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측천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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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구정광대타라니경"에 사용된 무주신자 연구 (A Study on the New Characters of Muzu Used in Mugujeennwangdaedaranigyong)

  • 유부현
    • 한국도서관정보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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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1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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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4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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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0
  • 본고는 무구정광대타라니경에 사용된 무구신자의 성격을 구명하기 위해 무주신자와 이를 제정한 측천무후에 대해 선행연구를 통해 살펴보고, 무주시대에 적용된 무주신자의 용례를 고찰하여, 본경에 사용된 례와 비교 분석한 것이다. 먼저 본경에 사용된 신자의 자형을 무주시기에 사용된 신자의 자형과 비교를 해본 결과, "초.증.수"자의 신자들은 상당한 차이가 났다. 또한 신자의 조합원리와 의미상에서 비교해 본 결과 더욱 차이가 있었다. 다음으로 신자사용의 적용례를 비교해 본 결과 역시 비교가 안될 정도의 차이를 보여주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본경에 사용된 신자와 무주시기에 사용된 신자사이에 시간적.공간적으로 상당한 거리가 있기 때문이 이와 같이 자형과 사용례에서 극심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다.것으로 이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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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 선진리비석 측천문자의 명문 재해석 - 측천문자의 한반도 전래 및 수용 문제에 대해 - (A Reinterpretation of Sacheon Seonjin-ri Stone Monument's Chinese Characters of Empress Wu(則天文字) - On the Issue of the Introduction and Acceptance of Chinese Characters of Empress Wu to the Korean Peninsula -)

  • 신동성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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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0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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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57-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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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
  • 2003년 경상남도 사천시 선진리 251번지 및 256-1번지에서 측천문자가 새겨진 신라시대 비문이 발견된 이후, 경남문화재연구원과 곽승훈, 김창겸 등 국내연구자들이 비문에 대한 해석을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비문에 등장하는 측천문자의 기원과 이두식 표현의 해석 대해서는 이설이 존재한다. 본 연구에서는 이 비석이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중반에 신라 임금이 진주·사천 일대에서 순시 및 불교 활동에 참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비문의 주인공은 남부 지방을 순시한 적 있는 성덕왕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하였다. 또한 인명으로 해석되어 온 "상요언(上了言)"의 경우 료(了)와 같은 조사가 인명에 사용되지 않는 원칙을 고려할 경우, 인명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동사와 조사로 구성된 이두식 표기로 해석하야 한다고 본다.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같은 종교서적은 아니지만, 측천문자가 사용된 이유는 화엄종 사상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신라 왕실이 측천무후 시대의 불경을 접하게 된 것이 화엄종의 발흥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측천문자를 익히고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