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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송대 항주지역의 관음신앙 (Guanyin Faith in the Hangzhou Area during the Tang and Song Dynasties)

  • 김성순
    • 대순사상논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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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6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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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3-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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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이 논문에서는 인도의 관음신앙이 중국불교에 정착하는 과정에서 항주지역 불교계를 중심으로 관음보살과 관련된 교의와 실천을 구조화하고, 이를 수용하는 방식에 대해 고찰했다. 항주지역은 운하를 활용한 상업과 해상무역으로 축적된 부로 인해 불교교단들도 크게 성장했으며, 특히 송대에 이르러 선종교단이 왕성했다. 항주 천태교단의 지의(天台智顗)는 관음 관련 경전에 대한 재해석을 바탕으로 『청관음경소(請觀音經疏)』를 저술하고, 천태교학과 관음사상을 융합하여 '청관음참법(請觀音懺法)'을 체계화했다. 또한 자운준식(慈雲遵式)은 관음참법을 대중들의 수준에 맞게 일상의 의례로 재생산한 '청관음참(請觀音懺)'을 정비했다. 북송대 항주지역의 선종 교단인 법안종(法眼宗)의 영명연수(永明延壽)는 그의 저술 『지각선사자행록(智覺禪師自行錄)』을 통해 관음신앙을 '108事'라는 일상의 작은 수행 안에 수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중국불교에서는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승려를 보살의 화신으로 숭배하는 현상도 나타나는데, 십일면관음보살로 믿어졌던 남조 제량(濟涼)의 보지(寶誌)화상이 바로 그러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항주지역의 천태교단과 선종교단의 승려들은 이러한 신이승(神異僧)의 관음화현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이는 대중들에게 인기 있는 관음신앙을 통해 신도들을 흡수하려 했던 송대 불교의 일면을 보여주는 현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 예술적 관점에서 본 베트남 (The Representation of the Vietnamese Guanyin in Relation with Asian Arts)

  • 짱 타인 히엔
    • 수완나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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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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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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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베트남 관음상, 특히 천 개의 팔과 눈이 있는 관음상은 일반적으로는 아시아에서, 구체적으로는 동남아에서 종교 혼합주의의 가장 명백한 증거로 여겨질 수 있다. 그것은 인도와 더불어 특히 중국모델에서 전래된 몇 가지 구체적인 증거를 베트남 관음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많은 학자들은 시바를 관음상의 천개의 팔과 천개의 눈을 표상한 것의 원천으로 보았다. 베트남 관음상에 대한 중국문화의 영향은 그 영향이 직접적이며 장기간에 걸쳐 최근까지도 이어져져 왔기 때문에, 인도문화가 남긴 흔적들보다 더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문화적 유사성으로 인하여 비평가들은 베트남 관음상을 중국 관음상의 단순한 복제품으로 간주하게 만들었다. 본 논문에서 저자는 베트남 관음상은 여러 외국의 특징들을 흡수해 왔지만, 동시에 베트남의 심리와 행동, 개념, 토착 종교적 믿음에 상응하는 그만의 독특한 특징을 반영했다는 사실을 주장할 것이다. 천개의 팔과 눈을 가진 베트남 관음상은 인도와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베트남 특유의 예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아시아 관음상의 무한히 풍부한 다양성에 또 하나의 기여를 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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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악(安岳) 명산사석굴(茗山寺石窟) 초론(初論) (A Preliminary Study on the Mingshansi Grottoes)

  • 쑨 화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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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9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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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4-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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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중국 사천성 안악현(安岳縣) 명산사(茗山寺) 석굴은 유본존(柳本尊) 교파의 중요한 석굴사원이다. 석굴은 호법신장감(護法神將龕), 관음 대세지병좌상, 대일여래입상, 문수보살입상, 문수 보현병입상 그리고 조지봉(趙智鳳)의 전법륜탑으로 구성되어 있고 하나의 통일체를 이룬다. 이 석굴사원은 남송 중기에 건축되었고, 아마도 대족(大足), 안악(安岳) 일대 유본존(柳本尊) 교파의 2대 교주인 조지봉이 일찍이 수륙법회 등의 석굴사원은 의식을 거행하던 도량으로 추정된다. 조지봉은 규모가 큰 중경시 대족구 보정산석굴을 개착하였는데, 명산사 법회의 수입이 그 주요 자금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