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회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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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예산 목리유적 회격묘의 재질 및 제작특성과 석회의 산지 해석 (Interpretation of Limestone Provenance, Materials and Making Characteristics for Lime-Soil Mixture on Tomb Barrier of the Yesan Mokri Site in Joseon Dynasty)

  • 이찬희;조지현;김지영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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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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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71-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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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조선시대 목리유적 회격묘의 재료학적 특성과 물성을 분석하여 석회의 제조기법 및 회격의 제작과정과 원료산지를 검토하였다. 회격의 건조밀도는 1호 회격묘 남벽이 $1.82g/cm^3$로 가장 높고, 공극률은 25.20%로 최저값을 보였다. 건조밀도와 공극률은 반비례 관계를 보이나, 일축압축강도는 2호 회격묘에서 $182.36kg/cm^2$로 최대강도를 보였으며 공극률 및 밀도와 상관관계는 보이지 않았다. 회격의 석회혼합물은 주로 황갈색 기질에 $200{\sim}600{\mu}m$의 석영, 장석 및 운모류와 방해석으로 이루어져 있다. 특히 회격에서는 하이드로탈사이트 및 포틀란다이트가 검출되나 토양에서는 고령석이 동정되었다. 회격의 모든 석회는 $600{\sim{800^{\circ}C$에서 탄산칼슘의 탈탄산반응에 기인한 대대적인 중량감소와 다양한 흡열피크가 나타났다. 회격의 산출상태와 광물조성 및 열분석 결과로 보아 석회의 조성온도는 $800^{\circ}C$ 내외로 추정된다. 회격묘는 삼물(석회, 세사, 황토)의 혼합조성으로 인해 넓은 주성분원소 범위를 보이며 작열감량 또한 22.5~33.6 wt.%로 나타났다. 회격의 석회와 골재의 함량이 불균질하고 부분적으로 양생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기술수준은 다소 낮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목리유적 일대에서는 석회의 원료인 석회암질암의 분포가 여러 곳에서 확인되며 상업적으로 석회를 생산한 예산 및 홍성지역의 석회석 광산과 근거리에 있다. 석회 원료는 목리유적 인근의 산지에서 공급되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 세종대 삼물회(三物灰) 도입에 따른 석실릉 구조개선과 의의 (A study on the significance and structural improvement of the stone chamber tomb by the application of a compound lime - Mortar during the reign of king Sejong in the Joseon Dynasty)

  • 신지혜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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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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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3-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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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본 연구는 세종대에 삼물회를 조선왕릉에 도입하게 되는 과정을 살펴보고, 1446년(세종 28년) 영릉의 구조적 변화가 갖는 의미를 살펴보는 데 중점을 두었다. 조선초 왕릉은 고려의 석실릉을 답습하여 조성하였다. 조선왕릉으로 처음 지어진 신덕왕후의 정릉은 고려의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정릉·현릉을 건립한 경험을 갖고 있는 김사행이 주도적으로 건립하였다. 이후 박자청이 이어받아 조선 초 석실릉을 건립하였으므로, 고려의 석실구조를 기반으로 조선왕릉이 조성되었다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러나 성종대의 『국조오례의』에 기록된 석실의 구조를 살펴보면 고려의 것과는 매우 다르다. 뿐만 아니라 『세종실록』에 기록된 태종과 원경왕후의 석실제도와도 다르다. 가장 큰 차이는 석실에 삼물회를 도입하여 구조적인 보강을 시도하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변화는 1446년(세종 28년) 소헌왕후의 국상으로 영릉(英陵)을 건립할 때, 석실 내에 물이 스며들거나 고이지 않는 밀실한 구조를 만들고자 했던 세종의 의지를 반영한 것이다. 1446년 세종과 소헌왕후의 합장릉으로 조성된 영릉(英陵)과 1452년에 조성된 문종의 현릉(顯陵)은 석실구조 바깥에 삼물회격을 추가로 시공한 석실과 회격의 복합구조체이다. 이것은 1468년(예종 즉위년) 세조의 유교에 따라 석실을 폐지하고 회격만으로 현궁을 만드는데 구조적 기반이 되었다. 즉, 영릉과 현릉의 구조에서 내부의 석실구조를 제거하고, 바깥의 회격만을 시공함으로써 회격 현궁이 조성된 것이다. 이로써 조선왕릉은 『국조오례의』에 기록된 석실과 회격의 복합 구조체인 회격석실릉에서, 석실을 제거하고 회격만을 조성하는 회격릉으로 정착하게 된다. 이러한 전개과정을 살펴볼 때, 1446년(세종 28)에 삼물회로 만든 회격구조를 석실에 결합한 회격석실릉은 조선만의 특별한 석실구조이며, 조선왕릉의 지하구조가 회격릉으로 변천하게 되는 기반이 되었음을 논증한다.

성남 고등 공공주택지구 출토 회격묘 과학적 보존처리 (Scientific Conservation Treatment of Artifacts Collected from the Lime-soil Mixture Barrier Tombs Excavated from the Site of a Public Residential Area in Godeung-dong, Seongnam)

  • 김웅신;전주연;김범준;한민수;이민혜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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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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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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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성남시 고등동에서 확인된 조선시대 회격묘 2기는 우씨 묘역에서 발굴되어 기록을 통해 묘주와 조성 시기를 유추 할 수 있는 유구이다. 말각방형으로 합장묘인 4호묘는 수습과정 중 외곽벽에서 글씨와 그림이 확인되었으며, 보존처리 및 적외선조사 결과 만사로 판단되었다. 말각장방형 단묘인 6호묘는 파묘되면서 일부 파괴되어 수습 후 야외전시 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보존처리 결과 운아삽과 역청이 확인되고 잔존하는 형태가 조선시대 회격묘의 양상을 잘 보여주고 있어 자문회의를 통하여 실내전시로 보존방향이 변경되었다. 역청은 분석 결과 송진으로 추정되며 이물질의 혼입으로 순도는 높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2기의 회격묘는 조선시대 무덤 양식의 변화 양상 등 학술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조선후기 회격릉의 지하구조를 반영한 봉릉의 시공과 형식 (A Study on the correlation between underground structure and tumulus of the Royal Tomb in the Joseon Dynasty)

  • 신지혜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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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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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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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In the early of Joseon Dynasty, Royal Tomb developed from stone chamber tomb to lime chamber tomb through precedents. The lime chamber tomb consists of main-chamber(JeongGwang) and sub-chamber(ToeGwang). This separation makes character to construct tumulus of the Royal Tomb half and half. By this character, the Royal Tomb are not constructed by separate structure but constructed by coadjustment. The underground structure and tumulus of the Royal Tomb affect each other in the size and method of construction. The selecting type of Royal Tomb is generally made decision through terrain and politics. This study prove the architectural structure is also one of the major cause the that select type of Royal Tomb.

조선왕릉 봉분의 구조적 특성에 대한 일고 - 문헌에 기록된 석실과 회격의 구조를 중심으로 - (A Study on the Structural Features of the Joseon Royal Tomb Tumulus)

  • 전나나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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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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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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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본 연구는 사료를 통하여 조선왕릉의 내부와 외부 구조를 분석한 후 시각적으로 구성하고, 조선왕릉의 특징을 고려 왕릉, 조선 사대부 무덤과 비교하여 본 논문이다. 조선왕릉은 구조적으로 견고한 건축의 성격을 지닐 뿐만 아니라 내부와 외부에 수호를 상징하는 미술 장식을 넣어 오래도록 왕과 왕후를 수호하도록 기원하고 있다. 조선 전기에는"세종실록 오례의"와 "국조오례의"가 남아 있어 이 사료를 통하여 조선왕릉의 내부는 석실이고, 외부는 병풍석과 난간석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세조가 자신의 능에 석실을 만들지 말라고 유언을 남긴 이후로 조선왕릉의 내부는 모두 회격이 되었다. 조선 후기에 조선왕릉의 조성 과정을 작성한 사료는 영조 때 편찬한 "국조상례보편"이 있다. 이 책에는 조선왕릉을 회격으로 조성하는 구체적인 과정이 나타나있다. 조선 후기에 조성한 왕릉의 병풍석은 십이지상을 새겼던 기존과 달리 모란을 새겨 넣는다. 모란은 궁궐의 장식화로 자주 사용되었으며 조선왕릉에 모란이 나타난 점은 조선왕릉이 왕의 일상 공간이라는 인식이 반영된 점으로 볼 수 있다.

조선왕릉 회격현궁(灰隔玄宮) 축조방법 연구 (A Study of the Construction Method of the Pit of Royal Lime Tombs in the Choseon Dynasty)

  • 김상협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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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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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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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This study examines the construction method of lime tomb of royal tombs in the Choseon Dynasty based on reference. This was primarily published as "The Five Manners and Courtesy of the Annals of Sejong" as examples, which were followed by the influence of Koryo's culture in the beginning foundation of Choseon, were organized in the time of Sejong; and later, in the time of Sungjong, "The National Five Manners and Courtes y" was published. Such old reference explains the stone materials and construction method of the royal tomb's pit yet there were not many studies regarding the pit of royal tomb in the Choseon Dynasty. And there exists no historical research or reference study in regard to the pit of royal tomb which is formed as a lime tomb. This is believed to be impossible to excavate the royal tomb since ancestral ritual formalities are still given by the descendants and because of our country's culture of giving ancestral ritual formalities which value formalities and filial duty. However, the current excavation of Guhui Tomb, which was the early burial site, was important since it gives an opportunity to look at the shape and structure of lime tombs in the Choseon Dynasty. Thus, this study, based on the excavation of Guhui Tomb, will look into the construction method of the pit of lime tomb and will examine the structure, shape, construction method, etc. of the lime tomb which was formed after the time of Sejo in a way with reference history. This is an important data to learn the construction method of limb tomb of royal tombs in the Choseon Dynasty and is believed to have a very important value as historical materials as to understanding the structure of the pit of royal tombs in the Choseon Dynasty which yet has not been excavated.

회격자식 소각로의 열유동 해석과 결과 분석에 대한 고찰 (Discussion on the Practical Use of CFD for Grate Type Waste Incinerators)

  • 류창국;최상민
    • 한국전산유체공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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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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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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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Computational fluid dynamic(CFD) analysis has been frequently applied to the waste incinerators to understand the flow performance for various design and operating parameters. Since the computational modeling inevitably requires many simplifications and complicated sub-models, validity of the results should be carefully evaluated. In this study, major computational modeling and procedure of usual simulation methods for the grate-type waste incinerators were assessed. Usual simulation method does not explicitly incorporate the waste combustion, simply by assuming the combustion gas properties from the waste bed which is treated as an inlet plane. However, effect of this arbitrary assumption on the overall flow pattern is not significant, since the flow pattern is dominated by strong pattern of jet flows of the secondary air. Thus, this method is valid in understanding the effect of flow-related parameters. In analyzing the results, deriving conclusive information directly from temperature and chemical species concentration should be avoided, since the model prediction for the gaseous reaction and the radiation reveals significant discrepancies against the actual phenomena. Use of quantitative measures such as residence time is very efficient in evaluating the flow performance.

15~17세기 초, 난간석만 갖춘 조선왕릉의 등장과 구조적 특징 (The Study on the Structural Characteristics for the Royal Tomb of the Joseon Dynasty from the 15th Century to the early 17th Century - Focusing on the Bongneung Equipped with only Rail Stones -)

  • 신지혜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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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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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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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
  • This study examined the structural characteristics of the royal tomb equipped with only rail stones in the early Joseon Dynasty. Bongneung(封陵: the burial mound of royal tomb) equipped with only rail stones was constructed from 1468 to 1632. During this period, Hyeongung(玄宮: the underground chamber for the coffin of the king or queen) was constructed with lime. When the Hyeongung is completed, the soil is covered with a thickness of 1 foot parallel to the ground surface. On top of that, as the base of the Bongneung, the rail ground stone is constructed with a height of about 1.5 to 2 feet. The inside of the rail ground stone is also firmly filled with soil. On top of this, semicircular lime is installed with a convex center. Lastly the soil is divided and compacted several times to form a hill, and then covered with grass to complete the Bongneung. The notable feature is that between the Hyeongung made of lime and the Bongneung made of soil, the rail ground stone serves as a stylobate with the inside compacted by the soil.

조선시대 회격·회곽묘 출토 삽(翣)에 대한 고찰 (A Study on the Excavated Sab(a funeral fan) from Lime-filled Tomb and Lime-layered Tomb during the Joseon Dynasty)

  • 이승해;안보연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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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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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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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삽(?)은 유교 예법에 따른 상장례(喪葬禮) 도구로 나무로 틀을 만들고 그 위에 백포(白布)나 두꺼운 종이를 붙여 그림을 그린 후, 자루를 달아 들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례기(禮記)"에 따르면 삽은 주대(周代)부터 사용되었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의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이나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 "사례편람(四禮便覽)"에 나타난 삽의 용례와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본고에서는 현존하는 조선시대 사대부가의 회격 회곽묘에서 발견되는 삽의 발굴 사례 및 문헌 기록을 통해 그 용례와 제작방식, 시기에 따른 유물의 특징에 대해 고찰하고자 한다. 삽은 신분에 따라 사용하는 개수와 그리는 문양이 다른데, 사대부가에서는 주로 '아(亞)'형의 불삽 1쌍과 구름 문양을 그린 화삽 1쌍을 사용하였다. 삽의 크기는 너비가 2자[척(尺)], 높이 2자[척(尺] 4치[촌(寸)]로 만들었는데 초주지나, 저주지로 두 번 싸고, 세 번째는 연창지로 쌌다. 그리고 나서 백저포, 마포, 무명, 공단 등으로 덮었다. 그 양면에 보불을 그리고 구름 변아(邊兒)에 운기를 그리는데 대개 주사 또는 진사를 사용하였다. 사대부가 회격 회곽묘에서 출토되는 삽은 광중에 부장된 것으로, 삽자루와 분리된 형태이다. 즉, 출토되는 삽은 발인행렬시 삽을 매달았던 5자 길이의 삽자루는 태워 없애고, 관의 좌우에 세워 넣은 것이다. 출토 유물의 검토를 통해서도 제작과정을 유추할 수 있다. 출토된 유물은 각(角)의 개수에 따라 각이 3개 달린 것과 2개 달린 것으로 대별된다. 먼저 각이 3개 달린 것(유형 I) 중에는 나무 통판을 사용하거나 대나무를 납작하게 갈라, 바구니처럼 엮은 것도 있다. 각이 3개인 삽은 비교적 조선 전기에 집중되어 있으며, 전체적인 형태에 비해 그 제작방식이 다양한 편으로 생각된다. 반면 각이 2개 달린 삽의 경우에는 비교적 정형화된 제작방식이 보인다. 직사각형이나 역사다리꼴로 몸통부분을 만든 후, 2개의 각이 달린 삽의 윗부분을 연결한 형태이다. 다만 상단면을 곡선(유형 II) 또는 직선(유형 III)으로 처리하는 것이 다르다. 이러한 제작방식은 각이 3개 달린 것에 비해 간단하며, 제작기법 상의 차이는 크지 않다. 특히 상단면을 직선으로 처리하는 방식은 오늘날까지도 사용되고 있다. 분석에 사용된 30건 중 묘주의 몰년, 즉 삽의 제작 연대가 명확한 것만 선택하여 분석한 결과, 유형 I은 16세기 전반에 집중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어 유형 II는 16세기 후반부터 17세기 후반, 유형 III은 17세기 전반부터 18세기 전반까지 고르게 분포하고 있다. 요컨대 삽의 형태는 유형 I에서 유형 II로, 다시 유형 II에서 유형 III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17세기는 변화의 시기로 유형 II III이 혼재되어 있다. 유형을 크게 3가지로 구분하였으나 유형 II III은 각이 2개인 측면에서 그 형태가 유사하다고 볼 때 주목할 만한 전환기는 16세기 중반이라고 볼 수 있다. 아마도 유형 I은 유형 II III에 비해 제작 과정상 공이 더 많이 들어갈 것으로 생각되며, 후대로 내려올수록 경제성의 원리에 따라 삽의 형태 및 제작방법도 간소해진 것으로 보인다. 상장례의 간소화 경향은 "선조실록(宣祖實錄)"에 예장(禮葬)이 몇 차례 중지되는 사건들을 통해 임진왜란 이후에 가속화된 변화로 볼 수 있다. 삽의 경우 이미 16세기 후반부터 간소화되고 있었으며, 심지어 18세기에는 삽을 따로 제작하지 않고 구의(柩衣) 및 관(棺)에 직접 그리는 현상까지 초래하였다. 그러나 형태적으로 단순화 되는 과정에도 "례기(禮記)"의 삽 사용 규정은 지켜지고 있어, 그 의례의 형식은 합리적으로 간소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