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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목조건축 도리 결합방식 변천(變遷)에 관한 비교연구 (A Comparative Study on the Transition of Purlin Coupling Method of Korean and Chinese Ancient Wooden Constructions)

  • 차주환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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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7권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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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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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4
  • 본 연구는 한중 고건축 내부 가구(架構) 중 소슬재의 위치와 도리와 보의 결합 형태를 분석하여 동아시아 목조구조 체계 원리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적인 연구이다. 동아시아 국가인 한국과 중국의 고대 목조건축은 서까래와 도리, 그리고 보를 결합하여 건물의 윗부분을 구성하고 기둥과 결합하여 건물의 기본 골격을 형성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어 목조 구조 체계의 원리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세부적인 기법상의 차이가 지역성과 시대성, 국가성을 띠고 있다. 중국건축 내부 가구 중 도리와 보의 결합 형태와 차수(叉手), 탁각(托脚)의 지지점 위치가 시대에 따라 차이점을 보이고, 역사적으로 다양한 왕조에 따라 세부 수법이 다른 것으로 보인다. 15세기 이후 건축에서는 차수와 탁각이 없어지는 현상을 보이며 특히, 탁각은 명대 관식건축에서는 완전히 없어졌으며 주된 이유는 도리와 보의 결합 방식의 차이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15세기 이전에는 도리와 보가 서로 떨어져 결합되고 있었으나, 15세기 이후는 도리와 보가 서로 결합하고 보의 단면적이 비약적으로 커져 도리 좌굴을 방지하는 수법이 발달한 것으로 보인다. 탁각의 경우 당 오대 시기에는 탁각의 상부 위치를 봤을 때 도리와 직접적인 결합은 없으며, 도리의 좌굴을 방지하는 부재보다 내부 가구의 안전성을 유지하는 부재라고 볼 수 있다. 송대 이후 원대까지도 송 "영조법식"의 기록과 다른 건축물이 많은 것으로 보아 탁각의 적용 여부는 지역, 혹은 장인의 수법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원대 이전 우진각 지붕의 측면 도리 부근과 팔작 지붕 합각 아래 구조에서도 탁각이 있는 것 보아 종단면과 횡단면에서 모두 볼 수 있는 부재이며, 지지점의 위치를 보아 도리를 직접 지지하는 부재라기 보다 우진각 지붕의 측면 구조나 팔작 지붕의 측면 합각 구조의 안전성에 기여하는 부재로 보인다. 한국건축 중 고려시대에 반 'ㅅ'자형 소슬재(중국명: 탁각[托脚])가 유행하지 않은 이유는 도리의 좌굴을 방지하는 기법(도리 받침재)이 널리 유행하여 반 'ㅅ'자형 소슬재를 사용하지 않아도 도리가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방법을 선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의 도리는 도리+장혀+도리 받침재+보의 구성을 보여 도리가 직접 보와 결구되지 않는 특징이 있으며, 조선시대 이후 도리가 보의 단면적의 범위에 속해 도리가 좌굴 되는 현상을 방지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15세기 이후 중국건축에서도 같은 모습을 보이며, 15세기 이후 도리 좌굴에 대한 세부 기법이 한중 양국의 지역성과 국가성을 뛰어 넘어 보편성을 가진 예라 생각된다. 조선중 후기 건축에서 지붕부의 하중을 줄여 주는 방법인 덧걸이 수법이나 덧서까래 사용은 도리에서 보로 전달되는 하중을 줄여주어 도리 좌굴을 감소시켜 주는 효과가 있으며, 이는 조선시대에 건물을 영조하는 장인들의 도리 좌굴을 방지하는 또 다른 기술이라 할 수 있다. 한중 고건축 도리와 보의 결합 구조와 소슬재의 연구는 고려시대 이전 건축을 복원, 설계하는 연구에 기초적인 연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2000~2001년 홍역 유행시 홍역 항체 유무로 진단된 환아의 홍역백신 접종 여부에 관한 연구 (Study about Vaccination of Patients Diagnosed by Antimeasles Antibody in Measles Out break between 2000 and 2001)

  • 강계월;윤화준;박석원;김황민;김종수
    • Pediatric Infection and Vacc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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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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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67-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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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목 적 : 최근 2~3년 주기로 홍역이 유행하고 있으며, 특히 2000년 말부터 2001년 초까지는 홍역의 집단발생으로 방역당국과 의료계가 비상이었다. 이에 저자들은 홍역에 이환된 환아의 혈청 항홍역 항체를 측정하고 홍역 예방 접종 유무에 따른 차이를 조사하여, 홍역 예방 접종의 효과를 보고, 추가접종의 필요성 및 시기를 살펴보고자 본 연구를 시행하였다. 방 법 : 2000년 6월부터 2001년 6월까지 임상적으로 홍역이 의심되어 원주기독병원에 입원 또는 외래 방문한 298명의 환아 중, criteria for disease control을 만족하는 201명의 환아를 대상으로 홍역 발생의 성별, 월별분포, 예방접종 유무에 따른 연령별 분포 및 항홍역 항체의 양상을 조사하였다. 항홍역 항체의 측정은 발진시기에 채혈한 혈액을 Immunofluorescent Assay로 시행하였으며 IgG 항체는 역가가 1 : 10 이상인 경우를 양성으로 판정하였고, IgM 항체는 양성인 경우를 양성으로 하였다. 결 과 : 1) 대상군은 남아 117명, 여아 84명으로 남녀비는 1.4 : 1이었다. 2) 월병 발생 빈도는 5월에 38례(18.9%)로 가장 많이 발생하였으며, 2000년 11월부터 2001년 1월까지 증가 추세에 있다가 2월과 3월에 감소한 후 4월부터 다시 증가하였다. 3) 대상군 중 예방 접종을 시행한 경우는 93례(46.3%), 시행하지 않은 경우는 108례(53.7%)로 비접종군이 더 많았으나, 통계학적으로 유의한 차이는 없었다. 4) 접종군에서의 연령별 분포는 10세 이상에서 54례(58.1%), 7~10세가 15례(16.0%), 15개월~3세가 12례(12.9%), 4~6세 및 6~14개월이 각각 6례(6.5%)였다. 5) 비접종군에서의 연령별 분포는 6~14개월이 88례(81.5%), 15개월~3세가 9례(8.3%), 6개월 미만이 7례(6.5%), 10세 이상 3례(2.8%), 7~10세가 1례(0.9%)였다. 6) 예방접종 유무에 따른 항홍역 항체 IgG, IgM의 분포는 접종군에서 IgG, IgM 모두 양성인 경우가 78례(87.6%), IgG(+) IgM(-)인 경우가 11례(12.4%)였으며, 비접종군에서는 IgG, IgM 모두 양성인 경우가 69례(63.9%), IgG(-), IgM(+)인 경우는 39례(36.1%)로 나타났다. 결 론 : 홍역에 이환된 환아 중 비접종군에서는 6~14개월에 이환율이 가장 높았으며 이는 6~14개월에 모체로부터 받은 항체가 가장 많이 소실되기 때문으로 사료된다. 접종군에서는 10세 이상에서 이환율이 가장 높았고, IgG, IgM 모두 양성이면서 홍역에 이환된 경우가 대부분인 점으로 보아, 홍역 특이 IgG 항체 역가가 10세 이후에 가장 많이 감소하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따라서 홍역의 퇴치를 위해서 홍역의 초기 예방접종 뿐만 아니라 재접종이 중요하며, 특히 재접종의 시기가 매우 중요할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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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성기 홍역 환자의 정주용 인면역글로부린 치료 효과에 대한 연구 (The Study of Intravenous-gammaglobulin Therapy in Acute phase of Measles)

  • 김민식;차윤화
    • Pediatric Infection and Vacc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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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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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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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1
  • 목 적 : 홍역은 바이러스성 질환으로 강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으며, 최근 홍역이 대유행을 하고 있으나, 대증 요법만으로는 효과적인 치료를 할 수 없어 강력한 항 염증작용과 면역 조절 기능을 가진 정주용 인면역글로부린(intravenous-gammaglobulin)을 투여하여, 현저하고 신속한 임상 증상의 호전과 급성기 염증 반응의 소실을 경험하였기에 보고하는 바이다. 방 법 : 2000년 1월부터 2001년 2월까지 안양 메트로병원에 홍역으로 입원한 112명 중 치료군으로 선정된 68명에게 정주용 인면역글로부린(400~500 mg/kg)을 한번에 투여하였고, 대조군 44명은 대증요법과 수액제제 등으로 치료하여 두 군간의 발열 기간, 홍반성 구진의 소실 시기, 입원 기간 그리고 CRP의 출현 시기 등을 비교 분석하였다. 결 과 : 환자들의 평균 연령은 $7.9{\pm}3.6$세였고, 남녀 비는 1.0 : 1.6으로 여아가 많았으며, 입원 중 발열 기간은 치료군에서 평균 $2.4{\pm}1.2$일, 대조군은 $5.7{\pm}2.4$일, 홍반성 구진의 소실 시기는 치료군에서는 평균 $4.5{\pm}1.3$일, 대조군은 $6.9{\pm}2.4$일, 평균 입원 기간은 치료군에서 $3.5{\pm}1.3$일, 대조군은 $7.8{\pm}3.2$일로 치료군에서 의미 있게 신속한 임상 증상의 호전을 보였고, 입원기간도 현저하게 짧았다(P<0.05). CRP(정상 <5 mg/L)는 치료 전에는 두 군간에 차이가 없었으나 치료 후 5일째에 측정한 수치가 치료군에서는 평균 $6.2{\pm}1.4mg/L$로 대부분 정상이 되었지만 대조군은 $12.4{\pm}4.2mg/L$로 대조군에서 유의하게 높게 측정되었다(P<0.05). 결 론 : 중증 감염의 치료에 사용하는 정주용 인면역글로부린은 비교적 안전하며 부작용이 거의 없고 현저하고 급속한 치료 효과를 얻을 수 있어 급성기 홍역 환자를 치료하는데 대단히 유용하다고 생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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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정원의 지식정보 전개와 수용 - 15~19세기 편찬된 정원 및 화훼 관련서적을 중심으로 - (The Development and Acceptance of Knowledge Information in Garden of Joseon Dynasty - Focusing on the Garden and Flowering Books Compiled from the 15th and 19th Centuries -)

  • 김동현;이원호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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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38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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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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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연구는 15~19세기 편찬된 조선시대 정원 및 화훼 관련서적을 대상으로 통시적 분석을 통해 시기별 정원에 대한 지식정보가 전개되는 특징을 도출하고, 그 요인을 살펴본 결과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정원 및 화훼 관련서적을 편찬한 저자들의 관계성을 살펴본 결과 조선시대 실학의 계보와 유사한 특성을 보이고 있었다. 강희안의 실학적 면모는 후대 실학자들에게 영향을 미쳤으며, 이수광은 연행의 경험을 통해 정원 관련 지식을 축적하였다. 이후 중농학파 홍만선의 이념은 남인 계열의 유박과 관련이 있으며, 서유구 또한 중농학파의 경세론과 중상학파의 인물들과 교류를 통해 실학을 통합적으로 수용할 수 있었다. 류중림은 『산림경제』를 증보하면서 중농학파와의 관계성이 나타났다. 둘째, 『양화소록』과 『지봉유설』 「훼목부」, 『산림경제』 「양화」, 『증보산림경제』 「양화」, 『화암수록』, 『임원경제지』 「예원지」에는 정원 식물의 특성과 재배법, 관리방법 등이 수록되어 있으며, 『임원경제지』 「이운지」, 「상택지」, 「섬용지」에는 정원의 입지선정과 시설 배치, 조성방법, 재료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 정원 관련 서적의 서술방식은 개론이 55%로 가장 높았고, 방법론의 제시(42.8%), 이기론(15.5%), 분류(12.4%), 제도(1.9%) 순으로 확인되었다. 셋째, 정원 관련 지식정보의 비중을 기준으로 시기별 정원 관련서적들을 분류한 결과 17세기 이전 편찬된 『양화소록』과 『지봉유설』을 전기, 18세기 편찬된 『산림경제』와 『증보산림경제』를 중기, 19세기 편찬된 『임원경제지』가 후기로 분류되었다. 정원 관련서적들은 전대에 수록된 중국 고서와 저자의 경험, 의견들이 후대 정원관련서적에 인용되었으며, 저술 당시 발달한 농업기술과 전문지식을 반영한 정원 관련 지식의 보강이 이루어졌다. 넷째, 시기별 정원 지식정보의 전개와 수용양상을 분석한 결과, 전기에는 사물의 이치를 탐구하기 위한 방법으로 화훼를 다루고 있었다. 이후 18세기에 들어서면서 중국의 방대한 정원 관련 지식정보가 유입되어 사대부들 사이에서도 다양한 지식 섭렵의 일환으로 정원 조성에 대한 당위성을 확보하였으며, 이를 통해 정원에 대한 전문성이 확장되었다. 19세기 정원 조성의 유행에 대응하여 그간에 집적된 정원 관련 지식정보를 바탕으로 전문서적이 저술되면서 초기 정원 식물의 수집과 관리에서부터 정원 조성의 당위성, 조성방법, 향유방식, 자아실현 등의 체계가 정립되었다.

전라북도 아동의 예방접종실태에 관한 조사연구 (Study on Vaccination State in Children : Jeonbuk Province, 2000)

  • 정주미;김정철;은소희;황평한;;;김정수
    • Clinical and Experimental Pediatr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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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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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234-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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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2
  • 목 적: 전라북도지역의 어린이 예방접종의 실태를 파악함으로써 문제점을 알아보고 예방접종률과 접종 시기의 적절성을 향상시키고자 하였다. 방 법: 2000년 3월부터 6월까지 전북지역의 5세 이하의 소아 850명을 대상으로 하였으며 조사방법은 보호자의 면담과 예방접종수첩 등 의무기록을 근거로 이루어 졌다. 예방접종 종류에 따른 접종여부, 접종시기와 횟수, 접종장소에 대해 조사하였다. 결 과 : 1) 조사방법은 전체 850명 중 362명(43%)은 예방접종수첩을 통해 이루어졌으며, 488명(57%)은 보호자의 기억을 통한 면담으로 이루어졌다. 2) 전체 예방접종의 50.4%는 보건소에서, 44.3%는 개인의원에서, 5.3%는 대학병원과 종합병원에서 이루어졌다. 기본접종인 BCG(49%), B형 간염(47%), DTaP(61%), MMR(55%), 일본뇌염(73%)은 보건소에서 주로 접종되었고, 수두(62%)와 Hib백신(88%)등 선별접종은 개인의원에서 더 많이 이루어졌다. 3) 예방접종률은 BCG는 99.2%, B형 간염은 93.5%, DTaP & TOPV는 96.1%로 비교적 접종률이 높았으나, 선별접종인 MMR은 83.7%, 수두는 72.5%, 일본뇌염은 50.2%, Hib는 15.8%로 낮은 접종률을 보였다. 4) 예방접종 시기의 적절성은 B형간염은 88.4%, DTaP는 72.8%, 일본뇌염은 18.5%로 각각의 접종률인 93.5%, 94.6%, 50.2%와 큰 차이를 보였다. 결 론 : 1세 미만에 실시하는 예방접종들의 접종률은 비교적 높았으나 1세 이후에 실시하거나, 여러 차례 추가접종이 필요한 경우는 접종률과 적절성이 모두 낮았다. 특히, MMR, 수두, 일본뇌염, Hib 백신의 경우 지역사회에서의 유행을 예방하기에는 아직 낮은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예방접종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부모들의 백신 접종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고, 예방접종기록을 표준화하고 전산화하며, 예방접종 기록을 초등학교 입학시에 제출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리고, 예방접종 사업에 대한 평가와 이를 환류 할 수 있는 감시체계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우리나라 행정부의 시각 정체성 연구 (A Study on Visual Identity of Korean Government)

  • 조주은
    • 디자인학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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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19권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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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261-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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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6
  • 우리는 국가가 없는 짧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국가는 인간 생활의 거의 모든 면에 스며들어와 있다. 교육 경제 사회복지 국방 등의 영역은 물론 우리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이사를 하는 등 개인의 일로 여겨져 오던 일들에도 법과 제도를 통해 궁극적으로 국가의 권위나 통제력과 관련이 되어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국가 권력의 핵심인 정부(政府)는 정책의 기획과 수립 집행을 위한 조직체로서 효율적 역할수행능력을 지녀야 하는 동시에 대외적으로는 국가 권력 공동체로서 대표성(代表性)과 공공성(公共性)을 지녀야 하고 그에 합당한 이미지를 확립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정부기관들의 C.I.(Corporate Identity)는 각 부처가 개별적이고 산발적으로 개발하여 하나의 정부조직체(政府組織體)로서 체계와 통일성이 없다. 또 그 형태나 소재에 있어서도 단기간의 유행이나 흐름에 편승함으로써 일반 사기업(私企業)과 구별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이는 곧 우리나라 정부가 체계적이고 조직적인 행정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을 반증하는 것일 수 있다. 왜냐하면 어떤 대상의 이미지는 그 대상의 성격과 실체를 대변하며 이에 대한 외부의 인식과 평가가 곧 그 대상의 아이덴티티(Identity)가 되기 때문이다. 정부란 우리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공권력(公權力)을 수반한 조직체로서 사(私)조직과 차별되는 특성을 갖고 있으며 동시에 국가라는 사회문화적 공동체를 대표한다. 그러므로 정부조직의 체계적이며 통합적인 이미지 확립은 궁극적으로 국가 경쟁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고 하겠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국가기관으로서 정체성을 갖는 동시에 효율적 행정서비스 기관으로서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하는 정부의 통합적인 이미지 체계를 제시해 보고자 한다. 있는 개념이다.조를 벗어나면서도 활기찬 가로의 이미지를 갖게 되는 것은 가로공간의 구조적요소 이외에 가로공간 활성화인자에 의해 많은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즉, 이런 구조를 가진 한국의 상업지역의 가로인 경우 연도건물, 보도, 수경시설 등의 인자 순으로, 일본의 업무지역의 가로인 경우 수경시설, 연도건물, 보도인자 순으로 가로활성화에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과 대동소이했다. 물리적인 특성값(고유저항, 자기유도, 초투자율, 손실계수, 큐리온도 등)으로 미루어보아 각종 microwave 통신기기 core 및 고 투자율 deflection yoke core 등으로 사용이 가능하다.의 쐐기를 사용할 때 MU값이 크다. 결론: 수집된 광자선 빔 데이터를 분석하여 빔데이터의 정확성과 치료계획용 시스템의 계산 정확성을 대략적으로 점검 할 수 있는 기준 값을 제시하였다.동결이 요구되며 본 연구에서 이용된 OPS 동결 방법이 폭넓게 활용될 것으로 사료된다.며 이 때가 최상의 교배 적기로 사료되며, 혈장 progesterone농도가 4.0 ng/ml 이상으로 증가한 날(Bay 0)을 기준으로 하였을 때부터 CI는 혈장 estradiol-$17{\beta}$ peak 후 1일째인 최고치를 나타내었고, CI peak 후 1일째인 Day 0에 혈장 progesterone 농도가 최초로 4.0 ng/ml 이상으로 증가하여 CI가 90% 이상으로 지속된 시기가 최상의 교배 적기임이 확인되었다. 따라서 혈장 progesterone농도 측정으로 정확한 배란 시기 및 교배 적기를 판정할 수 있으나, 시설비가 저렴하고 검사 방법이 간단한 질 세포 검사가 Shih-tzu 견에서 발정 주기, 교배 적기 및 배란 시기의 판정에 응용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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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한중(韓中) 묵연(墨緣)의 상징, 매감도(梅龕圖) (Maegamdo(梅龕圖), Symbol of Chinese and Korean Scholary Comespondence in the 19th Century)

  • 김현권
    • 헤리티지:역사와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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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5권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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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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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2
  • 매화나무는 동아시아 문학과 예술에서 군자의 덕성을 표상하는 대표적인 상징으로 즐겨 애용되었다. 매화서옥도(梅花書屋圖) 역시 매화와 관련된 주요한 회화 형식이다. 이 논문은 구리매화촌사도(九里梅花村舍圖)류의 구성상 기원과 해당 그림들이 조선에 알려지는 과정을 밝히고 매감도(梅龕圖)가 제작되는 과정과 그 특징을 논의하고자 하였기에 이들 작품이 속한 매화서옥도의 발생부터 검토하였다. 현재 학계에서는 매화서옥도를 임포고사(林逋故事)와 연결시키고 있다. 물론 매화서옥도와 임포고사 간의 관계가 문인의 은거라는 의미로 연결되지만 작품의 구성 방식에 있어서는 임포고사에 기초한 회화류와 직접적인 비교가 힘들다. 방학도(放鶴圖)나 관매도(觀梅圖) 같은 임포 관련 회화에는 대개 한 두 그루의 매화나무와 학이 그려지고 이에 조응하는 문인이 표현된 반면, 매화서옥도는 문인의 은거가 묘사되면서도 여러 그루의 매화나무가 가옥을 둘러싸고 있는 구성이 주요한 특징이기 때문이다. 또한 매화서옥도는 매화 애호경향의 발생 이후에 그려진 관련 회화처럼 전 시기에 걸쳐 제작되지 않았다. 조선에서 매화와 관련된 회화는 세한삼우(歲寒三友)내지 사군자 일종의 매화도를 비롯해 탐매도(探梅圖) 같은 맹호연(孟浩然)고사에 기초한 산수화가 고려 이후 전 시기에 걸쳐 골고루 제작되었다. 그러나 매화서옥도만은 19세기에 집중적으로 그려졌다. 중국의 경우는 조선보다 빠른 17세기부터 성행하였다. 이같은 상황은 매화서옥도라는 유형의 회화가 특정 시기의 문화현상에서 비롯되었음을 알려준다. 조선의 19세기에 매화서옥도가 집중적으로 제작된 원인은 바로 김정희가(金正喜家) 및 신위(申緯)와 오숭량(吳嵩梁)을 비롯해 그의 회화 제작 주문을 전담하여 받았던 장심(張深) 간의 교유 때문이다. 이 교류 속에는 두 종류의 매화서옥도류가 제작되어 오고갔다. 청에서는 부춘산(富春山)아래 동강(桐江)가의 구리주(九里洲) 풍광을 담은 구리매화촌사도가 그려졌다. 구리주는 오숭량이 은거하려고 했던 곳으로, 수십만 그루의 매화나무가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조선에서는 오숭량의 매벽(梅癖)과 그의 시를 기념하는 '매감공양(梅龕供養)' 행위가 일어났고 그 모습을 담은 매감도가 제작되었는데, 이 매감도는 구리매화촌사도류에 보인 '만매(萬梅)형식'을 적용하였다. 대표작으로는 신위가 그렸을 가능성이 높은 <매감시불도(梅龕詩佛圖)>이다. 이 그림은 북경에 소개되어 장심이 그린 매감도들의 구성상 기초가 되었다. 이러한 매감도류는 19세기에 조희룡 등에 의해 '만매서옥도(萬梅書屋圖)'라고 별칭되는 매화서옥도의 유행을 가져왔다. 그러므로 이 논문은 19세기 후반에 성행한 만매서옥도의 발생을 파악하기 위한 선행단계에 해당된다.

공주 마곡사 명부전 불상 연구 (Buddhist Images in Myeongbujeon at Magoksa Temple in Gongju)

  • 최선일
    • 미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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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9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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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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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
  • 본 논문은 공주 마곡사 명부전에 봉안된 불상에 관한 문헌 검토와 양식적인 접근을 통하여 목조지장보살좌상과 석조시왕상의 제작 시기 및 조각승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 연구이다. 명부전 내에는 목조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석조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서 있고, 벽면을 따라 시왕상 및 권속 등이 배치되어 있다. 이 불상들은 1930년대 후반에 목조지장보살좌상은 청양 정혜사에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및 시왕상 등은 임실 신흥사에서, 시왕도는 논산 정토사에서 옮겨온 것이다. 이제까지 마곡사 명부전 목조지장보살좌상은 석조시왕상 조성 시기인 1677년에 함께 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목구비에서 풍기는 인상, 신체 비례, 착의법 등을 살펴보면, 17세기 전반에 활동한 수연(守衍)이나 그 계보에 속하는 조각승이 1620~30년대 만든 불상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하반신을 덮은 대의자락의 두 번째 주름이 수직으로 늘어지고 끝자락이 하트 모양으로 마무리된 점과 그 옷주름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을 이루며 낮게 펼쳐진 옷주름 처리 방식은 수연이 제작한 서천 봉서사불상(1619년)이나 익산 숭림사 불상(1634년, 옥구 보천사 조성)과 유사하다. 석조시왕상과 권속 등은 1677년에 조각승 성일(性日)이 수화승으로 제작한 것을 조성발원문을 통해 알 수 있지만, 성일이 수화승으로 만든 유일한 불상이고, 같이 제작에 참여한 작가들의 활동을 정확히 알 수 없어 새로운 자료가 공개되어야 구체적인 조각승의 계보가 밝혀질 것이다. 기존 연구에서 성일이 불상 제작과 중수에 참여한 활동을 살펴보면, 혜희(慧熙) 계보 또는 운혜(雲惠)(운혜(雲慧)) 계보에 속하는 조각승들과 함께 공동 작업을 하여 두 조각승 집단과 밀접한 관련성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곡사 시왕상은 호남이나 영서 지역에서 주로 제작되는 흙이나 나무가 아니라 돌로 제작되었으며, 영남에서 유행한 시왕상의 형태나 착의법 등과 유사하여 호남보다 영남에서 주로 활동한 조각승들의 작품으로 보인다. 앞으로 충남 지역 목조지장보살좌상과 석조시왕상의 체계적인 조사가 이루어진다면 조성 시기와 작가에 관한 심층적인 분석이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들에 대한 분석이 진행된다면, 17세기 후반 영남 지역 석조불상과의 비교를 통해 호남에서 제작된 석조불상을 주도적으로 만든 조각승과 활동 내용이 밝혀질 것이다.

송대(宋代) 『선화화보(宣和畵譜)』를 통해 본 화론미학(畵論美學) (A Study of painting theory Aesthetics of "Xuanhehuapu")

  • 장완석
    • 한국철학논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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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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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38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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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9
  • 중국 역사에 있어서 송(宋)는 금(金)이라고 하는 강대한 북방 이민족의 압력 하에서도 사회 경제적으로 또 문화적으로 큰 발전을 이룩한 시기이다. 송대는 전대의 문벌세족 장원경제가 철저히 와해되고 새로운 문인사대부가 대두되던 시기였다. 경제적으로는 조선, 야금, 방직, 염색, 인쇄 제지, 자기, 제염 등과 같은 일상생활에 필요한 수공업이 상당히 발전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상업의 번성과 도시의 발전, 남북지역 간의 교류로 발전을 이루었다. 상업의 번영과 도시의 발전은 문화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는데, 저자거리에서 유행하는 민간문학인 "화본(話本)"소설의 등장이라든지, 문인 사대부들의 사(詞)를 비롯하여 회화에 있어서는 문인화라는 새로운 장르가 대두된 시기이다. 또한 철학적으로는 리학(理學)이라는 새로운 신유학(新儒學)이 사회적으로 깊게 퍼져 나아가던 시대였다. 또한 송대 이래로 중국미학은 유 불 도(儒佛道) 3가(三家)가 합류되는 추세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이는 물론 회화 및 화론미학에서도 두드러진 추세라고 할 수 있다. 즉 유학(儒學)이 주도하는 유불도 사상의 합류는 이론가들이 회화이론체계 내지는 그림을 평론하는 화평(畵評)이나 화감(畵鑑)을 구성하는 데 중요한 사상적 기초가 되었다. "선화화보(宣和畵譜)"는 송대(宋代) 휘종(徽宗)의 명에 따라 선화(宣和)2년(1120년)에 편찬된 중요한 회화이론 저작이다. 어떤 학자들은 이 책의 중요한 의의나 그 가운데에 포함된 풍부하고도 복잡한 미학사상을 보지 못하여, 이로 인해 "선화화보"를 매우 낮게 평가하거나 심지어는 부정하기까지 했다. 휘종이 주제하던 화원(畵院)에서 회화는 어떤 면에서 있어서 휘종의 심미적 요구와 일치하는 풍격(風格)이나 기교, 법도로써 표현하기를 요구 받았지만, 이는 결코 다양한 소재나 스타일의 발전을 완전히 배척하였던 것이 아니라, 도리어 그 것의 발전을 촉진하고자 힘썼다. 이는 송대 회화 스타일, 유파의 다양성에서 분명히 보여주고 있으며, 그 이전 시대를 훨씬 능가하고 있다. "선화화보"는 풍부하고 다양한 미학사상을 내포하고 있으며, 일부 학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그리 간단하거나 협소하지 않다. 이 책은 유가(儒家), 특히 리학(理學)과 도가(道家) 중, 특히 장자(莊子)의 미학사상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 또한 이를 종합하여 "주역"을 통해 발현되고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측면에서 "선화화보"의 미학사상을 분석해 볼 것이다. 첫째, 서화 "동체"(서화동체(書畵同體))사상. 둘째, 회화의 "감계현우(鑑戒賢愚)"의 정치 교육적 작용과 순수예술의 가치와의 관계(시와 회화의 통일). 셋째, "예(藝)"와 "도(道)"의 통일. 넷째, "선화화보"는 중국 고대회화사에 있어서 가장 완전한 회화 분류학(分類學)을 세웠다. 다섯째, 회화평론의 방법에 있어서, "시대의 선후에 따라" "회화의 부문별로 그림을 나누고, 그림에 따라 사람을 분류하고, 사람에 따라 시대를 논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카톨릭교 전례복에 관한 연구-독일 Paderborn 과 kevelaer의 전례복 회사를 중심으로 (A Study on the Liturgical Vestments of Catholic-With reference to the Liturgical Vestments Firm of Paderborn and kevelaer in Germany)

  • 양리나
    • 자연과학논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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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7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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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p.133-1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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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95
  • 전례복의 전통을 고수하며 최상의 예술적 가치를 지닌 제의를 생산하는 Paderborn의 Wameling과 Cassau, 그리고 성모마리아 성지 순례지인 Kevelaer에 위치한 Kevelaerer Fahnen + Paramenten GmbH는 "Hidden Company"로 전유럽과 아프리카, 미국과 스칸디나비아 반도에 까지 널리 알려진 독일의 전례복기업으로 수 세기동안 종교적인 중심이 서 있던곳, 교회의 예식의 삶이 발전되어온 곳, 바로 그곳에서 계속해서 오늘날까지 예술의 수호자와 격려자로서의 모습을 굳건이 지켜나가고 있다. 이러한 3개 회사를 통하여 알아본 카톨릭 전례복은 다양한 모양과 색채, 형태와 기법을 사용하여 단순한 종교적 상징성을 넘어 미적인 화려함과 조형적인 조화로 현대직물예술, 미술의상, 그리고 디자인 전반에 활용이 기대되며, 신자들에게는 전례복에 대한 상징의 미와 조화에 대한 이해를 돕고, 비신자들로 하여금은 종교예술에 대한 의식과 관심이 정식적인 사고나 신앙심을 유발시키는데 중요한 영향을 끼치리라 본다. 전례복은 성직자가 미사. 성사. 집행. 행렬. 강복등의 모든 의식때 교회규정에 따라 입는 예복들을 총칭하는 말이다. 이러한 전례복은 무언의 언어로써 신성의 표현을 겉으로 드러낸것으로 세속인과 성직자를 구별해준다. 또 예식을 집행하는 사제의 몸짓과 동작, 언어를 뒷받침하여 전례의 뜻을 더욱 시각적으로 강하게 나타내 주고, 성직자로 하여금 성직의 직무에 더욱 충실할수 있도록 심리적영향도 준다. 이뿐만 아니라 전례복은 성직자의 지위와 권위를 나타내며 신자들로 하여금 성직자에 대한 위엄과 존경심을 불러 일으키고 전례복의 상징과 색체를 통해 전례의식의 기쁨과 슬픔을 심리적으로 공감하여 예식의 아름답고 신비스런 분위기를 창출하게 하므로 더 한층 신앙의 깊이를 부과시켜 준다. 전례복은 그리이스, 로마의 초상기 세속복이 종교적 경향을 띄면서 기독교 복식으로 자리 잡은 것으로, 313년 로마 Constantinus 황제에 의해 기독교가 공인되기 전까지는 세속인과 구별되는 특별한 제복은 없었다. 인간의 심리를 가장 잘 표현한 제의의 색채도 원래는 순수 흰색이었던 것이 12C 교황 Innocentius 3세에 의해 전례축일과 각 시기에 따라 특수한 색채를 사용하도록 규정되었으며, 현재의 전례복 색채의 상징적 의미는 교황 St. Pius (재위1566-1572)에 의해서 지니게 되었다. 장식과 소재도 초창기에는 대부분 모, 아마등이 사용되다가 4C부터 비단과 같은 특별한 소재가 사용되기 시작하였고 12C에는 금실로 직조된 화려한 소재가 사용되었다. 장식으로는 상징 문양의 자수, 직조, 아프리케의 견고하고 아름다운 장식이 널리 사용된다. 또 형태는 전통적으로 가장 널리 사용되어온 반원형의 풍성한 제의가 죄를 덮어주는 자비의 상징으로 오늘날 다시 유행하고 있다. 미래의 제의 형태도 결정적인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예측된다. 전례복의 발전은 계속해서 보수적인 교회의 명령에 의해 움직여질것이며 오늘날까지 변화해온 그 방식 그대로 각 시대의 문화와 시대정신, 복식의 유행에 따라 조금씩 변화의 과정을 거쳐 시대감각에 적합하도록 단순하고, 간편하게 변해갈 것이다. 사제의 수가 줄고 전례용품의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지도 모르는 판매 부진의 시기가 곧 닥쳐오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속에서도 전례복기업들은 각기업의 전례복 차별화와 예술적 진보를 위해 끊임없이 다양한 문양, 자수기술 개발, 창조적인 형태의 디자인 실현을 통하여 세계속에서 초 일류기업으로 당당하게 경쟁할 능력을 준비하고 있다. 또 각기업은 예술가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의식을 유도하고, 전시회와 전속예술가를 위한 Atelier를 마련하며, 다른 회사의 전례복과 구별되는 직물의 생산을 위해 자가 직물공장을 세우거나, 한 회사만을 위하여 직물을 생산토록 독점계약을 맺는등 소재의 독창화와 예술적 가치에 심혈을 쏟고 있다. 또한 외국신문에 기업광고를 내고, 영업사원을 활성화하며, 고객의 철저한 사후 A.S를 실시하여 기업의 발전에 노력하고 있다. 또 각 교회에서는 전례복 자수협회를 창단하여 취미 자수가나 재봉인의 교류에도 힘쓰며 전례복 생산과 자수공예를 배우려는 사람들에게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이와 같은 기업, 예술가, 교회의 노력은 3회사의 미래가 밝을 것임을 충분히 알려준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업의 다양한 기술개발과 연구, 예술가의 종교미술의 참여, 교회의 관심을 통하여 세계적으로 유명한 전례복 생산지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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