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퇴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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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an Paul Gaultier의 Haute Couture 작품에 표현된 미적 특성 (The Esthetic Characteristics in Jean Paul Gaultier's Haute Couture Work)

  • 김선영
    • 대한가정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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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4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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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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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This study examines the esthetic characteristics in the haute couture work of Jean Paul Gaultier, who represents the fashion in France and is famous for avant-garde and experimental works through dismantling, from the first haute couture collection in 1997 to the present. The materials for the study are the precedent studies, the related literature, and the photographs of the works and the interview articles in domestic and international fashion journals. Three characteristics are revealed in his works. First of all, he provided a transcendental fashion different from the established wearing or ornamental ways by dismantling the dichotomies between male and female, time and space, and beauty and ugliness. Second, he reflected the decadent beauty recognized as representing women's sexual and provocative expression based on exposure, suppression, perversion, and grotesque manifestations by shaping an esthetic value within a different point of view. Finally, he was characterized as being transcendental with an eclectic fusion of intercultural differences or dynamics, items in costume formation, time and space, and eastern and western. This transcendental expression, Gaultier's desire for creativeness, can be an ideal characterizing this era.

20세기 현대미술에서 표현주의와 신표현주의 연관성 (A Correlation between Expressionism and Neo Expressionism in 20th Century Modern Painting)

  • 전민경;정경철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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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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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9-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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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독일은 19세기 후반기에 통일을 이루었지만 급격한 도시화와 물질주의 속에서 많은 혼란을 겪으며, 정신적인 혁명을 통해 독일적인 문화를 찾고자 하는 움직임이 지식인층을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현실 속에서 발생하는 분노, 슬픔, 억압 등의 심리적 상태를 본능적인 감성에 충실하며, 그대로 표현하게 됨으로써 자연스럽게 형태가 왜곡되거나 과장되며, 강렬하고 어둡고 내성적인 분위기의 낭만주의적 전통을 잇게 되었다. 파시즘의 나치에 의해 '퇴폐미술'로 낙인찍히며 막을 내렸던 표현주의 미술이 20세기 말에 다시 독일을 중심으로 일어났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비록 신표현주의자들이 다양한 오브제와 매체를 적극적으로 사용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인간 내면세계를 표출하고자 과거 표현주의자들이 즐겨 썼던 인물, 신화, 상징을 거친 붓 터치와 풍부한 색채 등으로 다시 화면에 등장시키며 독일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희망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따라서 신표현주의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는 표현주의에 대해 살펴보며 이들이 독일 전통 낭만주의와 어떠한 맥락에서 일치하며 현대 미디어콘텐츠로 계승 발전 되었는지를 논하고자 하였다.

신(新) 감미(甘味) 자원(資源) Stevioside의 안전성(安全性)에 관(關)한 연구(硏究) (A Study on the Safety of Stevioside as a New Sweetening Source)

  • 이상직;이갑랑;박정융;김광수;채범석
    • 한국식품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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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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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4-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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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9
  • 감미(甘味) 식물(植物) stevia의 추출물(抽出物)(주(主) 감미(甘味) 성분(成分),stevioside)을 흰쥐에 투여함으로써 본 감미 성분의 안전성(安全性)을 검토하였다. 복강내(腹腔內) 주사(注射)로 치사(致死)를 $LD_{50}$를 측정한 결과 추출물(抽出物)로 보아서는 3,400 mg/Kg이고 stevioside로 보면 1,700 mg/Kg이었으며, stevia 추출물의 56일간에 걸친 다량(多量) 구광(口腔) 투여(投與)$(2.5{\sim}5.0\;g/Kg{\cdot}day)$에도 실험 동물의 성장(成長)에 아무 장애(障碍)가 초래되지 않았다. 56일간 구강 투여 후의 전혈(全血) 검사(檢査)(RBC, WBC, Hb 및 Hct), 혈청(血淸) 성분(成分) 분석(分析)(총 단백질, 혈당(血糖), 콜레스테롤 및, GOT 등 17개 조사 항목) 및 간(肝) 조직(組織) 검사(檢査)(간 세포 핵퇴폐(核頹廢)), Kupffer 세포의 증식(增殖), 문맥성(門脈城) 섬유화(纖維化) 등 11개 소견(所見))는 총 33개 항목인데, 그 중 lactate dehydrogenase (LDH) 활성을 제외하고는 모두 대조군(對照群)과 시험군(試驗群) 사이에 유의차(有意差)를 볼수 없었다. 상기한 실험 결과에 입각하여 stevia 추출물 및 stevioside는 흰쥐에 대하여 급성(急性) 및 아급성(亞急性) 독성(毒性)을 발현(發現)하지 아니하는 것으로 사료(思料)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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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전통 이념과 극단 민예극장의 '전통' (A Study on Traditional Ideology and the 'Tradition' of the Theatre company Minye in 1970s)

  • 김기란
    • 대중서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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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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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5-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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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이 글의 목적은 70년대 국가권력에 의해 소환되었던 전통 이념이 '전통의 현대화'라는 명목 아래 당대 한국연극 현장에 수용되었던 양상과 그 함의를 밝히려는데 있다. 이는 다른 한편 70년대 전통 논의를 둘러싼 한국연극계의 자기검열의 양상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작업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이 글에서는 민족극을 창안하는 방식으로 70년대 한국연극계의 전통 논의를 선점했던 극단 민예극장의 활동을 살펴보았다. 이제까지 70년대 극단 민예극장에 대한 평가는 전통의 계승과 변용을 내세운 허규의 연출 작업을 바탕으로 공연예술적 성취 여부에 집중되었다. 하지만 70년대 국가가 주도한 문화정치의 장(場)에서 구성된 전통 이념과 그것이 작동된 양상은 예술적 성취라는 측면에서만 평가할 수 없다. 무릇 전통을 전유하려 한 주체의 선택적 기준에 따라 전통 이념은 선별되고, 선별된 전통 이념의 선택 과정에서 특정 대상들이 배제, 폐기, 재선별, 재해석, 재인식된다. 70년대 비문화로 호명되었던 서구적인 것이나 퇴폐불온한 것과의 차이 속에서, 전통이 전유되었던 70년대의 상황도 이로부터 멀리 있지 않다. 국가가 주도한 70년대의 전통 논의는 전통의 특정 이념을 안정된 가치로 합법화했는데, 그것을 작동시킨 한 방식은 국가의 문예지원이었다. 70년대 극단 민예극장은 당시 연극 위기론의 구체적 대안으로 선택되었던 전통의 현대화를 바탕으로 민족극을 지향했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전통연희의 계승과 변용이라는 방식으로 구현되었는바, 특히 극단 민예 극장의 대표 연출가 허규에게 전통은 거부할 수 없는 안정적 가치였고 그것의 계승과 변용은 의심할 바 없는 소명으로 내면화되었다. 그 결과 허규가 연출한 극단 민예극장의 공연은 일정한 성취에도 불구하고 과도한 전통연희의 관습들로 채워진 숙련된 장인술로 귀착되었다. 70년대의 전통 이념은 80년대 들어 새로운 전유의 양상으로 전개된다. 1986년 극단 민예극장의 핵심 단원이었던 손진책, 김성녀, 윤문식 등은 민예극장을 탈퇴하여 극단 미추를 만든다. 극단 미추는 연출가 손진책을 중심으로 풍자와 해학이 넘치는 마당놀이를 선보이며 전통의 대중화를 끌어냈다. 전통연희에 내재된 민중의 저항정신을 전통적 가치로 전유했던 대학가의 마당극처럼, 손진책의 마당놀이는 풍자와 해학을 통해 위압적인 국가권력을 비판하고 조롱함으로써 대중적 인기를 끌었다. 70년대 전통 논의의 자장 안에서, 민중의 저항정신을 전통적 가치로 전유하며 자생한 마당극이나 전통의 대중화를 성취한 극단 미추의 마당 놀이는 예술적 성취로써만 평가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전통의 계승과 변용이라는 측면에서 70년대 극단 민예극장이 성취한 것 역시 70년대 전통이 소환되었던 맥락을 제외하고 독립적으로 평가될 수 없다. 70년대 국가 주도의 전통 논의에 대응한 한국연극 평단의 시각이 예술성을 바탕으로 한 공연예술의 질적 성취에만 집중된 대목이 아쉬운 것은 그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이런 맥락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이를 바탕으로 70년대 극단 민예극장의 활동을 중심으로 당대 한국연극계의 전통 논의와 그 실천 양상을 살펴보았다. 결과적으로 70년대 극단 민예극장의 활동이 한 계기로 작용했을 대중적 마당놀이나 민중저항의 마당극은 70년대 극단 민예극장이 전통을 전유하는 방식, 곧 전통의 계승과 현대적 변용과의 '차이' 속에 정립되었다. 계기는 되었으나 그에 따른 유의미한 차이를 지속적으로 생산해내지 못한 점, 이것이 극단 민예극장의 '전통'이 70년대 한국연극사에서 차지하는 의미이자 한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