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Confucian educational philosop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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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교과교육론(I) : 고전철학과 유가철학의 교육이념과 방법 (The education of classical philosophy & ideas and methodology of confucian philosophy)

  • 임헌규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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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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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63-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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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이 논문은 학문과 교육의 성격이 변화된 정보화된 현실 사회의 상황을 직시하면서, 이런 사회야말로 학문과 인격 완성의 일치를 지향하는 철학 교육이 절실히 요청된다는 주장을 피력하고자 기술되었다. 정보화된 사회에서 지식은 이제 자기 목적이 아니라, 팔리기 위해서 생산된다. 학문은 이제 진(眞)-선(善)-미(美)를 해명하는 목적이 아니라, 부(富)와 능률성을 추구하는 수단이 되었다. 지식은 수단으로서 팔리기 위해 생산되고, 따라서 목적으로서 인간이란 이미 상실된 시대가 바로 현재 우리의 상황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오히려 목적 자체로서 인간 존재 자신에 대한 이해와 세계를 바라보는 관점 정립에 기여하는 철학의 교육이 절실히 필요로 한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본 논문은 고전적인 철학의 교육이념과 방법이 제시되어있는 플라톤의 「태양의 비유」 「선분의 비유」, 그리고 「동굴의 비유」에 각별히 주목하면서, 이와 대비되는 유가철학 이념과 교육방법 등을 제시하였다. 우리는 철학이란 1) 존재에 대한 경이감, 혹은 현실의 자기 존재에 대한 우환의식에서 출발하여(초발심(初發心)), 2) 철저한 철학적 태도전환을 수행해야 하며, 3) 궁극자에 대한 절대적인 인식을 요구하며, 4) 이러한 인식에 기반하여 이타행(利他行)을 실천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유가철학의 교육 이념과 방법을 기술하였다.

談儒家 「天人關係」 的認知, 到 「樂天安命」 人生觀之建構 (On the basis cognitive of "Heaven and human relations", Confucian to construct "Optimistic attitude" philosophy of life)

  • 방준길
    • 철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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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1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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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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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중국의 춘추전국 시대는 정국이 혼란하고, 제후들이 패권을 다투고, 왕조가 무너지는 시기에 다양한 학문이 일어난 백가쟁명 시대이다. 이 시기에 철학계의 발전은 활발하고 학술성과도 매우 눈부셨다. 이에 맞춰 철학계의 주된 관심은 대부분이 하늘에 대한 인식과 천인관계 그리고 인성 등의 문제에 대해 초점을 두었다. 공자가 개창자인 유가사상은 춘추전국 시대에 주요 학파 중 하나이다. 유가는 인간을 근본으로 삼고 윤리를 중요시 하고 도덕을 강조하는 학술사상으로서 한국, 일본, 베트남, 싱가포르 등 여러 나라에 많은 영향을 끼쳤으며, 이른바 유가문화 생활권을 형성하게 되었다. 유가의 사상이념은 후대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근본에 주력하고 덕성을 숭상하는 입신처세의 이념과 '유교무류'(有敎無類: 가르침이 있을진댄 부류를 나누어서는 안된다), '인재시교'(因材施敎: 자질에 따라 가르침을 달리 베푼다)의 교육원칙, 그리고 '존왕천패'(尊王賤覇: 왕도정치를 존중하고 패도정치를 천하게 여긴다)의 정치사상은 큰 영향을 끼쳤다. 그렇지만 유가사상에 있어서 그 현대적 의의가 가장 큰 것은 바로 '천지만물지모'(天地萬物之母: 천지는 만물의 부모이다)라고 하는 천인관계론(天人關係論)과 낙천안명(樂天安命: 천명에 따라 분수에 맞게 산다)의 인생관이다. 유가철학에 있어서 낙천안명의 인생관은 천인관계의 인식론적 기초 위에 구성되었다.

중의서원(中醫書院) '여산당(侶山堂)' 강학(講學)과 '전당의파(錢塘醫派)' (Education in an Academy of Chinese Medicine L$\"{u}$shantang(侶山堂) and the Qiantang Medical School(錢塘醫派))

  • 이민호
    • 한국한의학연구원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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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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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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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This study aims to discuss the establishment and development of the Qiantang Medical School(錢塘醫派) represented by Zhang Zhicong(張志聰) via focusing on an academy of Chinese medicine named L$\"{u}$shantang(侶山堂). The teaching method in L$\"{u}$shantang(侶山堂) displays a representative feature of the Qiantang Medical School(錢塘醫派), but the foundation of the method consisting of lectures and discussions had already been laid by Lu Zhiyi(盧之頤) during the Ming-Qing transition period. The tradition was succeeded by Zhong Xuelu(仲學輅) in the Hangyuan Medical Board(杭垣醫局) even after L$\"{u}$shantang(侶山堂) was burnt down during a war taken place under the Qianlong(乾隆) period. That the function and the role of the local Confucian academies, which had been focused on the discussion of Confucian classics and local issues, were changed to adopt the education of medicine which had been treated as a lesser subject may be interpreted as a gradual change in the social perception of medicine. The change in the function of the Confucian academies combined with the tendency in which the literati elites of the period left the Confucian philosophy for medicine presents one of many examples showing the changes occurred during the Ming-Qing transition period. The education of medicine provided by the Confucian academies is regarded historically significant in that it was offered by ordinary civilians rather than the government before the formal school education system was established in the modern period. This educational tradition played an important role in bridging the Chinese medicine in the medieval times with that in the modern period.

전통사상(專統思想)과 서원건축배치(書院建築配置)의 구성(構成) 원리(原理) (Composition Principle of Seo-Won Architecture from the View of Its Disposition and Korean Traditional Thought)

  • 박정해;한동수
    • 교육시설 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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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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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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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The Korean academics of classical learning, Seowon which from the middle of Joseon Dynasty was complexly reflected in "the illustration of Taiji(太極圖說)" Five-Elements school(陰陽五行說), "Zhou Yi(周易)" and a theory on spherical heaven and square ground(天圓地方) which based on orientalism. Also the theory of Xiangshu Xue(象數學) was a significant factor to decide the size(number of facade module) of Seowon architecture. So, in this study, how the oriental thought was adopted and reflected in existing 21 Seowon in South Korea. The size of Seowon architecture was adopted a theory of combination with heaven, earth and human(天地人三合論) that based on the theory of Xiangshu Xue on "the illustration of Taiji" and "Zhou Yi". "Zhou Yi" was the central thought of Confucian culture in Joseon Dynasty, with which Seowon space was divided into two, ancestral rites space and lecture space. It coincides with balance of yin(陰) and yang(陽), Five-Elements(五行) and four seasons(四季節). In lecture space, lecture hall is relevant with the water(水) and winter, and front tower structure or outer three-door is the fire(火) and summer. Also, central garden means the soil(土) and center. Thus, the size and spatial composition was planned with the philosophy, "the illustration of Taiji", Five-Elements school and a theory on spherical heaven and square ground. Yin and yang has an idea of the heaven and earth, and Five-Elements has an idea of direction and season with which spatial composition of Seowon could be set. And the numeral meaning on the theory of Xiangshu Xue established an ideal background for spatial composition of Seowon archit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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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교육의 정치성과 현대적 함의 (Political traits of traditional education and its meaning in modern age)

  • 함규진;임홍태;윤영돈;한성구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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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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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9-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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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동아시아 전통 사회에서 교육은 특별한 정치적 의미를 띠고 있었다. 특히 조선의 경우, 불교에 대신하여 유교가 사회의 모든 부문에서 중심 역할을 하게 되는 과정에서 '누구나 배우면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주장 아래 적어도 명목적으로 국민 교육을 실시할 필요성이 중대했다. 이러한 전통 교육은 인성 교육적인 성격이 강했으며, '선한 본성의 회복'을 목표로 했다. 그리고 교육의 주체는 스승(師)이었다. 이러한 전통 교육은 현대적 관점에서 볼 때 '전개로서의 교육'이자 '형식도야로서의 교육' 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교사에게 막대한 권위를 부여함으로써 자발적인 발전 가능성을 억제하고 성인이 되어서도 민주적 시민의식을 갖추기 힘들게 하는 효과를 낼 가능성을 추정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전통교육에서의 스승은 또한 동도(同道)로서 제자를 일방적으로 지배하고 통제하기보다 함께 배우고 서로 돕는 역할이 기대되기도 했으며, 이는 민주시민적인 차원에서 긍정적일 수 있다. 무엇보다 전통교육은 인성교육과 공동체교육을 강조하는 점에서 현대의 자기이익 중심적 교육과 문화가 초래하는 비인도적 사회환경과 비참여적 정치문화에 대해 극복의 단서를 제공한다. 그런 점에서 '온고지신'적 교육 방안을 강구할 필요성은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유교의 자아실현과 삶의 맥락 - 공자와 맹자의 시선을 중심으로 - (Confucian View of Self-realization and Context of Life: With a focus on Viewpoint of Confucius and Mencius)

  • 신창호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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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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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3-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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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본고의 핵심은 동아시아 전통 유교의 자아실현 과정과 그에 함축된 삶의 의의를 짚어보려는 것이다. 유교에서도 원시유교의 중심을 차지하는 공자와 맹자의 자아실현 단계를 검토하고 인격의 성숙과 교육적 특징을 고찰한 후, 그 현대적 의미를 도출해 본다. 유교의 창시자인 공자가 『논어』에서 학이시습(學而時習)을 언급한 이후, 그의 행적은 평생 동안 지속되는 자아실현의 과정이다. 즉, 지학(志學)-이립(而立)-불혹(不惑)-지천명(知天命)-이순(耳順)-종심(從心)에 이르는 자아실현 단계는 삶의 온축(蘊蓄)인 동시에 인생의 깨달음을 심도 있게 보여준다. 이는 삶의 과정이 질적으로 승화하고 있다는 점과 평생에 걸쳐 여섯 번이나 주요한 자기 변화 과정을 거치면서 철저한 자아실현의 능동성과 교육 및 학습의 중요성을 깨우쳐 주고 있다. 공자를 사숙한 맹자에게서도 인격성숙은 이와 유사한 패턴으로 이어지는데, 맹자의 자아구현 단계는 그의 철학에 근거한 심학(心學)적 특성이 짙게 배어 있다. 이는 선인(善人)-신인(信人)-미인(美人)-대인(大人)-성인(聖人)-신인(神人)으로 표출되는데, 이런 여섯 단계의 자아성숙 과정은 평생 동안 완벽한 인격을 꿈꾸는 교육과 학습의 모델이다. 공자와 맹자의 자아실현관은 내면적으로는 자기단련이고 외면적으로는 인간의 전형(典型)을 드러낸다. 그것은 유교가 지향하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유기체적 이념을 수행하는 과정이다. 요컨대, '사람임'에서 '사람됨'을 거쳐 '사람다움'을 다지는 삶의 예술이다.

조선 시대 서원 조경의 특징과 역사적 의미 연구 (An Analysis on Landscape Architecture in Korean Seowon from 16th to 19th Century and its Historic Significance)

  • 이영훈;성종상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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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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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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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조선 시대 서원(書院)은 성리학적 제례 기능인 제향(祭享)과 교육적 기능인 강학(講學)이 결합 되어 병존(竝存)하는 사립 교육기관이다. 본 연구는 서원의 제향과 강학 이외에 중요한 공간인 유식(遊息) 공간에 대해 집중하려고 한다. 서원의 조경은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의 서원 건립 운동 때부터 서원의 강학 기능과 연계되어 강조되어왔다. 이와 같은 조경관(造景觀)은 소수서원(紹修書院)을 시작으로 후에 건립되는 서원에 영향을 주어 서원의 중요한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본 연구는 15개소의 서원을 선정하여 그 유식 공간을 조사한 후 총체적이고 시대적인 분석을 하여 두 가지 경향성을 발견하였다. 첫째, 유식 공간은 초기 서원에는 풍부하게 나타나지만 17세기 초반부터 점차 감소하는 현상을 보인다. 이는 서원의 시대적 발전상과 함께 해석된다. 조선 후기로 갈수록 서원의 강학의 기능이 제향의 기능에 비해 약화되면서 강학과 직접적인 연관을 지닌 유식 공간 또한 그 중요도가 감소하는 것으로 보인다. 둘째, 현재 보존되어 있는 서원의 많은 조경 요소의 조성 주체가 배향(配享)자, 그 후손, 그리고 건립자인 사례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더 많다. 배향자가 직접 조성한 조경이 계승되어 보존되거나 배향자가 생존 강조했던 조경적 특징을, 서원의 동선이나 경관으로써 담아내는 등, 강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조성 과정 또한 기록으로 잘 보존되어 내려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선현의 흔적을 중시하는 서원의 제향적 성격에 의해, 배향자의 흔적이 잘 드러나있는 조경 요소는 상대적으로 더 잘 보존되고 현재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판단된다. 서원의 조경은 강학과 제향이 결합된 기관이라는 정체성을 직접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서원의 중요한 한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개성 인삼상인의 근대기업화와 ESG 경영이념 (Modern Enterprise & ESG Management philosophy of Gaeseong Ginseng Merchant)

  • 옥순종
    • 인삼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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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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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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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개성은 18세기 들어 성행한 인삼 재배와 교역으로 막대한 자본이 축적되면서 근대적 자본주의가 발달할 조건을 갖추었다. 일제 강점기 시절 인삼 상인들은 인삼에서 나온 자본을 단순히 지주자본에 묶어두지 않고 산업자본, 금융자본으로의 전환을 적극적으로 추진해 근대 기업가로 활동한다. 20세기 초반 설립된 개성전기주식회사, 대한천일은행, 개성양조주식회사, 송고실업장 등은 인삼상인들이 주축이 되어 공동 투자하고 공동경영을 맡았다. 이들은 기업이윤만을 추구하지 않고 사회 지도층으로서 개성상업학교 건립, 고려시보 창간, 개성좌 운영 등 개성의 교육, 문화발전을 위해 후원자로 나서 지역발전을 견인한다. 자유주의 경제학에서는 주주이익 우선이 기업의 목적이었지만 21세기 들어와서는 이해관계자(stakeholder)에 대한 사회책임을 강조한다. 또 재무적 성과를 중시하는 던 경향에서 비재무적 요소가 더 중시되는 ESG( Environment, Social, Governance) 경영이 중요해지고 있다. ESG 경영은 환경을 생각하고 사회가치를 창출 공유하며 기업의 투명성을 중시한다. 과거에는 돈을 잘 버는 기업이 좋은 기업이었으나 현대에 와서는 사회책임을 다하는 기업이 좋은 기업으로 평가받는다. 20세기 초반 인삼상인들의 기업활동에서는 현대 경영의 필수요소인 기업가 정신과 ESG 경영이 실현되고 있었다. 이들이 시대를 앞서 현대적 경영이념을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개성의 지역성에서 비롯된다. 개성인들은 조선왕조의 정치적 차별로 관직 진출의 길이 막혀 사농공상(士農工商)의 엄격한 신분제하에서 양반, 지식인이 상업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우수한 인력이 대거 상업으로 진출하면서 개성의 상업은 더욱 활발했고 상인의 가치관도 선진적이었다. 대표적인 인삼상인 손봉상, 공성학은 상인이면서 유학자, 문인이었다. 인삼상인 2-3 세대들은 해외에서 고등교육을 받고 개성으로 돌아와 삼업을 잇고 인삼에서 나온 자본을 기반으로 근대적 기업을 설립했다. 20세기 초반 인삼상인들의 상업활동을 분석하면 ESG 경영이념이 배여 있는 선구적 기업가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인삼처럼 개성 인삼상인의 상업활동과 근대 기업화에서는 사람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누항도(陋巷圖)와 누항록(陋巷錄)을 통해 본 이만부의 공간철학과 식산정사의 원형경관 (A Study on Lee, Man-Bu's Thought of Space and Siksanjeongsa with Special Reference of Prototype Landscape Analyzing Nuhangdo(陋巷圖) and Nuhangnok(陋巷錄))

  • 강병선;이승연;신상섭;노재현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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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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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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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76호로 지정된 '천운정사(天雲精舍)'는 식산 이만부가 1700년에 건립한 식산정사이다. 본 연구에서는 식산정사와 관련한 이만부의 생애와 은일관을 알아보고, 그의 정사경영의 결과물인 「누항록」과 《누항도》를 분석해 정사의 풍수적 입지와 영역성 및 원형경관을 추정하고, 은거한 선비가 자신의 공간에 담고자 했던 철학을 고찰하여 다음의 결과를 도출하였다. 첫째, 식산 이만부는 조선 후기 대표적 은둔형 유학자이다. 정사의 이름이자 이만부의 호인 '식산'은 마을의 뒷산(主山)에서 연유한 것으로 그는 생각(思), 몸(躬), 말(言), 사귐(交) 네 가지를 쉬고자 했다. 다난했던 숙종년간 남인 집안의 이만부는 '식산'이라는 호를 통해 은둔하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표상하였다. 둘째, 이만부는 식산정사의 입지, 공간구조, 건축물 및 조경시설물, 수목, 주변경관, 이용행태 등을 「누항록」에 기록하였고, 《누항도》화첩을 남겨 원형에 가까운 식산정사 복원 가능성이 비교적 높다. 셋째, 이만부는 외노곡이 밖에서 보면 사면이 두로 막혀있으나 안으로 들어서면 아늑하고 깊숙하며 멀리까지 내다보인다는 풍수적 지리관을 언급하고 있으며, 노곡마을 전체를 일컬어 식산정사라 했는데 이는 명명을 통해 의미를 부여하고 영역을 형성·확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넷째, 식산정사의 공간구성은 연식공간, 교육공간, 후원공간, 휴식공간, 채원 및 약초밭으로 구분할 수 있다. 당과 루, 연지로 구성된 연식공간은 개인적 공간으로 호연지기, 천인합일의 흥취, 군자의 도리, 인을 생각하는 이만부의 거처이자 강학을 베풀던 공간이다. 다섯째, 양정재 영역은 교육공간으로서 양정재는 주역 몽괘에서 취한 이름으로 어린 학생들의 학문과 덕이 크고 밝게 성장하기를 기원한 이름이다. 여섯째, 간지정, 고반대, 세한단 등으로 구성된 후원공간은 식산정사 가장 안쪽의 숲이 우거진 곳을 정리하고 자연 입석과 고송을 병풍삼아 작은 정자를 지을 축대를 쌓은 곳으로, 멈춤의 미덕과 은자의 여유, 군자의 지조 등에 관한 뜻을 담고 있다. 일곱째, 식산정사 담장 밖 동쪽 시내 건너 고목이 우거진 곳에 단을 조성하여 영귀사라 하고 괴석을 쌓고 화초를 심어 휴식의 장소로 삼았다. 여덟째, 조선시대 선비들처럼 채소와 약초의 효능을 상세히 알고 있던 이만부는 정사 내에 채원과 약초밭을 가꾸었다. 아홉째, 식산 이만부는 식산정사의 각 공간별 건축물과 조경시설물에 대한 명명을 통한 의미 부여와 고사(古事)를 따른 식재를 통해 자신의 정사에 성리학적 이상향을 실현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