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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의학 논문의 계량학적 방법을 통한 연구 경향 비교 분석 - 의학전문학교 학술지 2종을 중심으로 - (A Comparative Analysis of Research Trends in Korean Modern Medicine: Focusing on Two Journals of Medical School)

  • 서미진;이지수
    • 한국비블리아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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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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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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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본 연구는 한국 근대의학을 대표하는 의학교육기관에서 발행된 논문을 계량학적으로 분석하여 공통 및 학술지별 연구 주제를 파악하고 기관에 따른 저자 특성, 연구 경향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경성의학전문학교와 경성제국대학 의학부에서 발행한 학술지 2종에 수록된 연구 논문 총 682건을 대상으로 저자 분석, 빈도 분석, 주제 분석을 수행하였다. 연구 결과, 경성의전 기요에 참여한 저자의 소속은 학교 및 병원 등 다양한 기관이 조사되었으며, 기초의학 전공과 임상의학 전공이 비슷한 비율을 차지하였다. 경성제대 의학부 기요는 학교 소속 저자만이 참여하였으며, 기초의학 전공은 96.33%임에 비해 임상의학 전공은 3.36%로 현저히 적었다. MeSH on Demand를 활용하여 논문 제목에서 추출한 MeSH 용어를 대상으로 동시출현 네트워크 분석을 실시한 결과, 두 학술지에서 공통으로 등장한 중심 주제어는 'erythrocytes'로 여러 장기 및 질병에 따른 적혈구 상태를 분석한 연구가 진행되었다. 빈도 분석 결과, 두 학술지에서 공통으로 혈액 및 혈구에 초점을 맞춘 연구와 당시 유행했던 질병인 빈혈과 결핵에 대한 연구가 등장하였다. 각 학술지의 주요 연구 주제를 비교한 결과, 경성의전 기요는 염증 질환에 대한 연구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임상병리학적 연구가 다수 확인되었으며, 경성제대 의학부 기요는 동물을 대상으로 한 해부학적 연구와 의약품에 대한 약리학적 연구가 주로 진행되었다. 본 연구를 통하여 설립 목표가 다른 두 의학전문학교에서 진행된 연구 주제와 주요 키워드를 파악하고, 학술지에 따른 연구 영역의 차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일제강점기 미키 사카에(三木榮)의 경력에 대한 고찰 - 조선에서의 활동을 중심으로 - (A Study on Sakae Miki's Experience during Japanese Colonial Period with a Focus on His Activities in Colonial Korea)

  • 장재립;김남일;차웅석
    • 한국의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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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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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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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Sakae Miki, a Japanese medical historian, was a leading figure in the study of medical history in the Korean Peninsula due to his three representative books, Bibliography of Korean medicine, ancient and mediaeval(朝鮮醫書誌), The History of Korean medicine and of diseases in Korea(朝鮮醫學史及疾病史), and A Chronological table of Korean medicine(朝鮮醫事年表). After graduating from Kyushu Imperial University's Faculty of Medicine in 1927, he moved to Seoul (then called Keijo) the following year and lived in colonial Korea until 1944. As a doctor and bureaucrat working for the Government-General of Chosen in colonial Korea, this study focused on his career activities. It was in 1928 when he entered Keijo Imperial University's Faculty of Medicine where he participated in experimental research under the supervision of Professor Shinosaki, who was the chief of the third Institute of Medicine. It was discovered that he received his doctorate in medicine from Kyushu Imperial University in August 1932. In 1933, he became an assistant professor of Keijo Imperial University and started working at the Keijo Prefectural Resident Hospital until 1935. In August 1935, he was appointed as the director of Suigen Provincial Hospital where he served until 1944. While actively practicing medicine in colonial Korea, he spent his spare time researching Korean medical history, which he used for the basis of his later publications.

생약연구소의 인삼연구와 약도개성 (Ginseng Research in Natural Products Research Institute (NPRI) and the Pharmaceutical Industry Complex in Gaesong)

  • 박주영
    • 인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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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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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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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경성제국대학의 부속기관인 생약연구소는 현재 서울대학교 약학대학 천연물 과학연구소의 전신으로, 일제강점기 인삼연구를 중점적으로 수행하였던 종합연구기관이었다. 생약연구소는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약리학 제2강좌의 교수 스기하라 노리유키의 주도로 설립되게 되는데, 스기하라는 약리학 제2강좌가 설치되었던 1926년부터 고려인삼 및 한약에 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진행하였다. 약리학 제2강좌에는 의학 및 약물학 전공인 스기하라 외에도 조교수로 약학을 전공한 카쿠 텐민, 강사로 농학 및 임학을 전공한 이시도야 츠토무가 있었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1939년 생약연구소 설립 이전까지 약 36명의 연구자가 활동하였다. 이 중에서는 약 14명의 조선인 연구자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대체로 경성의전, 경성치전, 경성약전 등 전문학교 출신들로 기본적인 의약학 지식을 갖추고 한의학, 본초학 등 독자적인 의약체계를 활용하는 조선의 한약재 연구에 임하였다. 1927년부터 민병기, 김하식 등이 활동을 시작하였으며, 1930년 이후 조선인 연구자는 증가하였다. 약리학 제2강좌는 조선의 약용식물 조사 및 한약재에 대한 약리학적 작용, 성분분석 등의 분야에서 다양한 연구결과를 발표하였으며, 또한 경성의전, 경성치전, 경성마약류중독자치료소, 지방도립의원 등의 기관들과 공동연구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한편 1935년, 국내 최대의 인삼 산지인 개성에서는 "약도개성" 계획이 수립되었다. 이는 전시용 약품의 연구 및 양산화, 인삼 산업개편을 통한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민간단체, 개성부, 관동군, 경성제국대학 등이 참여한 대규모 프로젝트였다. 1936년에 경기도립 약용식물연구소, 1938년에 경성제국대학 부속 약초원 및 병참 제약공장이 설치되었으며, 1939년, 약용식물연구소와 약초원이 결합하여 경성제국대학 부속 생약연구소가 설립되었고 스기하라는 생약연구소 소장이 되었다. 생약연구소에서는 인삼에 관한 약리학적 연구에서 더욱 나아가, 선려삼 등 인삼을 이용한 제품개발 및 판매, 그리고 인삼재배 연구가 집중적으로 진행되었다. 또한, 1941년 제주도시험장을 설립하여, 제주도산 약재를 사용한 구충제 판시를 생산하기도 하였다. 1945년 일제의 항복과 광복으로 스기하라를 포함한 일본인 연구자들은 급히 귀국하였다. 이후 생약연구소는 서울대학교에 인계되어,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출신 오진섭을 소장으로 우린근, 석주명 등의 학자들이 활동하며 한국 과학계의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