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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시문과 회화를 통해 본 연(Nelumbonucifera)의 활용과 애호 행태 (Utility and Care Patterns of Lotus Shown in Classic Poetries and Proses, Painting)

  • 김명희;홍형순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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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9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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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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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 본 연구의 목적은 옛사람들이 '연'이라는 식물소재를 활용한 방법과 그로부터 취하고자 했던 가치와 의미, 감상 태도 등에 대한 실제적 사례들을 고찰하는데 있다. 이를 위한 연구의 방법은 연에 대한 감상과 관념세계가 반영된 시문과 회화를 고찰하고 해석하는 기술(description)적 연구방법이 사용되었다. 본 연구의 결과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연의 관상 가치는 대규모 집단식재와 부지규모의 소규모 식재, 분연(盆蓮)으로 나누어 볼 수 있었다. 특히 대규모 면적에 집단적으로 식재된 연은 여타의 초화류와 차별화되는 독특한 경관을 제공하였다. 별서와 후원 등 사적인 공간에 연지를 조성하고, 연을 애호한 여러 사례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장소는 연이 개화할 무렵에 아회의 장소 등으로 활용되었다. 작은 연지조차 조성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분지를 이용하여 연을 즐기기도 하였다. 또 꽃과 잎, 줄기와 연밥 등 세부요소 모두의 관상가치가 뛰어난 점은 연의 또 다른 특징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둘째, 주돈이의 '애련설(愛蓮說)'에 '향원익청(香遠益淸)'으로 표현된 향기는 연의 중요한 매력 중 하나이다. 전통정원에 있어서 연은 향기를 제공하는 후각적 요소로 활용되었다. 옛사람들은 연의 향기를 단순히 즐기는 것에 더해 '군자의 품격'에 비유되는 상징물로 여겼으며, 이를 시문과 그림으로 표현하였다. 셋째, 연은 청각적 요소로도 활용되었다. 즉, 수면과 넓은 연잎에 빗방울이 어우러져 내는 소리를 '연당청우(蓮塘廳雨)' 또는 '하당야우(荷塘夜雨)'라 하여 운치 있는 소리로 즐겼다. 넷째, 연꽃을 구경하는 여름놀이를 '세속에 오염된 마음을 씻는다'라는 의미의 세심(洗心)놀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풍류는 일반 서민들로부터 왕가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계층이 즐겼다. 이 밖에 연과 관련된 풍류로 큰 연잎과 속이 빈 줄기의 특징을 이용하여 술을 마시는 방법인 '벽통주(碧筒酒)' 혹은 '하심주(荷心酒)', 상비주(象鼻酒)가 있다. 또 유교의 영향으로 남녀유별이 엄격하던 조선시대에 연밥과 '채련곡'은 남녀 간의 연애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중요한 기호(記號)가 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많은 '채련곡'이 전해지며, 남녀 간의 애정을 묘사한 여러 풍속화에는 연당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연은 고대 이래로 사상과 종교 등 문화적 배경을 초월해 폭 넓은 계층이 애호하여 왔다. 이러한 연유로 인해 연이 갖는 다양한 상징적 의미와 사찰 등 종교시설과 관련된 식재 사례를 다각적으로 고찰하지 못한 점은 본 연구의 한계이며 추후 연구과제이기도 하다.

"나의 피 헌원(軒轅)에 바치리라" - 황제신화(黃帝神話)와 청말(淸末) '네이션(민족)' 구조의 확립 - (The Myth of Huang-ti(the Yellow Emperor) and the Construction of Chinese Nationhood in Late Qing(淸))

  • 심송교;조우연
    • 역사민속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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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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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7-3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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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8
  • 본고에서는 청말(淸末) 중국 지식인들 사이에서 널리 유행한 황제신화(黃帝神話)와 전통적인 황제(黃帝)전설과의 괴리를 살피고, 나아가 근대중국 '네이션(민족)'구조 형성의 역사과정과 그것이 내포하고 있는 모순, 또 그로 인해 야기되었던 수많은 사회적 충돌에 대해 살피고자 하였다. '네이션(혹 민족)'은 일종 '상상(想像)의 공동체'로서 근대적인 창조물임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이러한 '상상'을 하는 행위자들은 항상 그 시선을 아득히 먼 과거에로 돌리고자 한다. 즉 민족의 기원에 확실한 '역사적 근거'를 마련하고자 한다는 것이다. '황제(黃帝)'라는 존재가 바로 이러한 청(淸)왕조 말기라는 시대상황의 수요에 의해 '중화민족'의 시조로 정립되었던 것이며, 20세기 중국 민족의 기호[심볼]로 자리매김하였다. 황제(黃帝)라는 이 기호[심볼]를 중심으로 한 중국 민족의 창조는 청(淸)의 통치를 종식시키고자 한 반만혁명(反滿革命)이라는 현실 정치에 그 목적을 두고 있었으며, 혈연적인 연관성에 바탕을 둔 배타적인 공동체 구성에 불과할 수밖에 없었다. 민족에 관한 '상상'은 단선적으로 진행되는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20세기 초, 논란의 초점으로 된 '황제기년(黃帝紀年)'과 '공자기년(孔子紀年)'의 논쟁은 두 가지 서로 다른 민족관념의 충돌이었다. 또 일부 한족(漢族) 지식인들은 '황제(黃帝)'의 종족개념을 확대하여 '대민족주의(大民族主義)'로써 '소민족주의(小民族主義)'를 대체하고자 하였다. 일부 만주족(滿洲族) 출신의 학자들도 '황제(黃帝)의 후예'임을 자처하면서 스스로의 역사기억을 새롭게 쓰고자 시도하게 된다. 결국 근대 중국의 민족구조를 당시의 정치 문화적인 상황과 연관시켜 분석해봤을 때, 지극히 구조적인 기호[심볼]로써 '황제(黃帝)'관념은 사실상 여러 세력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실현시키고자 각축전을 벌였던 하나의 치열한 투쟁의 장(場)이었던 것이다. 한 중 일 동아시아 3국은 역사문제를 해결함에 있어, 이성적(理性的)인 접근보다는 항상 민족주의라는 감성적(感性的)인 목소리를 앞세우곤 한다. 특별히 중국은 경제대국화와 함께 사회 구성원들의 이탈을 방지하고자, '중화민족'이라는 가상의 공동체 형성에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이러한 시도가 극에 치달을 경우, 자칫 동아시아에 커다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은 역사적 경험으로부터도 충분히 짐작 가능한 것이다. 역자(譯者)로서는 이러한 서양에서 이미 거의 폐기되다시피 된 구시대적인 민족주의 일변도의 접근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 들어, 베네딕트 엔더슨의 "상상의 공동체(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에 대한 성찰) Imagined communities: reflections on the origin and spread of nationalism" (윤형숙 역, 나남출판, 2002)가 한국 학계에 널리 소개면서 민족주의에 대한 성찰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민족주의에 관한, 특히나 중국의 민족주의의 형성에 관한 본고가 가져다주는 의미 또한 남다르다. 물론 본고 역시 이론의 틀은 "상상의 공동체"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지만, 그러한 이론의 틀에 '중국민족의 형성' 이라는 구체적인 사례를 끼워 맞춰 봤을 때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사실'과는 전연 다른 새로운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참신한 시도라고 보아진다. 따라서 이러한 이론의 틀에로의 대입이,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한국의 경우도 검토해볼 계기를 마련해 주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람에서 본고를 번역하여 학계에 소개하고자 한다.

유럽연합 특허시스템의 대대적 변혁과 그 교훈 (Recast of the EU patent law system and its Lessons)

  • 김용진
    • 법제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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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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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03-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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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최근 유럽특허제도가 대대적으로 개편됨으로써, 이제 유럽연합은 하나의 특허와 하나의 통합특허법원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 2013년 유럽 특허법은 새 시대를 열었다. 유럽연합 차원에서 단일한 효력을 갖는 특허를 만들고 단일특허는 물론 종래의 특허도 보호하는 통합특허법원을 설립함으로써 유럽에서 특허의 실체적 보호와 특허소송에 관한 새로운 법적 체제가 갖추어졌다. 단일특허(unitary patent)는 유럽연합법에 기초하여 만들어졌으며, 통합특허법원(unified patent court)은 유럽연합 차원의 협정에 의하여 탄생된다. 통합특허법원에 관한 협정이 올해 안에 발효되어 통합특허법원이 작동하면 새로운 유럽 특허법 체제가 마무리된다. 이에 따라 2018년은 유럽 차원의 단일특허와 통합특허법원 시대를 개막하는 첫 해로 기록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논문은 단일특허의 효력 범위와 단일특허 및 전통적 의미의 유럽특허와 관련한 침해소송, 유무효확인소송, 권리의 라이선스 등에 관한 통합특허법원의 관할 범위를 조망한다. 종래의 유럽특허와는 달리 일단 단일특허로 취득된 경우에는 통합특허법원에 의하여 규율되고 유럽연합 전역에서 동일한 효력이 주어진다. 이와 관련하여 한편으로는, 국내특허, 전통적 의미의 유럽특허, 그리고 단일효력이 주어지는 유럽연합 특허의 상호간 효력 범위를 검토하고, 통합특허법원과 개정 브뤼셀규정과의 상관관계를 밝혔다. 특히 유럽연합 내외에서 손해를 발생시킨 유럽특허 침해 사건에 제3국인이 피고로 등장하는 경우에도 통합특허법원의 관할을 발생시키는 보충적 재판적을 면밀히 분석하였다. 발명을 적극 보호하여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새로운 지식재산제도를 벤치마킹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시급하다. 이 논문은 최근 급격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유럽특허법 체제를 분석하여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과 교훈을 도출하고, 이를 기초로 우리나라 특허법 체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위한 법리의 개발과 실무의 운영방향을 제시하였다. 이를 위해 2018년 시행이 전망되는 유럽 차원의 단일특허와 통합특허법원을 집중 분석하여, 2017년 초부터 시행되고 있는 우리나라의 관할집중 제도에서 수용가능한 부분과 개선해 나가야 할 방향을 탐구하였다. 무엇보다 우리나라 개정법(민사소송법)이 추구한 관할집중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관할집중에서 빠뜨린 가처분제도로 인하여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으로 본안인 침해사건이 범람하는 현상을 타개 내지는 완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이를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중복관할을 당사자가 합의한 경우로 제한하고, 가처분항고 관할을 특허법원으로 이관시키는 내용의 법개정을 제안하였다. 나아가 유럽연합 제도에 대한 비교법적 고찰을 통하여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을 포함한 3국간 지식재산제도의 협력적 제도 방안으로 절차법적 통일을 넘어 실체법적 통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검토하였다.

20세기 후반기 시나위의 현장 조사와 음악이론의 성립 (The Fieldwork of Sinawi and the Establishment of Musical Theory in the Late 20th Century)

  • 최선아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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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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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55-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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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연구에서는 먼저 이보형의 시나위 이론의 근거가 된 (조사보고서나 논문에서만 확인되는) 시나위 전승자의 단편적인 증언 내용을 이보형 소장 카세트테이프와 수첩 등에서 찾아내었다. 그리고 이보형의 시나위 현장 조사 과정과 시나위 음악이론의 성립 과정을 추적하여 그 의미를 밝히고자 하였다. 민속악의 생명이 지역 현장에 있음을 일찍부터 간파한 민속음악학자 이보형은 전국 각지의 민속악 현장을 누비며 민속악을 녹음하는 동시에 민속악 전승자와의 대담 등을 카세트테이프 2천여 개와 수첩 3백여 개에 채록해 왔다. 이 중 이보형 소장 시나위 현장 조사 자료에는 1970년대 초부터 20여 년 동안 경기도와 전라도, 경상도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시나위 현장에서 새로운 시나위 전승자를 발굴하여 대담한 내용이 채록되어 있다. 간혹 즉흥적으로 연주한 시나위가 녹음되어 있기도 하다. 이보형의 시나위 현장 조사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진행되어서 다행히 과거의 시나위 현장을 기억하는 전승자들의 증언이 다수 남아 있다. 이보형은 이 자료들을 활용하여 조사보고서와 논문 등에 시나위 관련 이론을 발표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시나위 논문은 "시나위 청"(1979)에 관한 것이다. 그는 제1차 시나위 현장 조사에서 경기도 해금 시나위 명인 지영희의 시나위 청에 대한 증언을 듣고서, 본격적으로 경기와 호남의 피리, 대금, 해금 시나위 청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시나위 전승자 11명의 시나위 청에 대한 증언을 바탕으로 "시나위 청"을 발표하였다. 이후 1987년에는 경남 지역이 포함된 시나위 권(圈)으로 조사 범위를 확장시켜서 경기와 호남, 경남 지역에서 새로운 시나위 전승자 12명을 발굴하고, 이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시나위 청 이론을 보완하여 발표하였다. 이보형은 새로운 조사 현장에서 다른 지역 또는 기존 대담자가 증언한 시나위 정보와 다른 내용이 증언되는 경우에는 그 자리에서 재차 사실 확인을 한 후 잘못 증언된 부분은 바로 수정되도록 이끌었고, 차이점은 특징으로 밝힘으로써 시나위 청 이론을 정립하였다. 다행히 그의 조사보고서나 논문 등에서 인용한 시나위 전승자들과의 대담 내용은 대부분 카세트테이프와 수첩에 채록되어 있다. 앞으로 이 자료가 공개된다면 새로운 시나위 혹은 민속악 이론이 탄생될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초기 문화산업사에서 흥행의 합리화 과정에 대한 연구-1907~1920년대 초까지 흥행 주체를 중심으로- (Rationalization Processes in the Entertainment Business on the Modern Theatrical Field - Concerning the Financiers and the Agents from 1907 to the early 1920s -)

  • 권도희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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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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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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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고는 1907년부터 1920년대 전반기까지 흥행 주체를 중심으로 흥행 시스템의 구성과정 대해 서술한 것이다. 흥행은 황실극장인 협률사 시절부터 시작되었는데 황제의 권위와 국가 제도가 이를 뒷받침을 했고 궁내부가 이를 주도했다. 그러나 황실극장 혁파 이후, 1907년 이후부터 다수의 사설극장이 생겨나면서 민간인이 자본가로 참여했고 또 연극개량론이 등장하면서 집행자의 역량은 강화되기 시작했다. 나아가 1912년 전후로 정부 관료나 사회 지도층 인사 대신 실업가들이 흥행에 참여하면서 흥행의 양상은 다양해졌고 한편으로 흥행주체의 역할은 세분되면서 흥행계는 합리화의 정도를 심화할 수 있었다. 경제자본을 활용했던 자본가는 극장의 건축과 개축 수리 및 흥행에 필요한 자금을 동원하는 과정에서 극장주, 투자자, 사장 등으로 세분되었고, 문화자본을 활용했던 집행자들은 공연의 실천과 유지는 물론이고 흥행물의 다양성을 확장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이들의 존재 양태는 자본가보다 복잡했는데, 극장 내에서는 총무(주무)가, 극장 밖에 서는 기생집단과 신파극집단, 경성(구파/신파)배우조합, 나아가 각종 "${\bigcirc}{\bigcirc}{\bigcirc}$일행" 등이 각각이 놓인 특수한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흥행에 참여했다. 흥행 세부 주체들 간에는, 즉 자본가와 집행자들 또는 집행자들 간에 서로 협력 관계에 놓이기도 하고 갈등 관계를 설정하기도 했는데, 이들 간의 관계 속에서 흥행의 절차는 심화되고 발전되었다. 그러나 1915년 이후에는 갖춰진 시스템의 가능성 만큼 흥행 산업이 성장하지는 못했다. 일제는 조선인의 경제자본과 문화자본의 성장을 제한했고, 사회자본의 구성마저도 방해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조선의 흥행계는 흥행산업의 절대적 성장에 비례하여 성장하기는 했지만 잠재적 역량만큼 발전하지는 못했다.

<성인인상무>에 대한 연구 (A Study on 'Seungininsangmu' of Haejugwonbeon)

  • 김영희;김경숙
    • 공연문화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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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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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3-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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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한국 민속춤의 정수인 승무는 춤의 연원이나 유래, 춤의 명칭과 복식을 볼 때 불교와 깊은 영향관계를 가지고 오랜 세월 변화 발전되어 온 춤이다. 현재 주로 추어지고 있는 승무는 장삼춤과 북춤의 구성으로 고착되어 있으나, 일제강점기의 승무는 그 역사성과 다양한 유래설 만큼이나 여러 양상의 승무를 유추해 볼 수 있다. 1940년을 전후해서 해주권번의 사범이었던 장양선은 양소운을 통해 <성인인상무>를 작품화했다. 2010년 '양소운 추모공연'에서 추어진 <성인인상무>의 영상을 분석해 본 결과, 첫째, 이 춤은 춤의 제목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주제가 뚜렷하고, 승무의 유래설 중에서 불제자가 수도 중에 번뇌하고 타락했다가 다시 불교에 회귀한다는 기원설을 내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둘째, 장삼춤 - 북놀이 - 바라춤 - 허튼춤 - 회심곡 - 귀의로 이어지는 과정은 작품의 주제의식을 순차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었다. 셋째, 불교의식무용인 바라무, 민속적 특징인 개성과 즉흥성이 강한 허튼춤, 불교음악인 회심곡 등 내용과 그 전개에 따라 여러 표현방법이 결합한 형식이었다. 이는 20세기 초 승무를 무대화 내지는 작품화하고자 했던 흐름을 잘 반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성인인상무>는 현재 장삼춤과 북춤만의 장대한 형식의 승무와 비교했을 때, 내용면에서는 본래 승무가 담고자 했던 의미를 살펴볼 수 있었고, 형식적인 측면에서는 악가무와 극적 요소가 결합된 다양성을 되돌아보게 한다. 미래지향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승무를 위해 많은 시사점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본 연구의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청소년의 학교폭력노출 유형에 따른 회복과 적응을 위한 요인 간의 종단적 관계 분석: 사회적지지와 회복탄력성을 중심으로 (Analysis of the Longitudinal Relationship between Recovery and Adaptation Factors According to Types of School Violence Exposure in Youth: Focusing on Resilience and Social Support)

  • 김동일;이혜은;금창민;박알뜨리;오지원
    • 교육심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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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2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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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9-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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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본 연구는 서울교육종단연구(SELS) 자료 중 3차 년도(2012년)에 학교폭력 가해 경험과 피해 경험을 보고한 초등학교 6학년 1,137명의 데이터를 이용하여, 학교폭력노출 청소년 유형(가해, 피해, 중복) 별 회복탄력성과 사회적지지의 종단적인 관계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자기회귀교차지연모형으로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초 6(2012), 중2(2014), 고1(2016)의 세 시점에서의 학교폭력노출청소년의 회복탄력성과 사회적지지의 자기회귀 계수를 측정한 결과, 학교폭력노출의 모든 유형에서 이전 시점의 회복탄력성과 사회적지지가 다음 시점의 회복탄력성과 사회적지지에 정적을 유의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이전 시점의 회복탄력성/사회적지지에 대한 지각이 다음 시점의 회복탄력성/사회적지지에 대한 지각을 매우 안정적으로 예측하였다. 둘째, 회복탄력성과 사회적지지의 교차지연효과의 경우, 이전 시점의 사회적지지가 다음 시점의 회복탄력성에 미치는 영향은 피해 경험의 경우에만 유의하게 정적인 영향을 미쳤고 가해 집단과 중복 경험 집단의 경우에는 유의한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특히, 세 번째 연구 결과로, 회복탄력성에서 사회적지지로의 반대 경로에서는 가해 경험과 피해 경험의 경우에 이전 시점의 회복탄력성이 다음 시점의 사회적지지에 부적으로 유의한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사회적지지가 회복탄력성의 보호요인이라는 그동안의 횡단적 연구 결과를 종단적인 관점으로 보완하여, 학교폭력 가해 집단과 피해 집단에서 회복탄력성을 높게 지각하고 있는 청소년들의 경우에는 오히려 사회적지지에 대해 낮게 지각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본 연구에서 새롭게 도출해냈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 최종적으로, 본 연구 결과를 통하여 회복탄력성과 사회적지지의 종단적 관계와 본 연구의 한계를 논하고 추후연구를 위한 제언을 하였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의 정규직 되기: 투쟁과 협상의 변주곡, 2003-2016년 ('Becoming Regular Employees': A Variation of the Struggle and Bargaining of Irregular Workers at Hyundai Motor Company, 2003-2016)

  • 유형근;조형제
    • 산업노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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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3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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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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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이 연구의 목적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정규직화 투쟁과 협상 과정을 사회운동론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그 성과와 한계를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2003년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설립된 이후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노사관계의 제도적 틀 바깥에서 불법파견 정규직화 요구를 제기하며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투쟁과 협상을 지속했다. 이에 대해 현대자동차는 애초 견지하던 '문제의 부인'에 입각한 대결적 태도에서 벗어나 점차 '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의 자세로 이동했다. 결국 2016년 초 6천 여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의 '특별 고용'이라는 운동의 성과가 만들어졌다. 이 과정을 분석하기 위하여 우리는 비정규직 노동운동을 둘러싼 동맹/갈등 체계의 변화와 저항의 사이클을 기준으로 3개의 시기를 구분하였고, 각 시기별 동맹 체계 내의 협력-갈등 관계, 비정규직 운동과 갈등 체계와의 대결-협상 관계, 동맹/갈등 체계 사이에서 등장한 유력한 중재자의 역할 등을 통해 비정규직 노동운동의 궤적을 살펴보았다. 사내하청 노동자의 '특별 고용'으로 귀결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운동은 그 가시적 성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한계를 드러냈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요구는 결국 '정규직 되기'로 수렴되었고, 정규직 노조의 동맹 체계로부터의 이탈이 나타났으며, 정규직 전환의 결과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소멸의 길로 나아가고 있다. 종합적 평가를 통해 우리는 6천여 명의 사내하청 노동자의 '특별 고용'이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문제의 완전한 해결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생산 현장의 비정규직 문제를 제기하며 글을 마친다.

새 자료 가사체 고소설 「져부인젼」에 대하여 (New material : Classical lyrics novel 'Jeobuin-jeon')

  • 유권석;김영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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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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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1-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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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이번에 새로 발굴한 "져부인젼"은 가사체 고소설 작품으로 박재연소장본이다. 이 작품은 가사에서 흔히 발견되는 계여적(戒女的)인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내용을 살펴보면 고소설의 특징이 잘 구현되어 있다. 이 연구는 "져부인젼"이 새로운 고소설 작품이라는 점에서 먼저 서지사항을 검토한 후 작품의 특징을 서사의 흐름을 중심으로 고찰해 보았다. "져부인젼"은 원전의 분량이 36장으로 방대한 편이다. 크기는 가로 18.4cm, 세로 29cm이며 세로쓰기로 되어 있다. 첫 장과 마지막 장을 제외하고 한 면에 12줄씩 되어 있으며 한 줄에 대략 21~23자씩 적혀 있다. 겉표지 좌측상단에 논어의 편명인 "옹야", "술이"라고 적혀 있다. 제목은 "논어" "권지삼"이라고 되어 있고 속표지에 "져부인젼"이라고 따로 제시한 후 다시 이야기의 처음부분에 "져부인야기라"라고 부연함으로써 소설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게 제시해 놓았다. 표지로만 본다면 마치 서책으로 인식할 정도인데, 이것은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없게 하고자 한 의도로 생각된다. 또한 가끔씩 빠진 글자도 있으며 한글로 쓴 내용 위에 한자 성어를 제시해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있다. 박재연소장본 "져부인젼"은 낱말의 구성이나 언어의 활용을 통해 볼 때 대략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의 작품으로 판단된다. "져부인젼"의 내용은 크게 두 방향에서 파악할 수 있는데, 하나는 져부인이 고난을 극복하고 부와 명예를 얻기까지의 과정이며 하나는 시집와서 고생할 때 병이 들어 저승에 다녀온 내용이다. 두 사건 모두 뽈똥어미가 등장하는데 뽈똥어미는 악녀형 인물로 져부인의 행동과 배치되는 행동을 보이고 있다. "져부인젼"은 가부장제 사회에서 성공한 여성의 활약상을 담아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결말이 행복으로 귀결되어 있다. 즉 이야기의 흐름을 보면 크게 행복${\rightarrow}$불행${\rightarrow}$행복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는데, 저승담의 개입으로 가사체로 쓰인 고소설의 편폭을 넓힌 경우에 해당한다고 하겠다. 작품의 구성을 특징적인 단락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대략 7단계로 정리해 볼 수 있다. 첫째, 부를 타고난 선한 성품 둘째, 결혼과 가난, 부의 축적 셋째, 딸에 대한 가르침, 넷째, 뽈똥어미로 경계시킴 다섯째, 시부모와의 해후와 저승구경, 여섯째, 뽈똥어미의 단죄 일곱째, 져부인의 환생과 복락이다. 이러한 서사의 흐름을 지니고 있는 "져부인젼"은 뽈똥어미와 져부인의 목숨이 서로 뒤바뀌면서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저승에서 시부모를 만나 위기를 넘기고 뽈똥어미가 벌을 받게 되면서 사건이 해결된다. 저승담이 후반부에 개입되면서 서사의 흐름에 큰 변화를 보이고 있다.

길상사건(吉尙事件)을 통해 본 17세기 초 향화호인(向化胡人) 관리 실태와 한계 - 『향화인등록(向化人謄錄)』을 중심으로 - (Management of Naturalized Citizens from Yeozin and Its Limitation Through the Event of Guilsang(吉尙) in the Early 17th Century - Centering on 『Naturalization Registration』)

  • 이선희
    • 동양고전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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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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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3-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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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이 논문은 1602년 12월 함흥에 사는 향화인 길상(吉尙)이 무단 상경함으로써 촉발된 사건의 발생배경에서 처결까지의 과정을 살폈다. 이를 통해 당시 향화인에 대한 관리 실태 및 향화인의 처지와 향화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에 접근하고자 하였다. 길상사건은 "향화인등록(向化人謄錄)"에서 자세한 정황을 찾을 수 있었다. 길상의 무단 이탈은 국법을 어긴 것임을 영의정을 비롯하여 예조나 비변사에서도 언급하였지만 길상의 무단 상경에 대한 형정은 보이지 않는다. 길상 처리문제는 향화호인의 완취에 대한 찬반과 이주지에 대해서만 진행되었다. 완취는 당시 누루하치의 성장과 해서여진과의 세력전으로 인해 불안해진 6진 지역 번호들의 혼란과 관계하여 어려운 결정이었다. 계속 내려오는 향화호인들이 이전에 투화한 일족과 함께 살기를 원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조정에서는 완취에 대해 관대한 편이었다. 정리(情理)가 갖는 강한 명분에 대해 반대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주지에 대해서는 남쪽으로, 혹은 북쪽으로의 이주가 예조, 비변사 및 대신 사이에서 논란을 거듭하였다. 이주지로 결정될 경우 관할관찰사가 이해 당사자가 되는 탓에 함경도, 경기도, 충청도 등 관찰사 역시 장계를 통해 각 도의 입장을 전달하였다. 길상 일가의 이주지는 서울에 살기를 원하는 길상 일가의 강한 반발로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변경되어야 했다. 향화호인의 이주와 안접에 대한 처리는 도별로 달랐다. 향화인의 무단 상경은 길상사건 3년 후 길상의 조카 마보태가 길상 일가와 함께 살겠다는 이유로 재차 발생함으로써 야인의 향화가 지속되는 한 여러 차례 발생하였음을 반추하게 한다. 그러나 길상사건에서처럼 향화호인에 대한 처리는 일반 백성에게처럼 정해진 법에 따라 처리할 수 없는 일이었음을 길상사건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