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Joseon potte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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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쌍용동 용암유적 출토 조선시대 토기의 재료과학적 특성과 원료의 산지해석 (Material Characteristics and Clay Source Interpretation of Joseon (the 15th to 17th Century) Potteries from Ssangyongdong Yongam Site in Cheonan, Korea)

  • 김란희;이찬희;윤정현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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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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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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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이 연구에서는 천안 쌍용동 용암유적에서 출토된 조선시대(15~17세기) 토기에 대한 재료과학적 특성과 원료의 산지를 해석하였다. 토기가마 폐기장과 공방지에서 수습한 토기시료는 회색 및 적색계열로 다양한 형태와 소성온도에 따른 굳기 차이가 있으나 대체로 유사한 기질특성을 보인다. 또한 모든 토기와 공방지 토양은 산출상태, 광물조성 및 지구화학적 거동특성이 상당히 유사하나, 유적지 주변에서 수습한 토양은 이들과 상이한 재료학적 특성을 가진다. 그러나 식질의 공방지 토양은 용암유적 조선시대 토기제작에 실제 이용된 원료점토로 판단된다. 이 용암유적 조선시대 토기 중 연질토기는 운모의 상전이 온도인 $900^{\circ}C$ 전후, 경질토기는 뮬라이트와 사장석의 생성과 소멸온도를 기준으로 $1,000{\sim}1,100^{\circ}C$의 소성온도를 경험한 것으로 해석된다.

조선시대 식물문양의 현대화를 위한 패턴디자인 개발 연구 (A study on the development of pattern design for the modernization of the plant pattern in the Joseon dynasty)

  • 이명숙;조우현
    • 한국의상디자인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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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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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3-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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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A pattern is a symbolic mark of the psychological expression and ornamental desire of the human interior. In particular, plant patterns, from ancient times to modern times, express beauty across both the east and the west. The Joseon dynasty had a strong national will, and it was a time when the symbolism of Korea was established. Plant patterns were decorative and symbolic, filled with meaning in both the textile and craft sectors. This study looked at the frequency and figurative characteristics of the types of plant patterns in textiles, ceramics, woodworking, and metal craftsmanship of the Joseon dynasty. In addition, pattern designs were developed by extracting unit patterns to maintain the original shape, and by adding, magnifying, reducing, and superimposing flat steps and employing the four-fold sequence. The data collected was 826 examples in textiles and crafts, and 34 species of plants were analyzed as follows. In general, the flower patterns preferred soft flowers, flowers, apricot, and peony patterns, and fruit patterns emerged as decorative designs for pottery and woodwork from the 17th century, featuring pomegranates, grapes, fluorines, peaches, and walnut floss. Textiles and woodwork were arranged with many circular designs, while pottery and metal crafts were filled in many ways. Expressive types appeared to be the same as stylistic types for textiles and ceramics, and the construction types were the same in pottery and metal crafts. As such, it was found that even in the different areas of the sculpture, the same aesthetic values were reflected in the common figurative features today. Therefore, in this study, we developed a unique and competitive pattern design that accommodates the modern times and the Joseon dynasty. This development is expected to contribute not only to the development of cultural and tourism products in the future, but also to the tourism industry induced by the Korean wave.

Changes of Physical and Chemical Properties for Making Raw Materials and Reproductions According to Manufacturing Stages in Traditional Korean White Porcelain

  • Kim, Du Hyeon;Jeong, Ji Youn;Oh, Eun Jeong;Han, Min Su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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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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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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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We made a Korean white porcelain or Joseon Baekja jar and based on the raw materials used and reproductions of each stage, we aimed to compare and analyze the physicochemical changes of the raw materials such as clay at each manufacturing stage, as well as identify the characteristics and correlations. Although the basic main components of clay and glaze material are similar, their texture becomes denser in the process of bisque firing pottery (Chobeol-pyeon) and glaze firing pottery (Jaebeol-pyeon), and we confirmed that in addition to the tendency of increasing vitrification, low-temperature minerals such as mica and illite gradually disappeared, while high-temperature minerals such as cristobalite were newly created. This phenomenon has also been verified by the rapid decrease in absorption rate while the change in specific gravity was small. In addition, the color was greatly affected by the firing atmosphere, and the yellow-red chromaticity of the raw materials was higher during bisque firing but showed a rapidly decreasing characteristic during glaze firing. The value of magnetic susceptibility, which is related to iron (Fe) component, showed a tendency to decrease in glaze firing pottery. CT images were confirmed as a method that can indirectly estimate the change in the material properties of the object step-by-step for the entire object. In conclusion, the study of manufacturing stages of reproduction can provide basic data for scientific research on the estimation of porcelain and pottery making technology and changes in raw materials.

고토양의 소성실험에 따른 재료과학적 특성 변화와 토기의 제작환경 해석: 천안 쌍용동 용암유적 (Interpretation of Remaking Environments for Pottery and Material Characteristic Changes Depending on Firing Experiments for Ancient Clay: Yongam Site in Ssangyongdong of Cheonan, Korea)

  • 김란희;이찬희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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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8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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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3-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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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이 연구의 목적은 고토양의 소성온도에 따른 재료과학적 특성 변화를 검토하여 동일유적에서 출토된 토기의 제작환경을 전문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방법을 검증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천안 쌍용동 용암유적 조선시대 토기의 원료점토로 확인된 고토양을 대상으로 $500{\sim}1,200^{\circ}C$의 온도범위에서 소성실험을 수행하였다. 각 시료는 소성온도의 상승에 따라 황색도($+b^*$)와 적색도($+a^*$), 가비중이 증가하고 흡수율 및 공극률이 감소하는 뚜렷한 경향성을 보인다. 이를 용암유적 조선시대 토기의 특성과 비교 검토한 결과, 연질토기는 $800^{\circ}C$ 이상에서 $950^{\circ}C$ 이하, 경질토기는 $1,100^{\circ}C$ 전후에서 소성한 시편과 상당히 유사한 재료과학적 특성을 공유하여 소성온도 해석에 중요한 결과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지구화학적 거동 특성은 온도변화에도 불구하고 일정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보아 소성실험에 따른 태토의 화학적 특성 변화는 수반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장군출토 도자기의 미세구조 및 특성에 관한 연구 (Research on the Microstructure and Features of Pottery Excavated from Gijang-gun, Busan, South Korea)

  • 홍종욱;한민수
    • 보존과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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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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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9-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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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조선초기에서 후기에 이르는 자기 생산지로 유명한 부산 기장군 장안읍 일대에 산재한 도요지 중 신리, 대룡, 하장안, 상장안, 용소, 두명리에서 출토된 상감청자, 백자 및 철화백자 편 등을 대상으로 성분과 미세구조를 분석하였고, 이러한 과학기술적 고찰을 통해 6개 도요지에서 출토된 자기의 태토원료, 제작기법, 번조상황 및 도요지간 상관관계 등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6개 사이트에서 출토된 자기에서 Cristobalite, Mullite, Quarts 등이 검출되었고, 결정구조에 따른 소성 온도는 두명리>상장안>대룡리>하장안>용소리>신리> 순으로 높았음이 확인되었다. 판별분석 결과 신리와 대룡리, 상장안리와 하장안리, 용소리, 두명리로 4개 그룹으로 분류되었다. 시편에 제작에 사용된 태토원료는 4개의 유사한 특성 분포를 가지고 있다. 기장군 도자기의 유약 두께는 $40{\sim}400{\mu}m$로 시유되었고, 기포는 $10{\sim}150{\mu}m$형성된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태토의 균질성 측면에서도 두명리 출토 시편이 가장 우수한 특성을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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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중서부 출토 일부 고대 세라믹 유물의 제작기술 해석: 예비 연구 (Interpretation on Making Techniques of Some Ancient Ceramic Artifacts from Midwestern Korean Peninsula: Preliminary Study)

  • 이찬희;진홍주;최지수;나건주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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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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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73-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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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차령산맥 남북의 7개 유적에서 신석기시대 빗살무늬 토기부터 조선시대 백자까지 시대적으로 일부 시료를 선별하여 물리화학적 및 광물학적 정량분석을 통해 고대 세라믹의 제작기술과 특성을 해석하였다. 연구대상 선사시대 토기는 연질에 테쌓기한 흔적이 나타나며, 삼국시대 토기는 연질과 경질이 공존하나 자비와 저장용기는 모두 테쌓기한 반면 배식기는 물레성형하였다. 태토의 정선도가 높은 삼국시대 이후 토기와 달리 신석기 및 청동기시대 토기는 사질태토에 높은 광물 함량을 보이며, 태토보다 큰 비짐이 다량 확인된다. 청자와 백자 기질에서는 일차광물이 거의 나타나지 않으나 고온생성 광물의 함량이 높게 동정되었다. 분석시료들은 시기에 관계없이 유적에 따라 주성분 및 미량원소에 약간의 차이가 나타났다. 지구화학적 거동특성도 거의 동일하여 태토의 기본적 성질은 유사한 것을 지시한다. 작열감량은 0.01~12.59wt.% 범위를 보여 편차가 크나, 선사시대에서 삼국시대로 가며 급격히 감소한다. 이들은 소성에 따른 중량감소율과 관련이 있으며, 태토의 소성도와 고온생성 광물의 검출 함량에 따라 5그룹의 추정 소성온도로 분류된다. 신석기시대와 청동기시대 토기는 모두 $750{\sim}850^{\circ}C$ 그룹에 속하고, 삼국시대 토기는 $750{\sim}1,100^{\circ}C$의 소성온도 범위에서 다양하게 확인되며, 청자와 백자는 $1,150{\sim}1,250^{\circ}C$의 고온에서 소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제작시기에 따른 태토의 정선도와 소성온도 차이는 제작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원료수급과 소성방식이 변화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도 제작방법에 차이를 보이기도 하여, 단순히 한 방향으로 진화된 발전보다는 사용 목적과 필요에 따라 활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선비화가 윤덕희(尹德熙)·윤용(尹愹) 부자(父子)의 변유적(變維的) 회화심미(繪畵審美) 고찰 (The Newly changed Painting's Aesthetic of Seonbi painter Yoon DeokHee and Yun Yong Father and Son)

  • 김도영
    • 문화기술의 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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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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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9-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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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공재(恭齋) 윤두서(尹斗緖)(1668~1715)와 낙서(駱西) 윤덕희(尹德熙)(1685~1776), 그리고 청고(靑皐) 윤용(尹愹)(1708~1740)으로 전해져 온 해남윤씨 3대의 화맥과 학문사상은 해남에 본거지를 두었지만, 주로 한양을 무대로 예술혼을 펼쳤고 가법을 계승하여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선비출신 서화 가문으로 명망을 쌓았다. 공재(恭齋)의 장남으로 태어나 82세를 살았던 낙서(駱西)는 친부 및 남인(南人)계열 이서(李漵)에게서 다양한 학문과 서화를 익혔다. 조선 초·중기 화풍을 섭렵하고 남종화법을 수용하면서 서양식 음영법을 가미하여 대상의 사실성과 입체감을 추구했는데 미법산수(米法山水), 원말(元末) 사대가(四大家), 명대(明代) 오파(吳派), 동기창(董其昌), 청대(淸代) 안휘파(安徽派) 등 다양한 화법을 융복합하여 변유적 회화심미를 이루었다. 그는 특히 말 그림과 도석인물화에서 탁월한 재능을 드러냈는데, 박학(博學) 실득적(實得的) 가풍에 비덕적(比德的)으로 구현한 독창적 진경미(眞景美)를 발현하였다. 낙서(駱西)의 둘째아들로 태어나 32세로 요절한 청고(靑皐)는 다양한 수지법(樹枝法)을 구사한 남종산수화에 능했는데, 물상의 정확한 사실묘사를 위해 세밀한 관찰과 깊은 탐구심, 그리고 화보 화제시의 새로운 시정(詩情)을 펼치면서 독창적 구성의 시의도(詩意圖)를 그렸다. 또한, 가전된 화풍을 변유적으로 재해석하여 진경(眞景)을 넘어 이형사신(以形寫神)의 진정미(眞情美)를 발현하였다. 공재(恭齋)를 계승한 낙서(駱西)와 청고(靑皐) 부자의 서민풍속화는 조선 후기 새로운 장로로 자리잡게 되는 등 이들 부자의 변유적 회화심미와 화법은 녹우당 화풍을 이루어 조선 회화풍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 한국회화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고대 한국인이 선호한 기본도형의 의미와 유형 (Meaning of Basic Geometry Patterns to Ancient Koreans and Its Classification)

  • 박선화;김지수;나영주
    • 감성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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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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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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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연구의 목적은 오래전부터 한국인이 애용해 온 기본 도형을 분석하여 의미와 상징성을 밝히고 그 유형을 분류하는 것이다. 선조들은 원, 네모, 세모 형태를 선호하였는데 한글에 'ㅇ, ㅁ, ㅅ'가 존재하는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이를 위해 고조선부터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 복식과 유물 등에 나타난 기본 도형을 고찰하였다. 연구방법으로는 도서, 인터넷 및 사진자료 등을 분석하였으며 도자기, 청동기, 복식 등 다양한 곳에 나타난 도형의 연결고리를 찾았다. 그 연구결과 첫째, 원은 하늘, 해, 달, 별, 청동거울, 얼굴 등을 상징하는데 일찍이 천문관측이 발달했던 사실과 원형제단이나 제사장의 표징인 원형 청동거울이 이를 뒷받침한다. 둘째, 땅(地)을 상징하는 것은 네모라고 보았다. 하늘과 땅신에게 모두 제사를 지냈었고 네모는 부족 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담은 현실을 의미하는 형태이다. 마름모형이 더 많이 애용되었는데 이는 힘을 상징하는 세모가 두 개나 들어있는 형태이기 때문이라고 추측한다. 셋째, 빗살무늬 토기에서도 나타나지만 뫼 '산(山)'과 사람 '인(人)' 및 모자나 마늘의 형태 또는 나 '사(?)' 등으로부터 세모가 파생되었다고 보는데 하늘, 땅 다음으로 사람이 중요하다는 고대인의 사고에서 발생한 것으로 본다. 아름다운 유산인 기본 도형의 연구를 통해 한국역사의 오랜 전통과 정신을 이해하고 새로운 창조문화로 이어지길 기대한다.

『세종실록(世宗實錄)』 「지리지(地理志)」 나주목(羅州牧)의 자기소(磁器所)·도기소(陶器所) 위치 연구 (A Study on the Locations of Jagiso and Dogiso in Najumok Recorded in the 'Sejongsylrok Jiliji')

  • 성윤길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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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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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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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200여년 동안 생산되었던 분청사기는 백자와 함께 왕실뿐 아니라 국가 행사에 사용되었던 조선 초기 국용(國用) 자기였다. 분청사기는 청자 백자와 달리 "세종실록" "지리지"에 그 생산처라고 할 수 있는 자기소와 도기소 기록이 남아 있어 매우 주목된다. 하지만 경상도에 비해 전라도 소재의 자기소 도기소 연구는 미진한 편이다. 본 논문에서는 조선시대 나주목에 소속되었던 나주목, 해진군, 영암군, 영광군, 함평현, 무안현, 장성현, 고창현, 흥덕현의 자기소 도기소 위치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고찰 결과 다음과 같은 연구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첫째, 일부 지역에 대해서는 기왕의 조사를 근거로 자기소를 추정한 연구 성과가 있었지만 유물, 즉 분청사기 편년만을 이용하여 한계가 있었다. 하지만 본 논문에서는 "세종실록" "지리지"에 각 지역별 자기소 도기소로 기록된 지명과 조선 후기 지방 행정 명칭을 기록한 "호구총수"의 지명을 대조하여 그 변화상을 추적하였다. 이와 아울러 자기 관련 지명, 지표 및 발굴조사에서 수습 확인된 유물과의 비교 검토를 통해 보다 더 정확한 자기소 도기소 위치를 찾으려고 하였다. 그리하여 일부 지역을 제외한 8개 시 군 9개 지역에 대한 위치를 비정하였다. 둘째, 자기소뿐 아니라 도기소에서의 자기 생산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 이유는 나주목 도기소, 영암군 도기소, 무안현 도기소로 각각 비정되는 영암 청용리 동산 분청사기 요지, 영암 상월리 유천 분청사기 요지, 무안 청수리 청수동 분청사기 요지 등에서 분청사기가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최근 김제 청도리 동곡마을 일대 발굴 결과 공납 자기로 추정할 수 있는 '공(公)'명, '상(上)'명 분청사기가 확인되었고, 이 요지가 위치하고 있는 청도리가 전주부 도기소 우림곡(雨林谷)이 있었던 우림곡면(雨林谷面) 지역으로 밝혀졌다. 전남 지역이 아니지만 매우 주목할 만한 유적이다. 도기소로 추정되는 유적에 대한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보다 많은 자료가 확보될 수 있다면, 이에 대한 연구 성과도 증가될 것으로 생각된다. 셋째, 기존 조사에서는 지표 혹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유물만 중요시하였으나, 행정구역 명칭의 변화상을 추적하여, 보다 합리적이면서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자기소 도기소로 추정할 수 있었다. 따라서 요지가 위치하고 있는 해당 지명에 대한 변화나 자기 관련 지명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으로 생각된다.

세종대(1418~1450) 성주 세종대왕자(世宗大王子) 태실(胎室) 출토 <분청사기 상감연판문 반구형뚜껑>의 제작 특징과 제작지 고찰 (A Study on the Characteristics and the Kiln Site of Production of the Buncheong Ware Excavated from the Placenta Chamber (Taesil) in Seongju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ng (1418-1450) in the Joseon Dynasty)

  • 안세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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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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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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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세종의 대군·군과 세손을 포함하여 총 19기 태실이 모여 있는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은 여러 태실이 한 공간에 조성된 유일한 사례이자, 태를 봉안·보호하는 장태용 그릇의 구성과 조형 역시 다른 곳과 구별되어 주목받아왔다. 본 글은 성주 태실에서 출토된 장태용 그릇 중 하나인 <분청사기 상감연판문 반구형뚜껑>에 집중하여 제작의 특징을 구명하고 제작지 고찰에 초점을 맞추었다. 연구 대상은 태주가 확인된 6점에 한정하였다. 성주 태실은 세종 연간 왕실의 장태와 태실 조성에 관한 다양한 논의와 행사가 가장 성행한 1436~1439년에 계획되고 세워졌을 것이다. 태를 담은 항아리를 덮어 보호하는 목적으로 태와 함께 장태 된 이 분청사기 뚜껑은 장태에 필요한 여러 잡물 가운데 중앙 관청에 분정된 잡물의 용도와 일치하며, 장흥고에서 장태 행렬 이전에 마련하여 조달한 품목으로 유추된다. 뚜껑의 크기·형태·장식 등의 조형적 특징은 15~16세기 왕실용 태항아리 뚜껑과 공통되는 부분이 있고, 『세종실록』 「오례」에 수록된 길례용 제기 및 가례용·빈례용 준작 기물과 친연성이 높다는 점을 확인하였다. 뚜껑의 꼭지를 에워싸고 있는 태토빚음의 번조받침 흔적은 15세기 후반~16세기 전반 왕실용 태항아리 뚜껑에 남아 있는 흔적과 상통한다. 덧붙여 번조받침 흔적의 형태와 위치를 통해 이 분청사기 뚜껑은 꼭지를 아래로 향하게 한 후 받침 도구와 갑발 등을 이용하여 번조하였을 가능성이 있다. 이상의 분석과 『세종실록』 「지리지」에 등재된 자기소 내용, 15세기 전반 자기의 진헌·공납 관련 기록, 현재까지 조사된 분청사기 가마터 출토 유물 등의 정보를 종합적으로 검토하였을 때 이 분청사기 뚜껑을 제작한 곳은 현 광주광역시 북구 충효동 분청사기 가마터가 가장 유력할 것으로 사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