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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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릉(貞陵) 사각 장명등(四角長明燈) 양식의 원류와 전개 -사찰 석등과의 비교를 통해 - (The Origin of the Square-Shaped Jangmyeongdeung of Jeongneung Royal Tomb and Its Stylistic Development -In Comparison with the Buddhist Temple Stone Lanterns-)

  • 김지연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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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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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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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0
  • 장명등은 능묘의 능침 앞 중앙에 놓여 사자(死者)를 지키고 밝혀주는 상징적인 기능과 함께 뛰어난 조형성으로 능역을 장식하는 역할도 담당했던 중요한 석물로서, 석등의 한 범주에 속한다. 정릉 장명등은 조선왕릉 장명등 중 최초로 조성된 장명등이며, 조선 전 중기 왕릉 장명등 가운데 유일한 사각 장명등(四角長明燈) 형태를 이루고 있다. 대석, 화사석, 옥개석 형식이 기본적으로 사각을 이루고 있어 팔각 장명등(八角長明燈)형식과는 완연하게 구분된다. 하대석, 간주석, 상대석을 1매의 통석으로 마련하고, 화사석은 1매의 통석으로 전후로 화창을 표현하였다. 정릉 장명등은 고려 현 정릉 장명등의 전통을 그대로 따랐으나, 이보다 뛰어난 조형성을 보이고 있어 조선 개국 이후 최초로 조성되었던 왕릉 장명등으로서의 격조를 무리없이 보여준다. 본고에서는 정릉 사각 장명등 양식의 원류를 파악하는 데 연구 목적을 두고 고려 왕릉 장명등과 더불어 사각 장명등의 연원이 되는 사찰 사각 석등과의 비교 고찰을 시도하였다. 그 결과 고려 말 회암사지 지공선사 석등 및 나옹화상 석등, 조선 초 회암사지 무학선사 석등 및 청룡사 보각국사 정혜원융탑석등과 다음의 공통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첫째, 대석, 화사석, 옥개석 등이 기본적으로 사각을 이루고 있는 점, 둘째, 간주석이 낮아지면서 대석부분이 안정적인 형태를 이루는 점, 셋째, 화사석의 경우 대석 위에 양측으로 석재를 세워 자연스럽게 전후로 화창을 구성하는 방법, 넷째, 옥개석이 사모지붕 형태를 하고 있는 점 등이다. 한편 정릉 장명등에는 불교적 요소가 다분히 내제되어 있는데, 간주석의 삼주문(三珠文)표현이 그것이다. 삼주문은 밀교와 관련된 상징물의 하나로서,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 불화 및 조선 초기 보살상의 보관에 표현된 예가 확인된다. 정릉 장명등은 이후 묘 사각 장명등 조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데, 15세기 후반 이후부터는 점차로 정릉 장명등의 영향에서 벗어나 팔각 장명등 형식이 보다 많이 가미된 경향으로 변모해 나간다. 정릉 사각 장명등은 고려왕릉에서 조선왕릉으로의 능제 계승, 사찰 사각 석등 양식의 수용, 그 시대 불교사상의 반영 등 당대의 시대상과 문화의 흐름을 유추해 볼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담겨진 산 증거물로서 의의가 있다 하겠다.

정릉(貞陵) 이장과 광통교(廣通橋) 개수를 통해 본 조선 초기 지배 이데올로기의 대립 (Collision of New and Old Control Ideologies, Witnessed through the Moving of Jeong-regun (Tomb of Queen Sindeok) and Repair of Gwangtong-gyo)

  • 남호현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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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3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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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34-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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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정릉(신덕왕후릉)의 축조와 이장에 얽힌 논란은 조선 초기, 신구(新舊) 지배 이데올로기 사이의 충돌이 잘 드러난 사례이다. 태조의 경처였던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은 도성 안에 조성되지만 태조 사후, 태종에 의해 도성 밖으로 이장되고 그곳에 남아 있던 석물들은 청계천의 광통교를 보수하는데 쓰인다. 야사에서는 태종이 강씨를 저주하기 위해 도성 밖으로 능을 옮기고 남은 석물들로 광통교를 만들어 사람들이 밟고 다니게 했다고 전한다. 태조 말년, 강씨와 태종은 대립하던 관계였으나 태조가 왕으로 옹립되기 전까지는 오히려 정치적 동반자에 가까웠다. 정릉이나 광통교와 관련된 실록의 기록은 더 담백하다. 정릉의 천장은 능묘가 도성 안에 있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는 의정부의 상언을 따른 것이다. 광통교 개수를 위해 정릉을 격하하고 이장시켰다는 주장에는 사실 관계가 반영되어 있지 않다. 논자는 광통교 개수에 정릉의 석물이 재사용된 것에 대해 당시 도성 안팎에서 건축자재소요량이 급증하여 효율적인 조달 필요성이 대두되었을 가능성을 상정하였다. 정릉이 도성 안에 조성되었다가 다시 도성 바깥으로 이장된 원인은 태조와 태종이 가졌던 사상적 배경의 이질성에서 찾았다. 태조는 유교국가의 통치자였으나 죽은 왕비를 위해 도성 내에 원찰과 무덤을 조성한다. 여기에는 불교의 힘을 빌려 죽은 신덕왕후의 권위를 위의하고 지지세력을 규합하고자 한 노림수가 있었다. 원의 다루가치 집안에서 태어나 지방군벌로 성장한 이성계는 높은 유학적 소양을 가지지는 못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오히려 호불적 성향을 띄는 구체제의 인물이었다. 반면 태종 이방원은 고려 말 과거시험에 급제했던 엘리트 유생이었으며 주자학에 대해서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유교국가에서 도성이 가지는 상징성에 대한 이해가 더 깊었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삼국시대 이후, 율령에 의해 통치되는 국가 시스템이 정립된 이래로 도성 바깥에 무덤을 만드는 경외매장의 원칙은 거의 예외 없이 지켜져 왔다. 정릉은 태조 개인의 강한 의지로 도성 내부에 조성되지만 왕 이전에 유학자였던 태종에게 이러한 모습은 바람직하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태종은 즉위 후, 주도적으로 도성 재정비를 추진하는데 이는 '예치'를 강조하는 유교 이데올로기를 한양도성의 경관에 명확하게 구현하고자 한 의지의 발현으로 보여진다. 정릉의 이장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 아래 진행되었던 일로 이해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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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건축사협회
    •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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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호통권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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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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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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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작품

  • 대한건축사협회
    •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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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호통권2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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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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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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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北漢山) 국립공원(國立公園)의 등산로(登山路) 주변(周邊)에서 답압(踏壓)이 식생환경(植生環境)에 미치는 영향(影響) (Effects of Soil Compaction upon the Vegetation Environment around the Trails in Pukhansan National Park)

  • 서민환;이돈구
    • 한국산림과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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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6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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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7-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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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87
  • 본 연구는 등산로 주변의 토양 및 식생에 대한 답압의 영향을 알아 보기 위하여 수행되었다. 야외 조사는 1986년 4월 6일과 10월 9일 사이에 11회에 걸쳐 북한산 국립공원 내의 우이 계곡과 정릉 계곡에 위치한 등산로 및 삼림 지역에서 실시되었다. Core를 이용하여 채취한 토양의 물리적 성질들을 측정하고, 식생 조사를 실시하여 현존 식생의 상태를 조사함으로써 등산로 주변과 사람들에 의해 이용되지 않은 삼림과의 토양 및 식생 상태를 비교 분석하였다. 또한 각 등산로별 이용량을 시간당 이용 인원수로 산정하여 이용량의 차이에 의한 변화량의 차이도 분석하고자 시도하였는데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토양의 물리적 성질은 등산로에서 거리가 멀어짐에 따라 점차 호전되어 삼림지역에서 가장 좋은 상태였다. 삼림지역에서는 등산로 주변보다 더 많은 수의 목본류가 나타났으며 흉고 단면적도 더 컸다. 그러나 초본류의 경우는 등산로 주변에 더 많은 개체가 나타났으며 피도도 더 컸다. 우이 계곡에서는 토양의 가비중 및 토양 경도가 증가함에 따라 식생량이 감소했다. 그러나 정릉 계곡에서는 가비중 만이 식생의 변화에 영향을 끼칠 뿐 다른 토양 인자는 식생량의 변화에 크게 관여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정릉 계곡의 식생은 토양 인자보다는 다른 인자에 의해 영향을 받았음을 뜻하는데, 이러한 점에서 볼 때 휴양지의 식생에 영향을 끼치는 인자에 대한 종합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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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기술기반 LID 시스템 적용을 통한 선릉·정릉 권역의 첨두유출량 분석 (A Study on the Peak Runoff Reduction Effect of Seolleung·Jeongneung Zone by Applying LID(Low Impact Development) System based on the Landscape Architectural Technology)

  • 김태한;최종희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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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5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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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6-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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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
  • 본 연구는 조경기술기반 LID 시스템 적용에 따른 선릉 정릉 권역의 우수유출변화를 수문학적 관점에서 분석하였으며, 연구결과를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광화문 침수가 발생한 2011년 7월 27일 기준 최대순간강우량은 27일 10시에 기록된 183mm/hr로 시간당 최대강우량 57.5mm/hr에 비해 3배 이상의 강우강도가 10분간 집중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둘째, 토심기준 시나리오에서 담심 1,500mm의 경우 첨두유출량 제어가 가능하여 해당 조경기술기반 LID 시스템 적용 시 선릉 정릉 권역의 수해취약성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셋째, 담심 기준 시나리오에서 모든 토심 모형에서 첨두유출량 제어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최초 우수유출을 토심 기준 시나리오에 비해 4시간 10분의 추가적인 지연효과를 기록하였다. 초기 우수유출저감에는 토심, 첨두유출량에는 담심이 상대적으로 중요한 지표로 해석되었다. 이를 통해 문화재 보호권역 내 경관친화적인 생태적 요소를 시스템화하여 적용할 경우 예상되는 수해방재효과를 이론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서울 정릉(貞陵) 재실(齋室)에 대한 소고 (Study on the Memorial Structure(齋室) in Front of Jeongreung Royal Tomb(貞陵) in Seoul)

  • 최득준
    • 건축역사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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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2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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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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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3
  • This study is related to excavation from ruins the memorial structure within the Jeongreung royal tomb. There are experimental assertion on the basis of results of the excavation, historical records. The location of the memorial structure is identified in picture of Sunwonbogam(선원보감), records of Chunkwantongho(春官通考). The memorial structure have 6 rooms where lay in 250 steps(步) from the south of Hongjeonmun gate, lotus pond lay in southeast of the structure recorded on Chunkwantongho that's guide book to manners. It's matched in the location as result of excavation. The building site consists of main house(윗채), outhouse(아래채) that's stationed in stepped. It seems that main house as the memorial structure have 6 rooms. It's used as outhouse for facilities attached to the main. It's characterized the memorial structure within the Jeongreung royal tomb that's stationed main house, outhouse in stepped it using natural ground. It's estimated that it's tried to conservation for building site, fence etc. in next several time. With regard to constructing time of the structure, traces involved to first construction is simple: 2 chimneys in flower bed, fence, a part of stone elevation, drains by using rectangular stone. It shows that the building site had been reconstructed or renovated during Gho-jong King 37s year of the Choson dynasty(A.D.1900). It seems that the memorial structure during approximately 300 years in existence from Hyeon-jong King 10s year of the Choson dynasty(A.D.1669) to the late 1960s.

조선왕릉 선릉·정릉의 역사문화경관림 실태와 관리 방안 (An Actual Condition and Management Plan of Historical Cultural Forest in Joseon Royal Tombs Seolleung and Jeongneung)

  • 최종희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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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7권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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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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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
  • 본 연구는 조선왕릉 선릉·정릉 역사문화경관림의 실태를 파악하고 체계적인 보존·관리 방안을 마련하는 것을 목적으로 수행되었으며, 도출된 결론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역사문화경관림 현황의 경우 식생은 갈참나무와 소나무가 우점하고 있으며, 갈참나무군락 21.22%, 소나무군락 21.22%, 소나무 식재림 3.69%로 분포하고 있다. 주요 식생 군락은 소나무군락, 갈참나무군락, 오리나무군락, 소나무식재림, 잣나무식재림 등이다. 둘째, 8개 자연림 방형구에서 흉고직경을 측정한 결과 주요 수종은 소나무, 갈참나무, 오리나무였으며, 흉고직경의 최고 분포범위는 소나무 20-25cm, 갈참나무 25-30cm, 오리나무 25-30cm로 나타났다. 셋째, 선릉에는 능의 형식에 맞지 않게 왕릉과 왕비릉 사이에 숲이 조성되어 있으며 정릉에는 능역이 좁아 소나무림이 조성되기에 불리한 환경을 보이고 있으며, 제향공간 좌우의 소나무림이 높이차가 심해 시각적 경관을 저해하고 있다. 넷째, 역사문화경관림의 관리방안으로 외래종인 스트로브잣나무를 제거하고 능선을 따라 소나무림을 조성한다. 선릉의 왕릉과 왕비릉 사이의 숲 제거 후 잔디밭을 조성하고, 정릉 좌우의 소나무림 높이를 조정하고 곡장 가까이에 있는 소나무들은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한다. 시각적으로 이질감을 보이는 수목들은 과감하게 정리하고, 경계부는 주변의 낙엽활엽수와 조화되도록 조정하고 10m내외의 완충공간을 유지한다. 본 연구는 역사적 상황이 유사한 조선왕릉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며, 추후에는 개별 조선왕릉 역사문화경관림의 실태를 파악하고 그에 적합한 관리방안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