하고 각 부채 면에는 단순히 채색한 것 뿐 아니라 다양한 화목(畫目)의 그림들이 남아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을 주목해야 하는 것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동일한 초본(草本)이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이전의 왕실이나 사대부들이 사적인 공간에서 향유하였던 서화(書畫)는 민간으로 확산되었고 시장을 통한 유통의 단계로 넓어졌다. 집안을 꾸미고 장식하는 풍조에 따라 화려한 장식그림들이 선호되었고, 한 폭에 다양한 형태의 화면과 다채로운 畫目(화목)의 그림을 그려 완성하는 백납도병풍 제작이 성행하였다.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한국 컬렉션의 상당수는 독일 주재 조선국 총영사이자 독일의 사업가였던 하인리히 콘스탄틴 에두아르 마이어(Heinrich Constantin Eduard Meyer, 1841~1926)의 수집품이다. 그는 1890년대 후반부터 1905년까지 조선과 독일을 오가며 다양한 유물들을 수집하여 독일에 돌아가 1909년까지 순차적으로 수집품을 로텐바움박물관에 전달하였으며, <백선도>도 그 중 하나이다. 새롭고 장식미가 돋보이는 <백선도>는 조선에 들어와 있던 외국인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백납도>는 제2폭의 뒷면에 "동현(銅峴)"이라는 지명이 적힌 종이조각이 거꾸로 붙어있어 흥미를 끈다. 동현은 지금의 서울 을지로 1가와 을지로2가 사이에 위치했던 곳이며, 조선시대에는 도화서(圖畫署)를 비롯한 혜민서(惠民署)·장악원(掌樂院) 등의 관청과 시전(市廛)이 있어 가내수공업이 성하던 지역이었다. 실제로 1900년대 초 이곳에는 서화를 유통하는 상점들이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마이어가 수집했던 서화들의 구입처가 동현에 위치했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하겠다.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백선도>는 총 6폭의 병풍으로, 1980년대에 한국 서화 소장품들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현재의 모습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백선도 초본>은 1945년부터 1950년 사이 국립민족박물관에 입수된 작품이다. <백선도 초본>은 총 7점으로, 7점 중 6면 화면의 여백에 화면의 순서까지 정해져 있어 본래 총 8폭 병풍용 초본임을 알 수 있다. 한 화면에는 5개 이상의 다양한 접선(摺扇)과 단선(團扇)들이 배열해있는데, 작은 장식에서부터 부챗살의 문양까지 초본부터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음을 볼 수 있다. 여기에 '석간주(石間朱)', '홍(紅)', '묵(墨)', '청(靑)' 등과 같이 부채에 들어갈 색 대부분을 지정하고, 빈 부채에는 '유(油)'라고 적거나 비워두었으며 이 중 10개의 부채에는 화훼초충도(花卉草蟲圖)나 고사인물도의 밑그림이 남아있다. 이를 실제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백선도>와 비교하면 화면의 크기와 비례까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어, 초본의 매뉴얼을 그대로 따르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작품의 펼쳐진 부채 면에는 산수, 고사인물, 화조, 영모, 초충, 어해 등 다양한 장르의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화접도(花蝶圖)나 어해도(魚蟹圖) 등은 19세기 유행하였던 소재로 당시 화단의 경향을 잘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주목할 것은 김홍도(金弘道)의 전형적인 화풍을 연상시키는 장면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진 백선도나 백납도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특징이다. 서원아집도(西園雅集圖)는 상대적으로 제한된 작은 화면에 그려야 하는 백납도나 백선도의 특성상 잘 다루지 않는 소재로,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김홍도의 <서원아집도>병풍과 화면의 구성이나 화풍 모두 매우 흡사하다. 더구나 <백선도>병풍의 몇몇 장면은 김홍도의 작품 중에서도 1796년작 《병진년화첩(丙辰年畫帖)》과 유사한 화면들을 다수 발견할 수 있어 흥미롭다. <사인암(舍人巖)>과 흡사한 산수도(山水圖)를 비롯하여 <서원아집도>, <쌍치도(雙雉圖)> 등에서 김홍도 화풍을 연상시킨다. 따라서 부채 속 그림을 그린 인물은 김홍도 화풍의 영향을 받은 직업화가일 것으로 보이며, 작가는 《병진년화첩》을 직접 감상한 적이 있거나, 서화시장에 《병진년화첩》을 베껴 그린 부본(副本)이 유통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현재까지 알려진 병풍으로 된 백선도는 10점 내외인 것으로 파악되며, 이 작품들을 비교해보면 화면의 구성이 부채 1개 정도 차이가 있거나 비례와 좌우가 바뀌었을 뿐 화면구성이 매우 유사함을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일정한 패턴의 화면구성은 같은 시기 민간에서 성행한 책가도(冊架圖)에서도 찾아볼 수 있는 특징으로, 19세기 서화의 수요층이 넓어짐에 따라 세밀한 표현과 화려한 장식성이 요구되는 회화들의 대량 제작을 위한 초본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특히 도안이 복잡하여 범본이 필요한 곽분양행락도나 요지연도, 백동자도, 해학반도도 등의 규모가 큰 장식병풍에서 적극 활용되었으며, 실제 남아있는 작품에서 몇 가지의 도상들이 반복하여 등장하고 있어 초본을 참고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시장의 수요에 맞추어 대량 제작할 수 있는 초본 활용이 성행했던 당시의 경향은 화면을 다채로운 부채들로 채우고 그 부채 면에 각기 다른 그림을 그려야하는 백선도 제작에 있어서도, 초본을 요긴하게 사용했음을 보여준다. 더구나 테두리를 그은 후 다양한 화목의 그림을 담는 백납도에 비해 백선도는 다양한 형태의 부채들을 먼저 그려야하는 공정을 거쳐야 했기 때문에, 대량 제작이 어렵고 그만큼 남아있는 작품이 상대적으로 적은 원인으로 생각된다. 이처럼 로텐바움박물관 소장 <백선도> 병풍과 국립중앙박물관 <백선도 초본>은 새로운 화풍이 수용되어 시도되었던 조선 말기 화단의 경향을 잘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다수의 백선도들이 박기준의 작품과 유사한 화풍과 화면 구성 보이는 것에 비해, 김홍도의 영향이 분명히 드러나는 매우 이례적인 예라는 점에서 앞으로도 더욱 심층적인 분석이 요구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