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Inscribed St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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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삼군영의 한양도성 개축과 각자성석 (Repair and Inscribed Stones of Hanyangdoseng by Three Commands in 18th century)

  • 문인식;김영수;송인호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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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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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9-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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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This paper sought to examine characteristics and differences of the construction methods and the materials of the wall repair by three command through individual command records and national documents. This paper is based on the management section of three commands(Samgunyoung), which was in charge of a repair and management of Hanyangdoseong(Seoul city wall) in 18th century. The purpose and background of the study are as follows. First, through each inscribed stones on the rampart and the parapet, it is to grasp accurately the point of change of Hanyangdoseng after the 18th century. Second, through inscribed stones, the site evidence of the repair work in the late Joseon Dynasty, it is to find out the aspects of the development process of repair and reconstruction technology of Hanyangdoseng.

Material and Deterioration Characteristic Analysis for Inscribed Stones of Naksan Mountain Area of the Hanyangdoseong(Seoul City Wall), Korea

  • Lee, Myeong Seong;Kim, Yuri;Choie, Myoungju;Yoo, Ji Hyun;Ahn, Yu Bin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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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6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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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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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The Inscribed stones of Hanyangdoseong has been weathered for a long time because of external environment and living organisms. To establish a long-term conservation-management strategy for the inscription stones, the material characteristics of the inscription stones of Naksan Mountain Area were identified, and its deterioration state was diagnosed. Consequently, it was confirmed that the Inscription stones of Naksan Mountain Area mainly comprised coarse-to medium-grained pinkish granite and biotite granite, and, in part, comprised reddish granite, quartz porphyry, and aplite. Presently, the Inscription stones of Naksan Mountain Area, Hanyangdoseong, is undergoing a considerable decrease in physical properties because of physical, chemical, and biological weathering. Moreover, it has been confirmed that the type of damage, such as blistering, soiling, and dicolouration, on the surface shows a significantly high deterioration rate, and that conservation treatment might be required in future. In addition, because the possibility of damage recurrence is high even after the treatment, the conservation state must be regularly monitored.

18세기 한양도성의 개축과 축성기법 (Repair and Construction Methods of Hanyangdoseong in 18th Century)

  • 송인호;김영수;문인식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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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0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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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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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Since its construction in the late 14th century, Hanyangdoseong had been carried out three major repairs and reconstructions during the 500 years of the Joseon Dynasty. In addition to the large-scale construction, small-scale construction continued until King Gojong era. In particular, in the 18th century, systematic construction management was implemented by the craftsmen and the military participated in the renovation of Hanyangdoseong in earnest, and the construction methods also developed rapidly. In the early 18th century, new construction techniques were attempted in various sections of the reconstruction work, and gradually became a common technology for repairing Hanyangdoseong in the late 18th century.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characteristics and period of changes in the 18th century's construction technique, when the rapid development of Hanyangdoseong took place. To this end, the excavation results related to Hanyangdoseong, the remaining city wall, and the inscribed stones were used to identify and demonstrate the characteristics and change of the construction method.

서울 삼천사지 대지국사탑비의 암석학적 특성과 산지해석 (Petrological Characteristics and Provenance Interpretation of Daejiguksatapbi (State Preceptor Daeji's Memorial Stele) in Samcheonsaji Temple Site, Seoul)

  • 김지영;이명성;이찬희
    • 자원환경지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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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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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3-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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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삼천사지 대지국사탑비는 고려시대 대지국사 법경의 행적을 기록한 석비이다. 이 탑비는 귀부, 비신 및 이수로 구성되어 있으며 비신은 발굴조사를 통해 약 255점의 파편으로 확인되었다. 탑비의 비신, 귀부 및 이수를 구성하는 암석은 각각 응회암질 각력암, 조립질 홍장석 화강암 및 세립질 화강암으로 동정되었다. 비의 구성암석과 동종의 암석 산출지를 탐색하기 위해 지표지질조사를 실시한 결과, 강화도 해협 양안에 점재하는 응회암질 각력암을 확인하였으며 조립질 홍장석 화강암과 세립질 화강암은 현재 삼천사지가 위치한 북한산에서 확인되었다. 비의 구성암석과 추정 산지 암석의 성인적 동질성을 규명하기 위해 암석학적 및 지구화학적 분석 결과, 추정 산지 암석의 광물조성, 조직, 암상적 특징과 지구화학적 거동특성이 탑비 구성암석과 매우 유사하였다. 따라서 비신은 강화도 해협 일대, 귀부와 이수는 삼천사지 주변이 석재 공급지였을 가능성이 아주 높은 것으로 해석된다. 이 결과는 현재 심하게 파손된 비신의 복원 시 신석재를 선택할 수 있는 근거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이다.

조선시대 회격·회곽묘 출토 삽(翣)에 대한 고찰 (A Study on the Excavated Sab(a funeral fan) from Lime-filled Tomb and Lime-layered Tomb during the Joseon Dynasty)

  • 이승해;안보연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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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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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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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삽(?)은 유교 예법에 따른 상장례(喪葬禮) 도구로 나무로 틀을 만들고 그 위에 백포(白布)나 두꺼운 종이를 붙여 그림을 그린 후, 자루를 달아 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례기(禮記)"에 따르면 삽은 주대(周代)부터 사용되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사례편람(四禮便覽)"에 나타난 삽의 용례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본고에서는 현존하는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회격 회곽묘에서 발견되는 삽의 발굴 사례 및 문헌 기록을 통해 그 용례와 제작방식, 시기에 따른 유물의 특징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삽은 신분에 따라 사용하는 개수와 그리는 문양이 다른데, 사대부가에서는 주로 '아(亞)'형의 불삽 1쌍과 구름 문양을 그린 화삽 1쌍을 사용하였다. 삽의 크기는 너비가 2자[척(尺)], 높이 2자[척(尺] 4치[촌(寸)]로 만들었는데 초주지나, 저주지로 두 번 싸고, 세 번째는 연창지로 쌌다. 그리고 나서 백저포, 마포, 무명, 공단 등으로 덮었다. 그 양면에 보불을 그리고 구름 변아(邊兒)에 운기를 그리는데 대개 주사 또는 진사를 사용하였다. 사대부가 회격 회곽묘에서 출토되는 삽은 광중에 부장된 것으로, 삽자루와 분리된 형태이다. 즉, 출토되는 삽은 발인행렬시 삽을 매달았던 5자 길이의 삽자루는 태워 없애고, 관의 좌우에 세워 넣은 것이다. 출토 유물의 검토를 통해서도 제작과정을 유추할 수 있다. 출토된 유물은 각(角)의 개수에 따라 각이 3개 달린 것과 2개 달린 것으로 대별된다. 먼저 각이 3개 달린 것(유형 I) 중에는 나무 통판을 사용하거나 대나무를 납작하게 갈라, 바구니처럼 엮은 것도 있다. 각이 3개인 삽은 비교적 조선 전기에 집중되어 있으며, 전체적인 형태에 비해 그 제작방식이 다양한 편으로 생각된다. 반면 각이 2개 달린 삽의 경우에는 비교적 정형화된 제작방식이 보인다. 직사각형이나 역사다리꼴로 몸통부분을 만든 후, 2개의 각이 달린 삽의 윗부분을 연결한 형태이다. 다만 상단면을 곡선(유형 II) 또는 직선(유형 III)으로 처리하는 것이 다르다. 이러한 제작방식은 각이 3개 달린 것에 비해 간단하며, 제작기법 상의 차이는 크지 않다. 특히 상단면을 직선으로 처리하는 방식은 오늘날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분석에 사용된 30건 중 묘주의 몰년, 즉 삽의 제작 연대가 명확한 것만 선택하여 분석한 결과, 유형 I은 16세기 전반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어 유형 II는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후반, 유형 III은 17세기 전반부터 18세기 전반까지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 요컨대 삽의 형태는 유형 I에서 유형 II로, 다시 유형 II에서 유형 III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17세기는 변화의 시기로 유형 II III이 혼재되어 있다. 유형을 크게 3가지로 구분하였으나 유형 II III은 각이 2개인 측면에서 그 형태가 유사하다고 볼 때 주목할 만한 전환기는 16세기 중반이라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유형 I은 유형 II III에 비해 제작 과정상 공이 더 많이 들어갈 것으로 생각되며, 후대로 내려올수록 경제성의 원리에 따라 삽의 형태 및 제작방법도 간소해진 것으로 보인다. 상장례의 간소화 경향은 "선조실록(宣祖實錄)"에 예장(禮葬)이 몇 차례 중지되는 사건들을 통해 임진왜란 이후에 가속화된 변화로 볼 수 있다. 삽의 경우 이미 16세기 후반부터 간소화되고 있었으며, 심지어 18세기에는 삽을 따로 제작하지 않고 구의(柩衣) 및 관(棺)에 직접 그리는 현상까지 초래하였다. 그러나 형태적으로 단순화 되는 과정에도 "례기(禮記)"의 삽 사용 규정은 지켜지고 있어, 그 의례의 형식은 합리적으로 간소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