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Fortress Construction

검색결과 38건 처리시간 0.023초

An Interpretation of Archetypal Form of Byungyoung Castle in Ulsan City

  • Hong, Kwang-Pyo;Kim, Hyun-Sook
    • Journal of the Korean Institute of Landscape Architecture International Edition
    • /
    • 제1호
    • /
    • pp.89-101
    • /
    • 2001
  • The purpose of this study ins to verify the characteristic location of Byungyoung Castle, physical type, inside spatial organization, and the scheme of Byungyoung Castle. The study utilizes historic literature, ancient maps related to Byungyoung Castle, topographical and cadastral maps which were published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Castle, topographical and cadastral maps which were published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and the topographical maps which were made recently by National Geographic Institute with various scales. The methodology of the study is to interpret the contents from the historic literature on the site map. The methodology of the study is to interpret the contents from the historic literature on the site map. The result of the study is as follows; Byungyoung Castle does duty as a defensive base for the entire country and has a specific character of location that has the dual function of a mountain fortress for national defense and of a village fortress for the town. Byungyoung Castle has four gates on four sides and has a oval shape very close to a circular form. The road construction inside the castle is composed basically of a cross shape. Byungyoung is located in the northwest area of this major road system. The private houses that lie along the north-south road are build up at the core area of the lower level and the town market built up around the south gate becomes the heart of life for the people. Schematically, it has the same pattern as regular village fortress, in that the houses for the guests and the houses for the public office are arranged to the east and the west. It is considered that there is certain functional parallel between Byungyoug Castle and Ulsan castle because there are no facilities for sacrificial rites no institutional budding.

  • PDF

기장산성 집수지의 구조와 변화양상 (Structure and Change Pattern of Gijang Mountain Fortress and its Receiving Reservoir)

  • 황대일;정대봉;박준현
    • 건축역사연구
    • /
    • 제22권4호
    • /
    • pp.35-44
    • /
    • 2013
  • This paper looked into the structure of and changes in the building process of Gijang mountain fortress and its receiving reservoir by analyzing data from an excavation investigation. The structure of the receiving reservoir may be classified into a flat form, stone sheath, floor facility, wall facility, and entry and exit facility. The flat form of the Gijang mountain fortress and receiving reservoir is round. Concerning the sectional form, the wall was obliquely excavated in the trapezoid. As a stone sheath building method, it was built by undertaking a range work of oblong stone materials in a clockwise direction on a stamped soil floor. Then, it was treated with stamping using double layers of gray clay and yellowish brown clay on the floor and the wall. Also, in a space between the stamped layers on the floor, herbal plants and a straw mat were laid for waterproofing as well as to prevent sinking. As an entry and exit facility, two facilities were confirmed symmetrically in the southeast and in the northwest. It is believed that they were built additionally during rebuilding after the initial construction. The building process was revealed to have been carried out in 8 stages. Given the structure and excavated remains, the building period is estimated to be the early to mid 7th century for the initial building, the later 9th to 11th centuries for the primary rebuilding, and the later 16th to early 17th centuries for the secondary rebuilding.

경주 월성의 해자(垓字)에 대한 고찰 (Consideration on the Moat of Wolseong Fortress at Gyuongju)

  • 정용조;박주성;심우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 /
    • 제28권2호
    • /
    • pp.37-44
    • /
    • 2010
  •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게 외세의 침입을 도성과 산성의 방어 체계로 막았다. 이러한 방어 체계를 가진 것이 해자의 기능 중 하나이며, 해자는 오랜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 연구가 미비한 실정이다. 본 연구는 경주 월성의 개요와 변천과정을 살펴보고, 경주 월성 해자의 규모와 축조방식 등 월성 해자의 특성을 파악해 보고자 한 것으로 문헌조사와 현장조사 및 인터뷰 등을 통해 고찰해 본 결과, 경주 월성의 해자는 월성 남편을 만곡되게 흐르는 자연하천(남천)을 그대로 이용한 자연해자와 성벽 기단부를 따라 평면 부정형의 못을 파고 냇돌로 호한을 구축한 연못형 해자, 그리고 연못형 해자를 메우고 정다듬한 화강암을 평면 삼각형으로 정연하게 쌓은 월성 동편 석축 해자로 구분되며, 이 중 연못형 해자는 월성 동 북 서편에서 확인되었는데, 동에서 서로 경사를 두어 독립된 연못처럼 단을 지워 조성하였다.

판축토성(版築土城) 축조기법(築造技法)의 이해(理解) - 풍납토성(風納土城) 축조기술(築造技術)을 중심(中心)으로 - (A Study on the Construction method of Stamped earthen wall)

  • 신희권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47권1호
    • /
    • pp.102-115
    • /
    • 2014
  • 판축법은 판으로 틀을 만들어 그 안에 흙이나 모래 등을 층층이 부어 다짐 방망이 등으로 찧어서 단단하게 쌓아 올리는 대표적인 고대 토목기법으로, 토성이나 건물 기단, 담장과 같은 시설을 축조하는 데 가장 보편적으로 이용되어 왔다. 이글의 목적은 풍납토성 축조에 이용된 다양한 기술의 분석을 통해 우리나라 판축토성의 축조 방법과 원리를 이해하는 데 있다. 토성을 축조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지작업을 실시하고 기초를 단단히 조성해야 한다. 점성이 강한 흙을 깔아 기저부를 형성하는데, 구덩이를 파고 다시 메꾸어서 기초를 다지는 기조의 원리가 이용된다. 때로는 지정목을 박거나 잡석을 깔아 기초를 다지기도 한다. 풍납토성은 중심토루의 안팎으로 여러 겹의 판괴를 비스듬하게 연접하여 축조한 것이 특징이다. 비록 고정주와 협판, 달구질 흔적 등의 뚜렷한 판축의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판축틀의 일부로 추정되는 목재가 결구된 상태로 발견되기도 하였다. 이 층에서는 판괴 내의 결합력을 높이고 수분을 유지하여 지내력을 증강시키기 위한 부엽층도 확인되었다. 중심토루 외벽에서는 역경사 판축법을 이용한 호성파도 관찰된다. 이밖에 성벽 축조를 마무리하면서 부석과 석축으로 전체 성벽의 유실 방지와 방수, 배수 등의 효과를 꾀하였다. 습기를 통제하거나 판축토 내의 수분을 제거하기 위한 목적으로 불다짐하기도 하였다. 아직까지 우리나라 고대 토성에서 판축의 정형을 찾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풍납토성 등에서 확인된 판축의 증거들을 향후 발굴될 여러 유적들과 면밀히 비교 연구해 나가면 판축토성의 축조 방법과 원리를 밝히는데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영암읍성(靈巖邑城) 소고(小考) (A Study on the Yeongam Eupseong (Town Fortress))

  • 김영필
    • 건축역사연구
    • /
    • 제20권5호
    • /
    • pp.47-61
    • /
    • 2011
  • This study examined the background and change of building Yeongam eupseong and characteristics and construction method of its spatial structure. The results of this study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Yeongam eupseong was built for the same purpose of national border defense against the invasion of Japanese army as other Eupseongs were built and it was found first in the literature in the era of King Munjong of Joseon Dynasty with the scale of three gates and 4,369 cheok of castle wall. Such a scale was continued and in particular, according to flat structure, road network and gate position shown in the map, the form and road system of Yeongam eupseong before the 19th century were mostly identical with the current ones. Second, castle wall was built over foundation by using talcum after leveling the foundation soil and castle wall can be divided into outer wall, filling part and inner wall from the section. Outer wall was constructed by inserting and layering pebbles with big irregular stone, filling part was made with talcum and riprap and inner wall with soil in several layers by keeping gradient. This building method showed common features in inserting and layering pebbles for outer wall, use of protruded base and section form compared to Jeollado Eupseong.

천해부에서 해저케이블 건설 연구 (A study for construction of Shore-end Submarine cable)

  • 정재진;이영선;신현식
    • 한국전자통신학회논문지
    • /
    • 제2권3호
    • /
    • pp.185-190
    • /
    • 2007
  • 해저케이블 장애의 가장 큰 원인은 어로 활동으로써 약 70%가 어선의 닻으로 인해 발생되며, 수심 200m 이내 지역에서 가장 많이 발생 하고 있다. 이는 어선으로 부터 해저케이블 보호를 위한 보호규정마련과 천해부에서 케이블 건설 기준이 마련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본고에서는 해저 이용자간 구조물 설치를 위한 방안을 제시하고 관련법을 마련토록 제언하였으며, 해저케이블 포설사업자들이 일반적으로 설치하던 천해부에서 해저케이블 매설 기법을 보완 발전시켜 정부차원의 관련 기술기준을 마련하고자 한다.

  • PDF

논산 노성산(魯城山)의 입석(立石) 분포와 총석사(叢石寺) 수석(樹石)의 정원적 면모 (Dispersion of Standing Stones at Noseongsan(Mt.Noseong) and Aspect of the Stone Decorated Garden(Soo-suk Jeongwon) at Chongsuk-Sa(Chongsuk Buddhist Temple) in Nonsan City)

  • 노재현;허준;장일영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43권1호
    • /
    • pp.160-189
    • /
    • 2010
  • 본 연구는 아직까지 학계에 보고되지 않은 논산 노성산성 일대 입석과 총석의 현황과 그 형태 및 의미를 파악하기 위한 목적으로 시도되었다. 이에 따라 노성산과 노성산성의 장소정체성과 노성산성 내외부에 산재한 입석의 분포를 파악하는 한편 입석의 밀도가 가장 높고 문화재적 보존가치가 높다고 판단되는 '총석사'를 중심으로 수석(樹石)의 배치형태 및 구성 특성을 조사 분석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불우조(佛宇條)에서의 '탑사(塔寺)' 존재의 언급, 탐문조사 결과 사찰의 존재설 그리고 '관음사(觀音寺)' 명의 와편 발굴 기록 등으로 미루어 볼 때 오래전부터 산성 내부에 불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이는 '총석사'라는 각자와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관찰조사 결과, 산성내부에 존재하는 다수의 입석지 중 제6입석지는 수석(樹石)의 규모, 수석 구성의 복합적 경향, 주변 우물(샘) 및 방지 그리고 석문 등에 이르는 계단의 조성 흔적 등을 볼 때 총석사를 중심으로 인위적으로 조성된 공간의 성격이 강하다. 총석사를 비롯하여 삼신암, 칠성암, 대장암 등으로 각자된 5개의 수석과 관세음보살로 추정되는 선각 마애불은 동일 공간 바위 위에서 발견된 북두칠성의 성혈(星穴)과 함께 이 공간이 불교 또는 도교와 민간신앙이 결합하여 발생한 칠성신앙 및 산신신앙적 공간이었음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로 파악되었다. 총석사 입석의 실측조사 결과, 수석의 수는 총 24개로 수석고는 29~402cm, 수석폭은 48~290cm로 규모에 있어 큰 편차를 보였으며 수석간 평균거리는 23.56cm로 나타났다. 또한 입석, 평석, 산형석 그리고 영상석 등 다양한 돌을 특치(特置), 군치(群置)하여 수석하였으나 돌의 좌향은 서향(W)으로의 일관된 지향성을 보이고 있었다. 또한 국내에 알려진 정토정원의 유구와 비교할 때 수석의 배치 기법상 입석과 형상석 이외의 3개의 평석은 선원의 대표적 구성요소가 되는 좌선암의 형태를 띠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중 보살암을 마주하는 평석은 삼산석(三山石)을 상징화하여 조성된 것이지만 높이 및 주변 수석 배치 여건으로 보아 참선의 목적보다는 제수를 위한 공양석으로 추정된다. 총석사 수석의 구성은 입면이나 평면구성상 천지인 삼재(三才)를 형상화한 삼존석형(三尊石形)을 바탕으로 심경미(深景美)를 추구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부등변삼각형의 3:5:7 복합수석법으로 일정한 지향성을 보이며 배치되고 있음을 볼 때 총석사 입석군은 사원수석의 형태로 참선을 목적으로 돌짜임된 축경적(縮景的) 정원 유구로 보인다.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축조기법 기원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Origin of Stone Pagoda Construction Techniques at Stone Brick Pagoda of Bunhwangsa Temple in Gyeongju)

  • 김인수
    • 건축역사연구
    • /
    • 제33권3호
    • /
    • pp.7-17
    • /
    • 2024
  • Bunhwangsa Stone Brick Pagoda, constructed in 634, is Korea's oldest stone pagoda. As a prototype of the Silla Stone Pagoda, the pagoda was constructed using flagstones. Since it was constructed with flagstones, it has been known to be a pagoda that replicates the brick pagoda until now. The latest research suggests that it copies the India Stupa or the Stacked Stone Pagoda more than the Brick Pagoda. However, the Bunhwangsa stone brick pagoda has a significant difference in terms of construction technique and shape compared to Brick Pagodas, India Stupas, and Stacked Stone Pagodas. Therefore, it is worth paying attention to the stone building technique used in Silla. Through this study, I would like to clarify that the Bunhwangsa stone brick pagoda is a stone pagoda that creatively reflects the existing Silla stone building techniques such as stone fortresses and stone chamber tombs.

북한산 불교 석조미술 연구 (A Study on the Buddhist Stone Arts of Mt. Bukhan)

  • 이서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52권1호
    • /
    • pp.90-119
    • /
    • 2019
  • 본 논문은 북한산 불교 석조미술이 북한산이라는 문화 영역에서 갖는 의의를 밝히기 위한 것이다. 북한산은 불교가 전래된 이후부터 불교문화가 성행했으며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꾸준히 사찰이 건립된 불교문화의 중심지였다. 조선 후기 북한산 승영사찰(僧營寺刹)의 건립은 기본적으로 신앙 기도처로서 사찰의 기능을 가졌지만 북한산성 축성이 중요 배경으로 작용한 만큼 북한산의 지정학적 위치, 교통로, 관방체계와도 밀접한 연관을 갖는다는 점이 매우 주목되는 북한산 불교문화의 특징이다. 북한산 불교 석조미술을 유형별로 살펴보면 석조부도, 석탑, 마애불, 석불, 탑비(석비), 석등, 당간지주, 마애사리탑 등으로 구분되는데 비교적 다양한 유형이 남아 있다. 시대별 특징은 신라 불교미술이 경기지역까지 확산되었음을 보여주며 고려 전기와 조선 후기에 석조미술이 가장 많이 조성되었다는 것이다. 고려시대부터 북한산 일원 사찰은 왕실 원찰로 왕실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으며 조선 후기에는 북한산성 축성이 불교 석조미술 증가에 가장 중요한 계기로 작용하였다. 분포 현황을 보면 통일신라 석조미술은 남쪽에서부터 등장하며 고려 전기까지는 북한산 서쪽에 주로 조성되었다. 고려 후기부터 조선 후기까지는 북한산 동쪽지역에 다수 조성되었음을 확인하였다. 이는 초기에 한강을 이용해 서해안 방향으로 진출하고자 했던 신라의 군사적 목적과 조선 후기 북한산성 축성에 따른 도성 방어 목적으로 변화하면서 북한산의 중심 사찰도 변화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마지막으로 북한산 불교 석조미술은 불교 도입 이래 다양한 유형이 꾸준히 조성되었으며 그 중에서도 새로운 도상과 유형이 등장하고 사례가 많지 않은 특징적인 양식이 등장한다는 점, 고려 후기와 조선 후기 분사리 부도의 건립, 조선 후기 불교신앙 흐름의 반영이라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의와 가치가 매우 높다.

조선후기 궁중 연희무대 건축 장인(建築匠人)의 활동과 주요 목수(木手) 연구 (A Study on Activities of Architecture Craftsmen and Major Carpenters of Court Palace Performance Stages in the Late Joseon Dynasty)

  • 석진영;한동수
    • 건축역사연구
    • /
    • 제28권3호
    • /
    • pp.29-44
    • /
    • 2019
  • A major performance stage carpenter, Jang Insang led performance stages from the 1719 Sukjong Royal Banquet and was confirmed by historical records to be the first craftsman. Lee Wandeuk led the Hwaseong Fortress performance stages of the Jeongjo period and Gichuk Jinchan performance stages of the Sunjo period. The carpenter techniques he used during the Jeongjo period were succeeded to the Sunjo period. Ahn Sungil was the head craftsman who led the performance stages of Jagyeongjeon Jinjak, Muja Jinjak, and Gichuk Jinchan of the Sujo period, under which the foundation for court palace performances was laid. The progression of major carpenters includes Jang Insang of the Sukjong period, Jeon Yoochu of the Yeongjo period, Ahn Sugil of the Sunjo period, Yoon Seoksin of the Heonjong period, Kim Yoonsik of the Gojong period, Lee Jongyoon, Kim Soongil, Seo Sangmook, and Han Sujoon. In addition, the Major Repair of Injeongjeon Hall (1857) of the Cheoljong period was the most important palace construction project for transferring the carpenters' skills. Through this project, Ahn Sungil of the Sunjo period, Kim Myeonggap, Yoon Seoksin of the Heonjong period, Kwon Deuknyang, and Kim Sungil of the Gojong period were able to interact with each other. That is, this major repair project of Injeongjeon Hall reflected the major carpenters' best techniques through performance stage construction, showing the progression of Ahn Sungil, Yoon Seokshin, and Kim Sungil, who led the constructions of Gichuk Jinchan of the Sunjo period (1829), Mushin Jinchan of the Heonjong period (1848), and Jeonghae Jinchan of the Gojong period (1887), the most impressive performance stages of the late Joseon period. The carpenters of the court performance stages participated in important construction projects of the royal palace, reflecting the superior technical skills of the carpenters in the construction of court palace performance stages. The carpenters who played a leading role in the construction of performance stages were able to interact with one another and transfer their excellent technical skills, providing the driving force that allowed court performance stages to blossom into splendid and high-quality court stages in the late Joseon Dynas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