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게의 논리주의는 흔히 19 세기 후반의 산수화 운동을 잇는 수론 내의 발전사례로 간주된다. 그러나 실수 해석학 내의 그의 실제 작업을 고려해 볼 때 이런 견해를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그의 논리주의는 당대의 수학적 실천과는 유리된 철학적 프로그램에 불과했다고 간혹 주장되곤 했다. 이 논문에서 나는 이두 견해가 근거 없는 편견에 의존하고 있고, 그런 편견은 당대의 수학적 실천의 맥락 내에서 프레게 논리주의가 갖는 이론적 지위를 오해한 데서 비롯한 것임을 보일것이다. 첫째로 나는 칸토르의 실수 정의와 이에 대한 프레게의 비판을 검토할 것이다. 이에 근거해서 나는 프레게의 목표는 양의 비율을 순수 논리적으로 정의하는 것이었음을 보일 것이다. 둘째로 나는 프레게 논리주의의 수학적 배경을 고찰할 것이다. 이를 기초로 나는 실수 해석학에 대한 그의 견해는 예상외로 정교하다는 것을 보일 것이다. 프레게는 바이어슈트라스나 칸토르와는 달리 보편적 적용 가능성을 갖는 실수 해석학에 도달하려 하는 반면, 전통적 견해를 고수하는 대부분의 수학자들과 달리 실수 해석학을 확립할 때 기하학적 고찰에 결코 의지하지 않으려 한다. 셋째로 나는 프레게가 이 두 측면 - 기하학으로부터 독립성 및 보편적 적용가능성 - 을 논리학 자체의 특징으로 간주하였고, 논리주의에 따라 그것을 산수학 자체의 특징으로 간주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나는 실수가 양의 비율이라는 그의 견해는 수들의 본성이 다양한 맥락에서 수들이 하는 공통된 역할 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는 그의 방법론적 원칙으로부터 유래하였다는 것, 그리고 그는 그런 식의 정의 없이는 수의 보편적 적용 가능성도 적합하게 설명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는 것을 보일 것이다.
본 연구는 진경산수화를 토대로 한국의 산악과 산천지형, 색(色), 광(光), 인간행태 등을 분석하여 지역적인 풍토경관을 해석해 보고자 하는 시론적 고찰이다. 근대 이후 적극적 국토개발의 원인으로 변형된 지형과 달라진 생활상 등을 살펴봄을 통해 우리의 본래적인 풍토경관을 이해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었다. 현재는 옛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운 서울과 한강변의 주변지역은 원지형과 경관, 일기와 기후 등의 자연현상, 인간행태 등과 연관된 해석에 주목하였고, 지금도 일반에게 완전히 개방되지 않은 금강산 등지는 과거에 이를 대했던 인식의 풍토에 중점을 두었다. 지형지물의 모습과 일기, 시절 등을 통틀어 나타나는 경관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기 위해 풍토라는 개념을 들어 기술하였다. 이에 실재하는 한국의 산천 모습을 주로 담고 있는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화를 시각적 사료로 활용하였다. 다만 전작을 대상으로 하지 않고, 각 지역의 특징적인 장면을 담고 있는 "경교명승첩(京郊名勝帖)", "해악전신첩(海嶽傳神帖)" 등 그 주제와 장소별로 대상을 달리하는 작품군 중 대표성이 있는 사례를 활용하였다. 그 결과, 한국의 옛 풍토경관은 다양한 산악지형에 적응해 가던 생활모습이 담긴 풍경이며, 산을 대하던 인식의 풍토가 함께 반영된 정경(情景)이라 여겨진다. 이는 국토의 대부분이 산으로 이루어져 필연적으로 산악지형과 연관되어온 삶의 방식과도 관련이 있고, 이러한 환경적 요인은 풍토경관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본다.
조선시대 서촌에서는 많은 성시원림들이 만들어졌고 그들 중 다수가 진경산수화로 그려졌었다. 본 연구는 먼저, 서촌의 대표적 원림들의 위치를 보다 실증적 기법에 의하여 규명하려 하였다. 조선조 진경산수화에 나타난 원림경관을 ArcGIS 3차원 지형 모델링과 비교함으로써 사실에 근접한 위치를 밝혀내고 이에 근거하여 지형과 경관의 특징을 해석하려 하였다. 원림추정지 주변의 지형을 3차원 지형모델로 작성한 후, 조망점을 이동시켜 진경산수도와 근접한 3D 모델의 구도에서 대상지의 위치를 찾아내었다. 이후 모형에 지적도를 중첩시켜 원림 터의 지번을 확인하였다. 그 결과의 해석은 다음과 같다. 서촌의 초기 원림인 '청풍계 원림'은 인왕산 계곡의 종단부에 위치하여 외부로부터 감추어진 '위요형 경관'을 보인다. 중기원림인 '청휘각 원림'은 옥류동 계곡과 능선 사이에 위치하여 외부로 보다 개방된 '반(半)개방형 경관'을 보인다. 후기원림인 '서원 원림'은 대상지 중 가장 높은 능선 상단에 위치하여 '조망형 경관'을 보인다. 말기원림인 '송석원 원림'은 능선과 시가지의 접점 언덕에 위치하여 '개방형 경관'을 보인다. 즉, 서촌원림의 경관과 사회적 기능은 함께 점진적으로 개방되어 온 것으로 나타난다.
본 연구는 조선 중기 밀양의 부호세력이었던 여주이씨 일가의 금시당 이광진 유적을 중심으로 그림, 시문, 기문 등에 나타나고 있는 문화경관으로서의 특성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금시당 이광진은 사회적 혼란기였던 문정왕후의 죽음 이후 중기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와 응천강변의 백곡에 터를 잡고 금시당을 건립하여 별서를 경영하고자 하였는데, 그가 경영한 금시당은 숙부이자 스승인 월연 이태로부터 자연관과 효행, 산수경영 등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또한, 금시당십이경도는 이경홍이 병환으로 위중한 아버지 이광진을 위로하고자 금시당 주변의 아름다운 12경관을 그린 것으로 구전되며, 꾀꼬리봉, 용두산, 무봉사, 마암산, 월연대, 사인당 마을, 영남루, 밀양읍성, 배나무 소, 밤나무 숲, 밀양강변, 삼문동들 등 당시 여주이씨 일가가 소유하고 있었던 땅과 관아를 경관 대상으로 하여 소상팔경이나 사시팔경의 관념적인 산수화가 아닌 실경을 담고 있는 산수화이다. 금시당십이경시는 금시당십이경도에 근거하여 작성된 제화시로서 이광진의 11대손 이용구가 지은 것으로 시간과 계절 그리고 기상의 변화를 노래하였다. 시 12수 모두 칠언절구로 글자 수가 모두 28자로 이루어졌으며, 단순히 그림의 외형적인 묘사가 아닌 작자의 개성에 의해 재산출되었기 때문에 그림에서 보이는 요소들과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따라서 금시당십이경도는 단순히 효행의 의미뿐만 아니라 밀양의 부호세력으로서 여주이씨 일가 소유의 장원을 나타내고 있으며, 금시당십이경시는 그림을 재산출하여 특정한 명승지로 변화시켜 여주이씨 일가 소유의 영역성을 보다 강화시킬 목적으로 이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The research focused on the landscape of mountains and hills drawn in a landscape picture. The purpose of the research is to classify patterns of landscape drawning in landscape pictures and to clarify the characteristics of the pattern by a quantitative index. We selected 21 landscape pictures to understand the Landscape Setting Here(LSH) and Landscape Setting These(LST). We investigated size quantitative indices using 1 landscape picture. The index is a follow: altitude, Visual Distance, Angles, Angle of Appearance Size, Inclination, and Angle of Incidence. The following results were obtained by using this data. 1) It has been understood that we offer an important city view because the LSH of this research can establish understanding of the city structure. 2) We dividing 3 patterns by the LST space drawn in the landscape picture. 3 patterns are Ferry point, Beauty point, an Signal-fire point. 3) We clarified the landscape characteristics of each pattern and the characteristics between patterns by using the index according to this pattern. 4) We understood the problem concerning the Seoul city landscape examining the pattern of this research with the ordinance of Seoul city. It is necessary to standardized a system of pattern classification utilized in landscape pictures to establish a universally interpreted detailed quantitative index, which can be applied to research.
이 연구는 독일 베를린에 조성된 예술정원 작품인 「Das Dritte Land(제3의 자연)」를 사례로 한반도 자생식물을 이용한 해외에 정원을 조성하는 기법을 고찰한 연구이다. 한국의 정원 작가들이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고, 한국정원의 세계화를 계획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의 정원가가 활동력을 넓혀갈 수 있는 현실적인 정보를 공유하고, 한반도 자생식물의 활용과 가치를 재발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 작품은 베를린 장벽 붕괴 30주년을 기념하는 기획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인왕제색도를 모티브로 우리나라의 산수화적 풍경을 구현하고자 백두대간의 지리적 형태를 검은 기암괴석으로 재현하고, 한반도의 자생화를 베를린으로 가져가 정원을 조성했다. 분단 이후 통합될 수 없는 한반도에 생물군들이 어우러져 만개하는 초현실적 바이오톱(biotope) 유토피아(utopia)이다. 본 연구는 남과 북의 화합과 어우러짐의 상징 주체인 한반도의 자생화를 대상으로, 식물 조사 분석, 운반 및 안정화, 식재계획, 조성, 모니터링의 일련의 과정을 고찰하였다. 한반도 자생식물이 해외의 정원에서 해석되는 의미는 한반도의 생태계를 하나로 묶는 메시지로 작용하였다. 독일의 분단 경계지에서 한반도의 어린식물이 뿌리내리고 꽃을 피우고 씨앗이 번져가는 과정은 한반도 통일의 염원을 은유적으로 전달한다. 정원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예술 프로그램들은 남북의 문화적인 대화와 소통의 기반을 만들어가고 있음을 시사한다. 또한 해외에 정원을 조성하는 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시사점은 식물 연구 기관의 협조가 식물의 이송과 생명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과 한국정원가의 해외 진출은 우리나라 정원 문화의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청담도(淸潭圖)>는 겸재 정선(謙齋 鄭敾, 1676~1759)이 영조 32년(1756)에 삼각산(三角山) 청담(淸潭) 지역을 유람하고 그린 병풍도(屛風圖) 형식의 진경산수화(眞境山水畫)로 본 연구를 통해 발굴되었다. 와운루(卧雲樓)와 농월루(弄月樓)로 구성된 청담별업(淸潭別業)은 노론 낙론계(洛論系) 문회와 백악시단(白嶽詩壇)의 시회가 열린 당대 문화예술 활동의 거점이며, 정선과 그림의 주문자 홍상한(洪象漢, 1701~1769)의 연결점이 된다. <청담도>는 1756년 가을비가 내릴 당시, 정선이 그의 제자 김희성(金喜誠, 1723~1769)과 청담에 막 도착하여 홍상한과 만났을 때를 회상하면서 그린 그림이다. 인수봉(仁壽峰)부터 동구(洞口)까지 굽이쳐 흐르는 골짜기를 주안에 두고 그려졌으며, 청담 지역의 전경을 담으면서도 동(洞)의 유래가 되는 경물(景物) 청담(淸潭)을 강조하는 중의적인 화제를 사용하였다. 과감한 쇄찰(刷擦)과 습윤한 피마준(披麻皴), 부드러운 미점(米點)의 표현, 세밀한 필선 등은 정선 노년의 절정에 이른 원숙함을 보여준다. 특히, 암산(巖山)과 토산(土山)의 대비와 개수의 대칭을 고려하여 음양(陰陽)의 조화를 꾀한 점은 『주역(周易)』에 능통했던 정선이 유람의 최종단계에서 보였던 특유의 진경술(眞境術)로 보았다. 어유봉의 「청담동부기(淸潭洞府記)」는 정선이 청담의 진경을 파악하고 별업정원에 설정된 주요 경물의 물성(物性)을 이해하는 것에 영향을 주었다. 정선이 현장과 차별되도록 그린 별업정원의 특징으로는 수구막이 바위를 변용하고 과장하여 수구를 억눌렀고, 비보림(裨補林)을 치밀하게 조성하여 별업을 가렸으며, 특정 경물의 기능이 발휘되도록 새로운 물체를 창안하였다. 또한, 두 그루 나무를 기울여 대문처럼 정원을 닫고 있으며, 외원과 내원의 경계가 되는 인공의 조산대(造山帶)를 긴 담장처럼 견고하게 조성하여 내청룡과 내백호를 연결하였다. 이는 정선이 청담별업의 부족한 입지를 명당으로 만들기 위해 구사한 비보염승술(裨補厭勝術)로, 풍수적인 묘책으로 고안된 진경술의 일단으로 해석되며, 현실에서는 이루기 어렵지만 그림으로는 가능했던 이상적인 전통조경의 도상학적 구현을 잘 보여준다.
본 연구는 옛 문헌과 그림에 담긴 탁족(濯足)의 문화현상과 그 기저에 담긴 배경 및 의미를 고찰함으로써 탁족 문화를 계승하기 위한 조경적 대안을 제안해 보고자 한 것으로 주요 결과는 다음과 같다. 자연 질서에 순응하고 세속으로 부터 초연(超然)한 삶을 비유한 '탁영탁족(濯纓濯足)'의 고사는 '은일(隱逸)'을 통해 유유자적하는 탁족지유(濯足之遊)로 승화되었다. 선비가 유연(柔軟)한 계류에 발을 담그는 것은 자연과 물아일체(物我一體) 함으로써 도(道)와 상합(相合)되고자 하는 것으로 이러한 모습은 자유로운 정신세계인 '유(遊)'의 경지이자 본질과 상통한다. 탁족의 문화현상은 고려 말 이후 조선시대 전래경관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팔경시(八景詩)에 나타난 탁족은 고답적(高踏的)인 것이라기보다는 일상에 깃든 생활경이기도 하였다. 탁족도에 묘사된 맑은 물이 흐르는 계류[淸溪]와 바위, 그리고 소나무 등 교목이 우점(優占)하는 산수는 뜻 높은 선비의 은일공간으로 기호화되고, 그 정신세계는 더욱 부상되었다. 중국의 탁족도에서는 '청계(淸溪)'와 '창랑(滄浪)'을 강조함으로써 더러움에 대비되는 청류(淸流)의 이미지와 상고성(尙古性)이 강하게 부각되고 있는 반면, 조선시대 그것은 상대적으로 은일과 탁족지유라는 내면적 즐거움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탁족도에 나타난 자연관은 자연의 섭리를 그림 속에 그려진 선비의 상황 및 태도로 비유하여, 산수에 대한 사랑과 그 속에서 여유를 즐기는 가운데 무위자연(無爲自然)의 도를 깨닫게 하는 도가적(道家的) 관점의 표현이 잘 드러난 것으로 이는 중국은 물론 조선의 시대정신과 미의식의 한 단초를 보여준다. 요컨대 양국의 '탁족지유'는 인격수양이나 처신, 또는 은둔과 고답(高踏)의 상징으로 해석되면서 한편으로는 현실세계에서 납량의 수단으로 수용되어 왔다. 탁족 행위에는 선비들의 이상과 상고주의(尙古主義) 정신이 깃들어 있을 뿐 아니라, 일반 서민의 더위를 이기는 지혜가 담겨 있음은 깊이 되새겨 봐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환경적 지원성에 입각한 수공간과 탁족바위 그리고 물의 활용은 휴양 레크레이션 공간에서 새롭게 조명되어야 할 대상이며, 탁족 행위에 깃든 정신이야말로 고전적 치유(治癒)의 정신문화였음을 일깨워 준다.
관동팔경의 형성과정에 주목하여, 문헌 및 도상자료의 분석과 해석을 통해 관동 명승의 집경에 따른 팔경 형상화 및 정착시기를 탐색한 본 연구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관동팔경(關東八景)'이란 최초 용례(用例)는 이황의 "답홍응길(答洪應吉)"로 볼 때, 관동팔경은 이미 16세기 이전 당시 인들의 인식 속에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론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지리지 분석 결과, 관동팔경은 16세기 초 중반에 관동십경으로의 확장 또한 이루어졌다. 최초의 관동팔경에 대한 집경은 신즙의 "영관동팔경(詠關東八景)"으로 확인됨에 따라 관동팔경이라는 용어는 문학 분야에서는 최소한 16세기 이전부터 존재하였으며 현재의 세트화된 관동팔경으로 정착된 시기는 늦어도 17세기 초반이라 추정된다. 관동 명승의 출현빈도 분석 결과, 시문에 등장한 관동 명승은 관동팔경 경물에 대한 집중현상이 뚜렷하였다. 한편 회화 분야에서 오로지 관동팔경만을 모은 그림은 허필의 "관동팔경도병(關東八景圖屛)"에서 최초로 확인되는데 실경산수화에서 표현된 관동팔경은 시문에서의 집경 양상과 유사한 경향을 보이지만 화제 출현률 순위로 볼 때 시각적 결속력과 응집성이 더욱 강하게 드러났다 이는 일정한 관념체계 상 특정 의의를 지닌 회화의 도상(圖像)을 중요시하는 특성이 반영된 결과로 판단된다. 더불어 조선 후기에서 근대에 들어 제작된 다수의 민화 형식의 팔폭병풍(八幅屛風)은 관동팔경의 문화현상이 보편적 수용기에 접어들었음을 알리는 증좌이다. 또한 조선후기 성행한 남승도놀이 등 명승유람놀이에 등장하는 강원도내 13개의 명승에는 관동팔경이 오롯이 나타나고 있음을 볼 때 조선 말기 관동팔경은 놀이문화 속에서도 확고하게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결과를 종합할 때, 관동팔경의 인식은 15세기 전반 이전부터 있어 온 것으로 보이고, 16세기 형상화 과정의 지속적 전개를 통해 17세기 정착되었으며 18세기에 들어 관습화 보편화 된 것으로 추정된다. 궁극적으로 관동팔경은 고려시대부터 별개의 경물로 명성을 얻은 지역 명승이 17세기 후반 구체적으로 형상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관동 명승 중에 관동팔경은 오랜 기간 여러 사람의 탐승과 유람문화 향유(享有)를 통해 오직 여덟 개의 최상의 명소만을 추리기 위한 절차탁마(切磋琢磨)의 과정을 거쳐 형성되고 배태된 국내 대표적 팔경임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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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04년 10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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