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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토리안 스타일 주택 실내 디자인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Elements of Interior Design in Victorian Style)

  • 김정근
    • 디자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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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8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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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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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
  • 본 연구는 빅토리아 양식의 주택 실내에 대해 그 기본적 특징을 구체적으로 밝혀봄으로써 오늘날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빅토리아 양식 주택 실내의 특징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양식의 의미를 재조명해 보고자 문헌고찰을 실시하였으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빅토리아 양식의 주택은 전원의 단독주택이나 도시의 빌라, 타운하우스의 유형에 매우 다양한 역사주의 양식이 나타났고 지금까지 어느 시대 보다 다양한 주택유형이 등장하였다. 그중에서 벽돌과 뾰족한 지붕 사용과 같은 중세 고딕양식이 대표적인 특징으로 나타났다. 둘째, 빅토리아 양식의 실내는 로마네스크, 로코코, 고딕과 같이 과거 양식들이 사용되거니 하나의 실내에 절충적으로 표현되는 것이 특징이었고 방의 기능과 규범에 따라 양식들이 적용되거나 디자인의 비중을 달리하여 형식성을 갖는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실내는 낭만주의와 자연주의 영향으로 자유롭고 불규칙하며 다양성이 특징이었고 절충주의와 장식과다는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표현 특징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직물과 소품을 이용한 장식은 당시 공기오염이나 위생문제와 같은 환경적 요인이 관련된 것으로 나타났다. 기술적 발달은 주택에서 부엌과 위생설비 설치와 같은 전국적인 변화로 반영되었을 뿐 아니라 생산된 신재료와 주택 제품들을 통해 조화를 고려하는 다양한 디자인이 가능해지고 풍성하고 화려한 표현이 가능하게 해 주었다. 결론적으로 빅토리아 양식의 표현 특징에 영향 미친 요인은 낭만주의와 자연주의 사조 뿐 아니라 기술발달을 바탕으로 가족의 편이성을 고려하고 사회적 규범, 공기 오염과 같은 환경적 요인과 위생문제 해결, 빈번한 외곽과의 교류에 의한 개인의 가치 반영이라는 다양한 요인이 결부되었음을 알 수 있어 이와 같이 문제에 대처하는 방식으로써 빅토리아 양식에 대해 재고되어야 할 것이며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Cicindela(Cicindela) lewisi[sic] Bates: 한국곤충명집(1994)] 12. C.(Cicindela) sachalinensis Morawitz, 1862 산길앞잡이 13. C.(Cicindela) transbaicalica Motschulsky, 1845 참길앞잡이(=참뜰길앞잡이, 들길앞잡이, 왜길앞잡이) 14. C.(Cicindela) gracilis Pallas, 1777 깔다구길앞잡이 15. C.(Cicindela) obliquefasciata Adams, 1817 화홍깔다구길앞잡이(신칭) 16. C.(Eugrapha) elisae Motschulsky, 1859 꼬마길앞잡이 17 C.(Myriochila) speculifera Chevrolat, 1845 쇠길앞잡이 [=Cicindela(Myriochile) specularis Chaudoir: 한국곤충명집(1994)] 18. C.(Sophiodela) chinensis De Geer, 1774 길앞잡이게임, 토론그룹, 전자메일, 채팅과 상호관련을 가진 것으로 나타났으며, 교육/정보는 검색과 쇼핑, 현실도피는 게임과 토론그룹, 외로움은 토론그룹, 전자메일과 채팅, 쇼핑은 온라인 쇼핑과 상호관련성이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성적 만족과 관련해서 게임과 채팅은 긍정적인 상호관련을 가진 것으로 나타난 반면 전자메일 서비스 이용은 성적 만족과 부정적인 상호관련을 가진 것으로 분석되었다. 이는 대학생들이 지루하게 느끼거나 외로움을 느낄 때 전자메일을 주로 이용하지만 성적 만족을 위해 전자메일을 이용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3) 인터넷 이용 이후 다른 미디어와 면대면 커뮤니케이션과의 관계 인터넷을 이용한 후 응답자들의 전통적인 미디어(텔레비전, 라디오, 신문, 잡지, 편지, 전화) 이용이 감소되었으며 친구, 가족, 이성친구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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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영상학의 학문적 체계화를 위한 융합적 연구 (A Convergence Study for the Academic Systematization of Cartoon-animation)

  • 임재환
    • 만화애니메이션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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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권4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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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85-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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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
  •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문학적 글과 소리로 기술한 언어예술(言語藝術)과 미술적 그림으로 시각화한 조형예술(造形藝術)과 영화적 움직임으로 제작한 영상예술(映像藝術)을 복합적으로 응용하여 창작하는 융합예술(融合藝術)이다. 그런데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20세기 후반기부터 뒤늦게 대학의 전공 학과로 개설 운영되어 학문적 연구 개발과 예술적 창작 표현이 충족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학문적 체계화를 위하여 용어적 개념과 정의, 역사적 전개와 발전, 연구 영역과 탐구 방법, 그리고 전공 교육과 관련 창업군 등을 융합적으로 정립할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최근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형설출판사가 공동 운영하는 "학문명백과(學問名百科)" 서비스에도 만화를 비롯한 애니메이션, 영상, 게임, 콘텐츠 등의 신종 문화예술 산업 분야가 등재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불가분의 관계라서 설령 분리 독립하여 쓰더라도, 합성어로 구성된 '만화영상학(漫畵映像學, animatoon)'을 학문명과 학위명으로 원용하면서 세부 전공을 만화와 애니메이션, 영상과 게임 그리고 콘텐츠 등으로 정립하는데 연구 목적이 있다. 서론에서 만화영상은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축약형 합성어로 만화(漫畵)가 한자로 동양에서 통용하는데, 애니메이션은 한자와 로마자가 상(像)+영상(映像)+화상(畵像)+동화(動畵)+동영상(動映像)+동만화(動漫畵)+만화영화(漫畵映畵)이거나 image, pictorial image, ani, anime, animation, animated cartoon, cartoon animation, moving picture 등으로 난삽하여 이를 융합한 만화영상학(漫畵映像學, animatoon)으로 규명하고 학문적으로 체계화하여 학문명과 학위명으로 원용하고자 한다. 본론에서 첫째, 역사적 전개와 발전은 고대 중세 근대 현대의 만화영상으로 시대를 구분하여 동굴벽화, 동물희화, 종교만화, 캐리커처, 카툰, 풍자만화, 코믹스, 애니메이션, 2D+3D, 웹툰, K-toon 등으로 변천사를 미학예술론적으로 융합 분석하였다. 둘째, 만화영상학의 연구 영역을 이론+장르+작품+작가 연구를 살펴보고, 탐구 방법으로 인문사회+과학기술+문화예술 등과 융복합한 전공과목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셋째, 전공 교육은 아동+청소년+전공 학생의 만화영상 교육을 고찰하고, 만화영상의 창업군은 개인적 작품창작과 집단적 제작창업 활동을 다양한 직업군으로 탐색하였다. 결론적으로, 만화영상학의 현안과제로는 작가들의 개성화, 내용의 전문화, 형식의 다양화, 창작의 자율화를 고찰하고, 발전 방향으로 만화영상의 학문화 예술화 문화화 산업화를 제창한다. 21세기 문화의 세기에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영상과 게임과 함께 그 중요성이 높아져 만화영상학의 학문적 체계화를 위한 융합적 연구로 예술적 창작활동과 문화산업의 콘텐츠로 개발해야 영속한다.

옥국재(玉局齋) 이운영(李運永)의 <임천별곡(林川別曲)>에 나타난 근대성(近代性) 양상(樣相) - 그레마스의 행위소 모형을 중심으로 (The Aspects of Modernity in ImcheonByeolgok(林川別曲) by Okgukjae(玉局齋), Lee Un-young: Based on Using Greimas's Actant Model)

  • 박수진
    • 기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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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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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9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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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
  • 이 논문은 18세기 가사 작품인 옥국재 이운영의 <임천별곡(林川別曲)>에 나타난 근대성 양상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18세기는 시대적으로 파격적인 모습을 형성한 시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성을 드러내기에는 가장 알맞은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면에서도 사상과 체제의 변화가 일어났고, 봉건사회 붕괴의 가장 큰 요인인 신분체계가 흔들렸다. 이 변화는 새로운 근대의식이 시작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임천별곡(林川別曲)>은 이운영의 자전적인 이야기라고 보는 경향도 있다. 이는 이운영이 진보적인 실학사상을 가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양반됨을 욕보이면서 자신의 처지를 드러내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논자는 여항으로부터 전해들은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더 타당하다고 여겨진다. 또한, <임천별곡(林川別曲)>은 애정가사로 알려졌지만, 풍자비판적인 특징이 강하기에 애정가사로 보기 어렵다는 견해이며, 서사적 양상이 대화체라는 특이한 형식으로 서술되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임천별곡(林川別曲)>에 드러난 근대성 양상으로는 두 가지를 꼽았다. 하나는 '사랑과 욕망에 대한 저항'이고 다른 하나는 '신분질서의 해체'이다. 그레마스 행위소 모형으로 이 두 가지 양상을 제시하였다. <임천별곡>은 유교적 이데올로기, 신분제도 등의 조선의 봉건사회에 대한 저항과 반항의 형태로 이타적인 요소들에 대한 변화하는 근대적 조선을 드러내고자 하는 노력의 성과라 할 수 있다. 논자는 '저항'과 '해체'라는 말로 대신하였지만, 18세기 조선의 봉건사회에 대한 부패한 지배층과 착취당하는 서민층의 삶을 늙은 생원과 할멈으로 비유하여 제시하였던 것이다. 18세기 등장한 전통적인 봉건사회의 비판은 중세와 근대를 구별 짓는 헤게모니의 변화로 드러났고, 이러한 헤게모니의 변화는 18세기 전후의 차이를 드러내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18세기 가사문학에서는 이러한 헤게모니가 정확하게 구분되지는 못하였지만, 19세기에 이르러서는 정착되어 발전하는 양상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논자는 이러한 변화를 이끌어 내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작품으로 <임천별곡>이 있음을 제시하였다.

조선시대 중완구의 제작 기술 (Manufacturing Techniques of Bronze Medium Mortars(Jungwangu, 中碗口) in Joseon Dynasty)

  • 허일권;김해솔
    • 박물관보존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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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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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1-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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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1
  • 완구(碗口)란 유통식 화기로 발사체 장전 부분이 사발(碗) 형태인 화포이다. 발사체로는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나 단석(團石) 등을 사용하였다. 『화포식언해(火砲式諺解)』(이서(李曙), 1635)에 의하면, 대·중·소·소소완구 등 총 4종으로 구분되며, 실물은 대완구 1점(보물 제857호), 중완구 2점(보물 제858호, 제859호) 등 총 3점이 전한다. 본 연구에서는 임진왜란기에 제작된 국립진주박물관 소장 중완구(보물 제858호)와 해군사관학교 박물관 소장 중완구(보물 제859호)의 과학적 조사를 토대로 제작 기술을 확인하였다. 첫 번째로 국내 현전하는 중완구가 단 두점인 만큼 정밀 3D 스캐닝 정보를 바탕으로 세부 제원을 서로 비교하고, 동 시기의 문헌 기록 수치와 함께 검토하였다. 전체 크기차는 근소하나 중량에서 5,507g의 차이를 보이고, 세부적으로 심지구멍 위치와 손잡이 길이가 상이하다. 한편 현전 중완구는 『화포식언해』의 중완구 제원과 가장 유사하다. 두 번째로는 중완구의 성분을 분석하고 기존 청동제 화약 무기와 함께 검토하였다. 표면 성분 분석결과, 중완구는 Cu-Sn-Pb의 삼원계 합금이며, 평균 함량(wt%)은 Cu 85.24 : Sn 10.16 : Pb 2.98이다. 중완구의 재료 성분은 기존에 조사된 조선 청동 화약 무기의 평균 성분과 매우 유사하며, 중세 유럽의 청동제 화포 재료(Gun-metal)와도 유사한 경향임을 확인하였다. 마지막으로 중완구 표면의 주조 결함(casting defect)과 CT 상을 토대로 주조 기법을 추정하였다. 측면의 주조분할선으로 보아 주형을 반으로 나눈 분할 제작(piece mold)이며, 용탕의 주입은 약실끝 부분으로 포구가 바닥에 오는 수직 주형 설계로 추정한다. 특히 포신 기벽에서 주형과 코어를 고정하는 보조 장치인 채플릿(chaplets)이 확인되므로 이는 기벽을 일정하게 형성하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한편 보물 제858호와 제859호 중완구 두 점은 외형이 매우 유사하지만, 채플릿의 수량과 배치가 상이하여 주형 설계 일부가 달랐을 것으로 예상한다.

기록관리전문가의 양성교육에 관한 사례연구 -이탈리아의 기록관리학 전통과 교육과정을 중심으로- (A study on the case of education to train an archivist - Focus on archival training courses and the tradition of archival science in Italiy -)

  • 김정하
    • 한국기록관리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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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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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0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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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기록들은 이전 사회의 모든 분야의 삶에 대한 기록된 흔적이자 증언이다. 기록문화유산을 보존하는 것은 물론 우리 모두의 사명이지만, 특히 관리 및 보존의 임무는 기록물관리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고 있는 기록관리전문가들의 몫이다. 기록관리전문가는 단지 오래된 기록물만을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문서를 오늘날의 역사기록물로 정의하기, 위한 미래적 안목의 평가와 선별작업을 수행하여야 한다. 일반적으로 기록관리학의 범위는 기록물의 생산에서 영구보존에 이르기까지 방대하며, 내용적으로는 크게 업무 및 행정기록물관리와 역사기록물관리의 두영역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18세기말과 19세기초 구지도의 종말과 복원의 시대를 배경으로 원래의 질서를 상실한 채 방치된 수많은 문서들에 대한 정리작업의 필요성을 계기로 성립된 '역사기록물관리'가 기록관리학의 전통영역으로 대변된다. 이 당시의 오늘날의 십진법적 분류와 유사한 '주제별 정리방식'이 실험적으로 이루어졌다. 또한 기록물정리방식과 그 이론적 배경, 대규모 기록보존소의 설립, 그리고 기록물의 법칙, 문화적 가치 및 활용 등의 개념들이 기록관리전문가의 포괄적이고 전문적인 활동내용으로 규정되었다. 특히 이 시대에는 기록관리학이 중세문서들의 형태와 내용, 그리고 문서들의 다양한 서체와 기록배경에 대한 학문적 해석을 통해서 기록물을 역사연구에 활용하려는 고문서학 및 고서체학적 전통의 보조수단으로 인식되기도 하였다. 근현대의 기록관리는 고문서관리라는 전통영역이외에도 업무 및 행정기록물의 생산에서 등록, 분류, 편철, 활용, 선별 그리고 이관 등에 관한 종합적인 관리를 포함하게 되었다. 따라서 오늘날 기록관리전문가의 활동영역은 기록물의 행정적 가치에서 역사, 문화적 가치에 이르는 전과정의 흐름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으로 정의되고 있다. 기록관리학에 대한 기본교육의 핵심은 역사와 법으로 구성된다. 기록관리전문가에게 법연구가 필요한 것은 기록보존소가 법적 행정적인 활동으로 생산된 문서들을 대상으로 과학적 관리활동을 수행하는 연구기관이기 때문이다. 비록 기록관리전문가들이 어떤 분야의 전문지식과 학위를 취득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견이 많지만 기능성 차원에서 역사관련 학문분야를 선호하며, 기록관리전문가 자신의 신념이나 이념의 보편적인 테두리를 갖기 위해 법학연구도 강조되고 있다. 20세기 접어들면서 기록보존소가 문화기관에 예속되는 경향이 우세해져 행정기관들이 기록보존소를 관리하던 과거의 전통에 대한 반발이 커지기도 하였지만 이러한 현상은 큰 영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하였다. 이탈리아의 기록관리 교육은 토리노, 밀라노, 베네치아, 베노바, 볼로냐, 파르마, 로마, 나폴리, 팔레르모 등 대략 9곳의 국립기록보존소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이 시기의 교육과정은 대부분 고서체학과 고문서학 강의가 대부분이었으며, 여전히 기록관리학에 대한 교육은 실시되지 않았다. 1884년에 바티간의 비밀기록보존소는 '고서체학 교육과정'을 설치하였으며, 이 과정은 40년 후인 1923년에야 1년 단위의 기록관리학 과정으로 재편성되면서 명실상부한 <<고서체학, 고문서학, 그리고 기록관리학>>의 교육과정으로 발전하였다. 19세기말 20세기에 접어들면 국립기록보존소들의 교육과정에서 가장 기본적인 과목은 고서체학과 고문서학이 아니라 오히려 기록관리학임이 재차 강조되었다. 특히 고서체학과 고문서학에 대한 기록관리학은 우월을 강조하는 카사노바의 소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고서체학, 고문서학, 그리고 기록관리학이 모두 필수적이며, 문장학, 가계학, 그리고 인장학에 대한 교육과 더불어 완성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기록보존소의 모든 기록들의 고서체학자와 고문서학자 등의 개입을 필요로 하지는 않는다. 반면에 모든 문서들은 기록관리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기록관리학의 목적은 기록 보존소에 기록물을 이관한 제도와 기관들을 연구하고, 관리들이 어려움없이 모든 것을 쉽게 이해하고 각 기관들의 고유한 업무절차와 업무분단에 대한 무지속에서 헤메지 않고 자신들의 할 일을 분명하게 알게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이처럼 문서를 생산한 기관과제도들의 역사에 대한 연구는 이미 몇십년부터 기록관리학의 한분야로 자리잡았다. 기록관리학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고 학문으로서의 길고 어려운 여정을 겪는 동안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여러 국가의 기록보존소들은 역사를 비롯한 타학문가의 전문가들을 포함한 기록관리학의 버전문가들에 의해 운영됨으로써 많은 폐단을 겪게 되었다. 많은 기록물들이 도서관 사서들의 방식과 스타일에 따라 혹은 역사가들이 주장하는 주제별 분류방식에 따라 정리되었기 때문에 자국의 경험에 기초하여 마련된 기록물의 본래의 구조 즉 원 질서가 완전히 파괴되었다. 20세기 미국의 경우에도 도서관에 관련된 학문에 있어서는 다른 나라들에 비해 상당히 앞서 있었지만, 기록관리학에 있어서는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이탈리아의 기록관리전문사 양성을 위한 전문교육과정은 1925년 로마 국립대학교의 사회과학대학원을 배경으로 성립되었다. 대학의 기록관리교육은 역사, 법, 경제에 대한 열정으로 여러 국립기록보존서들에 기록관리교육이 정식 전문교육과정으로 정착되었다. 볼로냐 국립기록보존소의 '기록관리학, 고서체학 그리고 고문서학의 전문교육과정'은 이탈리아의 17개 국립기록보존소들에서 실시하고 잇는 교육과정들 중의 하나이다. 본 교육과정은 무료이며, 2년동안 8개의 과목(기록관리학, 고서체학, 고문서학, 기록보존소의 역사, 공증인제도와 사문서, 중세의 제도사, 근대의 제도사, 현대의 제도사 등) 중에 7개의 과목을 이수하는 것으로 구성된다. 2년의 학위과정은 2회의 필기시험관 1회의 구두시럽으로 마감된다. 최종시험성적이 문화환경부에 의해 종합되면 볼로냐 국립기록보존서의 소장은 시험을 통과한 수강생들에게 '기록관리학, 고서체학 그리고 고문서학 학위'를 수여한다. 이 학위증은 도, 지방 그리고 지방의 행정수도에 위치한 기록보존소와 특별히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자치도시의 조합기록보존소 및 다른 기관들의 기록 보존소에 근무할 수 있는 필수적인 자격조건을 구성한다. 바티칸의 기록보존소에서 교수되는 내용은 다른 교육과정들과 비교하여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그러나 과거의 역사에서 독립된 영토단위와 영적, 세속적 권력을 행사하였던 관계로 과목게 있어서 보다 전문적이고 세밀한 교육내용을 추구하고 있다. 필수과목으로는 기록관리학, 필사본학, 일반 고문서학, 교황청 고문서학 그리고 라틴 고서체학이 있다. 이외에도 강독실습과 구두를 통한 이론연습이 있으며, 문장학, 인장학, 상식문자의 역사, 교황청의 역사 등 인접분야 혹은 보조학문에 대한 교육도 선택적으로 실시된다. 이탈리아의 기록관리전문가를 위한 전문교육은 현장실습을 통해 과거의 문화유산에 대한 직접적인 접촉을 유도하고, 기록물 전체에 대한 관심에 앞서 각 문서에 대한 쵠화력을 가오하하려는 의도는 반영하고 잇다. 또한 기록관리 현장에서 기록관리전문가의 양성을 위한 교육을 실시한다는 발상은 역사적으로 해당지역의 독특한 발전과정을 증언하는 국립기록보존소들의 고유한 특성과 연계하여 지역문화유상을 보존하려는 보다 적극적인 문화정책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이탈리아 기록관리전문가를 위한 교육과정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이탈리아의 교육과정 대부분이 역사기록물에 대한 관리를 중심으로 계획된 반면에 업무 및 행정기록물에 대한 프로그램은 상당히 미미하다. 그러나 기록물 생산에서 영구보존에 이르기까지 역사기록물의 정리방식으로 원 질서 즉 생산당시에 부여된 최초의 질서를 존중하는 원칙이 채택되고 있으므로 업무 및 행정기록물에 대한 관리 역시 역사기록물의 관리체계와 일관성을 가지고 있다. 둘째, 17개의 국립기록보존시를 배경으로 기록관리전문가를 위한 전문교육과정이 운영되고 있다. 비록 대학의 기록관리교육이 활성화되지 못한 것이 자격과 능력을 겸비한 전문가의 부족때문이기도 하였지만, 이탈리아 국립기록보존소들이 교육과 이론보다는 기록관리의 일선에서 활동할 인력을 양성하는데 치중한 결과이다. 셋째, 역사문서들에 대한 연구를 위한 고문서학과 고서체학이 기록관리학을 지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넷째, 이탈리아의 과거사 연구가 기록보존소를 중심으로 기록관리전문가와 역사가의 상호보완적 관계를 통해 진행되고 잇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록보존소의 역사기록물을 공통문모로 하는 역사연구의 방법론은 거시사연구보다는 각 지역이나 소단위 연구주제의 독특한 역사발전상황을 존중하는 미시사적 연구방법론이 정착되는데 기여하였다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과제는 기록물을 관리할 주체에 관한 논쟁이 아니라 기록물의 다양한 그리고 그 가치를 훼손시키지 않는 방식으로 문서들을 책임질 능력과 통찰력 그리고 탄력적인 사고를 가진 기록관리전문가를 정하는 것이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이러한 전문가들을 양성하기 위한 교육과정을 준비하고 이들이 기록관리의 현장에서 신념을 갖고 종사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