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Iron Seated Budd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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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 소장 포천 출토 철조여래좌상에 대한 소고 (An Inquiry into the Iron Seated Buddha Excavated from Pocheon in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 강건우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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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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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9-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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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철조여래좌상은 한동안 미등록 상태로 박물관 수장고에 보관되어 있었다가 최근 본관9976으로 유물번호가 새롭게 변경되었다. 이 철조여래좌상은 '포천 철불'로 불리는 철조여래좌상(본관9975)과 함께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백운리 흥룡사 일대에서 발견된 불상이다. 필자는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박물관 공문서와 유리건판 사진 등을 비교·검토하여 두 구의 철조여래좌상이 동일한 절차를 거쳐 1925년 12월 17일에 조선총독부박물관으로 이관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철조여래좌상은 높이가 105cm, 어깨폭은 57cm, 무릎폭은 77cm에 이르고, 편단우견(偏袒右肩)의 착의법에 옷주름은 물결무늬식으로 새겨서 유려하다. 철조여래좌상의 얼굴은 타원형으로 이목구비의 묘사가 잘 남아있다. 양감 있는 볼에 넓게 타원형을 그린 안와, 수직으로 길게 뻗은 눈, 짧은 코와 도툼한 입술은 9세기에 제작된 전라북도 남원 실상사(實相寺) 철조여래좌상, 경북 예천 한천사(寒天寺) 철조여래좌상, 강원도 동해시 삼화사(三和寺) 철조여래좌상 등과 유사하다. 또한 결가부좌한 다리와 편단우견의 착의법, 물결무늬식 옷주름은 8세기 석굴암 본존불을 연상시킬 만큼 조각수법이 우수하다고 생각된다. 철조여래좌상의 존명은 유리건판 사진(원판번호 M442-2, M442-7)을 통해 알 수 있다. 유리건판 사진을 보면 오른쪽 손바닥은 위를 향하고, 왼쪽 손바닥으로 약기(藥器)를 받치고 있다. 지금까지 원주 출토 철조약사좌상(본관1970)만이 철로 만든 유일한 약사불상으로 알려져 있었는데, 이번에 약기를 든 철조약사여래좌상을 새롭게 확인할 수 있었다. 철조여래좌상은 혜철의 제자 도선(道詵)(827~898)이 밀교신앙의 영향을 받아 사찰을 보호하고 국토를 비보(裨補)하기 위해 9세기경에 조성했을 가능성이 있다. 흥룡사의 전신인 내원사에는 도선이 백운산 등 중요한 세 곳을 택하여 비보사원을 세우고 다시 약사여래삼존상을 조성한 후 사원에 봉안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또한 「선암사중수비」에는 도선이 비보를 위해 도량을 세우고 철불 등을 조성했다고 전한다. 흥룡사가 소재한 경기도 포천시 이동면 도평리에 고려시대에 약사(藥寺)라는 사찰이 창건되었다는 점에서, 이 일대는 약사도량과 관련된 지역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서산(瑞山) 보원사(普願寺) 철조여래좌상(鐵造如來坐像) 고찰(考察) (A Study on the Iron Seated Buddha at Bowonsa Temple in Seosan)

  • 강건우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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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00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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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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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보원사(普願寺)는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가야산 북쪽에 위치한 사찰로, 경내에는 나말여초에 조성된 문화재가 남아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박물관은 충청남도의 고적 조사를 계획했고, 1916년(대정 5) 보원사지에 가서 현지 조사를 진행했다. 현지 조사 과정에서 소옥(小屋)에 안치된 철조여래좌상(무릎너비 7척, 두께 5척 5촌)을 확인했고, 이듬해에 경복궁으로 해당 철조여래좌상을 이운했다. 이는 일제강점기 보원사지에 2m가 넘는 대형 철조여래좌상 1구만이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철조여래좌상은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900~975)이 955년에 조성하였을 것이다. 탄문은 광주 고봉의 유력가문 출신으로 태조의 보살핌 속에 화엄종의 중심인물로 성장했고, 연이어 혜종(惠宗)(재위기간 943~945)과 정종(定宗)(재위 945~949)대에도 왕실의 불교행사를 주관했다. 이후 탄문은 대목왕후(大穆王后) 황보씨(皇甫氏)(?~?)의 후원을 받은 균여(均如)(923~973)의 등장으로 개경에서 떨어진 보원사로 이주하게 되었지만, 그곳에서 충주 유씨의 후원을 받아 지지 세력의 결속을 다지고 한편으로는 광종(光宗)(재위 949~975)의 만수무강을 기원하기 위해 대형의 철조여래좌상을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탄문의 비문에 나오는 '주금상지삼존(鑄金像之三尊)'도 보원사에서 철조여래좌상이 주조되었음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이다. 철조여래좌상의 원(原) 봉안처는 보원사지 내 '건물지3'으로 추정된다. 발굴조사 결과 현재의 금당지는 조선시대에 세워진 건물지로 드러났기 때문에, 철조여래좌상은 조성 당시 다른 장소에 봉안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건물지3은 다른 건물지에 비해 고려시대 기와와 자기의 출토 빈도가 높고, 무엇보다도 정방형에 가까운 불단 유구가 남아있다는 점에서 이러한 추정이 가능하다. 철조여래좌상은 조성 당시 고려시대 전각인 건물지3에 봉안되었다가 조선시대 중창불사를 통해 지금의 금당지로 이운되었을 것이다.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상의 보존처리 (A Conservation Treatment for the Seated Iron Buddha Statue of Dopian Temple, Cheolwon)

  • 홍종욱;황진주;최준현;신희내;이요한;한병일;이오희
    • 보존과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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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3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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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1-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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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The Seated iron Vairocana Buddha statue of Dopiansa Temple, Cheolwon was designated National treasure No. 63, it is very important to rearch about Korean Buddha statue because it has an inscription on the back indicates that it was made in 865 A.D., the fifth year of the reign of King Gyeongmun(861-875) of Unified Silla(668-935), through the devoted faith of some 1,500 Buddhist followers of the Cheorwon-gun area. In this conservation treatment, for the Seated iron Vairocana Buddha statue of Dopiansa Temple, Cheolwon plating layer and cashew paint layer of the iron pedestal were removed and for the paint the Body of the Buddha, fake metal layer and plaster layer were removed, stabilizing treatment and coating treatment were done, and removal and restoration of earlobe which had been damaged and later was restored with plaster in the regilding in 1988, and the white hair on forehead was replaced with material of rock crystal, and conch-shaped hair damaged was restored on 35 spo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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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高麗) 철제석가여래좌상(鐵製釋迦如來坐像)의 보존 (Conservation of Seated Iron Śākyamuni Buddha Statue from Goryeo Dynasty)

  • 허일권;유자영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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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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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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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국립춘천박물관은 고려 철제석가여래좌상의 부식방지와 상설전시 활용을 위하여 보존처리를 실시하였다. 처리 전 유물의 상태는 부식으로 인한 표면 박락현상이 관찰되었고 가부좌의 오른편 둔부에서 다리부분까지 결손되어 정상적인 전시가 불가능 하였다. 따라서 표면의 이물질을 제거하고 강화·보호 위한 강화처리 작업이 진행되었다. 강화처리 진행에 앞서 국내·외 연구 자료를 바탕으로 micro crystalline wax계를 선정하여 기초 실험을 실시하였다. 그 결과 (주)동남유화의 wax(in xylene) 5wt%가 백화현상과 표면 색상변화가 적으며 작업에 편리성이 높아 강화제로 선택하여 부식을 억제하였다. 결손부분의 복원은 내부 지지대 제작과 함께 epoxy계 수지를 이용하여 탈착이 가능한 복원을 실시하여 전시 효용성을 높였다.

방사선 투과촬영을 활용한 철불의 손상도 평가 및 제작기법 고찰 (Consideration of Making Techniques and Deterioration Assessment using Radiography for the Iron Buddha Statues)

  • 한나라;이찬희;이정은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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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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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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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철원 도피안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동해 삼화사 철조노사나불좌상, 평택 만기사 철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에서 고려시대에 조성된 철불로서 균열, 탈락, 박리박락, 각종 오염물 등이 발생하였다. 방사선 투과촬영을 활용한 철불의 손상도 평가 결과, 철불 내부에서는 균열, 이격, 탈락, 주물공, 보수물질 등이 확인되었다. 그러나 철의 강도로 보아 외부로부터 큰 충격이 가해지지 않는 이상 현재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철불의 제작에는 내형과 외형을 철심과 못을 사용하여 고정하였으며, 표면의 이음선과 양각된 명문, 따로 주조되어 결합된 손으로 보아 초중자주조법으로 조성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분할주조법을 이용한 고대 철불의 재현실험 및 주조법 연구 (A Study on the Recreated Experiment and Casting Method of Ancient Iron Seated Buddha by Spilt Casting Method)

  • 박준영;정다연;한민수;이주완;조남철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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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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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4-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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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국립춘천박물관 소장 철조석가불좌상(본관 1971)을 기초로 재현실험을 시행하여 분할 주조법을 연구하였다. 불상의 3D 스캔 데이터를 활용해 1/2 모형으로 축소 제작한 후 기존 연구 결과를 토대로 거푸집제작, 주조 등을 실시하여 불상을 제작하였다. 거푸집의 외부는 친모래와 산청토를 3:4의 비율로, 내부는 친모래와 산청토를 1:3의 비율로 배합하여 제작한 다음 불상을 주조하였다. 주조된 철불을 통해 다양한 주조결함을 관찰할 수 있었으며, 원불상과 유사한 형태적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재현된 철불의 표면 관찰 결과 베이닝, 유동불량, 외부수축공, 피하기공, 표면핀홀, 형 어긋남 등의 주조결함을 지니고 있었으며, 이는 철조석가불좌상에서 보이는 주조결함의 특징과 유사하다. 미세조직은 나뭇가지 모양의 Dendrite 조직과 Pearlite 조직이 확인되었으며, Cementite 조직 사이에서 검은색의 Graphite가 관찰되었다. 본 연구는 철불의 전통주조기술과 제작기법을 위한 실험연구로서 고대 대형 주조기술을 알아볼 수 있는 기초데이터로 활용될 것으로 본다.

지상실체사진기를 이용한 구조물의 측정과 해석 (Measurement and Analysis of the Structure by Using the Terrestrial Camera)

  • 안철호
    • 한국측량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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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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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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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4
  • 본 연구는 지상사진기에 의한 구조물(석탑)측정에 관한 것으로서 석탑중 통일신라의 석탑인 감은사지 삼층석탑, 고선사지 삼층석탑, 불국사 삼층석탑(석가탑) 및 불상인 석굴암 본존상, 광주철조여내좌상을 대상으로 조형비를 분석하여, 조형원리에 접근하는데 의의를 갖고 있다. 등고선도와 실측치를 정밀하게 얻을 수 있었으며, 이를 바탕으로 조형비를 분석한 결과, 3재의 석탑과 2개의 불상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우선 석탑의 경우 옥개석폭들은 8 : 7 : 6의 비예관계로 구성되어 있었으며, 상대갑석을 밑변으로 정삼각형과 이등변 삼각형을 긋고, 그 정점사이의 거리를 반경으로 하여 정삼각형의 정점에서 원을 그리면 삼층 옥신 윗면과 일치하였고, 또 기준면으로부터 $70^{\circ}$의 2등변 삼각형을 그러는 경우 상대갑석의 끝점들을 거의 통과하며, 삼층 옥개석의 낙수면과 일치함을 알 수 있었다. 불상의 경우 양 눈사이의 중점을 중심으로 원이 성립되고, 어깨와 명치를 연장하면 무릎에 접함을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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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강화 보문사 마애관음보살좌상 연구 (A Study of the Japanese Colonial Era Rock-Carved Seated Avalokiteśvara Statue at Ganghwa Bomunsa Temple)

  • 이주민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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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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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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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강화 보문사 마애관음보살좌상은 일제강점기였던 1928년에 조성된 거대한 규모의 마애불상으로 한국 근대 불교 조각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기년명 불상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근대 불교 조각에 대한 연구 부진으로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본고에서는 보문사 마애관음보살좌상이 근대기 불상으로서 갖는 의미를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보기 위해 마애불 주변에 있는 명문을 판독하여 조성 연대와 제작자 및 후원자를 확인하였으며, 바위의 형태와 지형이 불상의 조형성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알아보기 위해 제작자와 참배객의 시점(視點)을 비교 분석하였다. 또한 제작자 후손들과의 인터뷰를 통하여 불상 조성 당시의 구체적 정황을 파악해 보았다. 보문사 마애관음보살좌상의 제작에는 금강산 승려 이화응(李華應)이 화주(化主)겸 화사(畫師)를 맡았고, 불상 조성이 시작되는 1928년에는 100여 명이 넘는 시주자가 공동으로 후원하였으며, 1937년 참배공간을 확장할 때는 간송 전형필(澗松 全鎣弼)이 단독 후원하였다. 이 마애불 조성을 계기로 강화 보문사는 양양 낙산사, 남해 보리암과 더불어 우리 나라 3대 관음 도량으로 손꼽히게 되었다. 불상의 제작 기간은 약 3개월이 소요되었으며 초(草)는 화주를 맡았던 이화응이 그리고 조각은 운송학(雲松學) 등 다섯 명의 강화 지역 석수가 참여하였는데, 화승이 그린 초를 바탕으로 조각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마애불 곳곳에서 선묘적 기법이 발견된다. 화사로서 이화응의 면모가 밝혀짐에 따라 석옹철유(石翁喆有)-화응형진(華應亨眞)-일옹혜각(一翁慧覺)으로 이어지는 화맥의 단초를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보문사 마애관음보살좌상은 보관을 쓰고 정병을 든 전형적인 관음보살로 방형의 큰 얼굴에 목이 짧고 전체적으로 투박하여 경직된 인상을 준다. 제작자는 높이 10m에 40°가량 기울어져 있는 바위에 마애불을 왜곡 없이 보이기 위해 최대한 동작을 절제하고 대칭성을 강조하여 세부 표현을 생략하였고, 머리와 신체 비례는 1:1에 가깝게 조정하여 시각적 왜곡 문제를 해결하였다. 특히, 본고에서는 보문사 마애관음보살좌상처럼 별도의 불단을 만들지 않는 '불상과 불단의 일체화'된 형식을 근대기 불교 조각의 특징으로 상정하였다. 그 외에 광배에 새겨진 6글자의 범자(梵字)를 그동안 육자대명왕진언(六字大明王眞言)으로 해석했으나, 정법계진언(淨法界眞言)과 사방진언(四方眞言)이 조합된 것임을 새롭게 밝혔다. 아울러 처마 바위에 박혀 있는 3개의 쇠고리는 제작 과정에서 다림추를 달아 초를 그릴 때 기준점으로 활용하였고, 이후에는 고리에 풍탁을 달아 보살상을 장엄하는 용도로 사용한 것을 확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