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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도검의 군사적 운용 (A study on Military Operation of Sword during Chosun Dynasty)

  • 강성문
    • 고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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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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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5-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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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본 연구는 조선시대의 도검이 군대와 실전에서 가지는 군사적 기능과 역할에 대하여 역사적으로 살펴보았다. 먼저는 조선전기의 도검과 도검군에 관한 것이다. 병사들의 개인 휴대무기인 도검이 대여진전을 통해서 일정한 규격화가 성립된 문종대의 환도체제였다. 다음은 지휘관에게 군권을 위임하는 대장 임명식은 고려조에 이르기까지 부월의식으로 나타났는데, 조선조에는 점이 그 역할을 대신하였다. 조선의 대전략은 여진족에 대한 대북책은 기병 중심의 전법체제로 전문 도검군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았는데 이 열세를 화약병기 등으로 보충하였다. 조선 정부는 임란왜란과 같은 대전쟁기에 중국과 일본의 도검술에 대한 관심으로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 활용하였다. 조선 정부는 임란중에 명나라의 삼수병제에 의한 훈련을 담당하는 훈련도감을 창설하였다. 살수 병종의 단병기들의 사용 숙달은 도검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단기간에 가능했던 것이다. 임란시에 왜검은 크기가 조선의 환도보다 길어서 실전에 효과가 켰다. 조선은 왜검에 대한 관심뿐만 아니라 왜검술의 습득에도 관심이 높았다. 강왜자를 통해 왜검술의 전습에 노력하였던 것이다. 조선후기에 조선은 도성 방위를 위한 도길 무예를 비롯한 단병기에 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정조는 실제적인 도성 방위를 위한 군사도시를 건설하였다. 그는 수성전을 위해 화약병기 뿐만 아니라 단병기 무예의 필요성을 절감하였다. 이를 위해 1750년에 발간된 병서가 $\ulcorner$무예도보통지$\lrcorner$ 이었는데, 단병기 무예 중에서 도검류의 비중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도검류의 장점은 모든 병사들에게 지급된 개인 휴대무기로 최후의 백병전에서는 최상의 무기라는 점이다. 모든 전투에서의 최후의 급거지간에 의존할 수 있는 방호무기였다. 그리고 이는 여러 실전을 통해서 그대로 입증되었다. 현대 병기의 등장으로 재래의 단병기의 전술적 기능은 퇴화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도검류는 다른 단병기와는 달리 현재에도 소총의 총검술용 대검과 의례적인 지휘도 및 예도 등으로 그 군사적 기능이 계승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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