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요약/키워드: 연지

검색결과 356건 처리시간 0.022초

조선시대 한양도성 연지(蓮池)의 입지 및 공간적 특성 고찰 (A Study on the Locational and Spatial Characteristics of Lotus Ponds of Fortress Wall of Seoul(漢陽都城) during the Joseon Dynasty)

  • 길지혜;손용훈;황기원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 /
    • 제33권4호
    • /
    • pp.38-51
    • /
    • 2015
  • 고지도를 보면 한양에 동지, 서지, 남지 등 큰 연못이 표기되었는데, 이는 궁궐이나 공해시설, 일반 민간 저택 내 원지들과는 달리 국가 소유의 필지였으나 공공에게 개방된 연못이었다. 동지, 서지, 남지는 한양도성과 연결된 연지로, 본 연구는 여러 지도 및 도면 자료와 회화 자료, 고문헌, 문학작품을 수집해 종합 분석하여 물리적 차원에서의 연지의 조영 경위와 이후의 운영상황, 연지의 입지 및 공간 특성을 고찰하고자 했다. 연구 결과, 첫째, 서지와 남지는 비보, 명당수 확보, 화기 진압, 방화수, 수경시설로의 목적 하에 조영되었고 동지는 비보, 명당수 확보 외에도 수구막이로서의 기능이 중시되었다. 둘째, 주변 지형과 연지의 수원을 보았을 때 서지는 계류와, 동지, 남지는 구거와 연결되어 연못의 수량 확보에 차이가 있었다. 셋째, 서지와 남지는 도시지역에, 동지는 전원지역에 위치하였는데 이 같은 입지적 특성은 연지를 이용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쳤다. 넷째, 연지의 형태는 모서리가 둥근 방형이나 자유로운 형상으로 궁궐이나 공해시설의 원지와 구분된다. 다섯째, 연지는 지속적인 유지 관리를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었고, 조선시대 매몰과 수축의 과정이 반복되었다. 길게는 오백 년 이상 동안 유지되었던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연지들은 개국 초기에는 비보풍수적 의미가 강조되면서 조성되었지만, 점차 도시에서 넓은 수공간이라는 공공 오픈스페이스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거주민과 행락객들이 애착을 갖는 문화공간으로 운영되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장생보연지무의 균천악, 구변작대도와 구천도와의 연관성 - 『여령정재홀기』와 「이병성기록서」를 중심으로 - (Gyuncheonak of Jangsaengboyeonjimu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Gubyeonjakdaedo and Gucheondo - Focusing on 『Yeoryeong Jeongjae Holgi』 and 「Lee Byung-sung Record Book」)

  • 이하경
    • 한국콘텐츠학회논문지
    • /
    • 제22권6호
    • /
    • pp.238-246
    • /
    • 2022
  • 본 연구는 장생보연지무 창사에 '균천악'이 등장하는 것과 '구변작대도'가 도교·불교의 구천도와 서로 연관이 있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것에 목적을 두었다. 장생보연지무는 다른 어느 궁중정재보다 다양한 춤사위와 구도의 변화를 가지며 '구변작대도'라 하여 아홉 번 대형이 바뀌는 것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는 정재다. 『여령정재홀기』와 「이병성기록서」에 기록된 구호(口號)과 창사(唱詞)·구변작대도를 비교하여 보았는데 『여령정재홀기』에서는 전문(全文)이 기록되어 있지만 「이병성기록서」에서는 구호가 축약된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창사의 경우 『여령정재홀기』에서 '삼원 균천악노래의'로 기록하였던 것을 「이병성기록서」에서는 '삼원 균천악구여원'으로 변화가 있었으나 균천악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홀기에 기록된 '구변작대도'를 균천의 의미와 더불어 도교·불교의 구천도를 적용하여 연관성을 추론하였고, 1829년(순조 29)효명세자가 작품을 예제할 때 균천 사상을 구호와 창사·구변작대도에 넣어 작품을 만들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연지화장 연구 I - 화장의 기원(起源)과 연지의 시원(始原)을 중심으로 - (The Study on the 'Yeonji' Cosmetics and Make-ups I - Focusing on the origin of Make-up and the beginning of 'Yeonji' Cosmetics -)

  • 박춘순;정복희
    • 한국생활과학회지
    • /
    • 제14권3호
    • /
    • pp.453-466
    • /
    • 2005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the origin of make-up and the beginning of 'Yoenji' cosmetics. The result of this study is as follows: 1. The origin of make-up can be summarized as being originated from the sexual display to maintain tribes and incantatory religion for their existence. The reason for the preference to Yeonji in make-up is that Yeonji has a characteristic of red in color, which seems to hold effective for the sexual display of human beings. 2. The origin of Yeonji (焉支; Safflower) was from Egypt, but its inception as a cosmetic product was with Huns. 'Yeonji' was a term of Hungro race, and was also called Unji (焉支), Yeonji (燕支), Inji (姻支), Urji (閼氏), following the similarity of the sound. These terms were not only the interpretation of the Hunnish sound into Chinese, but also allegorical expression. Unji (焉支), Yeonji (燕支), and Inji (姻支) meant Safflower. Urji(閼氏) meant 'Empress' or 'Wife,' which was pronounced Yeonji (燕支) and Asi (閼氏).

  • PDF

한국장류식품(韓國醬類食品)의 유지성분(油脂成分)에 관(關)한 연구(硏究) -제(第) 1 보(報) : 청국장 발효(醱酵)과정중의 유지성분(油脂成分) 변화(變化)- (Studies on the Lipids in Korean Soybean Fermented Foods -I. Changes of Lipids Composition during Chungkookjang Fermentation-)

  • 이숙희;김선기;최홍식
    • 한국식품과학회지
    • /
    • 제15권4호
    • /
    • pp.399-403
    • /
    • 1983
  • 청국장 발효과정중에 일어나는 지질성분(脂質成分)의 변화(變化)를 규명하고저 삶은콩에 Bacillus natto 를 접종(接種), 3일간 발효시킨후 식염을 7% 첨가하여 20일간 숙성(熟成)한 청국장을 만들고, 삶은콩, 청국장 고오지 및 청국장제품의 지질(脂質)에 관한 연구를 행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삶은콩의 총지질(總脂質) 함량중 중생지질(中性脂質)은 92.08%, 유리지방산(遊離脂肪酸)은 1.76%, 당지질(糖脂質)은 2.04%, 연지질(憐脂質)은 4.12% 이었으나, 발효숙성(醱酵熟成)과정중 중성지질(中性脂質)이 감소하고 유리지방산(遊離脂肪酸) 함량이 증가하였으며 당지질(糖脂質)의 함량도 증가하는 경향을 나타냈고 연지질(憐脂質)의 함량은 청국장 고오지 발효중에 증가하였다가 숙성기간중 감소하였다. 또한 연지질(憐脂質)과 당지질획분(糖脂質劃分)들의 발효숙성중(醱酵熟成中)의 구성성분의 변화에 있어서 특히 포스파티딜 이노시톨 및 포스파티딜 콜린의 변화가 주목되었고 또 디-갈락토실 디-글리세리드가 현저하게 감소되었다. 한편, 중성지질(中性脂質) 및 유리지방산(遊離脂肪酸)들의 구성 지방산(脂肪酸)중 주요성분은 리놀레산이었으며 당지질(糖脂質)과 연지질(憐脂質)에서는 팔미트산이었고 특히, 다른 지질획분(脂質劃分)에 비해 당지질(糖脂質)에는 리놀렌산 함량이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발효숙성(醱酵熟成) 결과 연지질(憐脂質) 및 당지질획분(糖脂質劃分)들에서 포화지방산(脂肪酸) 함량이 감소한 반면 불포화도가 높은 지방산(脂肪酸)의 함량은 증가하였다.

  • PDF

일제강점기 도상자료를 통한 불국사의 경관변화에 관한 연구 (A Study on the Change of Landscape in Bulguksa Temple through a Iconographic Materials in the Period of Japanese Occupation)

  • 김규원;안계복;심우경
    • 한국전통조경학회지
    • /
    • 제33권1호
    • /
    • pp.21-30
    • /
    • 2015
  • 불국사(佛國寺)는 신라의 대표적인 사찰로서 임진왜란으로 완전 소실된 이후 1805년까지 중수와 중건을 거듭하였다. 그 이후의 기록은 없다가 재정상태가 어려워지면서 불국사의 중수는 중단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에 의한 수리공사가 크게 2차에 걸쳐 나누어 시행되었다. 해방이후, 1969년 불국사 복원위원회가 설립되고 발굴조사 후 1970년부터 공사가 시작되어 1973년에 준공되었다. 본 연구는 현재 국가기록원에 소장되어 있는 불국사의 일제강점기 건축도면과 1902년 불국사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긴 세키노 타다시(關野 貞)의 자료, 1973년에 발간된 불국사복원공사보고서를 통해 고찰하였다. 이를 통해 일제강점기 이후의 불국사의 경관의 변화를 확인하여 향후 복원이나 재정비 사업의 진행시 기초자료로 활용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연구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불국사는 19세기 초까지 유지되어 왔으나 그 후 사세가 약해졌고 그 후 일제강점기의 일본의 우월함을 표출하려는 무분별한 수리공사와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자료와 연구가 불충분한 상태에서 공사를 진행하여 많은 경관 변화가 있었다. 둘째, 구품연지(九品蓮池)는 고문헌에서 구품연지의 의미와 영지(影池)의 기능이 함께 언급되어 있어 그 명칭을 확정할 수 없고 실제로 발굴조사된 위치가 극락전이 아닌 대웅전 아래 공간이었기 때문에 구품연지의 교리적 의미와 발굴위치가 맞지 않는 의문점을 남기고 있었다. 구품연지는 창건초기부터 영지(影池)로서 역할을 하다가 시간이 흐르며 불국사의 사세가 약해짐에 따라 연지(蓮池)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어 극락전의 존재와 교리상 알맞은 구품연지(九品蓮池)로 불리게 된 것으로 추측하였다. 셋째, 대웅전 남회랑의 경관을 촬영한 1902년 세키노 타다시의 사진을 확인할 결과 당시 남회랑의 벽체가 없었고 1918년에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일제강점기 도면에서도 벽이 없는 회랑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1970년대 복원공사 뒤의 남회랑의 모습과는 다른데 불국사의 전체적인 경관과 함께 탑이 비추면서 아래쪽 지당이 영지로서의 기능을 했다는 근거 자료였다. 넷째, 48계단은 계단 숫자와 관련하여 정토불교와 관련된 48대원, 16관법, 대웅전의 관점에서의 승가시 3도로로 해석되고 있었다. 국가기록원에서 보관중인 일제강점기의 불국사 도면과 사진, 발굴조사자료를 확인한 결과 원래 없었던 것으로 판단되어 48계단에 대한 올바른 스토리를 알릴 필요가 있다.

정부시책

  • 한국전기산업진흥회
    • NEWSLETTER 전기공업
    • /
    • 96-16호통권161호
    • /
    • pp.13-18
    • /
    • 1996
  • PDF