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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제례악 사상과 선율의 미의식 연구 (Aesthetics melodic thought research Jongmyojeryeak)

  • 김현호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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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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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3-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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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는 현재 이루어진 종묘제례악의 미의식과 다른 관점에서 여러 사상을 배경으로 완성된 종묘제례악의 피리 선율을 중심으로 미적 요소를 찾아보고 그에 따른 미의식을 살펴보았다. 종묘제례악은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곳에 제사를 지내는 것으로, 유교제사 의례의 결정체이자 제례문화의 대표적 문화유산으로 1964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國歌重要無形文化財) 제 1호로 지정되었다. 또 2001년 5월 18일에는 유네스코(UNESCO)지정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걸작'으로 한국에서는 가장 먼저 등재되어 그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오랜 기간 조선왕조와 명운을 같이한 제례문화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일 뿐만 아니라, 우리조상들에 의해 창조된 악 가 무에 따른 총체적 예술형태의 아름다움을 집대성한 우리음악의 정수(精髓)로 인정받으며 전해지고 있다. 또 유교사상 뿐 아니라, 예악사상을 비롯하여 음양오행사상과 삼재사상(三才思想), 팔괘사상(八卦思想)의 전통사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종묘제례악에는 정관미 유장미 자연미 장려미 조화미가 내제되어 있다. 정관미는 희문과 전폐희문에서 찾아 볼 수 있었다. 유장미는 정대업에만 나타나는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자연미는 변주시 선율진행에서 노련한 연주기교로 자연스런 창작이 연결되는 부분으로 희문과 전폐희문에 잘 나타나고 있다. 장려미는 보태평 악장선율의 가장 두드러진다. 또 조화미는 종묘제례악의 불협화음이 협화로 음악에서 자연스러운 조화미적인 관점의 미의식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정대업의 소무에 잘 나타나고 있다.

『대악후보』 권2 시용정대업보(時用定大業譜) 편명(篇名) 해설 고찰 (A Study on the Explanation of the Title of 'Siyongjeongdaeeopbo' in Daeakhubo Volume 2)

  • 이종숙;남상숙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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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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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0-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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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대한민국의 보물 제1291호인 "대악후보(大樂後譜)" 소재 종묘제례악(宗廟祭禮樂) ${\ll}$정대업(定大業)${\gg}$악보의 편명(篇名)에 대한 해설 오류의 문제점을 밝힌 논문이다. 종묘제례악보의 근간이 된 "세종실록(世宗實錄)" 악보에 표기된 제1변(變) 제1편(編)과 같은 표기가 "대악후보"에 모방 도입되어 있다. 본래 세종조의 ${\ll}$정대업${\gg}$은 인입(引入)과 인출(引出) 곡을 제외하고, 6변 13편으로 작곡되었다. 그런데 세조는 이 음악을 종묘의 무무악(武舞樂)으로 개편하면서 9곡으로 축소정리하였다. 그리고 "세조실록(世祖實錄)" 악보에 기재할 때 편명 아래에 "세종실록" 악보와 같은 편명 해설은 첨부하지 않았다. 그냥 9곡의 악조(樂調)에 대해서만 표기했었다. "세조실록" 악보와는 대조적으로 "대악후보"에는 "세종실록" 악보처럼 변과 편이 9곡 편명 아래에 일일이 표기되어 있다. 본 연구결과 "대악후보"에 표기된 변 편은 "세종실록"의 ${\ll}$정대업${\gg}$${\ll}$발상(發祥)${\gg}$곡의 각기 다른 변 편 표기와 해설을 세조조 개편된 ${\ll}$정대업${\gg}$에 순서대로 임의 표기한 것임을 밝혔다. 즉 "대악후보" ${\ll}$정대업${\gg}$의 악곡들 편명 아래에는 "세종실록"의 ${\ll}$정대업${\gg}$ 편명해설과 "세종실록" ${\ll}$발상${\gg}$ 9곡 편명해설이 나란히 기술되어 있다. 그 결과 아들인 익조(翼祖)의 이야기가 아버지인 목조(穆祖)의 이야기에 앞서 나란히 기술되기도 하고, 본래의 악장 내용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가 기술되는 등 전반적인 오류가 발생했다. 이같은 오류는 일제강점기 "속악원보(俗樂源譜)"라는 허구의 악보가 제작되고, 이 허구를 전통성으로 가장하려는 세력에 의해 발생하였다고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