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itle/Summary/Keyword: Moral development

검색결과 252건 처리시간 0.025초

18세기 향촌사회와 유교공동체 - 순암 안정복을 중심으로 - (Ahn Jeong-Bok's idea of country village community)

  • 김보경
    • 동양고전연구
    • /
    • 제35호
    • /
    • pp.415-445
    • /
    • 2009
  • 순암(順菴) 안정복(安鼎福)(1712~1791)은 역사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향촌사회(鄕村社會) 전문가이기도 했다. 그는 중앙 정치권력에서 소외된 남인계(南人系) 학자였다. 유년과 청년시절 향촌 각처를 전전했고, 20대 중반 광주(廣州) 덕곡(德谷)에 정착한 뒤로는 관직 때문에 잠시 나간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이곳에 머물며 수양과 저술에 전념했다. 60대 후반 목천(木川) 현감(縣監)을 마지막으로 실직(實職)에서 물러났다. 이러한 불우한 환경은 그의 학문적 관심과 정치적 시선을 형이상학(形而上學)이 아닌 '형이하학(形而下學)'으로, 중앙이 아닌 '향촌'으로 향하게 했다. 그는 향촌을 가(家)와 국(國)을 매개하는 연결고리로 파악하고, 향촌을 기반으로 하여 인간의 기본 윤리와 일상생활에서의 예(禮)의 실천을 강조하는 유교공동체를 구상했다. 먼저, 그가 구상한 유교공동체는 향촌을 단위로 하는 지역공동체이다. 그는 향촌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교화(敎化)를 최우선의 과제로 삼고, 향약(鄕約)을 그 방안으로 제시했다. 자신의 향리에 동약(洞約)을 실시했고, 목천 현감 시절에는 향약(鄕約)을 시행했다. 이것은 사대부 중심의 향촌질서를 재구축하고자 한 의도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 향약은 상하(上下) 동참의 형태를 취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민심(民心)에 대한 순응과 사대부의 솔선수범을 강조하고 일상생활에서의 윤리의 실천을 통해 구성원 간의 조화와 질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지역공동체적인 성격을 지닌다. 한편, 그는 향촌의 학문공동체를 기획했다. 그는 학교 진흥을 교화의 급선무로 인식하고, 서재(書齋)를 중심으로 향촌 자제들과 강학 활동을 전개했다. 여택재(麗澤齎)라는 서재(書齋)를 설치하여 "소학(小學)"을 강독했고, 70대 후반에는 "여씨향약(呂氏鄕約)"을 표준으로 하고 일상의 윤리와 독서법을 덧붙인 학약(學約)을 마련하여 시행했다. 이 학약은 뒤에 전라남도 나주의 미천서원(眉泉書院)에 적용되었다. 이는 강학과 명도(明道)의 중시, 독서와 실천의 일치를 강조하는 그의 학문관과 학문공동체 기획의 사회적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판단된다.

유가(儒家) 자연법사상의 헌법상 전승 (A Study on the Confucian Natural Legal Ideology Embodied in the Korean Constitution)

  • 문효남
    • 한국철학논집
    • /
    • 제56호
    • /
    • pp.47-80
    • /
    • 2018
  • 이 논문은 유가(儒家)의 자연법사상(自然法思想)이 대한민국의 최고 기본법이자 최고 규범인 헌법(憲法)에 어떠한 내용과 의미로 전승되어 오고있으며, 이러한 유가사상이 오늘날에 있어 어떠한 과제를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인지를 살펴보기 위한 글이다. 유가사상 특히 민본(民本), 예치(禮治), 덕치(德治) 및 친친주의(親親主義)로 대표되는 선진유가의 자연법사상이 오늘날에 있어서는 그 영향력이 현저히 감소하였으나, 여전히 우리 민족의 의식 속에 하나의 윤리규범 내지 미풍양속으로서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며, 대한민국 현행 법령에 있어서도 다양한 형태로 전승되어 오고 있어, 실제 규범으로서의 법집행력도 일정 부분 가지고 있다. 즉 대한민국의 최고 기본법인 헌법을 위시하여 민법을 비롯한 민사법령 그리고 형법을 비롯한 형사법령에 유가 법사상을 반영한 입법 규정들이 산재해 있으며, 법원 및 헌법재판소의 판례나 결정 등을 통해 유가사상이 재해석되어 전승되어 오고 있는 것이다. 유가의 법사상은 헌법 명문규정으로는 헌법 전문(前文)과 본문(本文) 제9조 등에 규정된 '전통(傳統)', '전통문화(傳統文化)'의 내포개념으로 전승되어 오는 한편, 헌법재판소의 위헌법률제청사건 및 위헌소원사건 등에 대한 결정을 통하여 재해석되어 전승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재해석을 통한 전승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하나는 유가의 사상 내지 윤리와 관련된 결정이며, 다른 하나는 전통문화와 관련된 결정이다. 지난 20여 년 간 헌법재판소의 판례 및 결정문을 면밀히 분석하여 검토하는 작업을 통해, 헌법재판소는 우리 사회가 유교적 전통을 받아들이고 체화(體化)시켜 일정 부분 우리의 고유한 의식으로 남아 있음을 인정하는 일관된 입장을 유지하고 있으며, 특히 가정의 영역에서는 법률보다 전통적 윤리의 역할을 더 강조하는 입장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유가사상 내지 도덕관념에 터 잡은 전통문화가 어떠한 기준 하에서 우리의 고유한 전통의식 내지 도덕규범으로서 헌법적 정당성(正當性)을 갖는지 여부에 대한 중요한 기준 내지 척도를 도출해 낼 수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상 전통문화 내지 윤리로서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서는 단순히 전통문화라는 역사적 사실과 이를 계승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이 시대의 사회 경제적 기반에 맞아야 한다는 '시대적합성(時代適合性)'과 오늘날에 있어서도 보편타당한 전통윤리 내지는 도덕관념이어야 한다는 '현재적 보편타당성(現在的 普遍妥當性)'을 양대 기준으로 천명하고 있다. 또한 이러한 '시대적합성'과 '현재적 보편타당성'은 '오늘날의 의미로 재해석되어 포착된 것'이어야 하며, 이를 위한 가장 중요한 척도로서 '헌법이념(憲法理念)과 헌법의 가치질서(價値秩序)' 및 '인류(人類)의 보편가치(普遍價値), 정의(正義)와 인도정신(人道精神)'을 들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헌법상 정당성을 가지는 전통문화의 주요한 축으로서의 유가사상 내지 유가 자연법사상의 '시대적합성'과 '현재적 보편타당성'을 확보하고 '헌법이념과 헌법의 가치질서' 및 '인류의 보편가치, 정의와 인도정신'이라는 척도를 가지고 유가 사상을 '오늘날의 의미로 재해석하여 포착'하여야 한다는 새로운 과제와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이는 현재 세계적으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새로운 보편윤리(the Universal Ethics)의 모색" 이라는 지성사적 작업과도 연결하여 논의를 진행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시사를 하고 있다. 또한 현재 정치권 등에서 활발히 거론되고 있는 헌법 개정 문제와 관련하여 유가 자연법사상 중 보편적 윤리 내지 가치를 발굴하여 이를 헌법개정안에 반영시켜 나갈 것인지 여부에 대하여도 진지하고도 폭넓은 관심과 연구가 시급히 전개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초등학생들의 대인관계 기술 함양을 위한 통합적 적용방안 연구 (Study on the integrative application program for cultivating primary school students' personal relationship skills)

  • 최복희
    • 한국철학논집
    • /
    • 제25호
    • /
    • pp.71-71
    • /
    • 2009
  • 본 연구는 초등학생들이 "어떻게 하면 바르고 선한 인성을 함양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인성교육 프로그램을 고안하기 위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본 연구는 "사회 정서적 학습 이론에 근거한 통합적 접근"에 근거를 두고, 학생의 인격형성에 직간접적 영향을 끼치는 매체인 학교와 가정, 지역공동체(사회)를 통합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교육기관의 도덕교육과정과 주변환경의 잠재적 교육과정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다. 또한, 다양한 사회정서적 능력 중에서도 본 논문은 연구의 중심 주제는 "사회인식(social-awareness) 및 대인관계 기술(relationship skills)"에 관한 부분을 특화하여, 동양윤리의 덕론을 활용하면서 인성교육의 통합적 방안을 제안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인식 및 대인관계 기술 함양"을 위하여 다음과 같이 동양윤리의 덕목들을 활용하였다. 사회적 역할 인식과 수행에서 합리적 태도를 선택하는 능력을 함양하기 위해서는 "이름을 바로잡는다(正名)"의 덕목을 활용하고, 내면의 도덕성 함양을 기초로 타인을 배려하는 능력을 기르기 위하여 "나의 마음을 충실히 하여 남에게까지 미루어 이해한다(충서(忠恕))"를 활용할 수 있다. 또, 타인과의 갈등상황에서 신중한 자기반성을 우선하는 덕목으로는 "자기에게 돌이켜 구한다(반구제기(反求諸己))"가 있고, 대인관계에서 감정표현을 순화하는 "얼굴빛을 온화하게 하는 것이 어렵다(색난(色難))"는 덕목은 타인의 처지와 성격을 이해하고 그에 맞게 대처하는 방법이다. 대인관계에서 유익하고 긍정적인 성과를 도모하는 대인관계 기술로 "선한 점을 가려내어 그것을 따르고 선하지 않은 점은 고친다(택기선자이종지(擇其善者而從之), 기부선자이개지(其不善者而改之))"는 구절을 활용할 수 있다. 지속적인 대인관계에서 정서적 유능성을 발휘하기 위하여 "오래 되어도 상대를 존중한다(구이경지(久而敬之))"를 활용하고자 하였다. 나아가, 본 논문에서는 정명과 반구저기를 활용하여, 가정과 학교, 지역공동체의 세 영역을 통합한 하나의 방안을 구성해보았다.

대순진리회에서 신정론 문제 (The Problem of Theodicy in Daesoon Jinrihoe)

  • 차선근
    • 대순사상논총
    • /
    • 제33집
    • /
    • pp.257-286
    • /
    • 2019
  • 이 글은 기존의 신정론 유형들을 활용하여 대순진리회의 신정론을 기술한 것이다. 대순진리회의 세계관 내에서 신정론은 다음과 같이 기술될 수 있다: "대순진리회 세계관에서 악과 고통의 문제는 상극의 문제로 대치되어 기술된다. 대순진리회의 신정론은 선천, 그리고 천지공사 이후부터 개벽 직전까지 후천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에만 논의할 문제이다. 후천에는 상극이 없기에 고통이 존재하지 않고, 신정론도 논할 필요가 없다. 선천과 과도기의 신정론은 각각 다르게 조명되어야 한다. 우주는 최고신이 전체적인 법칙을 주관하고, 실제 세부 운영은 하부 신명들이 담당하는 시스템으로 되어있었다. 우주의 운행에 있어서 만물은 상극과 상생이라고 하는 법칙을 갖도록 만들어졌다. 상생은 서로가 서로를 돕는 것, 상극은 서로가 서로를 극하는 것을 의미한다. 고통이 존재하는 이유는 상극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천은 상극이 지배하는 시기였다. 그 이유는 성장과 발전이라는 가치를 구현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상극은 결코 악의적인 의도에서 마련되어진 것은 아니었다. 즉 상극은 본래 나쁘고 잘못된 것이라는 도덕적 가치를 지니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나 상극의 지배가 오래 지속되자 상극으로 인해 발생한 원한이 풀리지 못하고 누적되어갔고, 우주의 법칙을 운용하던 명부의 신명들도 종종 착오와 실수를 일으키곤 했다. 이것이 점점 심화되자 세상은 엄청난 재앙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상의 상황을 '이원적 상극 신정론'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신명들로부터 우주가 심각한 위기에 빠졌음을 보고받은 최고신은 우주의 실정을 살펴본 뒤 증산이라는 한 인간으로 강세하였다. 그가 천지공사를 시행하면서 개벽은 예정되었고 그에 따라 과도기가 시작되면서 신정론도 다르게 묘사된다. 그것은 개벽 때 대심판을 받는다는 사실, 그로써 신명·인간을 포함한 모든 악한 존재들은 소멸하고 지상에 천국이 열린다는 사실, 개벽이 도래하기 전까지 각자가 해원을 시도한다는 사실을 주 내용으로 한다. 이것을 '말세론적 해원 신정론'이라고 부를 수 있다. 대순진리회의 신정론은 이상 2개의 신정론을 핵심으로 삼으면서, 상황에 따라 영혼 성장 신정론, 자유의지 신정론, 배상 신정론, 내세적 신정론, 카르마 신정론, 참여 신정론, 교류 신정론 등을 중첩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브레멘 학교논쟁'(1905)의 기독교교육 갈등요인에 관한 영향사 연구 (A Study on Conflict-factors and Influence of the Bremen Controversy of 1905)

  • 안정도
    • 기독교교육논총
    • /
    • 제74권
    • /
    • pp.227-253
    • /
    • 2023
  • 연구 목적 : 본 연구는 1905년 브레멘에서 일어난 교사들의 학교에서의 종교수업 폐지 운동에 관한 역사적 사건 문헌 연구다. 한국 기독교학회에는 아직 소개되지 않은 독일 종교교육사의 한 사건을 조망하면서, 이 사건 안에 얽혀있는 통시적·공시적 영향력을 확인하고자 한다. 연구 내용 및 방법 : 1905년 독일 브레멘을 중심으로 일어난 학교 종교수업에 대한 논쟁은 학교종교교육 역사에서 중립적 종교수업으로의 개혁을 공식적으로 요구한 최초의 사건이다. 그 배경에는 19세기 시민 사회의 성장, 과학과 학문의 발전, 사회민주주의 정치적 발달, 루터교회와 개혁교회의 갈등과 같은 다양한 촉발 요인이 존재한다. 이 논쟁의 공식 결과물인 '브레멘 문서'에서 교사들은 종교가 지극히 사적인 영역에 속한다는 논리로 학교와 교회, 종교와 교육이 분리되어야 함을 주장한다. 그리고 가치중립적인 도덕교육을 지향하며 객관적 '성서 역사 수업'을 제안한다. 1905년 브레멘 학교논쟁은 이후 1948년 브레멘 주 헌법, 1949년 독일 기본법의 종교교육 관련 법 조문에 영향을 미쳤다. 기본법 제 141조는 '브레멘 조항'이라고 불리며, 브레멘 종교수업에 교회가 관여할 수 없는 법적 근거를 제시하기 때문이다. '브레멘 문서'에서 요구된 성서 역사 수업은 오늘날 브레멘 종교교육 과정의 특징인 '성서역사수업'(BGU)의 모태가 된다. 결론 및 제언 : 1905년 브레멘 학교논쟁은 학교에서의 종교 중립적인 수업에 대한 최초 논의이다. '브레멘 학교 논쟁'의 배경, 내용, 영향을 살펴보면 오늘날 한국 기독교 학교교육의 논의에서도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을 다시 한 번 확인하고 기독교 정체성을 지켜나가는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문화재(文化財)의 국제적 불법 거래(不法 去來)에 관한 고찰 (An Examination into the Illegal Trade of Cultural Properties)

  • 조부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37권
    • /
    • pp.371-405
    • /
    • 2004
  • 문화재의 국제적인 유통행위는 다수 국가가 관계되므로 이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국제법적인 접근이 필수적이다. 2차대전 이후 문화재의 가치가 물질적 가치에서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 확립을 위한 정신적 민족적인 측면의 가치가 중시되면서 신생 독립국과 식민제국들 간에 문화재의 소유권 다툼이 쟁점화 되어 문화재 반환을 목적으로 하는 국제적인 협력과 법제도적인 장치의 모색이 필요하게 되었다. 문화재의 불법거래에 관한 국제협약으로 유네스코(UNESCO)를 중심으로 문화재의 준비적 보존의무를 부과하는 1954년 "전시 문화재 보호에 관한 협약", 문화재 반 출입에 대한 통제와 반출에 허가장 발급을 통해 불법 취득 유통 억제를 위한 1970년 "문화재불법 반 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예방수단에 관한 협약", 도난이나 불법적으로 반출된 문화재의 국제적 반환을 의무화한 1995년 "유니드로와 협약"이 있다. 또한 유엔(UN)의 산하 기관으로 유네스코(UNESCO)는 특히 소위 문화재 분과(the Division of Cultural Heritage)를 마련하여 문화재에 대한 관계업무 처리에 주력하여 오고 있으며, UN 총회 역시 1973년의 결의 3187 이후로 문화재 보호에 관하여 계속적인 관심을 표현하여 오고 있는데 그 기본내용은 문화재의 원산국에로의 반환에 관한 국제 협력을 확인하고, 각국에 예술품 및 문화재의 불법거래 금지 및 방지를 위한 적절한 조처를 권고하며, 자국내 문화재에 대한 목록화 작업을 권고함과 아울러 종국적으로 많은 국가가 유네스코(UNESCO) 협약의 당사국이 되어 국제적인 협력체제의 구성원이 될 것을 권장하는 것이다. 국제협약의 한계로 협약상의 문화재에 대한 정의 차이가 존재한다. 먼저 1954년 협약상의 문화재는 동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부동산도 포함하고 있는데 1970년 협약은 그 제정 목적이 '문화재의 불법적인 반 출입 및 소유권 양도의 금지와 방지수단'의 강구에 있으며 따라서 그 규율대상도 원칙적으로 유형의 동산문화재(tangible movable cultural property)에 국한된다고 봐야할 것이다. 1995년 협약도 역시 동산문화재를 규율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 두 협약은 이 점에서 1954년 협약이나 주로 부동산적인 특성을 갖는 문화유산 및 자연유산을 대상으로 하는 1972년의 협약과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차이는 문화재의 개념에 대한 내재적인 차이를 반영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협약의 제정 목적 및 취지가 다름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866년의 병인양요, 일본에 의한 36년간의 식민통치, 군정기, 경제 개발기 등을 통하여 다수의 문화재가 해외로 유출되었다. 물론 이들 문화재를 전부 반환 받을 수도 없고 또 받을 필요도 없는 것이지만, 이들 중 일부는 한국 사회의 문화적 역사적 정체성의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거나 또는 이들의 외국(특히, 일본)에서의 소재가 과거 한국민에 대한 지배의 상징으로서 기능한다거나 할 경우 반환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우에 우리의 입론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1954년 협약 및 제1의정서의 비준은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된다. 반환을 요구할 경우 우선 문화재의 도난 여부가 핵심이며 이 경우 국제협약에 따라 조치하면 될 것이지만 외교적 협상의 단계에 이르면 이 문제는 정치적 문제가 될 것이다. 이 경우 반환을 요구하는 국가는 상대국이 문화재를 반환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문화재의 불법거래 방지에 대한 절실한 필요성에 반해, 동북아 지역 국가 및 시민사회의 방지노력은 대단히 미흡한 실정인 바,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 및 시민 사회적 차원의 체계적인 노력이 동아시아 지역 전체에서 활발하게 전개하여야 할 것이다. 문화재의 불법적인 거래를 가장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인터폴(Interpol) 회원국간 정보를 신속히 유통시키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인터넷 기술에 바탕을 둔 통신 시스템을 개발해야 하며 도난당한 문화재의 불법거래를 방지하기 위한 보다 효율적인 방안으로 문화재 보호 법률의 도입, 국제협약의 가입, 수집품 목록 구축 등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한국형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 측정을 위한 척도 개발 연구: 소비자 인식을 중심으로 (Developing a Scale for Measuring the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Activities of Korea Corporation: Focusing on the Consumers' Awareness)

  • 박종철;김경진;이한준
    • Asia Marketing Journal
    • /
    • 제12권2호
    • /
    • pp.27-52
    • /
    • 2010
  • 그동안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에 대한 척도개발이 국·내외적으로 일부 연구자들에서 수행되어져 왔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을 측정하고 있는 구성개념(측정항목)들에 대한 이론적 배경의 결핍과 기업의 네 가지 사회적 책임활동 차원이 과연 서로 이질적인 차원인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또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과 관련된 지난 30년간 발표된 정량적 분석에 의하면, 대부분의 연구들이 측정항목과 방법론 측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 (CSR)에 대한 학문적 관심은 오래 지속되고 있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차원 (경제적, 법률적, 윤리적, 자선적 책임)에 대하여 소비자들이 어떻게 바라보는지, 혹은 어떻게 인지하는지에 대해 측정할 수 있는 척도가 미흡한 실정이다. 특히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에 대한 척도가 서구사회 위주로 개발되어 국내에서 인용되다보니, 국내 특성에 맞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을 측정할 수 있는 척도가 미흡하였다. 이에 본 연구는 다양한 이해관계들을 대상을 집단면접(FGI)을 실시하여 국내 상황에 맞는 척도를 개발하였고, 본 연구에서 개발된 새로운 척도가 기존 척도에 비하여 더 높은 예측력을 지니는지를 간접적으로 증명하였다. 본 연구결과를 통해 새롭게 개발된 기업의 사회적 책임활동에 대한 척도는 다음과 같다. 우선, 경제적 책임은 '제품의 품질개선 노력', '고객의 불평처리에 대한 체계구축', '이윤창출을 통한 국가 경제발전 이바지', '고용창출 노력', 법률적 책임으로는 '법적기준 준수', '직원들의 복지추구와 고용 관련법 준수', '명시된 계약적 책임이행', '기업경영 관련법 준수', '소비자보호법 준수', 윤리적 책임으로는 '윤리강령 지침마련', '과장광고나 허위광고', '투명경영', '사업파트너와의 공정한 거래', 자선적 책임으로는 '지역사회와의 협력사업', '스포츠 및 문화활동 지원', '지역사회 봉사', '사회환원' 등이다. 연구결과는 국내 기업들에게 경제적 책임활동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지시키고 있으며, 특히 국내 기업들에게 자사의 사회적 책임활동을 진단하는데 중요한 실무적인 시사점을 제시할 것이다.

  • PDF

'아유르베다'($\bar{A}yurveda$)의 의경(醫經)에 관한 연구 (A Study of The Medical Classics in the '$\bar{A}yurveda$')

  • 김기욱;박현국;서지영
    • 대한한의학원전학회지
    • /
    • 제20권4호
    • /
    • pp.91-117
    • /
    • 2007
  • Through a simple study of the medical classics in the '$\bar{A}yurveda$', we have summarized them as follows. 1) Traditional Indian medicine started in the Ganges river area at about 1500 B. C. E. and traces of medical science can be found in the "Rigveda" and "Atharvaveda". 2) The "Charaka" and "$Su\acute{s}hruta$(妙聞集)", ancient texts from India, are not the work of one person, but the result of the work and errors of different doctors and philosophers. Due to the lack of historical records, the time of Charaka or $Su\acute{s}hruta$(妙聞)s' lives are not exactly known. So the completion of the "Charaka" is estimated at 1st${\sim}$2nd century C. E. in northwestern India, and the "$Su\acute{s}hruta$" is estimated to have been completed in 3rd${\sim}$4th century C. E. in central India. Also, the "Charaka" contains details on internal medicine, while the "$Su\acute{s}hruta$" contains more details on surgery by comparison. 3) '$V\bar{a}gbhata$', one of the revered Vriddha Trayi(triad of the ancients, 三醫聖) of the '$\bar{A}yurveda$', lived and worked in about the 7th century and wrote the "$A\d{s}\d{t}\bar{a}nga$ $A\d{s}\d{t}\bar{a}nga$ $h\d{r}daya$ $sa\d{m}hit\bar{a}$ $samhit\bar{a}$(八支集)" and "$A\d{s}\d{t}\bar{a}nga$ Sangraha $samhit\bar{a}$(八心集)", where he tried to compromise and unify the "Charaka" and "$Su\acute{s}hruta$". The "$A\d{s}\d{t}\bar{a}nga$ Sangraha $samhit\bar{a}$" was translated into Tibetan and Arabic at about the 8th${\sim}$9th century, and if we generalize the medicinal plants recorded in each the "Charaka", "$Su\acute{s}hruta$" and the "$A\d{s}\d{t}\bar{a}nga$ Sangraha $samhit\bar{a}$", there are 240, 370, 240 types each. 4) The 'Madhava' focused on one of the subjects of Indian medicine, '$Nid\bar{a}na$' ie meaning "the cause of diseases(病因論)", and in one of the copies found by Bower in 4th century C. E. we can see that it uses prescriptions from the "BuHaLaJi(布哈拉集)", "Charaka", "$Su\acute{s}hruta$". 5) According to the "Charaka", there were 8 branches of ancient medicine in India : treatment of the body(kayacikitsa), special surgery(salakya), removal of alien substances(salyapahartka), treatment of poison or mis-combined medicines(visagaravairodhikaprasamana), the study of ghosts(bhutavidya), pediatrics(kaumarabhrtya), perennial youth and long life(rasayana), and the strengthening of the essence of the body(vajikarana). 6) The '$\bar{A}yurveda$', which originated from ancient experience, was recorded in Sanskrit, which was a theorization of knowledge, and also was written in verses to make memorizing easy, and made medicine the exclusive possession of the Brahmin. The first annotations were 1060 for the "Charaka", 1200 for the "$Su\acute{s}hruta$", 1150 for the "$A\d{s}\d{t}\bar{a}nga$ Sangraha $samhit\bar{a}$", and 1100 for the "$Nid\bar{a}na$", The use of various mineral medicines in the "Charaka" or the use of mercury as internal medicine in the "$A\d{s}\d{t}\bar{a}nga$ Sangraha $samhit\bar{a}$", and the palpation of the pulse for diagnosing in the '$\bar{A}yurveda$' and 'XiZhang(西藏)' medicine are similar to TCM's pulse diagnostics. The coexistence with Arabian 'Unani' medicine, compromise with western medicine and the reactionism trend restored the '$\bar{A}yurveda$' today. 7) The "Charaka" is a book inclined to internal medicine that investigates the origin of human disease which used the dualism of the 'Samkhya', the natural philosophy of the 'Vaisesika' and the logic of the 'Nyaya' in medical theories, and its structure has 16 syllables per line, 2 lines per poem and is recorded in poetry and prose. Also, the "Charaka" can be summarized into the introduction, cause, judgement, body, sensory organs, treatment, pharmaceuticals, and end, and can be seen as a work that strongly reflects the moral code of Brahmin and Aryans. 8) In extracting bloody pus, the "Charaka" introduces a 'sharp tool' bloodletting treatment, while the "$Su\scute{s}hruta$" introduces many surgical methods such as the use of gourd dippers, horns, sucking the blood with leeches. Also the "$Su\acute{s}hruta$" has 19 chapters specializing in ophthalmology, and shows 76 types of eye diseases and their treatments. 9) Since anatomy did not develop in Indian medicine, the inner structure of the human body was not well known. The only exception is 'GuXiangXue(骨相學)' which developed from 'Atharvaveda' times and the "$A\d{s}\d{t}\bar{a}nga$ Sangraha $samhit\bar{a}$". In the "$A\d{s}\d{t}\bar{a}nga$ Sangraha $samhit\bar{a}$"'s 'ShenTiLun(身體論)' there is a thorough listing of the development of a child from pregnancy to birth. The '$\bar{A}yurveda$' is not just an ancient traditional medical system but is being called alternative medicine in the west because of its ability to supplement western medicine and, as its effects are being proved scientifically it is gaining attention worldwide. We would like to say that what we have researched is just a small fragment and a limited view, and would like to correct and supplement any insufficient parts through more research of new records.

  • PDF

아유르베다'($\bar{A}yurveda$) 의경(醫經)에 관한 연구 (A Study of The Medical Classics in the '$\bar{A}yurveda$')

  • 김기욱;박현국;서지영
    • 동국한의학연구소논문집
    • /
    • 제10권
    • /
    • pp.119-145
    • /
    • 2008
  • Through a simple study of the medical classics in the '$\bar{A}yurveda$', we have summarized them as follows. 1) Traditional Indian medicine started in the Ganges river area at about 1500 B. C. E. and traces of medical science can be found in the "Rigveda" and "Atharvaveda". 2) The "Charaka(閣羅迦集)" and "$Su\acute{s}hruta$(妙聞集)", ancient texts from India, are not the work of one person, but the result of the work and errors of different doctors and philosophers. Due to the lack of historical records, the time of Charaka(閣羅迦) or $Su\acute{s}hruta$(妙聞)s' lives are not exactly known. So the completion of the "Charaka" is estimated at 1st$\sim$2nd century C. E. in northwestern India, and the "$Su\acute{s}hruta$" is estimated to have been completed in 3rd$\sim$4th century C. E. in central India. Also, the "Charaka" contains details on internal medicine, while the "$Su\acute{s}hruta$" contains more details on surgery by comparison. 3) '$V\bar{a}gbhata$', one of the revered Vriddha Trayi(triad of the ancients, 三醫聖) of the '$\bar{A}yurveda$', lived and worked in about the 7th century and wrote the "$Ast\bar{a}nga$ $Ast\bar{a}nga$ hrdaya $samhit\bar{a}$ $samhit\bar{a}$(八支集) and "$Ast\bar{a}nga$ Sangraha $samhit\bar{a}$(八心集)", where he tried to compromise and unify the "Charaka" and "$Su\acute{s}hruta$". The "$Ast\bar{a}nga$ Sangraha $samhit\bar{a}$" was translated into Tibetan and Arabic at about the 8th$\sim$9th century, and if we generalize the medicinal plants recorded in each the "Charaka", "$Su\acute{s}hruta$" and the "$Ast\bar{a}nga$ Sangraha $samhit\bar{a}$", there are 240, 370, 240 types each. 4) The 'Madhava' focused on one of the subjects of Indian medicine, '$Nid\bar{a}na$' ie meaning "the cause of diseases(病因論)", and in one of the copies found by Bower in 4th century C. E. we can see that it uses prescriptions from the "BuHaLaJi(布唅拉集)", "Charaka", "$Su\acute{s}hruta$". 5) According to the "Charaka", there were 8 branches of ancient medicine in India : treatment of the body(kayacikitsa), special surgery(salakya), removal of alien substances(salyapahartka), treatment of poison or mis-combined medicines(visagaravairodhikaprasamana), the study of ghosts(bhutavidya), pediatrics(kaumarabhrtya), perennial youth and long life(rasayana), and the strengthening of the essence of the body(vajikarana). 6) The '$\bar{A}yurveda$', which originated from ancient experience, was recorded in Sanskrit, which was a theorization of knowledge, and also was written in verses to make memorizing easy, and made medicine the exclusive possession of the Brahmin. The first annotations were 1060 for the "Charaka", 1200 for the "$Su\acute{s}hruta$", 1150 for the "$Ast\bar{a}nga$ Sangraha $samhit\bar{a}$", and 1100 for the "$Nid\bar{a}na$". The use of various mineral medicines in the "Charaka" or the use of mercury as internal medicine in the "$Ast\bar{a}nga$ Sangraha $samhit\bar{a}$", and the palpation of the pulse for diagnosing in the '$\bar{A}yurveda$' and 'XiZhang(西藏)' medicine are similar to TCM's pulse diagnostics. The coexistence with Arabian 'Unani' medicine, compromise with western medicine and the reactionism trend restored the '$\bar{A}yurveda$' today. 7) The "Charaka" is a book inclined to internal medicine that investigates the origin of human disease which used the dualism of the 'Samkhya', the natural philosophy of the 'Vaisesika' and the logic of the 'Nyaya' in medical theories, and its structure has 16 syllables per line, 2 lines per poem and is recorded in poetry and prose. Also, the "Charaka" can be summarized into the introduction, cause, judgement, body, sensory organs, treatment, pharmaceuticals, and end, and can be seen as a work that strongly reflects the moral code of Brahmin and Aryans. 8) In extracting bloody pus, the "Charaka" introduces a 'sharp tool' bloodletting treatment, while the "$Su\acute{s}hruta$" introduces many surgical methods such as the use of gourd dippers, horns, sucking the blood with leeches. Also the "$Su\acute{s}hruta$" has 19 chapters specializing in ophthalmology, and shows 76 types of eye diseases and their treatments. 9) Since anatomy did not develop in Indian medicine, the inner structure of the human body was not well known. The only exception is 'GuXiangXue(骨相學)' which developed from 'Atharvaveda' times and the "$Ast\bar{a}nga$ Sangraha $samhit\bar{a}$". In the "$Ast\bar{a}nga$ Sangraha $samhit\bar{a}$"'s 'ShenTiLun(身體論)' there is a thorough listing of the development of a child from pregnancy to birth. The '$\bar{A}yurveda$' is not just an ancient traditional medical system but is being called alternative medicine in the west because of its ability to supplement western medicine and, as its effects are being proved scientifically it is gaining attention worldwide. We would like to say that what we have researched is just a small fragment and a limited view, and would like to correct and supplement any insufficient parts through more research of new records.

  • PDF

치과임상영역에서 발생된 의료분쟁의 판례분석 (The Jurisdictional Precedent Analysis of Medical Dispute in Dental Field)

  • 권병기;안형준;강진규;김종열;최종훈
    • Journal of Oral Medicine and Pain
    • /
    • 제31권4호
    • /
    • pp.283-296
    • /
    • 2006
  • 과학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보건의료분야는 괄목할 성장을 가져왔고 국민생활 수준의 향상과 건강에 대한 관심이 고조됨에 따라 의료서비스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 권리의식의 신장, 의료행위의 본질에 대한 이해부족, 의료기술에 대한 지나친 기대, 상업화된 의료공급체계, 의사의 윤리의식 저하 및 의료법리에 대한 무지 그리고 사회적 불신풍조의 만연, 분쟁해결을 위한 제도적 장치의 결여 등이 요인으로 작용하여 의료사고 및 분쟁이 급증하는 추세이다. 본 연구는 치과관련 단체에서 보유하고 있는 소송과 관련된 자료 및 연세대학교 치과대학병원 구강내과에서 신체감정을 시행한 재판기록을 중심으로 하여 판결전문을 확보할 수 있는 치과 의료사고 판례 중 1994년부터 2004년까지의 민사소송 30례의 판례를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1. 소송의 연도별 분포에서 2000년 이후 급증하는 추세를 보였다. 2. 소송의 유형별 분포에서 발치와 관련된 소송이 전체의 36.7% 이었다. 3. 소송의 원인을 분석한 결과 불편감, 치료불만족과 관련된 것이 전체의 36.7%, 사망 및 영구손상이 각각 16.7% 이었다. 4. 원고의 소송결과 승소 및 강제조정, 화해권고결정이 60.0% 이었다. 5. 소송에 관련된 병원유형은 치과의원이 60.0%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6. 소송의 심급별 구성비율에서 2,3심 이상 진행된 경우가 전체의 30.0% 이었다. 7. 손해배상 청구금액은 5천만원 이상 1억원 미만이 36.7%, 1억원 이상이 13.3% 이었고 손해배상 판결금액은 1천만원 이상 3천만원 미만이 40.0%, 1억원 이상이 6.7% 이었다. 8. 소송과 관련된 치과의사수는 2명 이상이 26.7%이었다. 9. 판결까지의 소요기간은 11개월에서 20개월이 46.7%, 21개월에서 30개월이 36.7% 이었다. 10. 의료과실 유무에서는 과실을 판정한 경우가 46.7% 이었고 소송과정에서 신체감정이나 사실조회가 이루어진 경우는 70.0% 이었다. 11. 의사패소 판례(18건)에서 판결의 주안점은 주의의무위반이 72.2% 이었고, 설명의무위반이 16.7% 이었다. 치과 의료분쟁의 경우 치료의 긴급성이 상대적으로 적어 의사의 설명의무 중요성이 폭넓게 요구되며, 주관적인 치료 만족도가 중요시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결국 분쟁을 줄이는 방법으로 기술적인 과실도 줄여야 하지만 치과의사와 환자와의 신뢰 관계를 개선하는 것과 의사집단의 자율성(autonomy)의 회복이 중요하다. 그리고 불합리하게 시행되고 있는 의료배상책임보험의 보완과 함께 치과의사단체와 학계가 주도하는 교육 및 의료분쟁시 자문을 구할 수 있는 체계의 확립으로 의료분쟁에 대한 대처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