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해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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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teria acuminata Hyne으로 만든 오일의 항세균 및 항진균 효과 (Anti-bacterial and Anti-fungal Effects of Herbal Oil Made from Vateria acuminata Hyne)

  • 김수지;;홍진영;조창욱;김영희;최정은
    • 보존과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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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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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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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Ola 잎에 글씨를 새긴 다음 그 홈을 Vateria acuminata Hyne의 뿌리로 만든 식물성 오일과 탄소 가루를 섞어 채운 올라 잎 기록물은 스리랑카에서 사용되는 기록 방법 중의 하나이다. 문헌상에 따르면 올라 잎 기록물은 1세기부터 18세기까지 사용되었다. Ola 잎 기록물이 400여 년 동안 보관되어 왔다는 최근의 발견과 좋은 보존 상태로 보아 이 식물성 오일이 올라 잎을 곰팡이와 곤충 같은 생물학적 요인과 환경 요인으로부터 보호해 주는 것으로 보인다. 이 식물성 오일의 항균 활성을 측정하기 위하여 해인사 장경판전에서 분리한 곰팡이와 올라 잎에서 분리한 균을 배양한 후 억제 효과를 확인하였다. 균 현탁액을 평판배지에 도말한 다음 식물성 오일을 흡수시킨 페이퍼 디스크를 평판배지에 올린다. 이 실험에서 식물성 오일은 육안 상 분명한 투명환을 형성하였으며 곰팡이나 세균과 같은 미생물의 성장을 저해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 결과로 보아 Vateria acuminata Hyne의 식물성 오일은 항세균 및 항진균 활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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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팔만대장경 경판의 구조 (The Structures of the Koryo Buddhist Canon (the Koreana Tripitaka) Printing Wood Blocks - A Preliminary Result)

  • 도춘호;이태녕
    • 보존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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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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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8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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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8
  • 해인사 소장 고려팔만대장 경판의 보존을 위한 체계적인 기초 조사의 일환으로 일부 경판에 대해서 경판의 크기, 경판의 상태 등에 관한 조사를 수행하였다. 이 조사 결과, 경판의 구조와 크기를 밝힐 수 있었고, 이것을 기초로 하여서 경판 제조사의 설계도를 추론할 수 있었다. 경판 제조에 사용한 나무 판자는 제조 당시의 단위로 환산하면, 평균 너비 8치(24 cm), 두께 1치 (3 cm)의 판자를 길이 2자 3치 (68 cm) 또는 2자 6치 (78 cm)으로 잘라서 사용한 것 같다. 그리고 마구리는 너비 1치 5푼 (4.5 cm), 두께 1치 4푼(4 cm)인 각목을 8치 2-4푼 (24.6-25.2 cm)으로 잘라서 사용하였다. 금속편의 종류는 6종류가 확인되었다. 금속편을 박는데 사용한 못은 1치 (3 cm) 못을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판의 길이가 다른 이유, 그리고 금속편의 종류가 여러 가지인 이유 등은 앞으로 연구 대상이 될 것이다. 그리고 경판의 일부만 조사했으므로, 경판 전체를 조사하면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고 또 더 흥미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전체 경판에 대한 기본 자료를 우리가 시도한 방법이나 개량된 방법으로 모두 수집하는 것이 경판보전의 기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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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오타니대학(大谷大學) 소장 고려대장경 인경본 연구 (A Study on the Copy of Tripitaka Koreana at Otani University in Kyoto, Japan)

  • 정은우;신은제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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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2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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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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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일본 교토(京都)의 오타니대학(大谷大學)에는 1381년 인경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대장경 인경본이 있다. 이색이 직접 쓴 발문(跋文)을 통해 이 인경본은 1381년 해인사에서 인경되어 여주 신륵사에 보관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신륵사에 보관되던 인경본은 1414년 일본에 사여되었고 현재 오타니대학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오타니대학 소장 인경본은 2000년대 초반 박상국의 기본조사를 통하여 목록이 작성되었고 기본적인 내용이 보고되었으나, 세부 형태와 포장지 등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까지 알려진 바 없다. 이에 비록 109면의 제한된 수량이지만 인경본에 대한 세부조사를 실시하였다. 오타니 인경본은 포장지와 내지로 구분된다. 포장지의 경우 재질에 따라 황색과 적갈색으로 구분되는데, 황색 포장지는 1381년 인경 당시 제작된 것으로 이해되며, 적갈색 포장지는 일본으로 이운된 이후 수리된 것으로 판단된다. 황색 포장지는 먼저 묵서로 권수의 끝 글자를 기재하고, 이어 금자로 경전명을 쓴 뒤 은으로 쌍곽을 만들어 마무리하였다. 적갈색 포장지의 경우, 일본에서 수리되었다는 가정 하에 추정해보면 금자로 쓴 부분이 온전했다면 금자를 절단하여 새 포장지 위에 붙여두었을 것이다. 금자가 없었다면 적갈색 포장지에 묵서로 글씨를 쓰거나 별도의 도장을 만들어 인쇄하였을 것이다. 내지는 표지와 속지로 구분되며 표지는 제첨을 만들어 붙였다. 속지는 3매의 종이를 절단하여 이접한 후에 인경한 경우가 다수 확인되는데, 이는 종이의 부족 때문이라기보다 다른 원인이 작용한 결과로 이해되나 현재로서는 정확한 이유를 예단하기 어렵다. '신륵사 대장각기'에 의하면, 오타니 인경본은 1380년 2월부터 기금을 모아 1381년 4월에 경·율·론 삼장을 인경하였고 9월 장정을 마쳤다. 10월에는 금자로 제목을 써 황색 포장지를 만들었으며 11월에는 함(函)을 제조하였다. 이듬해인 1382년 4월 신륵사 대장각으로 이안되었다가 1414년 신륵사에서 일본으로 이운되었다. 일본으로 이운된 이후 후코오우지(普光王寺)에 보관되어 있었으나 그 후 1541년 오우치 요시타카(大內義隆)가 인경본을 구입하여 이쓰쿠시마 신사(嚴島神社)에 봉안하였다. 메이지유신 이후 히가시 혼간지(東本願寺)로 이운되었으며 1962년부터 오타니대학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오타니대학 인경본은 별도의 경함에 보관되어 있는데, 경함은 32.1×25.3cm 크기에 전체 높이 23.6cm로 장방형이다. 현재 경함 4면의 직사각형 판은 붉은색이지만 내면에 흑색이 보이며 내부는 붉은색 칠, 각 모서리는 다른 판으로 제작한 다음 검은색 칠로 마감하였다. 경함 역시 1381년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이후 언제인가 부분적인 보수가 이루어 졌을 가능성도 있다.

정암사 수마노탑 탑지석(塔誌石) 연구 (A Study on the Memorial stone of the Sumanotap in Jeongamsa Temple)

  • 손신영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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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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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6-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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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수마노탑 탑지석은 1석부터 5석까지 차례로 1719년, 1773년, 1874년, 1653년, 1874년에 제작된 것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연호(年號)와 간지(干支)를 분석해본 결과, 제2석과 제4석 모두 1713년의 기록임을 알게 되었다. 동시기의 기록이 둘로 나눠진 것은, 중수대상을 탑신과 찰간으로 나누어 각기 소임을 맡은 이와 시주자를 기록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수마노탑 탑지석 5매에는 모두 중수불사의 역할을 맡은 승려들의 이름은 물론이고 일반인 시주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이중 법호법명(法號法名)으로 기록된 제3석의 승려들 이름을 19세기 후반 불사 기록과 비교하여 12명의 동명(同名)을 파악하였다. 이들 대부분이 수마노탑 중수불사 전후로 강원도 서울 경상북도 사불산 일대와 경남 해인사 등지에서 활약했다는 사실은, 당대 불사의 경향과 수마노탑의 위상을 시사하고 있다. 1874년 탑 내에 봉안된 금은합 시주자인 김좌근은 청신녀양씨와 함께 기록되어, 수마노탑 시주자 중 유일하게 알려진 인물이다. 그러나 실재는 그의 애첩, 나합이라 불리던 나주 출신 기생 양씨가 그의 사망 이후 시주한 것이다. 영의정을 지낸 김좌근의 애첩이던 양씨가 왕과 왕비 왕대비 대비 부대부인 등이 대거 참여한 불사에 개인적으로 참여했다는 점은 이례적이다. 더구나 1874년 수마노탑중수는 원자 즉 순종의 탄생 '백일'을 기념하기 위해 왕실에서 사적(私的)으로 이루어진 것이고, 할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탑지석에 기록된 10여 곳의 사찰 중 빈번히 등장하는 곳은 경북 봉화의 각화사와 강원도 영월 보덕사이다. 각화사는 사고사찰(史庫寺刹)로서 조정의 관리대상이었고, 보덕사는 단종 능의 원찰로서 왕실에서 돌보는 곳이었다. 따라서 이 두 사찰이 수마노탑 중수 불사에 참여했다는 기록은 이 두 사찰의 조력으로 수마노탑이 중수되었다는 점과 당시 수마노탑의 위상이 사고사찰이나 능침수호사찰 못지 않았음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