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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중국의 문단 - 『신청년』 그룹을 중심으로 - (Chinese Literary Circles of 1919 -The New Youth Literary Coterie)

  • 이보경
    • 개념과 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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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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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9-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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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고는 1919년 중국의 문단을 『신청년』 그룹의 동향을 통해 살펴보았다. 이 시기의 변동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신청년』을 둘러싸고 『매주평론』과 『신조』 사이의 협력과 긴장을 시간의 순서에 따라 되짚어 보았다. 『신청년』 그룹이 『매주평론』을 창간한 것은 우승열패의 생물학적 진화론이 아니라 '상호부조'를 실천하는 '신기원'에 대한 소망과 연관되어 있었다. 『신조』의 창간은 베이징대학 학생들이 주도했지만, 그것은 동시에 『신청년』 편집인들의 후속 세대 양성 프로젝트이기도 했다. 『신조』의 편집인들은 '밤 고양이'와 '화롯불'로 자처한다. 밤새 학술에 정진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으로 선배 세대와의 차이를 강조한 것이다. 『신청년』, 『매주평론』, 『신조』는 단단한 트라이앵글을 형성하여 구파 문인들을 신기원의 '희생양'으로 삼아 담론 권력을 장악하는 데 성공한다. 그런데 5·4운동 직후 이들은 결별의 길을 걸어간다. 체포된 천두슈를 대신한 후스는 『매주평론』의방향을 '문제' 중심으로 바꾸고자 하고, 『신조』의 독서회 성격을 강화하여 '학술' 에 집중하도록 견인한다. 반면 『신청년』은 '마르크스주의 특집호'를 필두로 정치적으로 보다 급진화된 모습을 보여 준다. 이 결과 1917년 상하이에서 베이징으로 옮겨 오면서 시작된 동인지시대는 막을 내리게 된다. 중국 문단은 이후 학술지향과 정치 지향이라는 두 개의 길로 나뉜다. 마지막으로 1919년 『신청년』 그룹의 행위를 추동한 '수치'의 '정동'을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그것은 공교롭게도조선의 독립운동에 대한 반응과도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도사 미쓰요시(土佐光芳) 필(筆) <무라사키노 자일 놀이(紫野子日遊圖)·오이강 유람도 병풍(大井川遊覽圖屛風)> 시론 (Tosa Mitsuyoshi's Screen Paintings Gathering on the Year's First "Day of the Rat" and Boating on the Oi River from the National Museum of Korea)

  • 정미연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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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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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6-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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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무라사키노 자일 놀이(紫野子日遊圖)·오이강 유람도 병풍(大井川遊覽圖屛風)>(이하 국박본으로 지칭)은 일본 교토 궁정의 화사(畫事)를 전담한 직책인 에도코로아즈카리(繪所預)였던 도사 미쓰요시(土佐光芳, 1700~1772)의 묵서와 인장을 지닌 김병풍(金屛風) 한 쌍이다. 이 병풍은 국립중앙박물관이 2018년 미국 뉴욕에서 구입한 것으로, 판매자에 따르면 20세기 초 어느 시점에 일본에서 미국으로 건너왔으나 그 자세한 시점은 불명이라고 한다. 여섯 면의 두 폭 한 쌍으로 이루어진 이 병풍은 오른쪽 병풍에 새해 정월 자일(子日)에 야외로 나가 어린 소나무 묘목을 채집하는 궁중 행사인 '자일 놀이(子日遊)'의 장면을, 왼쪽 병풍에 교토 오이강(大井川)에 한시(漢詩), 와카(和歌), 관현(管弦)을 의미하는 세 척의 배를 띄워 유람했다는 '세 척의 배(三船の才)' 고사 장면을 그렸다. 이 작품은 훗코야마토에(復古やまと繪) 장르를 대표하는 화가인 우키타 잇케이(浮田一蕙, 1795~1859)가 고메이 천황(孝明天皇, 1831~1867)의 명으로 제작한 교토 센뉴사(泉涌寺) 소장 <무라사키노 자일 놀이(紫野子日遊圖)·오이강 유람도 병풍(大井川遊覽圖屛風)>(이하 센뉴사본으로 지칭)과 화제와 도상이 일치한다. 단독 작품으로 제작된 사례는 다수 찾을 수 있는 '자일 놀이'와 '오이강 유람' 화제가 서로 짝을 이루어 한 작품으로 제작된 작례는 현재까지 국박본과 센뉴사본뿐이다. 부케덴소(武家傳奏) 히로하시 가네타네(廣橋兼胤, 1715~1781)의 일기인 『히로하시가네타네코부고요닛키(廣橋兼胤公武御用日記)』에 따르면 1760년, 미쓰요시는 1709년(보영도(寶永度))에 건축된 교토 고쇼(御所)의 전각인 쓰네고텐(常御殿) 내부의 낡은 후스마에(襖繪)를 새 것으로 교체하는 임무를 맡았다. 미쓰요시는 이때 국박본의 주제와 도상을 구상할 기본 자료를 얻었다고 생각된다. 당시 쓰네고텐 내부에는 가노파 화가가 그린 '봄날의 야외 행차(春日野行幸)'와 '오이강을 떠다니는 세 척의 배(大井川逍遙三艘)'라는 화제의 후스마에가 연속되어 배치되어 있었다. 미쓰요시는 1760년 쓰네고텐 후스마에 교체 작업을 통해 '오이강 유람' 화제의 도상을 학습하고 '자일 놀이'와 '오이강 유람' 화제를 서로 짝을 지어 한 쌍의 병풍으로 제작한다는 구상을 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새해 정월 첫 자일에 어린 소나무를 채집하는 행위는 장수(長壽)를 기원하는 길상적인 의미를 가진다. 오이강에 각각 한시, 와카, 관현을 의미하는 세 척의 배를 띄워 유람했다는 '세 척의 배' 고사는 교토 궁정의 필수 교양인 한시, 와카, 관현의 삼재에 모두 능통한 인재를 뜻한다. 이처럼 길한 주제의 병풍이 소용되는 자리로는 천황의 즉위식을 제일 먼저 고려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교토 궁정 관련 화사를 전담했던 도사 미쓰요시가 천황 즉위식이나 연중행사 등 궁정 의례에서 사용할 목적으로 국박본을 제작했을 가능성을 제시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