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Large Jar coffin Tom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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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류역(榮山江流域) 옹관고분(甕棺古墳) 발생(發生) 배경(背景) (The advent of Large Jar coffin Tombs in Yeongsangang River Valley)

  • 김낙중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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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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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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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4
  • 2세기 후반 이후 범마한적(凡馬韓的)으로 사용되던 대형 옹형토기는 백제가 우월적 정치체로서 성장함에 따라 점차적으로 범위가 좁아지며 용도가 바뀌는데, 3세기 후반 이후 영산강유역에서 저분구묘의 중심 매장시설로 기능을 전용하면서 옹관고분이 등장하게 된다. 옹관의 형태와 양식이 통일되면서 백제와 구별되는 상징적 스타일로 강화,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즉 마한을 구성한 대등한 정치체들의 공통적 상징이 백제와 구별되는 영산강유역이라는 광역적인 집단의 상징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과정은 백제와 정치적으로 구별하고 맞서야 하는 대내외적 요구를 충족시키는데 필요한 영산강유역 집단의 결집을 위한 통합 이데올로기의 반영이라고 판단된다.

송국리유적 재고 (Reevaluation of the Songguk-ri site)

  • 손준호
    • 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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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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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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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
  • 송국리유적은 1974년 비파형동검이 부장된 석관묘가 발굴됨으로써 학계에 알려지기 시작하였으며, 1975년부터 시작된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통하여 한반도 청동기시대에 획기를 이루는 중요한 유적임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공개된 송국리유적 보고문에는 전체 평면도조차 제시되지 못하고 있어 유적의 전모를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송국리유적의 보고서와 관련 보고문을 재검토하여 발굴된 전체 유구의 배치도를 작성함으로써 연구의 기초자료를확보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과 개별 유구및 출토유물에 대한 분석결과를 최근의 발굴.연구성과와 비교 검토함으로써 송국리유적의 시기와 성격에대한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였다. 송국리유적에서는 주거지, 부속유구, 저장공, 요지, 목책렬, 녹채, 굴립주건물지 등의 생활 유구와 석관묘, 옹관묘, 토광묘 등의 분묘 유구, 그리고 대지조성면과 같은 대규모 토목공사의 증거들이 확인되었다. 이들은 유구의 분포 양상이나 유물상의 유사성 등을 통하여 볼 때 동일시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판단되는데, 구체적인 시기는 방사성탄소연대 측정치에 의하여 대략 B.C. 850-550년의 범위로 산정되었다. 한편,송국리유적에서는 논농사의 집약화를 통하여 생산량을 증대시켰으며, 이러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유력자또는 유력 집단이 등장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고 더 많은 잉여생산물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하여 방어 취락을 형성하였으며, 이를차지하기 위한 빈번한 전쟁이 있었던 것으로추정된다. 그러나 어느 정도의 안정적인 삶을 유지하였으리라 생각되는데, 이는 인구 증가에 의한 주거 공간의 확대를 통하여 짐작할 수 있다. 결국 송국리유적은 이러한 과정을 거쳐 주변의 여러 취락과 관련을 맺으면서 그 정점에 위치하는 중심취락으로 성장하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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