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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전법륜설'의 해석학적 지평으로 본 삼성설의 구조 (The Structure of the Theory of Three Natures from the Hermeneutic Perspective of "the Three Turns of the Dharma Cakra")

  • 김재권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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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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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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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이 논문은 "유가론석"이나 "석궤론" 등 인도의 초기 유식논서에 보이는 "해심밀경"의 '3전법륜설'에 대한 유가행파의 해석학적 입장이나 그 사상적 특징을 해명한 후, 이러한 해석학적 입장이 유식학파의 주요교설 가운데 이제설이나 삼성설 등에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가를 살펴본 것이다. 우선 '3전법륜설'은 "반야경" 계통의 공사상을 미료의로 설정하고, 용수를 대표로 하는 초기중관파를 제2시로 설정하고 있는 점을 그 특징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3전법륜설'의 구체적인 내용은 유가행파가 용수의 이제설 가운데 세속제의 영역을 좀 더 세분화하고, 즉 세속을 언어적인 표현으로만 존재하는 것과 실재로서 존재하는 세속으로 구분하여 의타기성을 기반으로 한 삼성설의 구조를 통해 '허무론이나 악취공'에 떨어지지 않는 공사상의 교설 체계를 새롭게 확립시키고 있는 점에서 확인된다. 한편 '3전법륜설'의 해석학적 입장은 "중변론"의 허망분별의 구조 속에 그대로 계승되어, 안혜의 주석에서 보이듯이 교리적으로 확립되어 적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특징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우선 세속적 실재로서 새롭게 확립된 '허망분별'은 의타기성으로 설정되고, 특히 의타기성인 허망분별은 유부의 실체론적인 <유견(有見)>과 세속적 실재인 의타기성을 손감하는 중관파의 <공견(空見)>을 비판적으로 지양하는 입장에서 설정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안혜의 주석에 제시된 5종의 견해를 보면, 삼성이 초기불교 이래의 모든 교설체계를 통합하려는 의도에서 근본 진실로 다시 설정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때 삼성설은 기본적으로 허망분별을 기반으로 확립되었고, 그 허망분별의 구조 속에 유식적인 이제가 도사리고 있음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사실 그것에는 유가행파의 독특한 실재관이나 진리관이 반영된 것으로 이해된다.

신숙주(申叔舟) 시(詩)에 나타난 인생이상(人生理想)의 전변(轉變) (The Change of Iife's ideal in the Poetry by Shin Suk-Ju)

  • 유호진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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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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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3-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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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이 논문은 15세기 후반 한시의 특성을 조명하고자 하기 위한 작업의 일환으로 신숙주 시에 나타난 시인의 의식을 고찰한 것이다. 신숙주의 시는 작가의 문학적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의 처신, 소위 '변절'의 문제로 인해 연구자들의 관심권 밖에 밀려나 있었다. 그러나 신숙주에 대한 객관적 평가를 위해서도 그의 시는 자세히 검토할 필요가 있다. 신숙주의 시는 세조의 정변이 일어났던 시기를 중심으로 양분할 수 있다. 그의 전기 시는 시인이 자족적인 세계 속에서 충만한 자긍심과 여유로운 정신을 지니고 있었다는 점을 드러낸다. 그런데 그의 경세이상은 실은 불후(不朽)의 공명(功名)을 성취하려는 영웅의식(英雄意識)의 소산이었다. 이 영웅의식(英雄意識)과 평생 그의 의식을 지배했던 순명의식(順命意識)에 의해 그는 세조의 정변에 동조하게 된다. 그러나 후기 시는 공명(功名)을 성취했던 시인의 삶이 그 자신에게 정신적 만족과 행복을 가져다주지 못하였다는 사실을 또렷이 보여준다. 그는 세조의 정변에 동조함으로 인해 배태된 양심의 괴로움을 호소하였고 자신이 성취한 공업(功業), 나아가 인생 자체가 허무함을 토로하고, 세상에서 말하는 시비(是非) 진위(眞僞) 선악(善惡) 등이 주관적이고 허망한 것이라는 인식에 도달하였다. 더 나아가 세상 만물 자체도 환영(幻影)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이러한 인식은 불가의 공(空) 사상(思想)을 기반으로 한 것이다. 그러한 사유 과정을 거쳐 시인은 허명(虛明)한 마음과 한가로운 삶에 대한 지향을 노래하게 된다. 신숙주의 시에 나타난 영웅의식, 불가적 사유, 허명(虛明)한 마음에 대한 지향 등은 서거정을 비롯하여 15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주요 문인들의 시에서 자주 나타나는 사유들이다. 결국 양심의 괴로움과 인생에 대한 허무감을 넘어서려 했던 시인의 진지한 모색은 15세기 관료문인들의 인생태도와 그들의 문학에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당대 주요 문인들이 신숙주 문학의 전통을 이었다는 성현(成俔)의 진술은 의례적인 수사가 아니었던 셈이다.

대승불교의 진리관 -용수(龍樹)의 공(空)과 이체설(二諦說)에 대한 중관학파(中觀學派)와 유지학파(唯識學派)의 논쟁을 중심으로 (Truth of Mahāyāna Thought -The Controversy Between The Madhyamaka and The Yogācāra on Sunya and The two truth theories of Nāgārjuna)

  • 윤종갑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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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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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5-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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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깨달음을 성취하여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는 것이다. 이러한 목적에 따라 불교의 진리관은 어떻게 깨달음을 얻어 해탈할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 대승불교의 확립자인 용수(龍樹)($N{\bar{a}}g{\bar{a}}rjuna$)는 붓다의 무아설(無我說)과 중도설(中道說)에 입각하여 아비달마불교의 법유설(法有說)(삼세실유(三世實有) 법체항유(法體恒有))을 공(空)과 이체설(二諦說)에 의해 비판적으로 종합함으로서 대승불교의 진리관과 깨달음의 길을 논리적으로 체계화 하였다. 그 결과 공과 이제설은 대승불교의 진리관과 깨달음의 길을 대표하는 교리가 되었다. 용수에 의해 확립된 공과 이제설은 대승불교의 근간이 되어 이후 공과 이제설에 바탕한 중관학파(中觀學派)($M{\bar{a}}dhyamika$)가 형성되며, 또한 이를 비판적으로 수용한 유지학파(唯識學派)(유가행파(瑜伽行派), $Yog{\bar{a}}c{\bar{a}}ra$)가 나타나 '공과 이제설'을 둘러싸고 두 학파 간에 치열한 논쟁이 전개되었다. 본 논문은 용수의 공관과 이제설의 중심 내용을 살펴본 후, 이에 대한 중관학파와 유가행파의 논쟁이 어떻게 치루어졌는지, 또 그 비판의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를 고찰하고자 하는 것이다. 용수는 "반야경"의 공사상을 계승하여 공이 연기(緣起) 중도(中道) 가명(假名) 무자성(無自性)임을 이제설의 진리관에 의거하여 밝히고 있다. 이러한 용수의 이제설은 청변(淸辯)(Bhvaviveka)과 월칭(月稱)(Chandrakīrti)을 비롯한 중관학파에 의해 보다 체계적으로 다듬어져 대승불교의 진리관으로 수용되었다. 중관학파의 이제설의 핵심은 모든 존재는 자성을 갖지 않은 공한 것으로, '무자성 공'을 주장하는데 있다. 그러나 유식사상에 근거하여 지(識)과 공성(空性)의 존재를 인정하는 유가행파는 중관학파의 '무자성 공'을 궁극적인 진실로서 인정하지 않는다. 즉, 일체법이 '무자성 공'으로 단지 가명에 지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것은 극단적인 허무론이며 공성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악취공(惡取空)이라고 중관학파를 비판하였다. 이와 같은 유가행파의 비판에 대해 중관학파는 승의로서 식(識)의 존재를 주장하는 것은 연기설에 어긋나며, 나아가 승의로서 공성의 존재를 주장하는 것이야말로 허무론이라고 반박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