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King Sejong(世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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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봉은사 수륙재의 역사적 전개 (Historical development of The water and land ceremony performed by Bongeunsa temple in Joseon Dynasty)

  • 탁효정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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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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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9-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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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논문은 봉은사의 기원과 조선시대 봉은사에서 설행된 수륙재의 역사적 의미를 고찰한 연구이다. 봉은사는 원래 경기도 광주군 학당동(오늘날의 선릉 능역 내)에 위치했던 견성암이라는 이름의 암자였다. 견성암의 창건시기는 불분명하나, 조선전기에 광평대군의 재암(齋庵)으로 지정되면서 크게 중창되었다. 광평대군부인 신씨는 남편의 무덤 근처에 있던 견성암에 70결의 대토지와 1000여 구의 노비를 시주하여 대찰(大刹)로 중창하였다. 이후 견성암은 견성사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1450년 성종의 능(선릉(宣陵))이 광평대군묘와 견성사가 위치한 곳에 들어서면서 광평대군묘는 인근의 대모산 자락으로 이장되었다. 하지만 견성사는 그대로 남아 성종의 능침사로 역할하게 되었고 절 이름은 봉은사로 개칭되었다. 1562년 중종의 능(정릉(靖陵))이 선릉 부근으로 이장되면서 봉은사는 선 정릉의 능침사를 겸하게 되었다. 1563년 순회세자가 요절한 뒤에는 세자의 원당이 봉은사 내에 마련되었다. 견성암 때부터 봉은사로 개칭된 이후까지 이 절에서는 수륙재가 계속 설행되었다. 하지만 수륙재의 성격은 시기별로 조금씩 달라졌다. 세조대부터 성종대까지 견성암과 견성사에서 설행된 수륙재는 광평대군과 세종, 소헌왕후의 명복을 비는 천도재의 성격과 왕실 및 사부대중의 안녕을 기원하는 대중법회의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다. 이후 연산군~명종대에 이르러 선정릉의 능침사로 역할할 당시 봉은사에서 설행된 수륙재는 왕의 천도재 성격이 강했다. 조선후기에도 봉은사는 순회세자의 원당으로 역할하였기 때문에 봉은사는 왕실 수륙재도량으로 계속 유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병자호란 이후 봉은사는 남한산성에서 전사한 희생자들을 위무하는 국행 수륙재도량으로도 역할하였다.

조선시대 궁궐 후원 농경지(農耕地) 조영의 특성 (Studies on the Construction Characteristics of Rear Garden Farmland at Joseon Palace)

  • 정우진;심우경
    • 한국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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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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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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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본 연구는 조선시대 궁궐 내에 조성된 농경지 조영의 양상과 공간적 특성을 분석하여 유교적 농본 중심의 시대상이 궁궐 안에서 특수한 권농의 공간으로 반영되었음을 구명하고자 하였다. 대상지는 경복궁 후원, 창경궁 후원과 경복궁 신무문 밖 후원이 되며, 문헌조사를 중심으로 수행되었다. 궁궐 후원 농경지는 "농사직설"의 편찬, 친경례와 기곡제의 설행으로 대변되는 조선 통치집단의 권농정책의 연장선상에서 임금이 자신의 거주지인 궁궐 안에 한 해 농사의 풍흉을 가늠할 포지를 조성한 것이며, 국초부터 일제 강점기 직전까지 각 궁궐에서 운영되었다. 조선시대 후원 농경지 4개소에 대한 분석 결과로는 첫째, 세종 때 조성된 경복궁 후원 농경지는 현 향원지 내부에 존재하고 있었으며, 선진농법을 확인하기 위한 시험포지로 조성되었다. 성종이 조영한 창경궁 후원 농경지는 조선 최초의 친경례 직후에 조성되어 적전친경의 맥락으로 이해해 볼 수 있다. 인조는 경덕궁이 임시로 거처했던 시어소임에도 불구하고, 체류의 기간이 장기화되자 정전의 뜰을 파고 농포로 조성하였는데, 조선시대 정치사에서 후원 농경지의 비중이 매우 높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고종이 조성한 경농재 일곽의 농포는 선대의 권농행보를 계승하면서 창경궁 후원 농경지의 공간 구성을 그대로 가져온 특성을 보이고 있다. 둘째, 관수와 수체계, 관경대의 명칭, 입지에 있어서 일정한 공통점이 도출되었는데, 이는 조선시대 농본공간의 보편적 형식으로 판단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후원 농경지 외에 궁궐 내에서 내관들에 의해 관리되던 채전과 국가의 큰 제사에 쓰일 과일을 위한 궁궐 내 과수원의 운영 양상을 고찰하여 조선시대 궁궐 조경이 엄숙함, 질서정연함이나 장식성에만 치중되지 않고,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실용적 생산적 조경공간으로 존재하고 있었음을 밝힐 수 있었다. 또한 궁궐에서 왕실의 주도로 생산적 조경의 다양한 활동이 전개되고 있었고, 임금이 솔선수범하여 선진농법을 시험하였다는 점은 우리의 고유한 궁궐조경의 일면이 되며, 조선의 독자적인 궁궐문화로서 그리고 여타의 유교 국가에는 없었던 유일한 애민농본의 조경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초기 귀화인(歸化人)의 사향(賜鄕)과 특징 (A Study on the Sahyang and Characteristics of Naturalized Citizens in Early Chosun)

  • 임선빈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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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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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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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본 논문은 귀화인(歸化人)(향화인(向化人)) 가운데 조선초기 실록기사에서 사향(賜鄕)[왕으로부터 관향(貫鄕)을 하사받음]이 확인되는 인물들의 사향 과정과 활동에 대해 살핀 글이다. 조선초기 실록을 통해 검토 가능한 사향(賜鄕) 사례는 한인이 4명[오진(吳眞), 이민도(李敏道), 당성(唐誠), 매우(梅佑)]으로 다수이지만, 서역에서 온 회골인(回?人)[위그르인, 설장수(?長壽)]과 외오아국(畏吾兒國) 출신[이현(李玄)]도 있으며, 향화(向化) 왜인(倭人)도 2명[평순(平順), 피상의(皮尙宜)]이나 된다. 이들이 우리나라에 귀화한 시기는 고려 충렬왕 때부터 조선 정종 원년까지 걸쳐있으며, 귀화한 인물은 관향을 하사받은 인물의 증조, 조, 부, 본인 등 다양하다. 이들의 사향 시기는 태조 태종 세종 세조조이며, 하사받은 관향은 계림(鷄林) 임주(林州) 해주(海州) 상주(尙州) 밀양(密陽) 충주(忠州) 창원(昌原) 동래(東萊) 태안(泰安) 등으로 전국에 걸쳐 있다. 사향지(賜鄕地)는 처향(妻鄕)일 가능성이 높다. 관향(貫鄕)을 하사받은 인물은 역관(譯官)이 다수로 대명외교(對明外交)와 대일외교(對日外交)에 많은 공적을 보이고 있으며, 그 외에 의술(醫術)과 점술(占術), 율문(律文) 분야에서 활동한 인물도 있다. 과거급제를 한 설장수는 지공거(知貢擧)도 담당했으며, 이민도와 당성은 조선 개국에 기여하여 개국공신과 개국원종공신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활동실적이 있었기에 왕으로부터 관향을 하사받는 사향(賜鄕)의 영광을 누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향의 영광을 입은 관향이지만, 현재 임주 이씨, 창원 평씨, 동래 피씨 등은 그 후손을 확인할 수가 없다. 귀화(歸化) 한인(漢人)의 후손은 모두 현존하지만, 향화(向化) 왜인(倭人)의 후손은 단절되어 있다. 이는 조선시대의 대외인식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시계열 모형을 이용한 측우기 자료의 분석 (Analysis of the 'Chukwookee' data using time series model)

  • 조신섭;이정형;김병수
    • 응용통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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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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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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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6
  • 기상과 관계된 많은 요인 중에서 가장 긴 기간의 관측기록을 갖고 있는 것이 강수량에 대한 자료이다. 세계 대부분의 지역에서는 기기로 측정한 강수자료를 이용할 수 있는 기간이 길지 않아 대용기후지수를 강수분석에 이용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세종때 측우기가 발명된 후로 근대우량계가 도입되기 전인 1907년경까지는 측우기로 강수를 측정하였고, 1908년 이후는 근대우량계로 강수를 측정하고 있다. 이러한 측정기기 및 측정방법에 따른 강수자료의 불연속성을 해결하기 위하여 와다(1917)에 의해 경정된 강수량 자료가 이용되었다. 본 논문에서는 intervention 모형을 이용하여 와다의 경정방법에 문제가 있음을 확인하고 새로운 경정방법을 제안하였다. 측우기 자료 및 와다방법에 의해 경정된 자료와 근대우량계로 관측한 자료사이에는 연속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본 논문에서 제안한 경정법은 측우기의 강수량과 근대우량계의 강수량사이에 어느 정도 연속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 논문의 연구결과, 측우기에 의해 관측된 강수량은 신뢰성이 매우 높음을 확인할 수 있었고, 현대적 관점으로 경정할 수 있었으나, 여전히 많은 오차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오차를 줄이는 연구가 계속되어어야 할 것이며, 많은 문헌들로부터 측우기 자료를 실제 강수에 근접하게 복원하고 건기와 우기의 존재여부에 대한 증명을 할 수 있다면 측우기 자료의 신뢰성을 높이고 작은 오차범위내에서 과거 서울의 강수를 복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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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ale Marking Method on the Circumference of Circle Elements for Astronomical Instrument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 Mihn, Byeong-Hee;Lee, Ki-Won;Ahn, Young Sook;Lee, Yong Sam
    • Journal of Astronomy and Space Scienc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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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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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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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ng (世宗, 1418-1450) in the Joseon Dynasty, there were lots of astronomical instruments, including miniaturized ones. Those instruments utilized the technical know-how acquired through building contemporary astronomical instruments previously developed in the Song(宋), Jin(金), and Yuan(元) dynasties of China. In those days, many astronomical instruments had circles, rings, and spheres carved with a scale of 365.25, 100, and 24 parts, respectively, on their circumference. These were called the celestial-circumference degree, hundred-interval (Baekgak), and 24 direction, respectively. These scales are marked by the angular distance, not by the angle. Therefore, these circles, rings, and spheres had to be optimized in size to accomodate proper scales. Assuming that the scale system is composed of integer multiples of unit length, we studied the sizes of circles by referring to old articles and investigating existing artifacts. We discovered that the star chart of Cheonsang yeolcha bunyajido was drawn with a royal standard ruler (周尺) based on the unit length of 207 mm. Interestingly, its circumference was marked by the unit scale of 3 puns per 1 du (or degree) like Honsang (a celestial globe). We also found that Hyeonju ilgu (a equatorial sundial) has a Baekgak disk on a scale of 1 pun per 1 gak (that is an interval of time similar to a quarter). This study contributes to the analysis of specifications of numerous circular elements from old Korean astronomical instruments.

WorldCat과 한국 관련 장서의 분포에 관한 연구 - 청소년 대상 전기를 중심으로 - (An Analysis on the Distribution of Books on Korea in WorldCat: With a Focus on Biographies for Juvenile Readers)

  • 윤정옥
    • 한국문헌정보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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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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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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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
  • 이 연구의 목적은 WorldCat에 수록된 한국 관련 전기도서를 분석함으로써 한국 관련 인물에 대한 지식 분포 현황 및 확산의 가능성을 전망하는 것이다. 주제에 Korea를 포함하는 전기도서 서지레코드 15,007건과 청소년 대상 전기도서 487권의 언어와 주제, 주제 인물, 미국 내 소장도서관 등 분석하였다. 청소년 대상 영어전기 30권은 미국 내 소장도서관 수가 많았고, 김일성과 김정일이 가장 많이 등장한 주제 인물이었다. 한국어전기 457권은 소장도서관 수가 많지 않고, 세종대왕과 이순신이 가장 많은 책에서 다루어졌다. 한국 관련 청소년 대상 전기도서들은 본격 전기보다 초등 저학년 수준 그림책이나 일화 중심 스토리 등 편향성을 보여, 도서관 장서를 통한 한국 관련 인물에 관한 흥미 유발이나 지식 확산의 전망은 제한적이었다. 주제 패싯의 오류, 동일 주제 인물의 분산, 소장도서관 리스트의 부정확성 등 문제점도 확인하였다.

호텔 양식당의 스타메뉴 개발에 관한 탐색적 연구 -서울지역 특1급 호텔을 중심으로- (A Exploratory Study on the Development of Star Menus in the Western Restaurants of the Hotels Focused on the Tourism Hotels in Seoul)

  • 이은정;이종길
    •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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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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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29-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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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This exploratory study is to analyze the status of star menus and suggest the development strategy of star menus in the western restaurants of the tourism hotels in Seoul. The data was collected from the chefs who have been working over 15-years in tourism hotels in Seoul by judgement sampling. The questionnaire was composed of Miller and Pavesic's 'Fifty tips for a successful menu' and Khan's 'The evaluation of menu item development', The 30-menu items were selected from the 1st survey on the menu items that were high in both popularity and contribution margin by menu engineering method. The selected menu items were analyzed by 14 lists: simplicity, ready availability of ingredients, quality, flavor, presentation, preparation, service method, nutrition quality, preference, profitability, serving temperature, descriptive copy of menu and publicity. As a result of the study, appetizer category was recorded the highest score by 4.09. Smoked salmon, Tomato and mozzarella cheese, Cream of mushroom, Cream of asparagus, French onion soup, Grilled beef tenderloin, Grilled rib-eye steak, Roasted lamb rack, King prawn, Seafood spaghetti, Chef's salad, Caesar salad, Organic salad, Fruit plate, Italian tiramisu and Yogurt ice cream were recorded high score. The development strategy of star menu is belows : the menu writer must consider the productivity, effectiveness, popularity and profitability, the regular customers want varieties and creativity in the menu and the operators have to include the star menu items in the set menu.

원대(元代)와 세종대(世宗代) 자동 물시계 시보시스템 비교 (COMPARISON OF THE TIME-SIGNAL SYSTEM OF AUTOMATIC WATER CLOCKS DURING THE YUAN DYNASTY AND THE KING SEJONG ERA OF THE JOSEON DYNASTY)

  • 윤용현;김상혁;민병희;임병근
    • 천문학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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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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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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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
  • In this study, we investigated the time signal devices of Deungnu (circa 1270) and Gungnu (1354), the water clocks produced during the Yuan Dynasty (1271-1368). These clocks influenced Heumgyeonggaknu (1438)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exemplifying the automatic water clocks of the Yuan Dynasty. Deungnu, Gungnu, and Heumgyeonggaknu can be considered as automatic mechanical clocks capable of performances. The Jega-Yeoksang-Jip (Collection of Calendrical and Astronomical Theories of Various Chinese Masters) contains records of Deungnu extracted from the History of the Yuan Dynasty. We interpreted these records and analyzed reproduction models and technical data previously produced in China. The time signal device of Deungnu featured a four-story structure, with the top floor displaying the four divine constellations, the third floor showcasing models of these divinities, the second floor holding 12-h jacks and a 100-Mark ring, and the first floor with four musicians and a 100-Mark Time-Signal Puppet providing a variety of visual attractions. We developed a 3D model of Deungnu, proposing two possible mechanical devices to ensure that the Time-Signal Puppet simultaneously pointed to the 100-Mark graduations in the east, west, south, and north windows: one model reduced the rotation ratio of the 100-Mark ring to 1/4, whereas the other model maintained the rotation ratio using four separate 100-Mark rings. The power system of Deungnu was influenced by Suunuisangdae (the water-driven astronomical clock tower) of the Northern Song Dynasty (960-1127); this method was also applied to Heumgyeonggaknu in the Joseon Dynasty. In conclusion, these automatic water clocks of East Asia from the 13th to 15th centuries symbolized creativity and excellence, representing scientific devices that were the epitome of clock-making technology in their times.

조선초 건원릉과 헌릉의 봉릉 구조개선과 의의 - 병풍사대석과 난간석을 중심으로 - (The significance and structural improvement of burial mound in Geonwonneung and Heonneung in the early Joseon Dynasty - Focusing on the Byeongpungsadaeseok and Nanganseok -)

  • 신지혜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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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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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8-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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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본 연구는 15세기 초에 건립된 건원릉과 헌릉의 병풍사대석과 난간석 구조를 『세종실록』을 바탕으로 추정하고, 현재 해제 조사된 내용과의 차이점을 비교하여 구조적 변화와 그 의의를 밝히는 것에 주목적을 두고 있다. 건원릉과 제릉 및 헌릉은 1442년 동시에 수리되었는데 이때의 구조적 변화 양상이 동일하게 보인다. 1442년에 시행된 수리의 목적은 원활한 배수를 통해 지하 현궁으로 물이 유입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공사 범위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지하구조와 병풍사대석은 그대로 유지한 채, 병풍사대석 상부에 복부형석회를 추가하고, 난간석의 구조를 변경하는 정도에서 구조 개선을 이루었다. 『세종실록』의 기록에 따라 1420년과 1422년 사이에 건립된 헌릉의 구조를 추정하여 복원도를 그려보고, 1989년에 해제조사보고서에 기록된 구조와 차이를 분석하였다. 그리고 이를 통해 1998년에 해체조사된 건원릉의 구조에 대응하여 수리된 부분과 건립 당시의 구조를 구분하였다. 건원릉과 헌릉의 건립 당시 모습을 추정해 본 결과, 고려의 현·정릉과 매우 유사한 형태로 조성되어, 고려왕릉을 그대로 답습한 점을 명확하게 인식할 수 있었다. 그러나 1442년의 산릉수리도감에 의하여 구조개선이 이루어지면서 고려왕릉과는 차별된 조선왕릉의 특징을 형성하는 중요한 기점이 되었다. 1442년에 시도되어 조선의 전 시기 동안 봉릉 구조에 적용된 두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복부형석회의 등장이다. 복부형석회는 병풍사대석에 볼록한 지붕으로, 봉토(封土) 안으로 스며드는 빗물이 사대석 내부까지 들어가지 않도록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또 사대석의 상부구조인 만석과 인석을 안쪽에서 하나의 구조체로 연결하여 고정하는 역할도 한다. 복부형석회는 1442년에 처음 시도된 이래로, 병풍사대석의 유무에 관계없이 모든 사례에 적용되어 조선왕릉의 고유한 특징이 되었다. 둘째는 난간석과 병풍사대석 사이 공간에 평평한 박석을 까는 대신에 물매를 형성하는 상석(裳石)을 설치하였다. 1442년에 설치된 상석은 병풍사대석에서 난간석 방향으로 빗물이 흘러가도록 경사면을 형성하고 기왓골을 새긴 조선의 첫 와첨 상석으로볼수있다.이후로는기왓골을생략하기도하지만,치마형태의상석은조선왕릉에만사용된특징이다.

서울시 가로수 역사와 수목 고찰 (A Study on the History and Species of Street Trees in Seoul)

  • 송석호;김민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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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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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8-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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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연구는 서울시 가로수의 역사적 가치를 지닌 수종 선정을 위한 기초연구로써 고문헌에 기록된 가로수 역사와 수종을 고찰하였다. 또한 다양한 수종 대안을 위해 전통조경수목을 고찰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 가로수 역사는 고구려 양원왕(陽原王) 2년(546), 고려 명종 27년(1197) 등에 가로수로 추정되는 기록이 남아있으나 사료적 명료성은 부족한 것으로 판단하였다. 조선 초 세종 23년(1441)에는 국가의 역로(驛路)에 표목(標木)으로 가로수를 심은 것이 확인되며, 표목으로 식재된 가로수는 느릅나무와 버드나무가 확인된다. 조선 초 가로수제도의 시행은 단종 1년(1453) 기록으로 알 수 있으며 큰길 좌우로 소나무, 잣나무, 배나무, 밤나무, 회화나무, 버드나무 등이 식재되었고, 세조 5년(1459)에는 길가에 뽕나무를 심었다. 영조 연간에 그려진 정선의 『압구정』이나 『진헌마정색도』에는 가로수가 열식되어 있으며 이는 왕들의 행차, 한양 출입의 주요 도로, 마장(馬場)의 장소성, 수해에 따른 도로 보호와 표식 등의 복합적인 요인이 고찰되었다. 정조 연간에는 왕의 능 행차에 연관되어 소나무, 전나무, 버드나무 등의 가로수를 열식한 사례가 두드러지며, 이는 왕이 지나는 연도(輦道)와 해당 능역을 성역화하려는 가로수 식재기법으로 보았다. 개항 이후 고종 32년(1895)에는 국가에서 도로 좌우에 가로수를 심을 것을 장려하였고, 근대적 가로수 식재개념이 도입되었다. 당시 한양의 가로수는 사시나무가 속성수로써 주요하게 식재되었다. 서울시 가로수로 활용 가능한 고문헌 출현 교목은 삼국시대 17분류군, 고려시대 31분류군, 조선시대 55분류군이 추출되었으며, 16분류군은 삼국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모두에서 중복적으로 3회 출현한 수목으로 역사적 가치가 상대적으로 우수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일제강점기에는 외래수종이 유입되고 법제가 변화하면서 가로수제도의 현대적 수용이 이루어졌다. 1936년 경성부 권역의 확대에 따른 가로수 6개년 식수계획(1934-1940)이 시행될 당시 경성의 10대 가로수 수종은 '모니리페라'로 불린 현재 미루나무의 아종, 이태리포플러, 사시나무, 은백양 등의 포플러류가 1~4순위로 가장 많이 식재되었으며 수양버들, 아까시나무, 버즘나무, 양버즘나무, 은행나무, 네군도단풍이 5~10순위로 나타났다. 1930년대 중후반부터 버즘나무와 양버즘나무가 새로운 가로수로 소개되며 대규모 식재되기 시작하였고, 1942년부터는 피마잠의 장점이 있는 가죽나무를 가로수로 권장하기도 하였다. 해방 이후 1957년 가로수 수종은 양버즘나무, 은행나무, 이태리포플러, 가죽나무, 미루나무, 수양버들 순으로 나타나 일제강점기 수종들의 순위변화를 보였으며, 양버즘나무와 은행나무의 비중이 높은 점에서 당시의 식재 경향이 현재까지도 영향을 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