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Curved pond

검색결과 12건 처리시간 0.021초

조선시대 민간정원 지당형태의 통시적 분석 (A Diachronic Analysis on the Shapes of Pond at the Private Residence in the Choson Dynasty)

  • 권차경;강영조
    • 한국조경학회지
    • /
    • 제28권3호
    • /
    • pp.61-71
    • /
    • 2000
  •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investigate the forms and styles of pond at private housing in terms of diachronically influencing characteristics in the Choson Dynasty. From various literatures and records, we have selected 73 cases of pond. We have analyzed the types of pond based on square type, squared type with islets, and modified types and found the following results: 1) Chronically, shapes of pond had been chanced from the three prototypes into their features of deducting side or edge, adding a triangular or trapezoid shape, and installing more islets, and replaced their figures with gradually progressive from side having a straight lined shape to a curved one. 2) As for characteristics of arranging ponds, we found three patterns of arrangement - the juxtaposition with a similar shape of pond, juxtaposition with a different shape of pond, and the juxtaposition with a pond having different topological level in the light of the relation with a stream and a pond. We can conclude the two changed patterns of ponds at private residence in Choson Dynasty that the one had been transformed shapes of pond with sides of pond, and the others had been transformed juxtaposition with either a stream or a natural stream. From this research we can find an important implications in understanding patterns and types of garden in the Choson Dynasty from exploratory approach and in the future the relationship between topographical characteristics of private residence and Confucian ideas, and shapes of pond is needed to be examined in explanatory manner.

  • PDF

고대 한.중.일 원지의 비교연구 - 최근 발굴된 원지를 중심으로 - (A Comparative Study of Ancient Palace Ponds of Korea, China and Japan - Focus on the Recent Excavated Palace Pond -)

  • 박경자
    • 한국조경학회지
    • /
    • 제30권4호
    • /
    • pp.1-8
    • /
    • 2002
  • The place of South Weol Dynastys authorities exhumed in the region of KangChoWu, China lies adjacent to a stone ditch through which water streams crookedly, and a dark trough of stone pond in the north side. There is a sharply curved stone ditch and a crescent-shaped water entrance made by stones. The place was separated by using stone columns and stone walls. There is a beam of ditch, a crooked entrance, a flat bridge of slate, a stepping-stone, a sluice gate, and a crooked corridor. There are big and small artificial islands, and reinforcing stone drainage way in the palace pond recently exhumed at the building site for the pavilion of Hwang-Yong Temple in Kuhwang-Dong, Gyeongju city, Korea. There are four facilities assumed to be entrance and exits at four corners and an open space on which gravel was spread extensively. A narrow road and a middle road with indefinite curves at the south of Asukakyoseki exhumed by the first, second and third and two stone buckets which one is to fill with water and the other is to drain water off like fountain are there, and besides wave protecting dam and north pond and the part that water pass were excavated. Palace ponds that were extensively distributed at old residential cities are a general phenomenon of countries in eastern Asia. Anap pond of Silla and Gungnam pond of Baekje were in Kroea. We believe that Asutnkyoseki is on the extension. Although more investigations in the background of thought and the genealogical relation about the palace pond are required, it seems that an idea was surely received from China.

무안 화설당(花雪堂) 지당(池塘)의 조형디자인적 해석(解釋) (Interpretation on the Formative Design for Garden Pond of Hwaseol-dang in Muan)

  • 노재현;이현우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 /
    • 제33권2호
    • /
    • pp.1-11
    • /
    • 2015
  • 본고는 무안 화설당(花雪堂) 정원의 핵심시설인 지당(池塘) 디자인의 전개과정을 조명한 것이다. 연구진행 상의 현황파악과 이해를 위해 '문헌조사 인터뷰 현장답사 항공사진 및 촬영 사진 분석 측량에 의한 배치평면 작도' 등의 방법으로 정원 및 지당의 조형성 분석 및 전개과정 상의 디자인 함의를 해석하였다. 지당을 중심으로 추출한 본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화설당의 입지는 정자의 입지로는 역량성이 낮은 구릉지에 조성됨으로써 내부 디자인적 함의가 더욱 주목된다. 지당 형태는 1 : 12 장방형 비율로, 화설당쪽 호안의 수심(水深)이 최대 25cm 높은 상태이며 남동측으로 편재(偏在)된 중도 상에는 배롱나무가 식재되어있다. 화설당을 중심으로 전정과 후정은 수직 수평적 음양운동을 도형화 시킨 천지(天地)의 표현이며 중도의 편재현상은 '화설당 누마루에서의 좌관(坐觀)을 통한 완상(玩賞)' 효과를 최대화하기 위한 배려로 판단된다. 지당의 평면디자인은 '장방형 방지'로 해석되지만, 일부분이 가각전제(街角剪除)로 공제된 원만한 반월형이다. 방지3도(方池三島)는 협소한 부지로 인해 1개의 섬과 2개의 반도(半島)를 병치시킴으로써, 실제로 1개인 중도가 결과적으로는 증식된 3개의 중도로 배치된 존재효과를 거두고 있었고, 이는 디자인적 구성상 합병(合倂)과 첨가(添加)에 의해 중복을 최소화하는 대신 접합(接合)의 효과를 기도한 조영의도로 화설당 지당 디자인의 요체로 판단된다. 국내 민가정원 중 3도(三島)의 섬을 갖는 소수 사례마저 모두 곡지(曲池)임을 감안할 때, 방지일도(方池一島)의 변형 형태로 방지삼도(方池三島)의 정원효과를 구현한 화설당 방지의 디자인 특성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한편 지당 내 '영주(瀛州) 방장(方丈). 봉래(逢萊)'의 3개의 섬은 신선사상을 배태한 것으로 이는 전남지방 지당양식의 특징으로 간주되며 이른바 화설당 지당의 풍백나무와 용침(龍枕) 그리고 괴석 등은 화설당의 의미 상징성 요소로 응축된다.

통일신라시대 월지(月池) 입·출수 체계의 원형과 구조 (The Prototype and Structure of the Water Supply and Drainage System of the Wolji Pond During the Unified Silla Period)

  • 김형석;심우경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52권4호
    • /
    • pp.124-141
    • /
    • 2019
  • 연구는 월지(안압지)의 수질 관리 문제를 유지용수의 순환 체계와 연관지어 접근하였다. 이를 위해 연못의 순환체계와 관련 깊은 입·출수 체계를 검토하였으며, 기존의 입·출수시설 외에 선행 연구에서 제기되었던 추정 입·출수시설을 분석하였다. 입수시설을 검토한 결과, 현재 입수구인 월지 동남측 호안 입수시설은 남북 담장을 사이에 두고 동편의 정원시설(경석, 곡수로, 저수시설)과 수로로 연결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월지 동편 조사에서 별도의 시설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1920년대 실측 도면에 경석군이 확인된 것이 이를 뒷받침한다. 추정 입수구인 남서측 호안 입수시설은 월지 서편 건물지 임해전(臨海殿) 터에 남아 있는 화강암 수로와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월지 남서측 호안을 향해 경사가 낮아지고, 거름망을 꽂았던 홈, 1920년대 실측 도면과 1975년 측량 도면의 입수구에 경석이 배석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깨끗한 물을 입수시키기 위한 것으로 판단된다. 출수시설과 관련하여 북측 호안 출수시설은 총 5단계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목제 수로와 장대석군 집수시설의 기능은 월지의 물을 배수하기 위한 시설만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목제 수로에 나무 물마개가 있는 점과 마지막 단계에 집수시설이 있는 점으로 미루어보아 상황에 따라 발천의 물이 역으로 입수될 수 있다고 판단된다. 즉 북측 호안 출수시설은 양방향으로 물이 드나들었으며 장대석군 집수시설을 통해 개폐 가능한 목제 수로로 입수되기도 한 것으로 판단된다. 추정 출수구인 서측 호안 출수시설은 북측 호안의 출수시설과 매우 유사함을 볼 때 신라시대에 존재하였거나 후대의 어느 시점에 북측 호안 출수시설을 모방하여 만들었을 것이라는 추정 외에는 어려운 실정이다. 다만 조선시대 어느 시점까지는 농업용수 공급을 위한 출수시설로 기능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상과 같이 월지는 신라 왕경 중심부인 동궁의 시설과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체계화된 배수망에 의해서 입·출수가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월지를 비롯한 각 시설군에 물이 입수되었으며 왕경 중심부의 중요한 인공 하천인 발천(撥川)을 통해 남천(南川)으로 연결되는 배수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경주 구황동 원지(九黃洞 園池) 유적 창건 및 변화 시기의 조영과 성격 변화 (Changes in Construction and Characteristics during the Period of Foundation and Change of the Garden Pond Site in Guhwang-dong, Gyeongju)

  • 김형석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55권3호
    • /
    • pp.102-118
    • /
    • 2022
  • 신라왕경 경주는 신라 천년의 문화와 기술이 집약된 도시이다. 하지만 신라왕경의 조경 유적에 대해서는 동궁과 월지 외에는 관련 자료 부족 등의 이유로 연구가 미진하였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동궁과 월지에 이어 그 전모가 발굴조사로 확인된 구황동 원지의 조영 특성과 성격에 대해 고찰하였다. 경주 구황동 원지는 발굴조사 후 지금까지 궁원지(宮園池)이냐 분황사의 사원지(寺院池)이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원지의 특징인 두 시기로 구분되는 유구의 양상으로 볼 때 1차시기인 6~7세기에는 용 신앙과 관련한 제의시설, 2차시기인 8~9세기에는 조경적 기능이 강화된 원지로 기능하였을 것으로 해석하였다. 또한, 문헌 기록에 나오는 청연궁(青淵宮)과 조추정(造秋亭)이 있던 자리일 가능성이 높다. 1차시기의 특징적인 시설로 'ㄹ'자형 수로가 확인되는데 수로의 폭과 깊이로 보아 단순 배수시설로 보기에는 부족하며, 용 제의와 관련하여 관념상 용이 들어오는 통로로 여겨진다. 나아가 의례와 관련한 유상곡수(流觴曲水) 시설일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러한 용 제의 관련 시설이 2차시기가 되면서 개편되는데 굴곡진 호안, 정원석, 누정 건물의 등장과 'ㄹ'자형 수로, 육각형 건물의 폐기 등과 관련하여 경관 기능 중심의 원지로 그 성격이 변화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성격과 관련하여서는 1차시기의 제의기능과 2차시기의 귀면와를 포함한 의장적 요소로 볼 때 왕실 관련 시설로 볼 수 있다. 원지 서편에 인접한 축대 상부가 삭평된 것으로 볼 때 주 건물지는 축대 상부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왕이 거처하는 이궁이 아닌 제의기능과 유휴기능을 가졌기 때문에 대규모 건물지는 없었을 것이다.

경주 월성의 해자(垓字)에 대한 고찰 (Consideration on the Moat of Wolseong Fortress at Gyuongju)

  • 정용조;박주성;심우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 /
    • 제28권2호
    • /
    • pp.37-44
    • /
    • 2010
  • 우리나라는 다른 나라들과는 다르게 외세의 침입을 도성과 산성의 방어 체계로 막았다. 이러한 방어 체계를 가진 것이 해자의 기능 중 하나이며, 해자는 오랜 역사성을 가지고 있는데 비해 연구가 미비한 실정이다. 본 연구는 경주 월성의 개요와 변천과정을 살펴보고, 경주 월성 해자의 규모와 축조방식 등 월성 해자의 특성을 파악해 보고자 한 것으로 문헌조사와 현장조사 및 인터뷰 등을 통해 고찰해 본 결과, 경주 월성의 해자는 월성 남편을 만곡되게 흐르는 자연하천(남천)을 그대로 이용한 자연해자와 성벽 기단부를 따라 평면 부정형의 못을 파고 냇돌로 호한을 구축한 연못형 해자, 그리고 연못형 해자를 메우고 정다듬한 화강암을 평면 삼각형으로 정연하게 쌓은 월성 동편 석축 해자로 구분되며, 이 중 연못형 해자는 월성 동 북 서편에서 확인되었는데, 동에서 서로 경사를 두어 독립된 연못처럼 단을 지워 조성하였다.

한국(韓國) 고대(古代) 궁원지(宮苑池)의 전개양상(展開樣相)과 사상적(思想的) 배경(背景)에 관한 연구(硏究) (A Study on aspect of development and the ideological backgrounds of a pond a place of Korea)

  • 오승연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 /
    • 제37권
    • /
    • pp.65-89
    • /
    • 2004
  • 지금까지 한국 고대 궁원지에 대한 연구는 조경학의 분야에서 주로 다루어 왔으나 고고학적 발굴을 직접 담당하는 연구자들에 의해서는 단편적인 유적이나 유물에 대해서 부분적으로 언급되었을 뿐 전반적이거나 종합적인 연구는 미약한 상태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지금까지 발굴조사된 궁원지의 분류작업을 통해 한국 고대 궁원지의 계통관계를 파악하고, 궁원지 조영의 사상적 배경을 밝히고자 시도하였다. 한국의 고대 궁원지는 평면형태에 따라 방지계(I)와 곡지계(II)로 구분할 수 있었는데, 방지계(I)는 다시 섬 가산 정원석의 존재 여부에 따라 IA식과 IB식으로 세분되었다. 그리고 곡지계(II)는 호안이 곡선만으로 구성된 IIC식과 호안에 곡선과 직선이 함께 사용된 IID식으로 구분되었다. 또 규모에 따라서 최대직경 45m 이상의 대형(a)과 20m 미만의 소형(b)으로 구분되므로 결국 한국 고대 궁원지는 IAa IAb IBa IICa IICb IIDa로 분류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궁원지가 처음 확인되는 초창기부터 방지계와 곡지계는 공존하고 있었으며 신라의 삼국통일 후, 궁원지의 계승 및 변화의 양상이 나타난다. 즉, 통일신라에서는 평면형태가 직선+곡선으로 이루어진 궁원지를 주로 받아 들이는 반면, 발해에서는 고구려계의 방형플랜을 가진 궁원지를 계승하는 점은 앞 시기로부터의 연속성이 엿보인다. 한편, 평면형태의 계승관계와 달리 구성요소 면에서는 삼국시대에 존재하지 않던 섬상부의 정자터, 원지내 교각시설 등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양상은 이웃한 일본에서도 동시에 출현하는 것으로 보아 7세기 후반~8세기 전반에 한 중 일 궁원지 조성에 새로운 변화의 동인이 작용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궁원지 조영의 사상적 배경은 신선사상과 불교로 대별된다. 한국과 중국의 궁원지에 관한 기록이 모두 신선사상의 용어가 사용되는 점이나 한국 궁원지에서 섬 가산 정원석과 같은 구체적인 표현기재가 나타나고 있는 점, 그것이 제외된 궁원지와 뚜렷히 구분된다는 점등을 고려하면, 섬 가산 정원석이 사용된 궁원지는 신선사상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섬 가산 정원석이 제외된 궁원지는 동시기 신선사상이 반영된 곡지계 궁원지와 형식상 명확히 구분되고 있는 점과 동시기 사원지와 형태 구조상 동일하다는 점에서 불교저 색채가 짙다고 할 수 있다.

남해읍성의 공간구성과 축조기법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echniques of the construction and Space Structure of Nam-hea city walls)

  • 권순강;이호열
    • 건축역사연구
    • /
    • 제18권5호
    • /
    • pp.59-80
    • /
    • 2009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history, space structures, blueprint, and techniques of the construction of Nam-hea city walls. Nam-hea city walls were relocated in 1439 from Whagumhun-Sansung(火金峴山城) to the present site, nearby Nam-hea Um.(南海邑) The city walls were rebuilt after they were demolished during Japanese invasion on Korea in 1592 and their reconstruction was also done in 1757. At present, the city walls only partially remained due to the urbanization of the areas around them. A plane form of the City wall is a square, and the circumference os approximately 1.3km. According to the literature, the circumference of the castle walls is 2,876尺, the height is 13尺, and the width is 13尺 4寸. Hang-Kyo(鄕校). SaGikDan(社稷壇), YoeDan(厲壇), SunSo(船所) which is a harbor, as well as government and public offices such as Kaek-Sa(客舍) and Dong-Hun(東軒) existed inside the castle walls. Inside the castle walls were one well, five springs, one ditch, and one pond, and in the castle walls, four castle gates, three curved castle walls, and 590 battlements existed. The main government offices inside castle walls were composed of Kaek-Sa, Dong-Hun, and Han-Chung(鄕廳) their arrangements were as follows. Kaek-Sa was situated toward North. Dong-Hun was situated in the center of the west castle walls. The main roads were constructed to connect the North and South castle gate, and subsidiary roads were constructed to connect the East and West castle gate. The measurement used in the blueprint for castle wall was Pobaek-scale(布帛尺:1尺=46.66cm), and one side of it was 700尺. South and North gate were constructed in the center of South and North castle wall, and curved castle walls was situated there. One bastion was in the west of curved castle walls and two bastions were in the east of curved castle walls. The east gate was located in the five eighths of in the east castle wall. Two bastions were situated in the north, on bastion in the south, one bastion in the south, and four bastions in the west castle wall. The castle walls were constructed in the following order: construction of castle field, construction of castle foundation, construction of castle wall, and cover the castle foundation. The techniques used in the construction of the castle walls include timber pile(friction pile), replacement method by excavation.

  • PDF

월지 조성 목적의 중의성(重意性) 고찰 (Various Meanings of Wolji Pond Construction in Shilla Dynasty)

  • 홍광표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 /
    • 제34권3호
    • /
    • pp.67-77
    • /
    • 2016
  • 본 연구는 월지의 조성목적이 단순히 정원을 조성하기 위해서라는 기존의 이론에 대한 문제제기로부터 시작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월지조성에 대한 기존의 이론에 대하여 논의한 후, 월지조성의 또 다른 목적을 저류지로 상정하고 이것에 대하여 검증하였다.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월지조성에 대하여 제기한 두 가지 의문에 대하여 논의한 결과 월지가 처음부터 정원으로 만들어졌을 가능성 보다는 저류지로서 조성하였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진단하였다. 둘째, 위치와 지형적 측면으로 볼 때, 월지는 북천으로부터 유입된 물이나, 범람한 물, 또는 용출수가 형성하는 지천이나 수로가 자연스럽게 월지 쪽으로 흐르도록 지형적 조건이 형성되어 있으며, 월지는 이렇게 형성된 물이 남천으로 유입되는 유로의 종점에 위치하고 있어 물을 저류한 후 유출하기에 유리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셋째, 수리적 측면에서 볼 때, 북천은 제방이 축조되기 이전에는 범람이 일어날 가능성이 상존하였으며, 이러한 홍수피해는 구황동원지에서 한번, 다시 월지에서 한번 잡아주어 왕경중심부로 피해가 확산되지 않도록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넷째, 도시계획적 측면에서 볼 때, 월지가 조성되기 이전에 월지일대는 도시기능이 들어서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였으며, 월지가 조성되고 난 이후에 도로 등의 개설을 통해 도시계획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다섯째, 월지의 입수장치와 출수장치 그리고 월지 서측의 수직석단은 월지가 저류지로서의 기능을 충분히 할 수 있도록 한 시설이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여섯째, 저류용량으로 볼 때, 월지는 당시로서는 엄청난 량의 물을 저류할 수 있는 시설이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사쿠테이키(作庭記)」의 작정원리 연구 - 풍수론(風水論)을 중심으로 - (A Study on Garden Design Principles in "Sakuteiki(作庭記)" - Focused on the "Fungsu Theory"(風水論) -)

  • 김승윤
    • 한국조경학회지
    • /
    • 제41권6호
    • /
    • pp.1-19
    • /
    • 2013
  • 본 연구는 11세기말경 일본 헤이안 시대에 편찬된 것으로 알려진 조원고서 "사쿠테이키(作庭記)"를 동아시아적 시각에서 고찰한 것이다. "사쿠테이키"는 동아시아에서 그리고 세계적으로도 가장 오래된 조원이론서라 할 수 있는데, 대륙(한국과 중국)에서 연원한 일본 고대 정원문화의 지혜가 축적되어 있다. 정원문화와 관련된 동아시아의 전통 작정원리 중본 연구에서는 건강하고 복된 거처를 찾는 문화에서 형성된 풍수론(風水論)에 기반을 둔 것들을 추출하여 해석하였다. 풍수론은 중국 한나라 때 음양오행론과 함께 형성되어 정원을 포함한 인간의 거처 조성에 폭넓게 활용되었다. 이 전통은 한반도를 통하여 일본에 전래되고, 또 중국과의 직접 교류를 통해 일본 문화에 통합되었다. "사쿠테이키"에 나타난 작정원리들 중 동아시아의 풍수론에 근거한 것들은 "사신상응의 땅", "사방에 나무심기", "기의 흐름", "곡선과 비대칭", "산은 제왕 물은 신하"라는 주제어로 요약될 수 있다. "사신상응(四神相應)의 땅"과 "사방에 나무심기"라는 작정원리는 풍수의 "명당론(明堂論)"에 해당된다. "사쿠테이키"에서 말하는 사신상응의 땅은 동쪽에 유수(流水), 서쪽에 대도(大道), 남쪽에 연못(池), 북쪽에 언덕(岡)으로 둘러싸인 지세를 말하며, 중국의 양택풍수서인 "택경(宅經)"에 기원한다. 이 원리에 따라 도시가 계획되었고, 그 축소 모델로 귀족의 저택이 만들어졌다. 인공으로 조성된 사신(四神)인 계류와 연못이 있는 정원(南庭)은 명당자리에 해당된다. "사쿠테이키"에서는 또한 이와 같은 사신(유수, 대도, 연못, 언덕)이 없을 경우 사방에 나무를 심어 대신하는 법을 제시하고 있다. 이 식재법은 "택경"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6세기 중국의 농서인 "제민요술(齊民要術)"에도 유사한 내용이 있다. 또한 식재하는 나무의 숫자를 추적한 결과, 고대 역(易)의 원리인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의 숫자와 관계가 있고, 한국의 "산림경제"에 나오는 용도서(龍圖墅: 하도(河圖)의 원리에 맞춘 별장)의 식재원리와 연결된다. 다음 "기의 흐름"과 "곡선과 비대칭"의 원리는 풍수의 "생기론(生氣論)"에 해당된다. "사쿠테이키"에서는 순류와 역류 방향을 통해 기의 올바른 흐름이 제시되고 있으며, "사쿠테이키"에서 제안하는 구불구불한 계류의 곡선, 다리와 돌의 비대칭적 구성, 그리고 연못의 들쭉날쭉한 가장자리선 등은 모두 기가 모이도록 하는 방법으로, 풍수의 생기론과 상통하는 원리이다. 마지막 원리인 "산은 제왕, 물은 신하"는 풍수의 "형국론(形局論)"에 해당된다. "사쿠테이키"는 정원을 만드는 의미를 산은 제왕, 물은 신하, 돌은 보좌신(輔佐臣)에 비유하여 설명한다. 왕이 보좌신의 도움을 받아 백성을 잘 다스리는 상황을 돌의 도움으로 산(흙)이 물을 조절하는 생태적 현상에 비유한 것이다. 이는 자연 지형을 사회체제나 인물, 동물, 사물 등에 비유하여 설명하는 풍수의 형국론과 통한다. 이상과 같이 "사쿠테이키"에 나타난 주요 작정원리들은 동아시아 전통인 풍수론의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따라서 "사쿠테이키"는 일본의 특정시대에 특정한 정원의 작정법을 기술한 책이지만, 거기에는 일본 고대의 정원문화, 나아가 동아시아 고대 정원문화의 지혜가 종합되어 있다는 사실에서 그 중요성을 발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