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Archaeological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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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BUDDHIST HERITAGE ON THE SILK ROAD: FROM GANDHARA TO KOREA

  • KHAN, M. ASHRAF
    • Acta Via Ser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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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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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5-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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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The Silk Route in ancient times served as a link between the World's greatest civilizations and as a source of knowledge, art, religion and philosophy. This network of ancient caravan paths formed the first bridge between East and West, where two different civilizations came in contact with their respective cultural traditions and religious beliefs, as well as their scientific and technological achievements. One of the main routes of the Great Silk Route passed through the Karakoram, linking Kashgar with Kashmir and the Gandhara regions. The Karakoram Highway connects the Chinese province with Pakistan and follows the ancient Silk Route, which connected the Heartlands of Asia with the Western fringes and further beyond the entire continent of Europe. Evidences of the history of humankind, ranging from Pre-historic times to the spread of Buddhism from South Asia to China and the Far East, is depicted in the rocky cliffs on the waysides and on rough boulders scattered in the upper valley of the Indus River and its tributaries. The ancient trade routes also carried scholars, teachers, missionaries and monks of different beliefs and practices, who met and exchanged ideas. The Buddhists as well as Zoroastrians and other missionaries all followed the Silk Route, leaving permanent footprints of their passage. The ancient greater Gandhara is situated in the North-West of the Indian Sub-continent, with the steep mountain ranges of the Karakoram, the Pamir and the Hindu-Kush bordering it and the dry areas of Central Asia to its rear. A number of races from Central Asia migrated to Gandhara because of its mild climate and plentiful farm products and fruits. This area was an entry point of Western Culture into India and at the same times the exit point of Indian Culture, including Buddhism, to the West. In Gandhara, the diffusion of different cultures developed an art form, during the 1-7th centuries CE commonly known after its geographic name as "Gandhara Art". The Buddhism's route of introduction into China originated in Gandhara, then reached in Korea and Japan and other countries. The fame of Gandhara however, rested on its capital, "Taxila" which was a great centre of learning. From the time of the Achaemenians, down through Muslim period, Gandhara continued to establish and maintain a link between East & West, as shown by material evidences recovered from Taxila and other Buddhist centres of Gandhara during the course of archaeological excavations.

과거와의 대면 : ${\ll}$미르티스${\gg}$ 전시를 통해 기억된 아테네 대 역병 (Face to Face with the Past: Memorizing the Plague of Athens through the Exhibition)

  • 조은정
    • 미술이론과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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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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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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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The exhibition was started in 2010 in the New Acropolis Museum of Athens and embarked a journey since 2011 as a travelling exhibition inside Greece and abroad. The main purpose of the exhibition was to draw attention of the general public to the value of the 'rescue excavation' and of cultural heritage of Greece, by presenting the reconstruction bust of a girl whose skull was found in Kerameikos cemetery of ancient Athens. The new Kerameikos excavation was initiated by the construction of Metropolitan Railway lines in the center of Athens between 1992 to 1998. It revealed a pit of a mass burial where about 150 people were inhumed in a very hasty way without proper funeral rites or offerings. These bodies are identified as the victims of the infamous plague of Athens in the first years of the Peloponnesian War(430-426 BC). The epidemic disease killed almost one third of the city population including Pericles, and brought extreme fear and panic to the Athens society. The traditional funerary rites were totally disrupted, and the social decorum and the morality among the citizens became enfeebled. The plague and the civil war were the decisive factors to end the Golden Age of Democratic Athens. However, the exhibition organizers did not focus on the tragic aspect of this disaster and its casualties. Their main concern was to simplify the scholarly works of archaeological excavation and microchemistry analysis so that the exhibition viewers will easily understand and empathize the living value of the scholarly works of ancient Greek civilization. The centripetal element of the exhibition was the vivid face of an 11 years old ancient girl 'Myrtis', which was carefully reconstructed based on both the scientific data and artistic imagination. Also the set up of the exhibition was structured in order to stimuli cognitive and emotional experience of the visitors who witnessed the rebirth of a vibrant human being from an ancient debris. The museologists' continuous efforts to promote projects of contemporary artists, publications, and school programs related to the exhibition indicate that the ulterior motive of this exhibition is the cultural education of the present and future generation through the intimate experiences of ancient Greek life. Also this is the reason why the various museums that held the travelling exhibition try to make the presentation as a gesture of memorial service for an anonymous Athenian girl who deceased circa 2400 years ago. The pragmatic efforts of Greek scholars and museologists through exhibition show us a way to find a solution to the continuous threat of cultural resources by massive construction projects and land development, and to overcome public indifference to the history and cultural herit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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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회곽묘 출토 미이라의 안정동위원소 분석으로 생애 주기에 따른 식생활 변화 추적 (Unveiling dietary lifestyle of a Joseon-era mummy by extracting isotopic information from hair and bone)

  • 강다영;신지영
    • 분석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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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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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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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미라는 뼈, 머리카락, 피부, 손톱 등 서로 다른 시기를 반영하는 생체 조직분석이 가능하며, 이를 바탕으로 식생활, 환경 등 당시 생활상을 복원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본 연구에서는 문경 흥덕동 회곽묘에서 출토된 조선시대 미라에서 추출한 뼈 콜라겐과 머리카락 케라틴의 탄소와 질소 안정동위원소 분석을 수행하였으며, 국내 출토 미라에 안정동위원소 분석을 적용한 첫 사례이다. 우리가 섭취하는 식료의 종류에 따라 뼈와 머리카락 등 인체 조직에는 그 특유의 탄소와 질소 안정동위원소 정보가 기록되며, 그 비율은 시간이 경과하여도 변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뼈에서 추출된 콜라겐이라는 단백질은 생애 전주기의 평균 식생활을 추적할 수 있으며, 머리카락의 케라틴의 경우 길이에 따라 죽기 전 몇 달에서 몇 년의 식생활 정보를 담고 있다. 미라 조직의 안정동위원소 분석 결과 그 평균값은 다음과 같다(뼈 콜라겐(${\delta}^{13}C$=-19.0‰, ${\delta}^{15}N$=11.4‰), 머리카락 케라틴(${\delta}^{13}C$=-21.3‰, ${\delta}^{15}N$=14.3‰). 탄소 안정동위원소 값으로부터 생애 주기 동안 주로 $C_3$ 작물 위주의 식생활을 하였다는 것을 예측할 수 있었으며, 특히 질소 안정동위원소 값의 경우 머리카락의 값이 뼈 콜라겐의 값보다 2.9‰ 높게 나타난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생애 전반에 걸친 영양 상태보다 죽기 전 몇 달 동안 육류 섭취 등으로 인한 단백질 섭취량이 높았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었다.

백제(百濟) '정림사(定林寺)'의 창건연대(創建年代) (The Establishment Year of 'Jeongnimsa' Temple in Buyeo)

  • 김낙중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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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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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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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이 글에서는 부여 정림사지로 추정되는 백제 '정림사'의 창건 연대를 최근의 고고학적 발굴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살펴보았다. 즉, 본격적인 대지 조성은 왕궁터로 추정되는 관북리 일대와 연동되어 있는데, 그 시기는 6세기 늦은 단계로 추정된다. 그리고 사찰 건립을 위한 대지 조성 이전에 사용된 소형 노 등과 그와 관련하여, 구지표에서 출토된 토기 등을 참고할 때 사비 천도 후 일정 기간 공방이 운영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공방은 정림사지 북쪽에 인접한 관북리유적에서 본격적인 대지조성과 함께 이루어진 기와기단건물의 조영 이전에 운영된 것이 확인되었다. 대지 조성토에 혼입된 토기, 기와, 중국자기를 통해서도 정림사의 조영 연대가 사비 천도 직후까지 올라가기는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 점은 석탑 이전에 목탑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으며 그 구조는 지하기초부가 없는 높은 지상기단일 가능성과 연계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정림사지 가람배치는 동 서 건물과 강당 좌우의 건물이 하나로 통합되어 강당지 북편 기단보다 북쪽으로 좀 더 돌출되어 대규모 승방으로 통합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익산 미륵사지와 유사하여 정림사지가 능산리사지나 왕흥사지보다 늦게 축조되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 강당과 동 서 건물의 배치 관계 등으로 살펴본 이러한 견해는 그동안 정림사지의 창건 연대를 사비 천도 전후로 보아 온 것과 배치된다. 이러한 내용을 통해 볼때, 정림사는 사비 천도 전후가 아니라 도시조성이 활발하게 이루어진 6세기 후엽 이후에 창건되었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가동 유적지의 식물규소체(Phytoliths) 분석 연구 (A Study of the Phytoliths Analysis of Ga-dong Site in Gijang, Busan)

  • 최기룡;김진태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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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2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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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8-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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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부산광역시 기장군 가동 유적지($129^{\circ}\;10^{\prime}\;49^{\prime\prime}{\sim}50^{\prime\prime}E$, $35^{\circ}\;19^{\prime}\;39^{\prime\prime}{\sim}48^{\prime\prime}N$, 68.5~78.5m) 퇴적물의 식물규소체(Phytoliths) 분석을 통하여 조사지 일대의 벼농사 개시기와 국지적 식생 변화를 규명하였다. 식물규소체 분석용 퇴적물은 유적지 내 3개 지점의 수직 구덩이 벽면에서 총 82개의 블록형 시료를 채취하였다. 그 결과, 지점 1에서는 퇴적물 8에서 29까지, 지점 2에서는 퇴적물 6에서 20까지, 지점 3에서는 퇴적물 7에서 33까지 벼(Oryza sativa)의 부채형 규소체가 검출되었다. 3개 지점의 바닥 층과 바닥에 가까운 층에서는 물대아과(Arundinoideae)와 쇠풀족(Andropogoneae)의 식물규소체 출현율이 높은 것으로부터 본 조사지 일대는 농경 개시기 이전 매우 습한 토양환경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바닥 층에서 표층으로 올라 갈수록 물대아과와 쇠풀족의 식물규소체 출현율은 현저히 낮아지는 반면 벼의 식물규소체 출현율은 급격히 높아졌다. 이들 결과로부터 본 조사지 일대의 벼농사는 습지 혹은 매우 습한 지역을 이용하였고, 유물편년과 $^{14}C$연대분석에 따르면 벼농사의 개시기가 청동기시대부터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백제(百濟) 횡혈묘(橫穴墓)의 특징과 의미에 대하여 (A Study on the Yocoanabo (Cave Tombs) of the Baekje Kingdom)

  • 김낙중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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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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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8-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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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이 글에서는 공주 부여에서 확인된 횡혈묘의 특징과 역사적 의미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한반도에서 횡혈묘의 등장은 5세기 후엽~6세기 전엽에 왜와 백제 왕권이 주축을 이루는 교류에 북부 규슈(九州) 영산강 유역 세력이 일정한 역할을 하며 세력을 유지하던 상황과 연계되어 있다. 공주 부여 지역 횡혈묘의 피장자는 북부 규슈 중에서도 특히 부젠(豊前) 지역과 관련이 깊다. 그런데 공주 부여 지역의 횡혈묘는 이러한 왜인들의 정착을 의미한다. 웅진 외곽의 단지리 유적처럼 집단적 거류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금강과 육로를 통해 웅진과 부여를 잇는 주요 길목에 위치한 현지 집단에 소규모로 섞여 배치되기도 하였다. 횡혈묘에 묻힌 이들은 영산강 유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왜인들과도 교류하였다. 그런데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형 고분과는 달리 횡혈묘가 사비기까지 조성되었다는 점은 중요하다. 그것은 두 묘제의 의미가 달랐음을 시사한다. 영산강 유역의 전방후원형고분은 정치적인 기념물로 사용된 현지 세력의 고분이지만 횡혈묘는 왜인들의 백제 정착을 보여주는 무덤이다. 횡혈묘에 묻힌 이들은 중하위 계층으로 백제와 왜의 정치적 경제적 교섭에서 실무적인 일을 담당하며 상주하다 아예 백제에 정착한 사람들로 여겨진다. 동성왕 호위와 같은 특정한 역사적 사건과 관련하여 백제에 도래하여 단지리와 같이 집단적으로 모여 살기도 하였지만 점차 그들의 일파가 퍼지거나 이후 개별적으로 들어온 왜인들은 웅진 사비 일원에 흩어져 현지 세력에 흡수되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조사보고서 평가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관한 연구 -2014년~2016년도 보고서 평가결과를 중심으로- (A Study on Factors Affecting the Results of Excavation Reports from 2014 to 2016)

  • 김재규;김태균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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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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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4-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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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발굴조사보고서 평가 제도가 시행된 지 10여년이 되었지만 평가 제도에 대한 분석 연구는 진행되지 않았다. 이에 본 연구는 첫째, 평가 제도의 변천에 대해서 고찰하였고, 둘째, 평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는 평가 요인 분석을 진행하였다. 제도 분석 결과 현재 평가 결과는 PQ에서 활용되고 있는데 평가 대상 기관은 발굴기관으로 한정되어 있어 입찰에 참여하는 박물관 등에 불이익을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을 제시하였다. 또한 현재 소수의 심사위원이 보고서를 평가하기 때문에 평가 부담의 완화를 위해서 증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평가 요인 분석 결과, 가산점이 명목적 점수는 낮지만 실질적 영향 점수가 높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보고서 체계, 머리글, 자연고고환경, 조사범위와 방법, 편집 인쇄 지표의 경우 타 지표에 비해 영향력이 낮고 만점에 가깝기 때문에 이에 대한 지표 개선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하였다. 또한, 현재 발굴 비용에 따른 군별 분류 금액의 적정성을 검토하여 연도별 군별 회귀분석을 실시하였고, 분석 결과 2015년, 2016년의 경우 2군과 3군에서 발굴 비용이 평가 점수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발굴 비용에 따라 평가 결과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한 최초의 목적과 부합하지 않는 것으로 군별 분류 금액 산정 시 심도 있는 접근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백제 암막새의 출현과정에 관한 검토 (An Examination on the Appearance Process of Ammaksae(concave end roof tiles) of the Baekje Period)

  • 심상육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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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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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57-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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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발굴조사에 의해 가장 많이 출토되는 것이 기와임에도 불구하고, 출토 양에 비해 그 연구 실적은 그다지 많지 않으며, 연구대상도 수막새가 주를 차지하고 있는 설정이었다. 또한 기와 연구는 유적 성격을 파악하기 위한 보조적 측면에 치중된 면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연구자의 수가 증가하면서 기와 자체의 연구가 진전되었고, 그로 인해 자연스럽게 암막새의 출현 문제도 대두되었다. 하지만 현재 암막새가 삼국기대에 출현되었다는 점에는 모든 연구자들이 동조하는 사항이지만, '그 출현과정이 어떠했을까'란 점에는 쉽게 답을 내리지는 못하는 점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본고에서는 백제시대의 것으로 보고된 암막새를 고고학적인 출토 층위, 유물의 현태를 통해 검토해 보았다. 그 결과 이미 보고된 유물 중 풍납토성 출토 지두문암키와와 구아리백제유적 등에서 출토된 유단식암키와는 아직 시원형 암막새로 판단할 근거가 미약하고, 군수리사지 출토 지두문암키와, 부소산성과 관북리백제유적의 토기구연암키와와 유악식암키와 그리고 제적사지와 미륵사지의 귀면인동당초문암막새만이 시원형 암막새 혹은 암막새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이러한 백제 암막새는 중국 북조에서 출현한 지두문암키와(짧은 턱의 출현)에서 토기구연암키와와 유악식암키와(턱의 형성)로의 발전 이후 귀면인동당초문암막새(문양 출현)가 출현하게 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전남 마한백제계 취락의 서속(黍粟) 재배와 농경 체계: 장흥 봉림리 오산유적 자료를 중심으로 (Cultivation of millet in Mahan-Baekje Villages: Archaeobotanical examination of Osan site, Jangheung, Korea)

  • 류아라;김세빈;오병욱;김민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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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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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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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조와 기장 같은 서속류(黍粟類) 잡곡은 신석기시대부터 재배되었지만 이후 서속 재배의 중요성이 생계경제상 어떻게 변화했는지에 대한 고찰은 많지 않다. 특히 전남지역의 마한백제계 유적에서는 서속의 출현사례가 적어, 이 지역 고대 농경에 관한 논의는 벼농사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AD 3~4세기 무렵에 점유된 장흥 봉림리 오산유적에서는 다량의 조와 기장이 발견되어 서속 재배의 전통이 역사시대에도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저습지, 고온다습한 기후, 대규모 노동력을 필요로 하는 벼농사와 대조적으로 조와 기장 재배는 생육환경과 노동력 동원상의 제약이 적다. 오산유적의 농경은 가을걷이와 여름걷이 곡식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경작지 입지 상 가을걷이는 다시 쌀과 서속을 두 개의 중심축으로 하면서 두류 등 다른 작물이 부가되는 형태이다. 상호보완적 성격이 강한 벼농사와 서속 재배의 이원적 체계 운용은 환경적, 사회적 요인에서 비롯되는 생계 위기의 효과적 관리를 가능하게 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상주 이부곡토성 유적의 보존 및 활용방안 (Preservation and Utilization Plan of Sangju Yibugok Earthen Fortification Ruin)

  • 장충희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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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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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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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본 연구에서는 최근 활발한 조사 및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 상주 이부곡토성에 대한 보존 및 활용방안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엔데믹의 전개가 현실화된 오늘날 지역역사문화자원을 통한 활용방안은 지역 활성화의 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하여 본 연구에서는 첫 번째로 상주 이부곡토성의 역사적 가치를 검토하였다. 기존의 문헌자료 연구성과와 함께 최근의 고고학적 성과를 통해 상주 이부곡토성의 역사문화자원적 가치를 살피고, 그 활용에 있어 역사적 가치의 왜곡을 지양하였다. 다음으로는 활용의 주체인 수요층과 지역민 인식 분석을 방문객 통계자료와 설문조사를 통해 진행하였다. 활용의 주체인 수요층과 지역민의 역사문화자원에 대한 공감은 그 활용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마지막 4장에서는 앞서 제시된 이론적 검토를 바탕으로 고대 산성 유적의 활용사례를 살피고 상주 이부곡토성에 대한 활용방안을 '공감'을 중심으로 제시하였다. 본 연구는 산성 유적의 활용에 대하여 그 역사적 가치, 수요층과 대중의 공감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다. 인구 감소로 인한 지역소멸 고위험 지역인 상주가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어야 하며, 사벌국의 중심지라고 하는 역사문화적 정체성 확립과 다양한 활용방안을 통한 상주의 이미지 제고는 이에 대한 대안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